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 교수의 문화재 기행 48]
백자상감 모란무늬 표주박모양 병
白磁象嵌牡丹紋瓢形甁
글_김대환 동곡뮤지엄 관장·문화유산 평론가
사진1) 「백자상감 모란무늬 표주박모양 병」 조선시대 15세기. 높이 19cm, 입지름 2cm, 바닥굽 지름 5.8cm
태조 이성계의 조선왕조가 시작되면서 사회, 정치, 문화의 각 분야에 변화의 바람이 몰아치는 도중에 생활과 밀접한 도자기 또한 고려청자의 틀에서 새롭게 두 갈래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고려시대의 맥을 그대로 이은 조선 상감청자와 중국 명나라의 백자를 응용한 조선백자로 새롭게 양분하여 발전하게 된다. 이중에 새로운 백자의 등장은 새 왕조의 시작과 함께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하게 되는데 새로운 형태의 조선백자에 전통적인 상감기법을 가미한 독특한 상감백자象嵌白磁로 탄생한다. 이 상감백자는 백자의 표면에 문양의 홈을 음각으로 파내고 자토紫土로 메우고 표면을 다듬은 후에 유약을 바르고 소성한 것이다. 조선 상감백자는 초기 청화백자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이전에 짧은 시기에만 제작되어 현존하는 수량이 적고 희소하다. 이런 종류의 상감백자는 15세기 중후반에 사라지며 이후에는 왕실에서 아라비아에서 수입한 코발트 안료인 회회청을 중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한 고가의 사치스러운 청화백자를 생산하게 된다.
조선 초기 짧은 기간만 생산된 상감백자의 가마터는 경기도 우산리와 무갑리, 번천리 등에서 확인되며 모란 넝쿨무늬, 연화 넝쿨무늬, 물고기 무늬, 승렴 무늬 등이 주류를 이룬다. 이 시기에 생산된 상감백자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경질백자와 연질백자이다. 경질백자의 경우는 경기도 일원의 가마터에서 생산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며 도자기의 잔편도 확인된다. 태토의 발색은 백색과 옅은 회색 계열이며 유약엔 빙렬이 없고 무늬는 간략화된 흑상감이 활달한 필치로 나타난다. 사진8)
연질백자의 경우는 생산지와 가마터가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몸통의 발색은 옅은 상아색으로 나타나는데 무늬의 기법은 경질백자와 거의 유사하지만 몸통에는 작은 빙렬이 나 있다. 사진9)
사진1의 「백자상감 모란무늬 표주박모양 병」은 이 시기에 제작된 유물로 표주박 모양의 병에 모란무늬를 흑상감으로 장식한 귀중한 사례이다. 표주박 모양의 병은 고려시대에 청자로도 많이 제작되었고 애용되었던 생활 용기이다. 그러나 조선 초기 백자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기형으로 조선 청자나 분청사기에 주로 제작되었다.
표주박 모양의 몸통에는 3단의 띠를 두르고 윗부분에는 유려한 넝쿨무늬를 세련된 솜씨로 상감하였고 아래 몸통 부분에는 주 무늬인 모란꽃과 꽃잎, 넝쿨무늬를 간결하고 활달한 필치로 양면에 대칭이 되게 새겨 넣었다. 옅은 상아색의 바탕은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어서 흰 바탕의 차가운 느낌의 백자와는 다른 질감이다. 사진2, 3)
순도 높은 백토에 기포가 많이 포함된 맑고 투명한 백자 유약을 시유하였으며 표면에는 잔잔한 빙렬이 산재하고 있고 굽바닥은 일부분 시유 되지 않은 상태이다. 사진4)
몸통에 새겨진 커다란 모란꽃은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싶은 마음이 담겨져 있으며 무늬의 일부분인 흑상감은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일부 산화되어 있다. 사진5~7)
이 시기의 상감백자는 이미 그 중요성이 인지되어 국가 지정 문화재인 국보, 보물로 지정된 사례가 많으며 조선시대 백자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초기 상감백자를 반드시 알아야 하며 한국 도자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상감기법의 마지막 단계로 의의가 있다.
약 40여 년 간의 짧은 기간만 생산되었던 상감백자는 현존하는 유물이 매우 희소한데 연질 상감백자의 경우는 더 희귀하다. 따라서 조선백자의 시원이 되는 이 시기의 유물은 높은 예술성과 희소성, 학술성을 모두 갖춘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으로 귀한 작품이며 잘 보존되어야 할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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