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하워드 리사티(Howard Risatti) 미국 버지니아 커먼웰스대학 공예·재료학과 학장
번역/최석진 도예가
미국 도예계에서 현재의 상황은 아마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등 대다수의 다른 나라들과는 다를 것이다. 미국에서는 기능이라는 관점에서 순수 미술과 공예 사이에 현격한 거리가 있다. 이론적이고 비평적 사고에서의 이러한 분리는 18세기말 독일철학가 칸트(Immanuel Kant)의 이론에 의해 유럽에서부터 발전되어 온 것이다. 칸트 보다 앞서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영향으로 칸트는 어떠한 목적(다시 말해 기능이라는 것)을 가진 물건들은 단지 기능적으로 견고하다거나 적절하다고 간주될 수 있을 뿐이고 미학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같은 시기에 유럽에서 발생했던 기능성을 갖춘 물건들의 대량생산에 대응한 이런 이론적 고찰은 심미적 의도를 가진 것으로부터 순수 상업적인 것을 분리하는 방법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단지 시장에서 판매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일상적인 물건들을 미적인 목적을 가진 예술 작품으로부터 분리하기 위한 이론적 방법이었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공예에서 단순히 기능성의 존재 여부에 바탕을 둔 이런 이론은 예술적 측면에서의 공예품들을 자동적으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20세기에 들어서, 유럽과 미국의 추상미술 발전으로 이러한 미적 견해들은 이론적인 영역에 남아 있기보다 결국 사물의 실용적 수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20세기말까지 미국의 많은 예술가들이나 비평가들은 “단지 기능성이 없는 것들만이 미학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겨진다고 믿었다.(다시 말해 예술품이라고 믿었다) 사실 이것은 단지 회화와 조소 같은 것만이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상황은 놀랍지 않게 최소한 미국에서 순수미술과 미학적으로 동등성을 원하는 다수의 공예옹호론자들로부터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몇몇 지지자들은 기능의 존재여부는 문제가 안 된다고 주장하며 다른 지지자들은 기능성을 부인하고 방법적으로 도예조소에 시선을 두었다.
두 그룹 모두 그들의 작업에 대해서 각기 다른 심미적 관점으로부터 미학적 견해를 주장하고 있다. 지나치게 일반적인 견해일지 모르지만, 본인은 사람들이 도자기 그 자체가 이미 실용적인 측면이라고 합리적으로 말할 수 있다고 본다. 이들 두 의견은 최근 미국에서 도예가 두 개의 측면으로 나뉘어 왔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도예가들 중 한 그룹은 기능성에 관심을 보이며 심지어 기능성이야말로 도예의 고유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은 칸트학파 이론과 순수예술로부터 온 전위 예술가들의 이론에 반대해서 도예 전통을 지지하고 있다. 또한 다른 그룹은 기능이라는 전통을 거부하면서 순수 조소적인 방면으로 도자예술을 탐구하고 있다. 아주 분명하게 그리고 성급하게 이러한 구분을 짓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워야 하지만 최근의 작품들은 이러한 경향을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기능성에 중점을 두는 도예가 들은 단지 공예영역에서만 주목을 받는 경향이 있는데 그들은 도예에서 예술성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면에서도 식견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런 작업을 하는 작가들 중 명성이라는 독단적인 면에서 볼 때 롭 버나드(Rob Barnard), 마가렛 부저(Margaret Boozer), 워렌 페데릭(Warren Frederick), 캐서린 화이트(Catherine White) 그리고 스테펜 메릿(Stephen Merritt), 샘 청(Sam Chung)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모두 기능에 중점을 두고 있고 또한 동양의 전통 도예로부터 깊게 영향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버나드의 경우를 예로 들면 그는 일본에서 공부했고 장작가마 소성을 했을 뿐 아니라 샘 청(샘 청의 경우 동양적 성향을 확실히 느낄 수 없지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의 작업은 동양의 전통적인 형태를 반영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기능성을 갖춘 작업을 하는 이런 작가들은 보다 더 현대적이거나 포스트모던 양식에 기울어져 있는 다른 도예가 들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그룹에는 스티븐 글라스(Steven Glass), 크리스 거스틴(Chris Gustin), 버지니아 스카치(Virginia Scotchie)와 같은 작가들을 포함시킬 수 있다. 그들 모두 물레에서 작업하고 기능성을 갖는 것들을 제작한다. 그러나 그들은 명백히 동양의 영향을 덜 받고 있으며 더욱 더 미국의 전형적인 작업을 보여주는 감각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스티븐 글라스의 작품에서는 붓으로 그려진 매우 다채로운 색상의 율동적인 표면 장식과 함께 전형적으로 기능성이 있는 도자기(화병, 주전자, 사발 등)형태들을 볼 수 있다. 버지니아 스카치는 대량 생산되는 일상 생활용기들의 기능적 형태를 개척하고 장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녀는 때때로 두 개의 평범한 오브제 형태를 조합하거나 또는 물체가 가지는 원래의 세속적인 형태를 없애기 위해서 독특한 정교함을 더하기도 한다. 