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도예교육의 특성화
문화산업시대에 맞는 도예교육자와 학생의 자세
글/사진 윤상종 청강문화산업대학 도자디자인과 교수
지금 각 대학에서는 2003학년도 신입생 모집을 위한 입시가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다. 작년에 비해 대폭 감소된 지원자수 때문이겠지만 올해는 유난히 경쟁률이 낮아졌고, 각 대학들의 신입생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더욱이 이같은 상황이 비단 올해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된다는 예측이 나오는 것을 보면 대학 입장에서 보면 심각한 것이다.
대학교육의 현장에 몸담고 있는 필자로서도 예년에 비해 감소된 지원자수와 타 학과에 비해 낮은 경쟁률을 보며 초조해진다. 입학생 수의 감소로 폐과된 대학이 있는 상황이고 보니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4년제 대학의 경우에도 학부제를 실시하여 전공 선택 시 지원률이 낮은 전공은 도태시키기에 이르렀으며, 도자분야와 관련된 학과도 그 영향권 안에 들어 있다.
사실 이러한 현상들은 이미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매년 도자기관련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은 전국적으로 약 2000명 정도가 배출되고 있는 실정인데, 이를 다 수용하자면 매년 ‘한국도자기’와 같은 대기업이 하나씩은 생겨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인력의 과잉공급과 정보산업 위주로 계획된 정부시책, 또 이와 맞물린 경제 불황 등이 위와 같은 결과를 초래한지도 모른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보면 대학의 도자관련학과는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게 되고 입지마저 좁아질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지금까지 대학에서의 도자교육은 사실 ‘기능장’ 혹은 ‘장인’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작가’ 양성을 위한 교육이 중심이었고, 취업을 위한 대책 마련에 소극적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현실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대학마다 특화된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는 모토라든가 ‘문화산업육성’이라는 말이 자주 들리는 걸 보면 도자기산업체나 전공자에게 귀중한 힌트가 이미 주어졌는지도 모르겠다.
8년 전 필자가 소속된 청강문화산업대학을 시작으로 몇 몇 대학이 학교명칭에 ‘문화’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으며 학과명칭과 교과목명에도 ‘문화’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정보’와 ‘문화’는 이 시대의 가장 큰 화두이기도 한데 기계화, 정보화의 첨단산업사회로의 전환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이러한 현상 속에서 인간의 정서적 삶의 향유를 위하여 인성과 정서를 고양시키는 ‘문화’는 그 중요성이 부각되어 사회발전의 중요한 원동력으로서 창의력 제고 및 배양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소프트웨어(software)적 요소로서 문화적 요소를 산업적 생산요소로 변환하거나 문화 그 자체가 문화상품으로 재구성되기도 한다.1)
‘문화산업’이란 용어는 1960년 이후 문화의 산업화 현상이 경제적 시각에서 다루어지면서 ‘문화, 예술 분야를 상품화하여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가능하게 한 산업’이라는 의미가 문화산업의 보편적 개념으로 정착됐다. 또한 1970년 유네스코에서 도서, 음반, 비디오, tv, 영화, 문화유산, 공연예술, 체육활동 등 10개 분야로 분류한 바 있으며, 우리나라는 문화산업을 문화상품의 생산, 유통, 소비와 관련된 산업이며 문화상품을 문화적 요소가 체계화되어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유·무형의 재화와 서비스 및 이들의 복합체이며 예술성, 창의성, 오락성, 여가성, 대중성(이하 ‘문화적 요소’라 한다)이 체계화되어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캐릭터, 애니매니션, 광고, 공연, 전통공예품과 관련된 산업이라고 정하고 있다.2)
문화산업으로서의 도자산업은 일상생활 속에서 예술을 호흡하는 인성적 측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성을 자극하여 일궈낼 수 있는 다양한 품목을 내재하고 있는 문화산업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도자산업이 노동집약적 산업, 제조업이라는 지금까지의 관념을 깨고 아이디어와 디자인 집약적인 문화산업이라는 인식하에 식기뿐만 아니라 리빙, 인테리어 소품. 기프트(gift)상품 등 다양성의 구비와 현대인들의 식생활(식탁, 접시사용 증가와 식기세척기의 일반화 등)과 신 주거문화(낮은 천장의 아파트 등)를 고려한 신축성있는 디자인 개발은 분명한 수요창출을 가져올 것이며 이에 마케팅에 더욱 노력하면 분명히 도자산업의 전망은 밝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대학을 졸업한 198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조형작업 위주의 커리큘럼이 지배적인 시기였다. 이에 물레성형은 당연히 비주류가 될 수밖에 없었고 졸업 후 생활도자기 공방이라도 운영할라치면 “순수하지 못하다”란 충고 아닌 충고를 듣기도 하였다. 지금은 이런 ‘순수’와 ‘비순수’식의 양분법적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도자기가 공예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데 10년 이상이 걸린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근대도예시기에 공부한 교육자들이 조형위주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시기에 횡행했던 ‘실용’, ‘비실용’의 소모적인 논리를 오랬동안 펴왔던 아카데미계열 작가들과 실용도자를 2류로 취급했던 미술전반의 상황이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필자가 소속된 청강문화산업대학 도자디자인과는 96년 개교 이래부터 전통도자와 산업도자로 구분하여 생활도자기를 가르쳐 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학생들의 도자기를 대하는 시각도 변한 것 같다. 요즘의 디지털세대는 육체적인 노동을 기피하고 컴퓨터 관련 산업에만 시각을 고정시켜 놓고 있는 듯 하다. 문화산업으로서의 도자산업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졸업생들이 능력을 펼칠 필드를 개발하는 문제가 요즘 2세대 교수들의 커다란 숙제이다.
