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영화 <취화선>을 찍을 때부터 매스컴에서 꽤나 화제가 되었고, 나중에는 해외 영화제에서도 어쩌니 저쩌니 하길래 꽤나 잘된 영화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미술대 교수 몇몇이 참여해 장승업 역할을 맡은 최민식의 대역을 하며 그림을 수없이 많이 그렸다는 얘기도 있었고, 역사적 사실과는 달리 장승업이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다가 결국은 가마 아궁이로 기어들어가 생을 마감한다는 결론도 희한한 일이라고 생각하고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결혼한 이후로는 외국의 인기 영화배우 이름 하나 알지 못하는 마누라 덕에(?) 그렇게 잘 다니던 영화관하고는 발이 끊겼다. ^^ ‘공부도 못~하는 것들~~이 외국 영화배우 이름이나 잘 외운다.’며 존심을 긁힌 이후로는 아무리 작심을 해도 영화관에 가는 일이 없으니 결국 취화선도 못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번 겨울에 내 다리가 절단 나는 바람에 집에서 방-콕(?) 하면서 비디오로 취화선을 보는 쾌거를 이룩했다. 하지만 다 보고는 솔직히 말해서 임권택 감독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게 무신 예술영화냐?, 예술가(화가)는 마치 변덕스럽고, 여자나 밝히고, 술이나 처먹고, 객기나 부려야 훌륭한 그림이 나온단 말인가? 도대체 뭔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는 내용과는 관계도 없는 왼갖 멋진 경치와 사진 작품과도 같은 장면은 많이도 나온다. 누구 말마따나 (영화보기 좋아하는 김수련씨라고 밝히고 싶지는 않다. ^^) 이런 게 아닐까? <멋진 영화를 봤다기 보다는 한국을 소개하는 홍보용 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이다. 한국관광공사 같은데서 만든 한국 홍보 영화... 어릴 적부터 천재 화가로 인정받아 온 장승업의 생애를 영화에서는 많은 고뇌와 번민이 있었던 것 같이 그렸는데 내게 느껴지는 것은 그냥 순탄한 인생일 수 있는 천재 화가의 객기로 보이는 것은... 아무튼 많은 기대를 하고 봤었는데 너무 많은 기대를 했었나보다... 한국의 자연과 화선지에 스며드는 먹물의 느낌은 잘 살린 영화였던 것 같다.... 우리 나라가 참 아름답구나... 를 느끼게 하는 영화....>1990년쯤인가 도예 후배로부터 임권택 감독님이 도자기인지 도예가에 관한 영화를 계획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 해 전, 영화배우 진희경씨가 작업장에 왔을 때도 역시 그런 계획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나는 잔뜩 기대했다. 그분이 훌륭한 영화<서편제> 정도로만 만들면 일반인들에게 도예를 이해시키는 데에 큰 도움이 되리라 믿었다.
<2001 세계 도자기 EXPO>를 앞두고도 그분이 만든 도예 영화가 나오면 더욱더 좋을 텐데...하고 기대도 많이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면 도예를 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활이나 명예가 좀 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고...^^ 외국영화인 <사랑과 영혼>에선 잠깐동안의 물레질(여배우 데미무어는 도예가에게 한달인가 물레질을 배웠다는 기사가 Ceramics Monthly에 나왔었다.)하는 장면을 가지고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멋진 사랑을 표현한 기억에 남는 영화장면 1위’를 기록하지 않았는가? 그동안 우리의 텔레비전에서도 도예를 부분적으로 다루거나 한 편의 드라마로 많이 제작하였지만 도예가인 나의 마음에 쏙 드는 것은 드물었다. 소설가 서기원씨의 유명한 소설을 가지고 만든 <사금파리의 무덤>만이 그래도 괜찮았다. 그리고 일본의 도예가 심수관의 가문을 모델로 손진책 씨가 만든 <그, 불>이라는 연극도 괜찮았다. 도예를 시작한 이후로 <불항아리>니, <고려청자>니, 뭐니하는 몇몇 도예 드라마를 녹화를 해 두었지만, 도예가들은 전부 지지리 못살고 궁상떨면서도 예술을 한답시며 멀쩡한 것 깨부시다가 그걸로 끝나기 일쑤다. 그러니 현재 고교 교사인 도예과 제자가 찾아와서 말하기를 “애들한테 도예과로 가라고 진학지도를 하면 ‘내가 왜 머리에 상투 틀고, 수염 기르고, 한복 입고, 도자기를 깨야만 해요?’라며 정색을 하네요. 답답해 죽겠어요!”라며 요즘 학생들은 TV보면서 도예를 모두 그렇게 안다며 한심해 한다. 하지만 그렇게 바라던 임권택 감독의 도예영화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신에 <취화선>이 나왔다. 한국화를 중심으로 다룬 영화이면서도 느닷없이 장승업이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다가 급기야는 가마 속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쉬운 마음을 덜었다. 영화 내용이야 위에서 말한 것과 같고, 사실 시비를 걸 일은 아니다만 영화 전체가 마음에 안드니 일반인들이 잘 모르고 지나갈 도자기에 관한 ‘옥의 티’ 장면을 가지고 시비나 걸어보자. ^^ 촬영한 곳은 경남 진주의 새미골요이다. 이곳이 최초에는 교장을 지낸 고미술 수집가이자 다도인이며, 다도구를 만드느라 도예 작업장까지 만들어 박종한 선생이 개요 했던 곳이다. 나중에는 장금정, 최정간 씨가 이를 인수하여 키웠고, 지금은 장금정 여사가 운영하고 있다. 나는 대학 졸업 후에 두 분을 알게되었고 작업을 재개하기 위한 일에 약간의 도움을 주었던 바로 그 곳이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1 장승업이 가마를 찾는 첫 장면 중에 가마 뒤편에 현대식 내화판(도자기를 가마에 넣을 때 사용하는 선반) 20여장이 세워서 쌓여 있다. 옛날에는 그와 비슷하게 생긴 가마 도구가 없었으니 그걸 옮기거나 가려야 했을 듯...
