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이 많은 대학의 입시정책과 더불어 불안정한 획일화 형태의 교육 시스템 속에서 편향적 사고의 도예가들이 수없이 배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유감이다. 도예전공의 교과목에는 도예이론을 포함한 도조, 전통·공예도자, 산업도자, 환경·설치도자 등으로 크게 구분지을 수 있다. 실제로 각 대학에서는 이러한 과목들이 명칭만 약간씩 다를 뿐 대부분 비슷한 커리큘럼을 배치해놓고 있다. 그렇다고 대학교육을 이수하면 도예에 관한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교육은 도예를 접하며 알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알아가는 과정을 밟고 있는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어떤 이는 전통도예의 맥을 잇는답시고 전통적 물레작업이 마치 도예교육의 전부인양 강요하고 있다. 또 어떤 이는 도조교육이 전부인 듯 비구상적 도조교육에만 치우치고 있기도 하다. 전통을 강요하려면 학생들을 대학에 붙잡아 둘게 아니라 여주, 이천이나 강진으로 도공들을 찾아 문자 그대로 특화교육을 실시해야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을 것이며 도조를 강요할라치면 조각가에게도 특별한 자문을 구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또 도예인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으니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도예교육의 현실을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일 듯싶다. 최근 몇몇 대학에서는 산업도예교육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졸업 작품을 통해 보여 지는 작품을 보면 성향들이 거의 비슷해서 발전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왜 이렇게 도예작품들은 변화에 민감하지 못하고 발전하는 모습들이 눈에 띄지 않는 걸까? 그 이유는 디자인 교육의 부재와 재료의 한계 그리고 마케팅교육의 부재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도예가로 부르고 불려지기 전에 공예가로 살아간다면 도예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리란 것이다. 공예는 도예, 목공예, 금속, 한지 등을 포함하고 있는데 서로의 재료를 응용하여 하나의 영역에서 느끼는 표현상의 한계를 다른 영역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서로간의 공유하는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할 때라고 본다. 도자가 가지는 수축률로 인한 고충, 가마 안에서의 미묘한 색상의 변화, 얇고 가벼우면 쉽게 파손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약간 두껍게 만들면 주사용자인 주부들의 손목에 무리가 오는 등의 문제점들이 보완되어 흙이라는 사고를 넘어서서 가능하다면 공예의 재료를 넘나들 수 있는 디자인을 갖춘 도예작품이 나올 때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을 공예가의 탄생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문화사대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작품전을 서울에서 개최하는 것을 성공이란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어 작가가 서울에서 전시를 열면 이를 보기위해 상경하는 지방인들, 참으로 비현실적인 전시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모전, 협회전중에서 규모가 있다는 것은 대부분 서울에서 개최되는 것으로 여기며 이를 명실상부한 명망있는 전시로 인식한다. 지방에서 개최되는 공모전은 말 그대로 지역잔치에 그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전하고 있는 전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광주비엔날레를 제외하고라도 익산공예대전, 무등미술대전 등은 전국단위 공모전으로 자리매김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러한 의식구조 개편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지역 도예문화가 활성화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새 정부인 참여정부가 들어섰다. 대통령이 주장하는 것도 지방분권이다. 도예인들이 먼저 문화적으로, 지역적으로 자존심을 갖는 기치를 내걸었으면 좋겠다.
지방도예전시를 활성화하자. 과연 현 시점에서 이것이 가능할까? 어렵겠지만 그동안 침체되어 있는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라도 그 형태가 그 형태인 그만그만한 작품의 재편 경연장으로서가 아니라 관람객들을 끌어 모을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의 접근을 통한 작가와 관람객들이 함께하는 전시의 개최라면 가능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불과 1년 전 전주에 공예가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전주공예품 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명품관에서는 공예가들의 작품을 위탁판매하고 있으며 전시관 안에서는 연중 기획전과 개인작품전이 연일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작품이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에서는 흔치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왜? 왜냐하면 이곳은 수요자가 공예품들을 각각 비교 검증을 통해서 구매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도예로서가 아닌 공예품으로서 도예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곳은 열린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각종 전통 놀이시설을 갖추고 있어 이를 이용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길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떡 본 김에 제사를 지낸다고 이왕 온 김에 전시관도 들러 필요하면 작품의 구매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전시는 관객들이 작가의 의도에 맞춰가며 일방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서로가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획일화된 전시 다시 말하면 문자 그대로의 전시 그 자체일 뿐이다. 작가의 노력이 보상받는 전시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전시공간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전주공예품전시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서울 인사동문화가 전시장의 숫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하나의 기획전이 성황리에 진행이 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전시장을 찾아 매일 사람들로 북적되는 상황이 연출되어야 한다. 물론 기획자나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개인적인 성향으로 인한 지인들의 발걸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또한 한 두 번이지, 매번 그들의 방문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할 수 있는 전시는 일차적으로 대중화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기존처럼 일반인들이 감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나열로는 대중화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작품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전시장을 찾는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얘기를 한다. 전시장에서 쉽게 설명만 해줘도 좋으련만 여기에 따른 전문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 현대도예가 비구상적인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도예 관련 또는 공예 관련 전공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전문적인 큐레이터 교육을 프로그램으로 도입, 체계화시켜 도예전시를 전문적으로 담당할 이론가들을 많이 배출시켜야 한다. 전문 큐레이터들이 출현하여 곳곳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가 온다면 전시의 다양성 측면에서 엄청난 자산으로 형성되지 않을까 한다. 이것 역시 미래의 도예교육이 안고 가야할 숙제이기도 하다. 큐레이터 등의 도예 전문 인력의 부족이 전시의 활성화를 가져오지 못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양적인 작가만 배출하는 대학교육이 이제는 질적으로 멀리보고 당대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변화해야 할 때인 것이다.
