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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장영필
  • 편집부
  • 등록 2004-03-17 02:23:33
  • 수정 2016-04-09 0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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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생활에 어울리는 감각 담아 끊어진 옹기맥 찾기 위해 푸레도기 빚는 젊은 도예가 옹기는 과학적으로 그 우수성이 입증됐으면서도 현재의 우리 생활과 공간에 적합하지 않아 활용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원래의 쓰임이던 저장의 목적보다는 옛스럽고 토속적인 분위기를 내기 위한 상투적인 소품으로 활용되고 있어 본래의 진가를 상실한 전락(轉落)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옹기의 일종인 푸레도기는 유약을 바르지 않고 번조의 막바지에 연을 먹여 1200도 내외에서 마무리한다. 유약을 입히지 않고 연을 먹여 저온에서 번조한 질그릇과 약토와 잿물을 섞어 바르고 1200도 내외의 온도에서 소성하는 오지의 중간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도예가 장영필(34)은 푸레도기 작가이다. 경기도 김포에 위치한 장영필 도예가의 작업장은 한가한 겨울 농지가 내다보이는 한적한 곳이다. 도예가 장영필은 단국대학교 도예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막연하게 진학한 대학 도예과에서 뭔지 모를 재미에 끌려 물레에 전념했던 그를 꾸짖고 격려하던 은사의 관심은 그에게 도예가로서의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하게 했다. 재주의 기량이 늘어감에 따라 작업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유구한 도자문화의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의 정체성을 상기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겪어가는 것 또한 여느 도예가와 다르지 않다. 지난 10월 개인전 푸레도기에 대한 상이한 반응 관람객에게 옛 정취와 현대적인 감흥 선사 지난 10월 인사동 통인화랑에 전시된 그의 회색, 검은색, 고동색 등의 색을 띠는 푸레도기들은 보는 사람에 따라 상이한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은 옛 정취에 잠기기도 했고, 전통적인 배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오히려 현대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웰빙(Well-being)이 의식주 전반의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즘에 친자연적인 푸레도기는 무공해성과 항균력을 갖고 있어 초현대적인 면을 갖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태면에서도 옹기하면 우선 떠오르는 배부른 항아리에서 현대 생활공간에 어울리도록 직선을 적절히 사용해 안정적으로 조화시켰기 때문에 현대적이라는 평가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레기술 불의 해석 통해 푸레독 대표작가로 성장한 거목의 싹 99년 첫 개인전에서는 대학원 시절부터 연구해온 잿물을 바른 옹기를 전시했고 푸레도기를 처음 선보인 것은 2003년 5월에 열린 2회 전시이다. 장영필 도예가가 4년만에 내놓은 푸레도기에 대해 단국대학교 박종훈 교수는 “물레 기술의 문제부터 불의 해석까지 놀라운 성장을 했다”며 그를 ‘거목의 싹’이라 칭했다. 그의 작품들은 푸레도기로는 유일하게 2003경기도세계도자비엔날레의 한국도자 특별전에 초대돼 광주 조선관요박물관에 전시되기도 했다. 푸레독 어미 항아리 보고 느낀 전율 작업의 새 전환점 계기 그는 대학원 시절부터 우리 옹기에 대해 연구하고 현대적으로 변용하는데에 관심을 기울였다. 사료가 충분치 않아 참고가 될만한 곳은 열심히 찾아다니고 보러 다닌다. “서울 쌍문동에 옹기민박물관에서 본 푸레도기어미(御米)항아리를 보고 일종의 전율을 느꼈습니다.”작가는 그때의 감흥을 회상하는 눈빛을 빛내며 말한다. 푸레도기 기법으로 만들어진 항아리 하나가 그의 작업에 새로운 전환점이 돼 작업도 자연스럽게 푸레도기로 바뀌었다. 초벌을 하지 않고 단벌로 완성하는 푸레도기이지만 그는 흡족한 색이 나올 때까지 온도가 오른 가마에 소금을 투척하거나 연먹이는 과정을 반복해 경우에 따라 여러번 굽기도 한다. 물항아리나 쌀항아리 등의 뚜껑을 나무로 맞춰 옹기로 만든 뚜껑보다 편안히 여닫을 수 있게 한 것도 그의 푸레도기에 특징이다. 고증없는 상황으로 다양한 실험 불사 갯벌을 섞어 만들어 보기도 직접 옹기를 사용하는 생활을 경험해 보지 않은 젊은 도예가가 옹기를 연구하고 현대에 적합한 옹기로 만들어 내겠다는 시도는 어쩌면 무모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저 일상적으로 사용된 이유로 문헌의 기록이 없을 뿐더러 선사토기에서부터 생활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변화해 오던 옹기의 맥이 끊긴지 한세기가 다 되어가니 말이다. 장영필 도예가에게는 오히려 이런 현실이 자신의 탐구에 사명감을 더 한다. “처음에 옹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주변에 옹기를 하는 사람이 없어서 답답했습니다. 옹기하는 분을 찾아가서 배우고 싶었는데 지도 교수님께서 ‘보고 배우면 본 것 밖에 모른다’며 방법이든 형태든 스스로 찾아내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스스로 찾아낸 것은 옹기에 약토와 잿물을 섞어 바른다는 것이다. 참고서적을 뒤적이다 옹기에 관해 짧게 언급된 부분에서 알게 된 내용은 곧 그의 실험의 대상이 됐다. 작업장 뒷산 소나무 숲을 훑어 모은 약토와 가마에서 나온 재를 섞어 옷을 입힌 옹기의 결과물은 스스로 만족할 만했고 주위의 평가도 좋았다. 이로서 혼자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옹기연구가 가능한 것이 됐다. 지금도 여러 가지 흙을 섞어서 사용해 보기도 하고 소금을 투척하는 때를 바꿔 보기도 하고 작업장에서 가까운 강화도 바닷가의 갯벌을 가져다 흙과 섞어보는 등의 엉뚱한 실험도 해본다. 결과가 항상 좋을 수는 없지만 그는 쉽게 실망하거나 지치지 않는다. 푸레도기연구에 확고한 의지와 기대 앞으로 발전할 여력이 많아 그가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일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아직 캐내지 못한 신비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제작 방법이나 역사적 고증이 될 만한 문헌은 고사하고 형태나 색을 볼 수 있는 유물조차 넉넉지 않는 푸레도기이기 때문에 제가 찾아내야할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 발전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지난 한해는 두 번의 개인전과 비엔날레 초대전 등의 활동으로 바쁘기도 했지만 작업장을 원래 위치의 맞은 편으로 옮기는 일 때문에도 분주했다. 인근의 군부대에서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로 이전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이 지역이 요즘 한창 신도시 건설문제로 분쟁이 심해 완전한 작업장을 짓지 못하고 분쟁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형편이다. 현재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콘테이너에서 작업하고 있지만 푸레도기 작업을 위해 장작가마는 가는 곳마다 지어야 한다. 예술활동이나 창작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이런 최소한의 작업환경도 보장되지 않는다니 척박하다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그는 “앞으로 안정된 작업장에서 지금보다 큰 장작가마가 허락된다면 좀 더 규모 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좀더 자라면 대학에서 함께 도예를 전공한 아내와 함께 작업하고 싶습니다.”고 말한다. 서희영기자 rikki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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