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의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로얄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그룹의 산업도자 디자인과 예술유리?
연대순으로 보는 로얄 코펜하겐의 역사와
덴마크 산업도자디자인 양식 변천사⑼
- 1900년대 초반기, 고전주의로의 복귀
글/김정아 스웨덴리포터 사진/로얄 코펜하겐 제공
불안정의 시대
20세기 초반기의 유럽은 극도의 불안정과 정치적인 혼돈상태로 연결된 시기로 평가할 수 있다. 불안정한 정세가 20세기의 첫 10여년을 짓누르면서 유럽의 각 도자산업체들도 이의 영향을 받으며 전반적으로 불안정을 나타냈다. 이러한 초반기의 불안정한 정세는 유럽전역을 감싸고 있던 전운에서 비롯되었고 결국은 1914년에 발발한 세계 1차대전과 1917년의 러시아혁명으로 클라이막스를 이루었다. 불성실하고 과도한 부르주아지(Bourgeisie)의 생활방식은 이미 1800년대 중반부터 많은 곳으로부터 맹렬히 비난받고있었으며, 관습과 제도를 극단적으로 중시하는 역사주의(Historicism)를 갈팡질팡하며 신봉하는 부르주아지의 지식양상과 아르 누보(Art nouveau)의 우아하며 값비싼 예술품들은 퇴폐적인 미술사조로 간주되고 있었다. 이 시대의 시민 계급은 고전주의의 복귀를 갈망하며 온건하고 중용과 절도를 지키며 정화되고 조화가 이루어진 새로운 이상을 찾고 있었다.
신고전주의 디자인 양식
신고전주의(Neoclassicism)는 수구학파(Neoantique) 또는 전통부활학파라고 하며, 순수함과 고요한 전통철학으로 돌아가 과도한 인위성과 그릇된 고대양식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을 말한다. 이 양식은 18세기 공예, 미술 양식이 기교에 빠져 서구제국주의를 정당화시키는 것에 반발하여 현실적인 경험과 필요성을 전통과 결합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처음에는 소시민적인 생활양식에 대해서 쓰였으나 그후 1815년부터 1845년까지 비정치적인 당시의 예술양식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신고전주의는 20세기 초 독일에서 부흥했으며, 이의 초기 단계 양식을 독일에서는 비더마이어(Biedermeier)양식 또는 후낭만주의(Nachromantik) 혹은 사실 - 이상주의(Real - Idealismus)라고 불렀으며 이는 1820년부터 1850년 사이의 건축, 공예, 미술양식을 말한다. 1850년부터 사실주의가 등장하고 공예와 디자인 분야에서는 표현주의와 기능주의(Functionalism)가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거의 같은 시기인 1850년대 중엽부터 활발했으며 사실주의(Realism)를 거쳐 20세기 초반에는 산업과 과학의 발전, 특히 사회주의와 실증주의의 대두로 이어졌다. 덴마크의 경우는 독일의 인접국으로서 독일의 공예, 미술양식에 보다 영향을 많이 받았다. 독일의 신고전주의는 자연주의(후에는 표현주의)에 반대하고 고전주의 일반의 예술전통으로 돌아가 미의 자율성을 주장하고 고전주의의 엄격한 형식원리를 발전시키려고 시도하였으나, 동시에 신 낭만파의 심리주의와 그 기본예술에도 반대하였다. 신고전주의가 등장하기 전(前) 단계인 비더마이어시대의 덴마크의 디자이너들은 그들 스스로 화려한 구 부르주아지 양식에서 벗어나 고전적인 전통으로부터 영감을 찾으려고 하였다. 독일의 비더마이어시대는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8세 양식(Denmark Christian VIII) 시대와 프랑스의 루이 필립(Louise-Philippe) 시대 양식에 영향을 주었으며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이 시기의 시민계급은 은거와 사생활을 동경했으며 종교, 국가, 향토, 가족과 같은 총체성에 순응하여 그 속에서 만족을 얻고자 하였다. 특히 가족은 정치적 압박하에 있던 시민들의 정신적인 도피처였으며 비정치적인 욕구의 배출구로서 문화와 예술을 섭렵했는데 이러한 태도가 그들을 정치적으로 중도를 지킬 수 있게 해준다고 믿었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산업도자 디자인
고전주의를 계승하는 신고전주의 도자디자인의 특징은 순수하되 명확하고 강직한 선, 간결한 형태, 윤곽선과 표면의 매끈한 처리, 비율의 균형과 조화, 안정과 형식미를 존중하는 것으로 오히려 더 완강하고 절제된 선과 색으로 더 고전적이기도 하였다.