국내에서 진행되는 각종 도예행사에 가보면 천편일률적으로 전승에 의한 전통도예를 재현해놓은 작품들이 주 전시 품목들이다. 한 행사장에서 두 세곳의 매장만 돌아봐도 더 이상 발품을 팔며 둘러보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외국의 아트페어라고 하는 쇼(Show)를 참관하면서 느낀 것은 중. 소형 악기에서부터 의자, 장식장 등의 가구를 포함한 실용적 도예작품들, 신선하고 깔끔한 조형물들, 시선을 멈추게 하는 다양한 형태의 소품들을 비교해 볼 때 전시장의 분위기와 전시작품들이 국내와는 너무도 현격하게 차이가나 도예를 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사고가 너무 부러웠다. 전통의 맥을 잇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과거의 재현도 분명히 필요하다. 보존해야할 선조들의 얼이며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와 똑같이 재현하여 유지하는 것 못지않게 토기가 발전되어 새로운 디자인의 예술품인 청자, 백자로 발전시킨 것처럼 이를 바탕으로 지금은 새로운 디자인의 양식을 지닌 우수한 도예문화를 탄생시켜야 할 때이다.
청자나 백자가 위대한 것은 그 시대에 오직 우리만이 생산해 낼 수 있었던 특수한 과학적 발명품이었기에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 속의 역사적 유물처럼 세월의 보상을 받고 사람들에게 그 귀중함이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는 고고학을 연구하는 학자처럼 과거와 씨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학문적 영역의 끊임없는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미래지향적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 도예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디자인의 세계에 놓여있다. 연극무대에 관객들을 끌어 모으려면 지속적으로 새로운 작품이 기획되어 관객의 흥미를 유발해야 하듯이 비슷한 디자인에 식상해진 관람객들을 전시장으로 초대하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는 작가와 전시장의 입장에서 보면 결과는 자명한 일인 것이다. 전시장에 등을 돌린 관객들로 인해 도예전시가 더 이상 기획되지 않는다면 물론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작가와 관객이 만날 수 있는 매개체가 사라져 결과적으로는 도예문화가 뒷걸음치고 말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대학에서도 도예과목이 사라져 가게 될지 또 누가 알겠는가.
결과적으로 볼 때 도예전시 특히 지방의 도예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첫째, 학교에서의 도예교육의 새로운 방향모색이 필요하다.
둘째, 도예인들의 현실 인식 필요.
셋째, 지역의 문화가 담긴 특성화상품개발에 심혈을 기울이자.
넷째, 전시 기획자는 관객의 참여를 포함한 전시구도를 설정하자.
다섯째, 관람객들의 참여를 위한 언론매체의 활용
여섯째, 기업체와의 연계를 통한 마케팅 활성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현실적으로 시급한 시·도의 적극적 지원대책 현실화이다. 이러한 복합적 요소가 서로 상호 작용하였을때 비로소 도예의 활성화에 대한 초석이 다져지는 것이다.
도예전시의 활성화는 갤러리에 종사하는 큐레이터, 특히 공예 관련 큐레이터, 학예사들의 궁극적인 목적이지만 어찌 이들만이 이러한 고충을 안고 있겠는가! 도예의 부흥을 위해서 전시장과 큐레이터들이 최일선에 있기는 하지만 운동선수들이 기초체력을 바탕으로 젖먹던 힘까지 발휘하며 시합에 임할 수 있듯이 이들의 역량이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앞에서 누차 말한 기본적인 요소가 잘 가동되어졌을 때일 것이다. 그렇다면 전시의 활성화를 위해 전시장에 그 책임을 묻기 이전에 도예인 자신들에게는 어떤 오판이 있었는지, 특히 한국의 천년 도예왕국을 보존하고 이어갈 미래의 도예인들을 배출해야 할 사명감을 갖고 있는 대학에서의 도예교육에는 문제점이 없었는지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관에서는 정치적인 대규모 도예사업에만 아낌없는 지원을 하여 오히려 문화정책의 지원이 결과적으로 도예문화가 지역적으로 대중화되는데 도움이 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이는 마치 경제 분야에서 정부가 빚고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구조처럼 지원의 차이가 다소 정치적인 경향이 있다. 참여정부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방의 문화산업에 형평성을 잃지 않는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을 실시하여 도예문화가 지역적으로 고른 발전을 하여 온 국민이 진정으로 참여하고 즐기는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도예인들이 함께 고민해보자.
필자약력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 도예전공(M.F.A)
개인전 4회(뉴욕, 서울, 전주)
현, 예원대학교 미술. 디자인학부 교수
전주공예품전시관 내 전시실
전주공예품전시관 마당에서 열리는 전통문화체험 행사
지역문화가 담긴 특성화 상품개발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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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erazi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