2 두 사람의 뒷일꾼이 가마 바로 옆의 경사진 곳에서 흙을 밟아 이긴다. 흙을 밟는 과정 자체가 멋지므로 집어넣었을 테지만 흙을 밟는 곳은 분명히 작업장 안에 위치한다. 경사진 곳에서는 불편해서 할 수도 없거니와 바깥에서 흙을 밟다가 백자 흙에 잡것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백자는 모두 망치는 일이다.
3 그릇을 만드는 장면에서 분명 전기물레를 돌리고 있다. 실제로 전기물레가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릇이 돌아가는 모양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기왕이면 옛날 식으로 발물레로 만들면 좋을 것을... 그래도 다음 장면에는 발물레를 돌리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사기공방(백자나 청자를 만드는 곳)의 발물레라야 하는데 갑자기 옹기점의 물레를 돌리고 있다. 남들이 보기엔 그게 그거겠지만 우리는 금방 구별할 수 있는 물레가 나오는 장면이다.
4 불을 처음으로 피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피움불’치고는 좀 크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아궁이 앞의 바닥에는 현대의 내화벽돌이 깔려있다. 가마 안의 빨갛게 달아오른 벽에도 역시 내화벽돌이다. 이런 장면은 숨기거나 혹은 옛날 식으로 지은 전통 가마를 갖춘 곳에서 찍었으면 좋으련만....^^
5 피움불을 하기 위하여 고사를 지내는 장면에 여러 사람들이 가마 앞에 엄숙한 분위기로 모여있다. 여자들도 모여있어서 부드럽고 멋진 장면이기는 하지만, 나이 많으신 도공이나 옹기대장에게 들은 사실로 미루어보면, 불때는 동안 여자들은 가마 곁에 얼씬도 못했다고 한다. 그 장면에서도 여자들을 빼고 그것이 무슨 연유에 의한 것인지를 대사를 통하여 전달해도 될 것이다.
6 적어도 하루가 지나서 ‘칸불’(아궁이 다음으로 이어지는 칸마다 때는 불)로 이어진 장면에서 도공 옆에 놓여진 술상에 고사떡이 그대로이다. 고사를 지내고 아무도 안 먹었는가 보다. 이미 장승업은 고사를 지낼 때에 입었던 흰색 두루마기를 벗고 검은색 누더기로 갈아입었는데도 말이다. 혹시 칸불이 빨리 들어갔다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옛날에는 가마의 성능이 좋지 않아서 현대와 같이 빨리 진행될 수가 없다. 고사떡 한 시루가 칸불로 넘어갈 때까지 남아있을 수가 없었던 헐벗은 때가 아닌가? ^^
7 불을 다 때고 잔잔한 숯만 남은 상태에서 도수리 구멍도 막지 않고, 아궁이도 막지 않고 모두 그대로 둔 상태에서 화부(불때는 사람)는 장승업이라는 객만 덜렁 남겨두고 “계실라우? 난 한 숨 자야것소.”라며 마지막 남은 화부가 사라진다. 백자를 때는 것인데 아궁이도, 불구멍도 막지 않고서 퍼질러 자러 가도 환원불(산소 공급을 억제하면서 때는 불)이 제대로 될지 불안하기만 하다. 백자가 온통 누런 색으로 산화될까봐 겁이 날 정도이다.
