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진아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소 연구원
들어가며
2003년은 여기저기서 많은 일들이 일어난 해였다. 제1회 세계도자기엑스포의 성공에 힘입어 제2회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가 이천, 여주, 광주에서 개최되었고, 그 외에도 수많은 개인전과 단체전, 국제교류전 등이 열렸다. 또한 기관이나 갤러리에서 주최하는 기획공모를 통해 완성도 있는 기획전들도 볼 수 있었다. 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전시들도 더러 있었다. 본고에서는 올 한해 도예계가 걸어왔던 그 흔적들을 돌아보고자 한다.
2003년 한국 도예전시의 흔적들
2003년 도예계 최대 행사였던 제2회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는 각 행사장 별로 특색 있는 기획전과 특별전을 통해 대중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했고, 예술, 전통, 생활도자 3대 분야를 지역별로 특성화해 심도 있게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광주 조선관요박물관에서 열린 <조선도자 500년>전이나 여주세계생활도자관의 <피카소 도자전>은 꼼꼼하고 특색 있는 기획으로 관람객들의 문화수준을 향상시켰다는 평을 들었다.
한편, 각 행사장의 전시들을 관심 있게 관람한 사람이라면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실망스러운 전시들도 있었다. 비엔날레의 간판 격인 기획전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현대도자의 흐름을 제대로 짚어주지 못한 <세계현대도자전>을 비롯해 소장작품을 재활용하거나 특별한 해석 없이 새로운 것을 소개하는 정도에 그친 몇몇 전시들은 발전된 모습을 기대했던 관계자들과 관람객들에게 안타까운 전시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기획전
명확한 논제를 가진 기획은 도자예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제작자들의 창작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다. 이러한 취지를 가지고 한국공예문화진흥원에서는 처음으로 전시기획 공모를 실시해 2003년 당선작들을 전시했다.
도예를 전문으로 하는 전시기획자나 평론가 등이 부재한 상황에서 한국공예문화진흥원의 이러한 시도는 젊은 감각의 새로운 기획자들을 발굴해내는 업적을 이룩했다.
, <전통매듭연구회전>, <利器·異器 전>, <한일청년작가교류전>등을 비롯한 14개의 당선 전시 중에서 3인의 신진 기획자에 의해 기획된 <好·昊·壺 전>은 전시 준비기간에 가진 작가들과의 토론을 통해 우리사회에 이슈화되는 장례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기획의도와 부합된 결과를 가져오는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았다.1)
기획공모 당선 전시는 아니지만 한국공예문화진흥원에서 열리고 도예가 김종인 씨가 기획했던 <마니·미니·재미 가게전>은 도예를 비롯한 섬유, 금속 등 다양한 공예장르로 구성된 판매전이었다. 값싸고 실용적인, 그렇지만 개성 있는 것을 찾는 현대인들의 기호를 파악해 높은 판매수익을 이룬 이 전시는 관객들뿐만 아니라 참가하는 작가들에게도 작품제작과 참여의 동기를 부여하여 전시의욕을 고취시켰다.
반면, 기획자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아 그 의미가 흐려진 전시들도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각각 금호갤러리와 사간갤러리에서 열린 <2003 현대한일도예전>과 <한일도예작가교류전 2003>이 그것이다. 한국과 일본작가들이 참가하는 국제적인 교류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전시 모두 독창적인 기획을 보여주지 못하고 개개인의 작품들을 늘어놓는 닮은꼴의 전시로 끝나버렸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동문전과 협회 단체전
올해도 각 대학 동문전인 <토전>, <도림전>, <뉘누리전>, <아름우리 도자전> 등을 비롯해 한국공예가협회, 한국전업도예가협회, 산업도자조형회 등이 전시를 가졌다. 그 중에서 특히 창립 30주년을 맞은 한국공예가협회는 이를 기념하기 위한 각종 행사도 개최함으로서 최근 정체되어 있는 협회의 활동에 활력을 되찾고자 하였다. <창립30주년 정기회원전>을 비롯해 <한국공예 원로작가 초대전>에서는 김석환, 김익영, 황종례 선생 등 도예계 원로를 비롯해 각 공예부문 원로작가들을 초대해 그동안 공예발전에 기여, 공헌한 업적을 돌아보았다. 또한 <크라프트페어─생활공예한마당2003>을 같이 기획해 공예의 대중화와 생활화를 모색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러 명의 작가들이 모여서 구성된 단체전은 다양한 작품을 보여주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전시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 할 수도 있고, 도예계의 흐름에 새로운 트랜드를 일으킬 수도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열리고 있는 단체전들을 보면 각 단체에서 연례행사로서 치르는 정기회원전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003년을 포함한 최근 몇 년 사이의 단체전들은 참신한 기획전 몇 개를 제외하고 대부분 별다른 시대의 반영 없이 ‘자유로움’, 또는 ‘탈피’를 빙자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도예계의 혁신이나 각 단체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반성되어야 할 부분이다.
