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도예가 김성철
  • 편집부
  • 등록 2004-03-20 20:01:51
  • 수정 2016-04-08 22:17:06
기사수정
옛사발의 재현 아닌 이 시대의 명품을 위해 자연과 우리 정서 담은 사발 만드는 젊은 작가 김성철은 군더더기가 없다. 도자를 한다고 그럴듯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제 할 일만 하는 일꾼이다. 작업에서도 군소리가 없다. 필요한 요점만 말하고 있다. 실용적인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말을 실천하는 작가이다. - 박종훈 단국대 교수, 2002년 10월 김성철 개인전에 부쳐 김성철(38)은 사발작가이다. 그의 사발은 정직하다. 14년간의 길지 않은 작업경력이지만 눈을 돌리지 않고 작업에만 매진한 탓인지 그의 그릇에는 거짓이나 꾸밈이 없고, 바르고 곧다. 부산출생인 그는 20대 중반이었던 14년 전까지 도예와는 전혀 무관했다. 대학에서는 미술이 아닌 다른 분야를 전공했다. 단지 자연이 좋아 글쓰기와 여행을 즐기는 감성적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던 그가 1991년, 부산의 한 갤러리에서 우연히 도예가 신정희씨의 사발을 감상하고 무작정 경남 양산의 통도사 인근 신정희씨 요장을 찾아가 도예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그곳에서 6년간 스승의 말대로 “흙에서 꼬신내가 나도록” 열심히 작업만 했다. 경북 경주 산내에 5봉 장작가마 손수 지어 1회 사발공모전서 대상 수상 작가는 지난 1997년 스승의 그늘을 떠나 경북 경주시 산내면에 새로운 둥지를 틀고 5봉 장작가마를 7개월에 걸쳐 손수 지어 완성해냈다. 요장 이름은 지명이름을 따서 ‘산내요’로 했다. 그는 자신의 가마에 불을 피운지 3년째 되는 해인 2000년, 이제 자신의 개성이 묻어난 찻사발을 찾았다는 듯 ‘제1회 사발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공모전 수상에 대해 “내 사발이 더 이상 옛 사발의 단순한 재현으로서만이 아닌 이 시대의 사발로서 독특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믿음을 준 계기”였다고 술회한다. 이후 2001년에는 제4회 일백인 사발전과 사발공모전 수상자 3인초대전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사발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자신만의 사발위해 인근의 거친 점토 채취 손가락 지문 없어질 듯한 아픔도 경험 이듬해인 2002년에는 첫 번째 개인전 ‘도광양회(韜光養晦)’를 가졌다.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가진 이 전시에는 사발을 비롯해 항아리, 장군 접시 등 전통의 이미지를 지닌 현대화된 식기들을 선보였다. 특히 거친 점토의 특징이 잘 드러난 사발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거친 점토는 요장 인근에서 채취한 점력 좋은 태토에 조합토를 섞어 만든 것이다. 박종훈 단국대 교수는 그의 첫 개인전에 부쳐 “이번 전시에 사용된 흙은 모래질이 많다. 모래는 거칠다. 다루기가 쉽지 않다. 그 흙으로 물레질을 하다가 손가락 지문이 없어지고 끝내는 살갗이 벗겨지는 아픔도 경험했으리라”고 전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쓰인 거친 점토의 사용이유에 대해 “개성이 담긴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 작가는 자신이 활동하는 지역의 흙을 써야 한다. 그래야 자신만의 특색이 담긴 작품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고 주장한다. 두번째 개인전 사발 이용한 설치전으로 주목 세번째 개인전 400여점 사발 중 심사숙고한 11점만 전시 2003년에는 두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전시의 주제는 ‘사발’이었다. 10월 3일부터 9일까지 부산 롯데화랑에서 열린 두 번째 개인전은 작가의 사발작품을 원목 통나무와 고가구 그리고 바닥에 설치형식으로 구성해 주목을 받았다. 세 번째 개인전은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지난 12월 3일부터 9일까지 가졌다. ‘하늘을 보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 전시에는 사발과 함께 하늘을 담은 사진 작품을 함께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전시장에 선보인 11점의 사발은 전시를 앞둔 1년여 기간동안 만든 400여점의 사발 중 심사숙고해 고른 것으로 자연을 그대로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내면의 몸부림과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상감, 귀얄, 철, 흑, 덤벙 등 각기 다른 표현방법을 담은 사발은 검증되지 않은 태토와 유약에 대한 실험의 수없는 반복을 통해 자기만의 완성된 형태와 질감으로 완성된 것이었다. 3회 개인전에 대해 이병인 밀양대 교수는 “김성철은 전통도자의 한계와 목표에 대해 고민할 줄 하는 도예가다. 그의 사발은 형태면에서 많이 정제되었고 전체적인 균형감이 좋다. 이 시대의 사발로서 자기만의 독특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평했다. 순백의 부드러움이 찻물 배어나 승화되는 덤벙분청에 애정 3개월마다 가마문 열 때면 사발 팬들로 붐벼 작가는 자신의 작품 중 특히 덤벙분청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장식요소가 없는 밋밋함이 오히려 순백색의 부드러움과 사용하면서 찻물이 배어나오는 변화로 승화되기 때문이다. 김성철의 덤벙분청은 스승인 신정희 요에서 탄탄히 쌓아온 기초와 작가 특유의 감성적 부분이 결합돼 만들어진 것이다. 그의 분청사발은 성형된 태토와 발라진 백토분청의 밀착성을 높이기 위해 초벌3회, 재벌1회의 번조로 완성한다. 초벌온도 후 백토분을 바르기를 반복, 투명유를 발라 재벌해 완성된다. 또한 재와 조개껍질을 섞어 만든 유약을 발라 은은한 가을빛 낙엽색을 지닌‘재유사발’은 질감이 배 껍질같이 오돌토돌해 손으로 감싸들었을 때 느껴지는 거친 감촉과 질감이 독특하다. 작가의 장작가마에는 3개월에 한번씩 불이 붙는다. 가마에서 작품을 내임하는 날이면 작업장이 그의 사발이 좋아 찾아오는 손님으로 붐빈다. 작가는 “도예가는 연예인과 비슷하다. 단순히 돈을 벌게 하는 팬이 있는 반면 뒤에서 관심을 주는 팬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최근 들어 주변에 자신의 미래를 보고 도움을 주는 이들보다는 자신의 미래를 보고 관심을 가져주는 이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는 다른 작가의 작업실에 찾아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곳에서 좋은 것, 잘 팔리는 것을 보면 그것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길 것 같아서다. 작가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자연을 담은 그릇, 자기만의 독특한 모습을 드러낸 그릇만을 만들고 싶어서다. 사발작가 김성철은 사발을 만드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젊다. 그는 자신과 같이 우리사발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을 향해 “우리 도자기를 만들어 일본으로 직접 건너가 내다 파는 것은 별로 탐탐치 않다. 한국의 도예가가 만든 그릇은 한국적 감성을 담고 있다. 엄연히 우리 문화시장이 있는데 일본문화의 귀퉁이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없다. 일본인들이 애타게 우리 그릇을 원한다면 한국으로 직접 건너와 우리 전시장에서 우리 그릇을 직접 사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당당하게 전한다. 그의 젊음과 당당함은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작가의 작업실에 내내 흐르던 인터넷 라디오 음악과 함께 깊은 인상을 남긴다. 김태완 기자 anthos@hitel.net

 

기사를 사용하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www.cerazine.net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02이삭이앤씨 large
03미코하이테크 large
대호CC_240905
EMK 배너
01지난호보기
09대호알프스톤
월간도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