[김대환 교수의 문화재 기행 32]
백자상감 봉황무늬 통형병
白磁象嵌鳳凰紋筒形甁
글_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 평론가
사진1) 「백자상감 봉황무늬 통형병 (白磁象嵌鳳凰紋筒形甁)」 조선시대 전기. 높이 18cm 입지름 3.7cm 바닥지름 9.5cm
일반적으로 원통모양으로 생긴 병을 통형병 이라고 한다. 삼국시대에 토기로 제작된 사례가 있으나 흔하지 않으며 남북국 신라시대에 도기로 본격적으로 생산되었고 형태도 가장 안정적으로 완성된다.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생산된 통형병은 고려시대에 이르러 여러 종류의 청자로 제작되기 시작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는 ‘청자철화 버드나무무늬 통형병(국보 제113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과 ‘청자철채상감 시명 통형병(오사카동양도자 미술관 소장)’을 들 수 있다. 사진2,3)
현존하는 조선시대 통형병의 제작은 대체로 18세기 이후에 제작된 사례가 많다. 바닥 굽은 몸통의 크기만큼 넓게 만들어서 더욱 안정감이 있고 상대적으로 입구는 작아져 몸통에 담긴 술등의 액체가 새지 않게 하였으며 통형병의 종류도 다양해 진다. 사진4,5)
그러면 조선시대 전기에 제작된 통형병은 어떠할까? 그동안 이 시기에 제작된 통형병에 대한 문헌이나 유물이 거의 출현되지 않아서 조선 전기에는 통형병을 거의 생산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 왕조가 바뀌면서 문화의 변화에 의한 통형병의 단절로 보았던 것이다. 전래된 유물이 없으니 틀린 이론이라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어려웠다.
사진1)의 ‘백자상감봉황무늬통형병(白磁象嵌鳳凰紋筒形甁)’은 최근에 필자가 직접 조사한 유물로 조선 초기에 경기도 지방의 왕실관요에서 제작된 통형병이다. 그동안 조선 초기 관요에서 제작된 통형병의 사례가 희귀하여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실견한 유물이다. 도자기의 입구는 조선 전기 병의 입구 모양으로 약간 외반되어 있으며 바닥 굽은 단면이 역삼각형이고 굽의 중심이 약간 올라온 조선 전기 병이나 대접의 바닥 굽과 동일하다. 굽에는 작은 석영질의 모래알이 붙어있으며 갑발을 사용하여 고운 모래받침으로 번조한 작품으로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상감기법을 사용하여 봉황무늬를 시문한 점이다. 사진6~8)
봉황은 용과함께 왕실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태평성대에 나타나는 상서로운 새로 수컷을 봉, 암컷을 황이라 한다. 조선시대 개국 이후에 성군의 덕치를 상징하는 의미로 궁중무용이나 송축가 등의 궁중음악과 왕실의 건축물이나 공예품 등에 사용되었다. 이 작품에도 봉과 황이 대칭으로 새겨져 있는데 날고 있는 봉황의 모습이 역동적이며 거침이 없다. 조선시대 초기에 상감기법으로 제작된 유일한 봉황무늬의 통형병으로 문화재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유물이다.
통형병은 삼국시대에 도기(陶器)로 제작되어 남북국 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는 청자와 백자로 약 1500년의 기간 동안 단절되지 않고 한결같은 모양으로 제작되어왔다. 이것은 끊임없이 이어져 온 우리 민족의 정통성과 연속성이 유물 속에 내포되어있는 것이다. 한 가지 형태의 도자기 병이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지속적으로 만들어진 사례는 매우 드물다.
문화는 시대에 따라 주변국과 교류하면서 변화한다. 조선 초기 유교적 사상에 입각한 왕조가 중국의 문물을 도입하고 백자 제작의 일부는 모방하였지만, 중국에는 없는 상감백자는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고 전통적인 우리 민족 고유의 작품을 새롭게 탄생시키고 발전시킨 것이다.
-----이하 생략
<</span>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세라믹코리아 2023년 11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기사를 사용하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www.cerazi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