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명일기 전에 관한 단상
글/권영식 서울산업대학교 도예학과 교수
젊은 도예가 김영기의 전화는 항상 활기 넘치고 기대감을 갖게 한다. 오래간만의 전화 내용은 느닷없이 집으로 오겠다는 말과 함께 생후 8개월 된 둘째를 보여 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첫째와 둘째 아기 그리고 그의 아내와 작업장 후배까지 대동하고 밤늦게 나타난 김영기는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눈웃음을 지으며 ‘백명일기전(百皿日記展)’이라고 인쇄된 전시안내 엽서를 들이미는 것이었다.
백 개의 접시에 쓴 일기전? 김영기의 천진스럽기까지 한 당돌함에 내심 놀라면서 자신의 지극히 사적이고 개인적인 내용을 가지고 도예작품 전시를 기획한 의도가 사뭇 궁금하였다.
서울 청담동 소재의 토마도(土磨陶)갤러리 개관기념 초대전으로 열리는 ‘백명일기전(百皿日記展)’은 당돌하지도 않을뿐더러 1980년대 후반 도예를 시작할 때부터 최근까지 자신의 일상의 기록들이 차분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때로는 문학적인 감성과 자신의 치열한 삶의 내용들을 기록한 지극히 사적(私的)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분청과 상감기법 등으로 표현된 접시들은 전시장 안에 늘 자리하고 있었던 것처럼 차분하고 친숙한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그릇에 새겨진 내용들을 하나하나 읽어 가면서 느낀 점들은 그릇은 음식을 담기도 하지만, 마음을 담을 수 도 있는데…, 나는 왜 그릇은 그릇다워야 한다고만 생각하였을까 하며 잠시 편협한 생각을 되새겨 보았다. 아울러 그릇에 자기 내면의 은밀한 내용들을 감히 기록할 수 있는 작가 김영기의 천진함과 젊음이 부러워 졌다.
도예가이기에 자신의 일상의 모습이나 생각을 도자기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라는 지극히 당연함 이외에 또 다른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작가 자신만을 위한 작품이어서도 안되며, 작품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작가의 작품과 이를 사는 고객과의 거래가 이루어짐으로써 작가는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함은 물론 재창조의 원천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작가의 사적인 기록들을 주제로 초대전을 기획한 토마도(土磨陶)갤러리는 작가 김영기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하였기에 이 전시가 가능하였겠지만, 여전히 현실적인 문제가 남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도예전문 갤러리가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는 현실과 갤러리의 전문성과 도예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생각과 각자의 노력이 필요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김영기는 탄탄한 기본기를 중심으로 분청작업을 주로하고 있는 작가로서, 최근 몇 년 동안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고이에 료지(鯉江良二)선생의 공방에서 선생의 작업을 돕고 자신의 작업도하면서 활동 중이다. 고이에 선생의 말씀대로 give and take로 선생의 알선을 통해 일본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그동안 한국에서의 작가활동으로서의 답답함(?)과 생활의 단조로움을 극복하려는 김영기 나름의 새로운 도전을 위한 모색이 아니었나 하고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
훨훨 날고 싶은데 날지 못한다고 한탄하지 않고 어려움과 고난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려는 도예가 김영기에게 앞으로 더 좋은 모습으로 더 좋은 작품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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