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 교수의 문화재 기행 46]
청자 오리모양 연적
靑磁鴨形硯滴
글_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 평론가
사진1. 「청자 오리모양 연적」 고려시대, 길이:19cm, 높이:14.5cm, 넓이:11.3cm
오리는 고조선시대 청동기 유물이나 삼한시대 소도의 솟대 등에도 등장하며 삼국시대에는 오리모양의 도기도 다수 제작되었고 조선시대 후기까지도 일상의 친숙한 문양으로 자리 잡았다. 고대사회에는 인간과 천상의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자 역할을 하여 신에게 인간의 염원을 전달하는 역할도 하였으며 이후에는 금실 좋은 부부를 뜻하기도 하였다. 물속에 사는 오리는 농경사회에 풍요로운 물을 제공하며, 많은 새끼를 낳아 다산을 의미하고 ‘鴨’자에 갑옷‘甲’자가 있어서 장원급제나 벼슬을 상징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오리의 상징적 의미는 고려시대 문방용구인 청자연적에도 잘 나타난다. 청자연적은 길상의 의미를 내포하거나 상서로운 동물과 인물을 주제로 제작되었는데 현존하는 수량은 매우 적다.
사진1~사진5의 「청자 오리모양 연적(靑磁鴨形硯滴)」은 현존하는 고려시대 청자오리연적 중에서 가장 큰 작품이다.
온몸에는 투명한 비색의 청자유약을 두껍게 시유했으며 고개를 약간 쳐들고 물 위에 떠서 헤엄치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꼬인 수련 줄기의 연꽃봉오리를 입에 물고 등에는 자연스럽게 작은 연꽃봉오리와 연 줄기, 연잎이 놓여있다. 날개와 꼬리 깃털의 표현도 음각 선으로 섬세하고 정연하게 조각하였으며 눈매와 부리의 표현까지도 세밀화를 그리듯이 빈틈이 없다. 부리의 끝에는 출수구로 물이 나오도록 만들었고 등에는 연잎 받침의 입수구가 있다. 오리의 두 눈은 눈의 윤곽을 조각하고 산화철 안료를 눈동자로 찍어서 검게 표현하였다.
제작 방법은 먼저 점토로 오리모양의 틀에 오리를 성형하고 어느 정도 건조한 후에 오리의 바닥부터 둥글게 파내기 시작하여 몸속을 긁어 파내고 파낸 바닥을 뚜껑처럼 다시 덮어서 붙이고 머리 부분은 별도로 성형하여 붙이는 방법으로 성형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몸통에 골고루 스며든 청자유약의 발색이 맑고 투명하며, 요철이 있는 곳은 청자유약이 두껍게 흘러 들어가서 자연스럽게 고려청자 비색의 농담을 만들어 한층 더 조화로운 색감을 발휘한다. 몸통에 유약을 두껍게 바른 후, 바닥에 묻은 유약의 일부를 닦아내고 작은 돌 받침을 사용하여 번조 했으며 빙렬은 없다. 사진6~9)
「청자 오리모양 연적」이 수중군자인 연꽃과 함께 조각된 것은 단순한 문방구의 기능을 넘어 고려인들이 추구하고 갈망하던 이상향을 표현한 것으로 고려인의 격조 높은 예술성과 당대 세계 최고의 도자기 제작 수준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사진설명
사진1~5 청자오리모양연적
사진6. 바닥
사진7. 세부사진
사진8. 바닥 규석 받침
사진9. 바닥 규석 받침(현미경 100배)
사진10. 「청자동채오리모양연적」 개인소장
사진11. 「청자 오리모양 연적」 국보(간송미술관)
*본 기사는 월간도예에 연재되는 칼럼으로, 도자문화 이론을 대중적으로 소개하고자 본지에 후속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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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대환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문화재 보존학을 전공했으며 40여 년간 국내외 발굴현장과 유적지를 답사하며 문화재를 연구했다. 지난 15년간 대학교 박물관과 국공립박물관에 신라금동불상, 고려청동탑, 고려청자, 고려도기, 조선백자, 고려와전, 벼루, 출토복식 등 5천여 점의 유물을 무상 기증했다. 주요 저서로는 『박물관에서 볼 수 없는 문화재1,2』가 있다. 상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동곡뮤지엄 관장, 문화재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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