8 장승업은 불이 끝나고 나서 마지막 숯이 타고 있는 아궁이로 기어들어 간다. 이내 전신이 불에 타오른다. 섬뜩하면서도 멋진 장면으로 남을 수 있다. 에밀레종이 마치 만드는 사람의 아기를 바쳤기 때문에 소리가 구슬프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듯, 도자기도 마치 예술가의 혼과 육신을 태운 까닭에 멋진 도자기로 승화되었을 것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이 장면은 황순원 선생님의 소설 <독짓는 늙은이>에 나오는 마지막 장면을 더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나도 장작가마를 땔 때마다 생각나는 장면이다. 1200도를 지나 빨간 색을 넘어 노랗다 못해 투명할 정도의 불꽃으로 바뀌면 이 불꽃이 가장 아름답다. 사람의 마음을 사정없이 빨아들인다. 때로는 몸을 던지고 싶다는 충동이 인다. 모질게 살아간 독짓는 늙은이의 행동에 이해가 간다. 이토록 기막힌 절정의 장면이 될 수도 있는 것을 취화선에서는 너무 허술하게 처리한 것은 아닌가?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꺼져 가는 불꽃은 앞서 말한 이글이글 타오르는 숯과 함께 투명하게 비치는 불꽃에 비하면 매력이 없다. 끔찍한 일이겠지만 실질적으로 그 때에 사람을 태워보았자 도자기작품에 미칠 영향도 없을 것이다. 장승업이 기어들어가는 장면을 그렇게 밖에 찍을 기술이 없었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영화 앞쪽에 들어간, 마을 전체를 내려다보이는 장면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돈을 많이 들여 완성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 몸을 던지는 장면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멋지게 처리를 하였으면 어떠했을까? 누군가 조금만 더 투자를 하면 좋았을 것을... ^^
9 가마에서 완성된 도자기를 꺼내는 요출(窯出) 장면에서 마지막으로 장승업이 그렸던 백자를 땅바닥에 내려놓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강물에 띄운 배 위에 움막이 쳐있고 선단에는 선비가 양손을 허리춤에 대고는 멀리 경치를 바라보는 그림이 들어간 백자가 한참동안 이어지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보면 앞 장면에서 그렸던 그림과는 다르며, 더욱이 그림의 방향이 거꾸로 되어있다.
10 아래에 소개한 대화에 나오는 것으로 원래는 “유약 바른 사람들은 유약이 잘 녹아 흘러내리길 바라고”라는 얘기로 나온다. 하지만 청자, 백자, 분청사기의 유약들은 흘러내리면 안된다. 그대로 잘 녹아야만 한다.
물론 앞 장면에서 그린 도자기와 다른 것을 꺼낼 수도 있다. 하지만 화부는 장승업이 그 그림을 그릴 때에 “씨팔! 저런 수전증으로 무슨 그림을 그린다고?”하며 문을 박차고 나갔었고, 나중에는 불을 마치면서 가마 옆에서 “모두들 예사 그림이 아니라고 하데요.”라며 장승업에게 사과를 해야만 했던 문제의 대단한 그림이 아니던가? 그리고 장승업의 육신을 불태워 구워낸 도자기가 아닌가? 그토록 중요한 그림이라면 다른 그림의 도자기로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한다는 것은 무리가 따르는 일이다.
게다가 내가 아무리 그림을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마지막 장면의 그림은 ‘예사 그림이 아니다’라고는 도저히 보아줄 수가 없을 정도의 치졸한 그림이다. 문제의 그 도자기를 굽다가 깨지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면, 그림 그리는 장면을 다시 찍던지, 아니면 그게 귀찮다면 새 도자기에 페인트나 아크릴 물감으로라도 다시 그려서 끝 장면을 찍던지 해도 화면상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물론 나는 그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글을 마치면서 ‘일반인들은 모르고 지나갈 좋은 영화를 괜한 트집이나 잡으며 횡설수설한 것은 아닌가?’ 하는 미안함이 있으니 끝으로 좋은 대사나 소개하면서 시비를 맺으려 한다. 아궁이 앞에서 화부와 장승업이 나눈 진지한 이야기로서 도자기와 불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말이다.
장승업: 자네는 어떤 그릇이 나오기를 원하는가?
화 부: 선생님같은 화공들은 철사가 잘 녹아 그림이 온전히 살아 나오길 기다릴 것이고 유약 바른 사람들은 유약이 잘 녹아내리길 바라고 아마 주인은 한 두 점 명품이 나오길 소원하겠죠. 어디 그게 도공들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요?
불이 말하는 거지요.
필자약력
1955년 생
단국대학교 도예과 졸업
http://my.dreamwiz.com/potter
개인전 7회
1999 국제 장작가마 심포지움 발표자 및 초대작가(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2001 세계도자기엑스포, 민속도자 워크샵 시범자
(여주 행사장)
2002 아오모리 세계장작가마대회 시범자 및 초대작가(일본, 아오모리)
2002 21세기 한국현대도예작가 초대전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2003 한국도예 ‘전통과 변주’ 초대전
(미국, 샌디애고 시티칼리지)
현재 도예공방 거칠뫼(031-792-6350)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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