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7주년 기념
Special 첨단 바이오 융합소재 개발 동향과 미래 전망(1)
인공지능-라만 기반 질병진단 기술개발 동향
정호상_한국재료연구원 바이오·헬스재료연구본부 선임연구원
1. 라만의 원리
우리가 빛을 분자에 비추면, 대부분의 경우 에너지가 보존되는 탄성 산란(elastic scattering)이 일어난다. 그러나 극히 낮은 확률, 대략 100만분의 1에서 1억분의 1 수준으로 빛이 분자의 진동에너지와 상호작용하며 약간의 에너지를 주고받는 비탄성 산란(inelastic scattering)이 발생한다. 바로 이 현상이 라만 산란(Raman scattering)이다. 라만 산란은 빛이 에너지를 잃는 Stokes 산란과, 오히려 에너지를 얻는 Anti-Stokes 산란으로 구분된다. 이 중 Stokes 산란이 상대적으로 더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측정되는 라만 신호는 대부분 Stokes 라만 산란이다. 라만 산란을 통해 변화한 빛의 에너지를 파장 또는 파수(cm⁻¹) 단위로 나타낸 것이 바로 라만 스펙트럼이다. 이 스펙트럼은 분자 고유의 진동에너지 정보를 담고 있어, 마치 지문처럼 특정 물질을 구별할 수 있는 독특한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이유로 라만 스펙트럼은 분자의 지문(Molecular Fingerprint)이라고도 불린다. (그림1).
그림 1. 빛-분자 상호작용에 의한 산란과 라만 스펙트럼 생성 [1]
이러한 독보적인 장점 덕분에 라만 스펙트로스코피(Raman spectroscopy)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와 산업 현장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재료분석 분야에서는 결정 구조의 정밀 분석이나 다형성(polymorph) 구분에 사용되며, 화학 및 분자 분석 분야에서는 고분자, 단백질, 제약화합물 등 유기 분자의 구조를 식별하고, 혼합물의 조성 분석이나 촉매 반응, 중합반응의 실시간 모니터링에도 적용된다.
본 기고문에서는 라만 스펙트로스코피를 활용해 화학 및 바이오 분자의 진동 신호를 해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바이오센서로 개발하여 질병 진단에 응용하는 최신 연구 동향과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표면증강라만산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라만 산란 신호는 분자 고유의 진동 정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비표지(label-free) 방식의 분광분석에 매우 적합하다. 실제로 라만 스펙트로스코피는 화학물질의 파우더나 액체에 레이저를 조사해 물질의 종류와 조성을 판별하는 데 사용되며, 이 기술은 다양한 연구 및 산업 분야에서 폭넓게 응용되고 있다. 그러나 라만 산란은 극히 낮은 확률(약 10⁻⁶~10⁻⁸ 수준)로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신호의 세기가 매우 미약하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다. 파우더나 고농도 용액처럼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충분한 양의 물질에서는 라만 신호가 비교적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시료의 양이나 농도가 감소할수록 신호는 급격히 약해지며, 분석 자체가 어려워진다. 센서 기술의 핵심 목적은 인간의 감각으로는 인지할 수 없는 미세한 정보를 정량화하는 데 있다. 이 관점에서 라만의 뛰어난 분자 식별 능력은 유용하지만, 신호 세기의 한계로 인해 실제 바이오센서로의 응용에는 제약이 따른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고출력 레이저 및 고감도 검출기와 같은 고성능 장비를 활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는 일정 수준까지 신호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극저농도, 예컨대 나노몰(nanomolar) 수준의 바이오마커 검출과 같은 분야에서는, 고사양 장비만으로는 기술적 한계를 넘기 어렵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표면증강라만산란(Surface-Enhanced Raman Scattering, SERS) 기술이다. SERS는 나노구조 표면에서 라만 신호를 수십만 배 이상 증폭시켜, 기존 라만의 민감도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혁신적인 분광 분석 기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림 2. 표면증강라만산란 효과의 두 가지 원리 [2]
그림 2에서 볼 수 있듯이, SERS 현상은 크게 두 가지 메커니즘에 의해 유도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 첫 번째는 전자기장 증폭(electromagnetic enhancement)으로, 이는 SERS 효과의 중심적인 원리다. 금이나 은과 같은 귀금속 나노소재에 빛이 조사되면, 표면의 자유전자가 공명하면서 국소적인 전자기장이 형성된다. 특히, 이러한 금속 나노입자들이 서로 매우 근접한 상태에 있을 경우, 각 입자에서 발생한 전자기장이 서로 중첩되며 강력한 전자기장 증폭 현상이 일어난다. 이 영역은 흔히 핫스팟(hotspot)이라 불리며, 여기에 분자가 위치하면 라만 산란 신호가 1억 배 이상까지 증폭되는 SERS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SERS 효과를 유도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금(Au)과 은(Ag)이 가장 널리 활용되며, 나노입자 간의 간격이 좁을수록 더 강력한 핫스팟이 형성되어 전자기장 증폭 및 SERS 신호도 극대화된다. 두 번째 메커니즘은 화학적 증폭(chemical enhancement) 또는 전자 이동(charge transfer)에 기반한다. 이는 분자와 금속 표면 사이에서 전자가 이동하며, 분자의 극성화율(polarizability)이 변화함으로써 라만 산란 강도가 증가하는 현상이다. 분자가 금속 표면에 흡착되면, 금속에서 분자로 혹은 분자에서 금속으로 전자가 이동할 수 있고, 이로 인해 분자의 전자 구조가 변형되어 라만 산란 특성이 향상된다. 이 화학적 증폭은 전자기장 증폭에 비해 10~100배 수준의 비교적 낮은 증폭률을 보이지만, 두 메커니즘이 동시에 작용할 경우 매우 강력한 신호 증폭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본 기고문에서는 전자기장 증폭 메커니즘에 의한 SERS 효과에 중점을 두고 다룰 예정이다. 한편, 분자의 위치에 따른 신호 증폭 효율도 SERS 분석에서 중요한 요소이다(그림 3 참조). 예를 들어, 1번 위치처럼 분자가 핫스팟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경우, 증폭 효과는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 2번 위치에서는 금속 나노소재의 가장자리(edge)에서 비교적 강한 전자기장 증폭이 발생해 1번보다는 강한 신호를 얻을 수 있다. 반면, 3번 위치, 즉 핫스팟 중심에 가까운 곳에 분자가 존재할 경우, 라만 신호는 가장 극적으로 증폭되며, 이 거리가 가까울수록 증폭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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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세라믹코리아 2025년 6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 전체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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