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영 전 2003. 5. 7 ~5. 13 가나아트스페이스 B1 전시장
생활 속의 아트웨어
글/김진아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소 연구원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 이가영은 여느 작가들과는 조금 달랐다. 전시기간 내내 직접 전시장을 지키며 관람객들의 질문에 응해주는가 하면 재료와 기법을 서슴치 않고 묻는 이들에게 자신의 비밀을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인가 믿는 구석이 것 같다.
이가영의 작품들은 자연물을 소재로 한 핸드페인팅 도자기이다. 접시에 그려진 꽃과 열매들은 힘차고 경쾌한 붓놀림과 다양한 농담들로 어우러져 마치 한 점의 회화를 보는 듯했다. 그녀는 조선시대 청화백자와 같은 유하채(釉下彩)기법을 사용한다. 기법을 물어오는 이들에게 감춤 없이 대답해 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붓의 농담과 발색에 있다. 전시장에 디스플레이 된 식탁에 음식을 차리지 않아도 화려하고 풍부하게 보이는 까닭도 이것 때문이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1230℃라는 높은 온도에서 이만한 색을 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안료는 다루기가 까다로운 재료 중 하나다. 색과 종류에 따라 발색온도가 다르며, 같은 안료라 하더라도 두께와 농도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녀의 작품에 그려진 꽃들은 이 어려운 기술들을 극복하고 피어난 것이다.
미국의 도예가 수잔 피터슨은 “도예가들이 직면하는 특별한 어려움은 처음에 결과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즉 가마 안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덕분에 그녀의 스튜디오에는 수많은 시편들이 쌓여있다. 조금이라도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상들을 찾아내기 위해 많은 색들을 혼합하고 실험하며 미묘한 뉘앙스를 찾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청년시절 일본과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사뭇 다른 문화들을 체험하였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느낀 문화적 충격은 자신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조차 쉽게 예술작품을 접하는 이탈리아인들을 보고 그녀는 예술을 생활 속에 끌어들이기 위해 그릇을 도구화하였다. 접시를 캔버스처럼 사용하는 행위를 통해 이가영의 그릇들은 단순한 식기가 아니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가영의 작품은 벽에 걸어놓고 보아도 좋을 만큼 아름답다. 오히려 음식을 담기가 부담스러울 정도이다. 그럼도 불구하고 그녀가 굳이 접시 위에 화사한 꽃들로 장식하는 이유는 일상생활 속에서 예술작품을 접할 기회를 확대시키고자 함이다.
그녀는 도예가인 동시에 디자이너이다. 그릇을 직접 제작하고 있지는 않지만 실용적이고 편리한 형태의 식기들을 선택하는 안목이나 작업의식은 디자이너에 더 가깝다. 이탈리아의 식기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한 적이 있는 작가는 수요자의 욕구를 적극적으로 작품에 반영하기 위해 관객들과의 대화를 중요시한다. 또한 관람객들에게 프로세스보다는 쓰임을 강조하며 작품을 설명하는 모습에서 아트웨어가 인테리어 소품이 아닌 직접 사용하는 식기로서 생활 속에 자리잡기를 바라는 작가의 바램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들이 아직 다수에게 어필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접시를 가득 메운 그림과 바탕색들이 양식기에는 어울릴지 모르지만 한식 위주의 우리 식습관에는 생경한 느낌을 준다. 또한 식기의 형태를 직접 디자인하지 않는데서 오는 형태의 단순함은 스스로의 한계에 빠지는 빌미가 된다. 식기의 다양한 형태와 그에 어울리는 소품의 개발은 디자인의 완성도와 고유성을 제고시킴과 동시에 관객들과의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해 갈 것이다.
생활 속으로 예술을 끌어들이기 위한 이가영의 노력은 이제 시작단계이며 스스로 모색해야할 부분들이 많이 남아있다. 제작자로서의 적극적인 자기개발은 물론 수요자들의 의중을 읽어내어 우리 일상에 가까이에 다가가는 혜안을 길러나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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