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도자의 고장 이천이 변하고 있다
글/사진 김태완 본지 기자
이천 조합원, 전통 도예인 100여명 현대 공방작가 150여명
대학출신, 외지인 기존 폐업 업종 변경 요장 인수 지역 명성 활용
경기도 이천은 명실공히 한국 전통도자기의 주요생산지이다. 우리 도자문화의 역사와 전통미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근대도자 50년사를 이뤄온 이곳이 최근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는 최근 4~5년 전부터 이천 전승(전통)도자의 틈바구니 속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현대도자공방들이 주도한다.
변화의 주도자들은 대부분 대학 출신 도예가들로 서울과 타 지역에서 온 외지인 들이다. 이들은 본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대도시에 비해 싼 집값(땅값)에 매력을 느끼며 도자명지라는 이천으로 들어온다. 들어와서는 폐업이나 업종 변경을 한 요장들을 인수해 둥지를 튼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2~3개에 불과했던 대학출신 현대도자공방의 수가 현재는 크게 늘어나 30곳을 넘어섰다. 지난해 이천도자기협동조합에 가입한 신입회원 35명중 전승도자 요장 운영자는 5명에 불과한 반면 대학출신 공방 운영자는 30명이나 되는 것이 증가폭을 증명한다.
이천조합에 따르면 “현재 실조합원(회비를 내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들) 250명 중 전통, 전승 도예인은 100여명이고 현대공방작가는 150여명”이라고 한다. 이 수치는 외지인들의 현대도자공방이 늘어난 이유도 있지만 토박이 요장들이 주 종목을 전통도자에서 현대생활도자로 변경하는 현상도 한몫하고 있다.
이천은 이제 ‘전승(전통)도자와 현대도자가 공존하는 도자기 지역’이 된 것이다.
전통도자 난립에 따른 일본인의 구매력 급격 감퇴
젊은이는 장식보다 현대감성의 실용적 공방품에 더 매력
이 같이 전승도자와 현대도자의 공존현상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줄어들고 있는 일본인의 구매력에 따른 전승도자의 인기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과거, 이천이 전승도자의 요지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인들의 막강한 구매력이 큰 몫을 담당했다. 국내에서는 우리 도자기에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던 60년대와 70년대에 이천 도자기의 전통과 우수성을 인정해준 것은 다름 아닌 일본인들이었고, 또 일본이 거의 유일한 시장이 되었던 것이다. 전통도자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생산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300여개에 이르는 요장들이 생겨났지만 명장에 속하는 몇몇 도예인들을 제외하고는 싸구려 복제 전통도자 상품을 만들어 내기에 급급했다. 이에 식상한 일본인들의 구매력도 차츰 줄어들었다. 따라서 폐업에 이르는 요장들이 늘어났고 손쉽게 공간 활용할 수 있는 외지인들의 공방이 들어서 그 수가 늘어나게 된 것이다 .
두 번째 이유는 도자기축제의 활성화를 통해 저변확대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1990년대 들어 전승도자 수요 감소를 해소하기위해 자구책에 나선 지역도예인들은 95년 이천도자기조합 설립과 함께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미 1987년부터 치러온 이천도자기축제를 적극 활용해 지역도자기산업 발전시키자는 것이었다. 해를 거듭할 수록 축제를 찾는 관람객은 많아졌다. 관람객 증가는 구매자 증가로 이어졌고, 젊은 연령층으로 옮겨 갔다. 동시에 생활문화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관상용 도자기보다는 실제 사용을 원하는 구매층으로 확대됐다. 이미 식상한 청자나 분청 도자기보다는 세련되고 사용하기 편한 현대식 생활도자기를 더욱 많이 찾기 시작했다. 축제에 참가한 몇몇 현대도자공방 매장이 재미를 보자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이 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많은 기존의 요장들이 주 종목을 현대식 생활도자기로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지난 2001세계도자기엑스포 개최를 통해 세계의 현대도자가 함께 공존하는 지역으로 재탄생되기에 이르렀다.
원로는 전통 명장으로 남고 젊은이는 변화 주체
신구 조화된 신도자문화 형성 기대
이천 지역의 몇몇 도예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전통도자기의 명맥이 끊어져서는 안된다”는 걱정에서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윤태운 이천도자기협동조합 이사장은 “전통이 소수로 전락해가고 현대가 다수로 변해가는 것은 새로운 도예문화의 과도기적 현상이다. 지키는 문화와 변화하는 문화가 공존하고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신문화가 탄생하는 것이다. 지키는 이들의 역할은 아무도 따를 수 없는 그 분야의 최고가 돼 ‘명장’으로 남는 것이고 변화하는 이들의 역할은 새로운 안목으로 과거의 것을 연구, 발전시켜 ‘신도자문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매장도 현대생활도자기 중심으로 변화
지난해 이천 사기막골에 현대생활도자기 만을 전문으로 팔고 있는 매장 ‘휴’, ‘산아래’ 두 곳이 생겨 눈길을 끌고 있다. 사기막골은 이천지역 전승, 전통도자기를 한곳에서 살펴보고 구입 할 수 있는 판매장 30여 곳이 모여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에 도심에서나 볼 수 있는 인테리어로 꾸민 현대식 전시판매장이 들어선 것은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대학 도예과에서 캠퍼스 커플로 만나 4년 전에 이천에 들어와 공방차리고 전시매장 ‘산아래’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도예가 부부 강화수, 류난호씨는 “공방에서 손으로 도자소품을 만들고 있는데 인근 요장에서 한 분이 찾아와 “그렇게 주물럭댄걸 누가 사겠느냐?”고 핀잔주다가 그해 도자기 축제에서 판매되는 것보고 놀라 의아해 한 적이 있었죠. 한번은 우체부아저씨가 저희 공방에 처음 와서 여기는 왜 도자기 안만드냐? 퍼렇게 생긴도자긴(청자) 왜 없느냐?고 물은 일도 있었다”고 공방운영 초기의 일화를 귀뜸한다.
이제 이천에는 신구의 조화가 잘 이뤄져 발전해야하는 목표가 세워져야한다. 이에 윤태운 조합 이사장은 “조합에서는 지역별로 분과를 나눠 가까운 지역의 젊은 도예인과 원로도예인이 함께 모이는 자리를 많이 마련해 융화가 잘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세계화를 위해선 전통과 현대의 조화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이렇듯 전통예술도자의 중심지 아니, 신한국도자문화의 중심지 경기도 이천에 변화의 바람은 계속 불고 있다.
기사를 사용하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www.cerazi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