또한 그녀는 기물을 특이한 색상으로 덮어씌우는데 때로는 빛나는 금속성 유약을 써서 광택의 대비를 보여주며 또 다른 부분에는 평범하지 않은 건조한 무광택의 유약을 더하기도 한다. 또한 마크 류홀드(Marc Leuthold)와 같은 작가는 비록 그의 작업이 명확히 기능적이지는 않지만 기능주의자 그룹에 연관된 작가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물레에서 시작하지만 둥근 원형접시 같은 형을 고수하지 않고 기물 중앙에 물레 성형된 사발 형태로부터 시작하여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정교한 꽃잎형태를 만들고 있다. 기능에 중점을 두는 이러한 경향과는 대조적으로 미국 도예계의 두 번째 그룹을 이루는 도예 조소적 관점에서는 보통 인간의 모습이나 풍경 또는 도시 풍경 같은 것을 지향하는 작업들을 볼 수 있으며 심지어 더욱 추상적 표현들과도 연관을 갖는다. 인물묘사의 전통에 있어서 우리는 로버트 아네슨(Robert Arneson)과 같은 작가의 독창적 영향을 인정해야 한다. 그가 속한 인습 타파적인 캘리포니아 펑크 작업들(Funk Works)은 근본적으로 도예조소를 순수미술로 진입하게 하였다. 기능에 바탕을 둔 도자기들과는 다르게 아네슨의 영향을 반영하는 작업들은 대개 순수 미술세계에서 그들의 지지자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아네슨에 의해서 보여지는 이러한 전통에서 벗어나서 패티 와라쉬나(Patti Warashina)와 같은 도예가를 포함해서 잭 얼(Jack Earl), 마이클 루세로(Michael Lucero), 비올라 프라이(Viola Fry), 리차드 쇼우(Richard Shaw), 앨런 로즌범(Allan Rosenbaum), 서르게이 이수포브(Sergei Isupov), 리디아 톰슨(Lydia Thompson) 그리고 그 외의 다른 도예가 들에게서 이런 도예 조소적 작품들의 출현을 볼 수 있다. 물레를 사용하지 않는 이런 작가들의 작품들은 순수 조소 작업이라고 여겨져야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기능을 갖는 작업을 하는 도예가들처럼 그들은 도예 작업 과정의 복잡함과 여러 지식들 다시 말해서 기술적인 측면에서 항상 점토와 유약 그리고 소성기술의 광범위한 지식들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순수 예술 분야에서 교육받았던 미국의 전통 조각가들과는 다르게 구분된다. 재료에 대한 이런 매우 복잡한 지식과 과정들은 보통 소재나 작업과정에 대해 고려하기 이전에 이론적인 면을 먼저 고찰하는 즉 순수미술 교육을 받은 조각가들의 특성이 아니다. 앨런 로즌범의 작업을 보면 도예조소의 전형적인 기술적 정교함의 높은 경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아네슨의 펑크전통을 반영하는 그의 작품들은 다양하고 여러 복합적 색상변이로 풍부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반복적인 유약 과정 그리고 소성을 거친 많은 수공 작업 결과 신비한 표면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오래된 도예 전통을 따르고 있다. 이런 인체표현의 작품들과 동시에 순수조각의 주류를 반영하는 더욱더 추상적 도예조소들도 보여지고 있다. 이러한 작업을 하는 작가로 캘리포니아 작가 론 네이글(Ron Nagle)과 생물학적 형태와 화려한 캘리포니아 색상을 함께 결합한 캔 프라이스(Ken Price)의 작품들이 있다. 또 대조적으로 사다시 이누주카(Sadashi Inuzuka)같은 도예가도 있다. 그는 스케일이 매우 큰 작업을 하는데 소성한 기물과 소성하지 않은 슬립을 포함한 여러 다양한 재료들, 때로는 심지어 돌과 비디오 작업 등등 다양한 소재들을 조합하여 방 크기 정도의 조각 설치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본인이 언급한 이러한 작가들 외에 또 다른 작가들을 포함시킬 수 있지만 이 위의 이러한 경향들은 현재의 미국 도예계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전망은 거의 같을 것이라 예상된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 주의해야 할 사항으로 조소의 주류를 둘러싸고 있는 중간분야에 대한 반발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점에는 보통의 평범한 작품들이 스포트라이트의 대상이 되다가 짧은 시간이 지난 후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사라지는 상대적 반응일 수 있다. 예술애호가들은 기능적인 공예물이 그러하듯이 실질적인 어떤 것을 원할지 모른다. 그런 경우 미국 도예계의 기능주의자 부류는 예술계 주류 안에서 더 강하게 보여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든 안하든 미국에서는 여전히 현재 보여 지고 있는 것들이 유지될 것이다. 분명 교육적 측면에서 본다면 학생들은 모두 물레에서 기능적인 것을 만들면서 도예 교육을 시작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능숙하게 숙달된 단계에 이르면 곧 자신들의 의지대로 공예와 조각 그리고 기능과 비기능 사이를 넘나들며 더욱 유동적이 된다.
필자약력
하워드 리사티는 현재, 버지니아 커먼웰스대학의 공예/재료 학과장으로 현대미술, 미술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평론과 집필 서적으로는 ‘새로운음악기호’(일리노이대학출판), ‘포스트모던 전망 : 현대미술의 이슈’(프린타이스홀), ‘마운틴 레이크워크샵 : 현장의 예술가’(버지니아텍크와 앤더슨갤러리), ‘케니스 트랩’, ‘Skilled Work : 미국공예, 랜윅갤러리’(스미소니언 학회 출판)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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