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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지역 도예전시의 활성화 대책
  • 편집부
  • 등록 2003-07-01 23:53:57
  • 수정 2016-04-17 20: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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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라크 공격과 북한의 핵시설을 둘러싼 국제적인 긴장이 점점 고조되어져 가는 가운데, 대구는 ‘2·18 대구 지하철 화재’라는 대형 참사로 도시전체가 내일의 희망보다는 오늘의 슬픔을 참아내고 서로의 아픈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애도의 도시로 힘겨운 하루 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사회 전반적인 안전불감증에서 오는 대형사고의 위협은 우리의 정신의식 전환없이는 치유될 수 없는 중대한 문제로 새삼 확인되어지고 있다. 그러한 사회 전체적인 개혁적 의식의 전환만이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신 고인들에 대한 살아있는 사람들의 예의이며 할 일이라고 생각되어진다. 대구·경북지역은 그 어느 지역보다 역사적으로 도예문화와는 깊은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에도 대구와 경북일원에서 활발한 도예작가들의 작품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지역에는 도자공예 관련학과가 각 대학교와 대학별로 많이 개설되어져 있으며 매년 상당수의 우수인력들이 배출되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공예’ 라는 학문이 응용미술과 병행되면서도 순수미술로 인정되어지는 어중간한 위치 속에서 차지하는 이중적인 구조의 모순은 많은 문제점과 독창적인 장르의 개발을 제한해 오고 있다. 이러한 미술장르 속에서 나타나는 ‘도예’의 위치 규명은 정작 많은 전공인력을 배출해 내는 대구·경북에서도 별다른 대안 없이 그저 학교 틀 밖으로 몰아내는 현실이다. 비단 이러한 현상들은 대구·경북 지역에만 국한된 문제점만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며, 현재 미술교육이 안고 있는 근시안적인 해결책과 함께 기성 도예인들이 풀어 나가야할 당면 과제인 셈이다. 그럼 먼저 대구·경북 지역 도예의 역사와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현재의 도예전공학과 현황, 그리고 도예전시 활성화를 위한 대구지역 전시활동들을 진단해 보고자 한다. 도예의 역사 대구·경북지역은 도예의 역사 속에서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 지역 중에 하나인 셈이다. 대구는 지형적으로 한반도 동남부에 위치한 내륙도시로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역사적으로는 가야문화와 신라의 불교문화, 그리고 조선의 유교문화가 꽃피었던 곳이다. 그리고 도예의 역사 속에서 보면 신라시대 경주지방을 중심으로 제작되어진 신라토기와 조선시대에 이르러 경상북도 경주(慶州)와 상주(尙州), 고령(高嶺), 경산(京山)등은 주요 도요지(陶窯地)로 주목을 받으며 우리나라 도예문화의 꽃을 피워나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전반적으로 발생된 현상들이지만 일제 강점기 36년 동안의 도예 장르는 별다른 진보와 발전 없이 생활자기 위주의 ‘막사발’만이 주로 제작되어 지고, 해방과 함께 찾아 온 한국전쟁은 이내 ‘도자기 공업’이라는 새로운 도자기문화를 낳게 되었다. 1960년대부터 급속한 발전을 가져 온 현대화된 도자기공장은 내수용 도자기에서부터 수출용 도자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기류를 생산해 냄으로서 도예문화에 대한 일대 전환점을 가져오게 된다. 대구·경북 역시 몇몇 도요지를 빼고는 이렇다 할 도예문화의 발전을 가져오지 못하다가 1960년대 현대공예의 태동과 함께 기반의 확충을 통해 1970년대에는 대구 공예계의 1세대들이 등장함으로써 활발한 창작활동과 작품세계가 구축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 1세대 작가들은 활발한 발표의 장과 도예인구의 저변확대를 통해 2세대 도예인들을 배출해 내는 교육 일선에 서게 되며 이는 대구현대도예의 시발점이 되는 셈이다. 현대도예가로써 대구에서의 첫 발표는 1971년 아루스화랑 개관기념 초대전에 출품한 김영태 교수이며, 1972년 계명대 전시장과 대백화랑에서 가진 1, 2회 개인전이 최초였다. 그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후 1970년 계명대학교 전임강사로 부임하면서 대구 도예의 전문적이고, 현대적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1950년부터 지상에 발표되지 않은 채 개인공방에서 조용히 작품을 해오던 김종희씨는 1970년도부터 효성여대 도자공예의 기술자문부터 시작하여 그 후 계명전문대 교수로 부임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발표는 1976년 동아미술관 개관기념 초대전이 처음 이였다. 1980년대 이후, 대구도예계는 2세대의 작가와 교수로써 대구·경북의 각 대학에 재직하면서 본격적인 화단형성과 함께 단체를 구성해 나가게 된다. 