영국의 경우에는 웨지우드 회사가 고대의 유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부조 장식한 제품들을 생산하여 유통함으로써 신고전주의의적 양식을 일반화하고 산업혁명과 연관하여 기능주의의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했다.
덴마크에서는 로얄 코펜하겐의 미술 책임자 아놀드 크로그가 1909년 신고전주의 양식의 ‘부채(Fan)’시리즈를 디자인하였으며, 빙 앤 그뢴달의 카이 보예센(Kaj Bojesen)은 1930년과 1931년에 ‘모카 서비스(Mocha service)’를 디자인했는데 카이가 디자인한 모카 서비스 커피주전자는 고전적인 핫 초코(Hot Choco 또는 코코아)주전자와 유사하였다. 카이는 후에 보다 기능주의적 양식의 디자인을 전개해갔다. 신고전주의와 기능주의 디자인은 두 양식 모두 기하학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지배계층의 권력을 묘사하던 복잡하게 장식된 정치성을 띤 전 시대의 디자인과의 관계를 인위적으로 끊고자하는 사고와 취지가 디자인 개념에 담겨져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부채(Fan)’ 시리즈
아놀드 크로그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디자인한 로얄 코펜하겐의 ‘부채(Fan)’시리즈는 1909년부터 생산을 시작하였다. 이 디너 서비스의 첫 시리즈는 ‘파란 부채(Blue Fan)’로부터 시작되었으나 현재는 ‘하얀 부채(White Fan)’시리즈만이 생산되고 있다. 우아한 엠파이어 형태의 신고전주의 양식의 ‘파란 부채(Blue Fan)’시리즈는 눈부신 순백색의 바탕에 이지적인 파란 테두리 색과 대비되고 있다. 접시와 컵, 기타 아이템들의 가장자리를 순환하며 월계수 잎들을 부조 장식한 형태로 손잡이에도 같은 장식을 반복하고 있다. 부조 장식과 각이진 손잡이는 엠파이어 양식(Empire style 또는 앙피르 양식)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부활시킨 것으로 절제된 간결함과 우아함이 잘 조화된 디자인이다. ‘하얀 부채(White Fan)’시리즈는 테두리 부분에 유약을 시유하지 않아 자기의 부드러운 광택을 살리고 있다.
‘부채(Fan)’시리즈가 첫 생산된 1909년 디자이너 아놀드 크로그는 그의 디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아마도 18세기 중엽에 만들어 졌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한 아름다운 부채를 손에 들게 되었을 때 나는 갑자기 그 부채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반원의 접시모양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이 순간의 환상이 사라지기 전에 나는 서둘러 그 이미지를 디자인하고 로얄 코펜하겐에서 원형 모델을 제작하는 모델러(Modeller)중 가장 솜씨 좋은 야콥센(Jacobsen) 노인에게 가서 모델 제작을 부탁했다.”
(다음 호에 계속)
필자약력
이화여대 및 동 대학원 도예과 졸업
스웨덴 국립 욧데보리대학교 대학원 석사(MFA)
핀란드 헬싱키산업미술대학교 대학원 박사(Doctor of Art)
개인전 2회(스웨덴)
국제학술대회 논문발표 3회
핀란드 UIAH 도자연구소 전임연구원 및
도예과 전임강사 역임
현재, 스웨덴 욧데보리대학교 전임강사(공예학부) 및
전임연구원(디자인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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