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 교수의 문화재 기행 44]
분청사기 덤벙무늬 찻잔
粉靑沙器粉粧紋茶碗
글_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 평론가
사진1 「분청사기 덤벙무늬 찻잔」 조선시대, 입지름: 14.5cm, 높이: 6.5cm, 굽지름: 5.5cm
전라남도 고흥군은 조선 초기 덤벙무늬 분청사기粉粧紋粉靑沙器를 제작한 가마터가 집중적으로 분포된 지역으로 연구자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분청사기에 대한 관심도도 매우 높고 문화재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곳이다.
조선시대 분청사기는 전국적으로 제작되었고 제작기법도 다양해서 상감기법, 인화기법, 철화기법, 귀얄기법, 박지기법, 조화기법, 덤벙기법 등의 기술이 사용되었으며 생산된 그릇의 종류 또한 병, 사발, 접시, 제기류 등의 실용기 위주로 매우 다양한 편이다. 이렇게 다양한 분청사기 찻사발 중에 가장 귀하게 여겨지는 찻사발은 고흥군 일대의 덤벙기법으로 제작된 찻사발이다. 사진8~9)
덤벙분청사기는 철분이 많이 포함된 태토의 표면에 백토분장白土粉粧을 하는 것이다. 백토분장을 하고 번조를 하면 마치 백자처럼 하얀색의 도자기를 얻을 수 있으며, 청자토로 번조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지역에 따라서 백토분장을 굽바닥 밑까지 완전히 하는 것(완전덤벙)과 그릇의 반정도만 하는 것(반덤벙)으로 구분되는데, 이 중 특히 귀하게 여기는 것은 완전덤벙분청사기로 일본의 차인茶人들은 ‘분인粉引’이라 하였으며, 수백 년 동안 전세 되어온 유물이 개인이나 일본의 여러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진2~4)
사진2의 ‘덤벙분청사기다완’은 수백 년간에 걸쳐서 전세 되어 온 찻사발로(삼호장경三好長慶➡풍신수길豊臣秀吉➡금삼종화金森宗和➡삼정본가三井本家➡주정가酒井家➡삼정가三井家) 임진왜란의 주역인 풍신수길이 사용하기도 하였고 지금은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대명물’로 간주된다. 16세기 전라남도지방(고흥, 보성, 무안)에서 제작된 덤벙분청사기찻사발이 일본에 수입되어 수백 년 동안 소장한 소장자들의 명성과 의미를 덧붙여 찻사발의 본질보다는 자신들의 소유과정을 더 부각시켜서 전혀 새로운 자신들의 유물로 탈바꿈시키는 일본인의 방식이 가미된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수입품(조선도자기)을 일본제품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사진1은 역시 전라남도의 고흥, 보성, 무안지방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덤벙기법의 찻사발로 「분청사기 덤벙무늬 찻사발」이다. 그릇의 내저면이 깊고 백토분장이 바닥 굽까지 두텁게 되었으며 몸통의 선이 유려하고 높은 죽절굽의 명품 찻잔이다. 골고루 시유된 유약의 표면은 미세한 빙렬이 가득하며 기벽器壁의 ‘창窓’(일본 다인들은 이것을 ‘풍경’이라 하여 귀하게 여겼고 우리는 ‘창’이 열린 것이라 하여 명품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된다)은 3.7cm로 알맞게 열려 있다. ‘창’은 찻사발을 백토분장할 때 생기는 것으로 찻사발에서 최고의 자연미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진5~7)
현재 일본에 소장된 ‘분청사기 덤벙문 찻사발’중에 창이 열린 작품은 몇 점에 불과하며 국내에도 현존 수량이 적고 귀한 유물이다. 차를 좋아하는 차인茶人 뿐만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은 두 손에 꼭 쥔 명품 찻사발에 말차 한 모금을 마시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사진1 「분청사기 덤벙무늬 찻잔」 조선시대, 입지름: 14.5cm, 높이: 6.5cm, 굽지름: 5.5cm
사진2 분청사기덤벙다완(일본 중요문화재 대명물. 일본 삼정기념미술관)
사진3 분청사기덤벙다완 (중흥명물. 일본개인소장)
사진4 분청사기덤벙다완 (대명물. 일본전산기념관)
사진5 안쪽 면
사진6 바닥 굽
사진7 몸통에 열린 창
사진8 고흥 운대리 분청사기가마터 발굴현장
사진9 고흥 운대리출토 덤벙찻잔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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