각 대학별 도예관련 학과 현황 1970년 계명대학교의 응용미술과 도예전공을 시작으로 대구·경북의 7개 종합대학교에서는 300여 명의 전공자들이 양성되고 있으며 전임교수만 해도 1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전문인력들이 1년에 100여 명 이상 배출되어져 나오고 있지만 정작 이들이 도예를 전공으로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범위는 개인공방 운영과 도자기 공장 취업, 대학원 진학 등 국한된 범위내이며, 좀 더 장기적인 작품활동을 위한 유학과 전업작가로서의 진로선택은 사회적 인식부족과 개인적 역량으로 어려운 상태이다. 이들 전문 인력들이 더 다양한 작품활동과 사회참여를 위해서는 많은 도예단체의 육성과 발표의 장 마련, 도예관련 세미나나 이벤트의 기회를 통해 일반인들이 좀더 쉽게 도예문화를 접하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 제공에 있겠다. 도예는 미술의 타 장르와는 달리 원초적인 조형적 요소를 일반인들에게서 쉽게 찾아낼 수 있으며, 단지 기능적인 면과 재료적인 면을 극복하지 못한데서 오는 거부감으로 소외시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재료적·기술적 극복을 위해서는 사회참여 프로그램 개발을 통한 우수인력들이 타 장르나 업종으로 이탈되어 가는 것을 극소화해야 할 것이다. 도예전시의 활성화 방안 현재 대구에는 도예관련 단체와 그룹들은 3~4개정도 활동 중에 있다. 최초의 대구의 공예 그룹은 1978년 정은기(조각)씨를 회장으로 구성된 ‘토맥 도예가회’가 처음이였다. 대구 숙화랑에서 창립전을 가진 ‘토맥 도예가회’는 정은기 외 4명의 회원으로 조각적인 오브제의 경향의 작품경향을 보였다. 그 다음해인 1979년에는 김종희(도예), 김지희(염색), 김영태(도예)가 발기위원으로 창립한 ‘경북공예가회’는 공예가회로는 지방에서는 제일 먼저 설립되어져 후진양성과 공예의 질적 향상을 이끄는 계기와 그 틀을 마련하였다. 이후 ‘대구도예가회’, ‘계명도예가회’와 ‘흙과 30’, ‘토방도예’, ‘흙사랑회’, ‘토소회’, ‘가마골회’, ‘도예공간’과 같은 도예그룹과 모임이 창립되면서 도예그룹의 활발한 움직임이 일어나는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중 ‘대구도예가회’는 명실상부한 대구 도예인들을 대표하는 단체로 1981년 동아백화점 갤러리에서 ‘현대 도예 동인회’로 창립된 이후 18회의 정기전과 교류전, 특별전을 통해 도예의 인식전환과 보급, 회원들간의 교류의 장으로 그 역할을 다해 오고 있다. 1990년 갤러리 흙 마당에서 처음 마련된 ‘흙과 30’전은 도예 2세대라 할 수 있는 젊은 30대의 도예인들이 각자의 개성적인 작품세계를 한곳에 모아 보여줌으로써 당시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도자기를 통하여 대중과 호흡을 같이 하고자 하는 하나의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후 2001년 대구 봉산동 ‘문화의 거리’ 각 화랑에서는 이들 작가들을 개인전 형식으로 초대하고, 물레시연과 워크숍, 세미나 등을 개최해 현대도예가들이 일반들과 좀 더 친숙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긍정적 결과를 도출해 내었다. 2001년 5월에는 경북 청도의 비슬문화촌에서는 ‘국제라쿠심포지움 코리아 2001’이 비슬문화촌 주최로 개최되어 라쿠(Raku)의 새로운 흐름을 조명하고, 세계 라쿠 작가들간의 교류를 통해 새롭고 창의적인 현대도예의 창작원리를 탐색해 보는 실험무대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지역의 도예축제와 심포지움이 단순한 도예작품 발표의 장이 아닌 일반인들과 도예의 만남, 도자기 체험을 통해 우리의 문화 속에 도예가 좀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도록 마련된 하나의 이벤트 행사로써 그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 하나의 도예문화축제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었다. 지역의 도예행사들이 일부 문화행사에 편중된 일회성 행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문화행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도예인 스스로가 일반인들에게 좀 더 쉽게 접근해갈 수 있는 전시형태의 변화부터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근대적 민족성이 담겨져 있는 향토적(localism) 조형미의 회복도 중요하겠지만, 현대도예의 실험성과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공간창출은 도예예술이 가질 수 있는 예술공간이 곧 생활공간으로 바뀌어 나갈 수 있다는 의식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생활 속에 도예가 자리잡기 위한 다양한 생활도예작품의 제작과 발표를 병행하며, 일반인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도예 체험장’의 조성을 통해 도예인구 저변확대가 이루어진다면 대구도예의 앞날은 결코 비관적이지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들이 젊은 도예인들에 의해 조금씩 진행되어져 가고 있으며, 지역 화랑가에서는 지역 도예인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여러 행사들을 진행해 나가고 있다. 필자약력 대구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영남대학교 대학원 미학·미술사학과 수료 현. 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월간미술’ 대구지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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