매년 치러지는 입시에서 도자디자인과를 지원한 학생들의 “이 학과 취업 잘돼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당황스럽다. 사실 도자관련 기술인력을 원하는 업체는 많다. 그러나 선뜻 취업하겠다는 학생은 별로 없는 실정이다.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해 물으면 상당수가 집에서 그냥 쉬겠다고 한다. 여학생의 비율이 많은 것도 한 원인이겠지만 컴퓨터 관련 직종 등 다른 분야에 관심이 더 가 있다는 얘기다. 스승으로서 가장 맥이 빠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도자 분야는 유행을 타지 않는다. 항상 꾸준한 생산과 수요가 존재한다. 오히려 하이테크시대와 맞물려 첨단기술로도 발전할 여지가 많으며 문화산업의 한 분야로서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 한국인의 기호에 맞는 도자제품이 지속적 개발된다면 수요는 상당할 것으로 예측이 된다. 생활환경이 나아질수록 아직까지 남아 있는 플라스틱 식기들은 자취를 감출 것이고 내외장 타일을 비롯한 건축재료, 인테리어 분야 등 그 시장은 무한하게 펼쳐지리라 본다.
이천, 여주, 광주 일대에만 약 1000여 도자업체가 존재하지만 상당수가 설비와 디자인의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높은 매출을 기록하는 업체들은 항상 새로운 디자인과 제품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이는 결국 꾸준하게 소비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는 뜻이며 ‘좋은 도자기는 잘 팔린다’는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기술과 디자인의 개발에 필요한 인력의 공급이 우선되어야 하며 결국 도자분야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교육자들의 몫이다. 교육자는 우선 도자산업에 대한 비전을 명쾌하게 제시해야 하며 도제식의 구태의연한 습관도 버리고 지식을 구입하러온 구매자로서의 학생에 대한 태도 변화도 필요하다. 따라서 수업시간을 통해 전수되는 기술과 지식은 물론 긴밀한 산학협동을 실시하여 학생들이 졸업한 후에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개발하는 데에도 힘을 쏟아야 할 것이며, 현실감각을 잃지 않게 컴퓨터관련 분야에 대한 교육도 빼 놓지 않아야 한다.
덧붙여 매년 신입생에게 처음 해주는 말이기도 하지만 도자를 전공하려 하는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첫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라”이다. 어떤 연유에서건 학과를 선택은 결국 본인의 판단이겠으므로 일단 발을 디뎠으면 한 번 미치도록 몰두해 볼 일이다. 이 과정에서의 인내와 정열은 사회에 어느 분야에 진출해도 통용 될 것이다.
둘째, “항상 감성 훈련을 하라” 도자를 전공하기 위해서는 감각과 감성을 길러야 한다. 배운다기보다는 길러지는 것이다. 항상 자연과 많은 사물을 대하고 느껴야 하며 경험을 많이 가지는 것이 제일일 것이다. 경험과 감각은 비례한다.
셋째, “인성을 길러라”인데 삭막한 입시위주의 교육제도에서 요즘 학생들에게 많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사회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자신을 다듬어야 한다. 교수입장에서는 취업의뢰가 들어올 때 가장 우선적으로 가늠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넷째, “전공에 대한 확실한 비젼을 가져라” 앞서 말했듯이 우리의 도자분야는 찬란한 역사를 바탕으로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더욱이 21세기 국가 기간산업인 문화산업의 한 분야로서 도자산업은 단순 제조업이 아니라 한 나라의 수준을 나타내는 문화상품이기 때문이다.
600만명이 넘는 관람객을 유치한 ‘2001세계도자기엑스포’에서의 관심은 그 가능성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우리 도자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으로 고려시대의 청자, 조선시대의 분청과 백자로 이어지는 역사의 다음칸을 도자기를 공부하고자 하는 여러분들이 채워 넣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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