개인전
해마다 많은 수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올해 서울·경기지역에서 열린 개인전은 필자가 헤아린 것만도 약 160건 이상이다. 전국적으로 보면 한해 약 200건이 넘는 개인전이 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여러 괄목할만한 전시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이가영 도예전>과 <김순식 도자회화전>은 ‘도자회화’라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기폭제 역할을 한 전시라는 평을 받았다. 서양과 동양의 핸드페인팅 기법을 보여준 이 전시들은 작품의 표면을 단순히 장식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그린다는 행위’에 대한 가치를 거듭 생각해보게 했다.
기법적인 아이디어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상상’이라는 기법에는 한계가 없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상상이지만 한 해 약 200건이 넘는 개인전들 가운데 뛰어난 상상력을 보여준 작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서희수 도예전>과 <석창원 도예전>은 초현실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작가의 독창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전시였다. 많은 수의 작가들이 늘 보여줬던 것들을 고집하고 있을 때 이 두 작가는 낯선 형태들을 선보임으로써 다른 작가와 관객들의 빈곤한 상상력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03년 개인전의 특징은 안타깝게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장진 생활도자전>, <이동구 분청항아리전>, <유태근 작도전> 등 생활도자 전시가 커다란 흐름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몇 년째 지속되는 생활도자의 강세는 앞서 언급한 경제의 불황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만 종종 지적되는 바와 같이 늘 반복적이고 안일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현재 도예계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글을 마치며
필자는 한국 도예전시의 흔적들을 찾기 위해 올 한해 열린 전시소식이 실린 잡지들을 찾았다. 그 흔적들을 쫓으며 느꼈던 아쉬움은 사실 전달에 불과한 기사만 있었지 그것들을 제대로 보고 평가하는 것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 예로 비엔날레가 끝난 지 벌써 두 달이 지나가지만 그 전시의 성과라든가 영향에 대해 평가하는 기사를 찾아 볼 수가 없다. 전시 자체가 발전하려면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지적해 줄 수 있는 도구로서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는 평론이 반드시 필요하다.
어려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올해 우리 도예계는 나름의 노력을 했다고 보여진다. 대규모 국가적인 행사도 가졌고, 새로운 기획자를 찾아내려는 시도도 했다. 그리고 많은 작가와 학생들이 새로운 자기발전의 결과물을 대중 앞에 발표하기도 했다.
해마다 넘쳐나는 전시의 홍수 속에서 과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전시는 얼마나 될까? 매주 한번씩 인사동에 나가 전시들을 둘러보지만 올해도 기억에 남는 전시는 손으로 꼽을 만큼이다. 과거에 비해 도예를 즐기고 그것을 향유하려는 계층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이러한 행태는 도예계를 구성하고 있는 작가와 관객 모두에게 마이너스적인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좋은 전시, 소위 ‘잘 팔리는’ 전시를 위해서 급변하는 시장의 추세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전시기획자와 이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줄 수 있는 평론가, 그리고 고양된 의식의 작가와 적극적인 관객이 모두 요구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1) 본지 2003년 9월호 특집기사 <전시기획에도 논제를 갖자>, 조현주
필자약력
2002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 졸업
2003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예술기획전공 재학중
2003 <이기·이기>, <호·호·호>전 기획
현,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소 연구원
기사를 사용하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www.cerazi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