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 교수의 문화재 기행 41]
백자청화 용무늬 꽃모양 잔
白磁靑畵雲龍紋盞
글_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 평론가
사진1) 「백자청화용무늬꽃모양잔」 조선시대(16세기) 높이: 3.5cm 입지름: 6.8cm 바닥지름: 3cm
조선시대 초기에는 여러 종류의 아름다운 잔이 제작되는데 15세기부터는 몸통의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두귀잔(兩耳盞)’이 제작되기 시작했고 16세기부터는 몸통이 한 송이의 꽃처럼 생긴 ‘꽃모양잔(花形盞)’이 함께 제작되기 시작했다. ‘두귀잔’은 조선시대 백자와 분청사기로도 만들어졌는데 작은 잔을 잡기 쉽게 몸통의 양옆으로 넓고 길게 손잡이를 만들어 붙였다. 사진2)
‘꽃모양 잔’은 이미 고려시대 청자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은이나 금 등의 금속기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고려시대의 영향으로 볼 수도 있으며 몸통에는 별도의 손잡이는 붙이지 않았고 고려시대의 ‘꽃모양 잔’에 비해서 크기도 작다. 사진3, 4)
12~13세기 고려시대에 유행하던 ‘꽃모양 잔’이 200여 년 후인 조선시대에 다시 등장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어느 정도의 연관성은 내재하고 있을 가능성은 높다.
사진1은 「백자청화 용무늬 꽃모양 잔」으로 조선시대 초기에 제작된 아담하고 앙증맞은 꽃모양의 백자 잔이다. 조선왕조 초기에 제작된 꽃모양의 잔은 여러 유물이 전해지고 있고 확인되었으나 잔의 안쪽 면에 청화안료를 사용하여 용과 구름무늬를 그려 넣은 경우는 처음으로 실견(實見)하였다.
조선 초기에 청화안료를 사용하여 만들어진 백자는 왕실과 관련된 최고위층을 위한 전유물로서 제작 당시에도 귀했고 현존하는 유물의 수도 극히 제한적이다. 특히, 도자기에 그려진 용무늬는 왕을 상징하는 것으로 더욱 희소하며 왕이 직접 사용하던 생활 용기로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잔과 잔받침이 같이 사용되었을 것이고 잔받침은 전접시 모양으로 접시의 가운데는 잔이 미끄러지지 않게 잔을 올려놓을 만큼의 턱이 나 있었을 것이다. 같은 시기에 제작된 유물로 현존하는 잔받침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진5)
이 ‘꽃모양 잔’의 바닥 굽에는 미세한 모래알이 드물게 붙어 있고 모래알을 제거한 흔적이 보이며 몸통에는 투명한 백자유약을 두껍게 시유했으며 입구 부분은 약간 벌어져 있다. 모두 6엽의 꽃잎을 S자 모양으로 조각하여 꽃모양을 만들었다. 사진6~8)
‘꽃모양 잔’ 속의 용과 구름무늬는 푸른 청화안료로 그렸는데 궁중 화원화가의 능숙한 필치로 거침이 없다. 구름 위를 날고 있는 용의 모습으로 힘차게 쭉 뻗은 앞발과 곧게 선 갈기는 역동적이며 5개의 발가락을 지니고 있는데 조선 초기의 도자기나 회화에 등장하는 용의 발가락 개수는 3개부터 5개까지 다양하게 나타나며 신분의 등급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사진9, 10)
조선 초기 청화안료의 발색은 엷은 파란색부터 진한 검푸른 파란색까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안료의 성분보다는 도자기 소성 시 온도에 따라서 청화안료의 발색이 결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11, 12)
조선 초기에 제작된 이 「백자청화 용무늬 꽃잔」은 비록 작은 소품이고 일부 결실되어 수리되었지만, 현존하는 유일한 ‘용무늬 꽃모양 잔’으로 학술적 가치와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며 온전하게 후손에게 전해져야 할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조선 초기에 제작된 청화백자 용무늬의 작품은 확인된 유물이 국내외 모두 5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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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ramic Korea (세라믹코리아)=이광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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