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 교수의 문화재 기행 42]
백자 투각 청화동화 안상무늬 벼루
白磁透刻靑畵銅畵眼象紋硯
글_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 평론가
사진1) 「백자 투각 청화동화 안상무늬 벼루」 조선시대 가로: 24cm 세로: 14.8cm 높이: 8cm
문방사우(文房四友)에 속하는 벼루(硯)는 기록을 남기는 도구로서 붓을 이용한 서사작업과 함께 발전하였으며 한민족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는 유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가장 이른 시기의 벼루는 낙랑고분에서 출토된 전한시대의 돌벼루이고 삼국시대부터는 다양한 재질의 벼루들이 출토되는데 돌벼루, 도기벼루, 도자기벼루 등이다. 삼국시대 벼루의 모양은 대부분 원형이거나 원형에 다리가 달린 형태로 평양 정릉사터에서 출토된 고구려 도기벼루, 연천 호로고루산성에서 출토된 고구려 도기벼루, 몽촌토성과 사비산성에서 출토된 백제 녹유벼루 파편, 부여부근에서 출토된 백제 벼루 등이 있고 신라시대에는 안압지에서 출토된 도기벼루가 남아있다. 남북국시대 후반부터 고려시대에는 대체로 풍자연(風字硯)이 유행하며 조선시대는 모양과 형식이 다양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벼루의 재질은 돌벼루로 고려시대는 청석을 즐겨 사용하였고 조선시대는 충남 보령의 남포석, 장산곶의 해주연, 평북 압록강변의 위원석이 유명하다. 특히 위원석은 시루떡의 단면처럼 두 가지 층으로 된 자색(紫色)과 백색(白色)인 돌의 특성을 이용하여 화려하게 조각을 한 일월연(日月硯)으로 유명하였고 위연단계석(渭原端溪石)으로도 불렸다. 벼루는 먹(墨)이 잘 갈리고 갈아진 먹 고유의 색이 잘 드러나야 한다. 먹을 가는 연당(硯堂)의 표면은 미세한 봉망(鋒芒)이 있어서 봉망의 강도가 알맞아야 좋은 벼루라 할 수 있다. 봉망의 강도가 너무 강하면 먹빛이 좋지 않고 너무 약하면 먹이 잘 갈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기벼루의 강도가 대부분으로 돌처럼 단단하다. 다만 먹의 강도를 돌벼루에 사용하는 먹 보다는 연하게 하여 잘 갈리도록 하였을 것이다.
도자기 벼루(陶磁硯)는 현존하는 유물이 매우 희소하고 실제 사용한 것과 장식용 혹은 부장용등 여러 가지 용도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로 사용한 도자기 벼루는 먹을 가는 연당부분의 유약을 제거해서 태토의 거칠한 부분에 먹이 갈리도록 하였고 부장품으로 보이는 도자기 벼루는 연당부분의 유약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먹을 가는 기능은 없고 다만 형태만 벼루로 만든 것이 있다.
고려시대는 여러 종류의 수준 높은 청자 벼루가 제작되었다. 충남 태안 대섬 앞바다에서 출토된 청자퇴화문두꺼벼루(보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와 청자상감모란문‘신축’명벼루(보물, 삼성박물관 리움), 청자장미꽃장식벼루(개인소장) 등이 전해지고 있다. 사진9~사진11)
사진1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왕실관요인 경기도 광주의 분원리에서 제작된 백자 벼루로 명칭은 ‘백자 투각 청화동화 안상무늬 벼루’이다. 명칭을 그대로 풀이하면, 청화안료와 동화안료를 사용하여 색칠하고 높은 다리 사이의 공간을 만들어 안상(眼象)을 표현한 백자벼루로 해석된다. 크기는 가로 24cm, 세로 14.8cm, 높이 8cm, 판의 두께 1.5cm로 도자기 벼루로서는 대형벼루에 속하며 조선시대 왕실이나 사대부가에서 사용했을 귀한 유물이다.
이 벼루는 다섯 장의 점토판을 만들고 높은 투각다리를 조각한 후에 상자모양으로 이어 붙였는데, 윗면의 먹을 가는 꽃잎 모양의 연당과 먹이 모이는 연지 부분의 상판이 매우 특이하다. 양옆으로는 붓을 눕혀놓을 수 있게 붓 모양의 홈을 파 놓았고 벼루 머리 부분의 연지는 아름답고 세련된 꽃잎 모양으로 만들었다. 사진2~사진6)
벼루의 다리에 칠한 동화안료의 발색은 전형적인 19세기 분원관요의 발색으로 검붉은 팥죽색이며 연당의 옆면에 칠한 청화안료와 대비되는데 넝쿨무늬와 번개무늬를 새겨 넣었다. 연당의 중심 일부는 유약을 닦아내어 먹이 갈리도록 하였으며 태토의 철분을 잘 걸러내고 맑고 투명한 백자유약을 시유하여 모래받침으로 소성하였으며 같은 시기, 왕실요에서 제작된 사진8의 도자기 벼루와 같은 계열이다. 청화안료와 동화안료를 함께 사용하고 투각기법의 화려한 수단을 동원하여 제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맛이 차분하고 정갈하며 나무로 만든 목가구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고려시대 청자로 세계적인 도자문화를 꽃피운 뛰어난 기술력은 조선시대 유교사회의 선비정신과 어우러져 아름답고 세련된 백자의 세계를 또다시 꽃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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