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그 질서의 비밀 캐는 우제류 동물 빚는 작가
도조작품은 아프리카 원시미술에서 출발한 듯
뿔이 갖고 있는 조형적 요소가 흙의 속성과 성질을 자연스럽고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고
사슴은 풀만 먹는다. 서로 싸워도 피를 흘리지 않는다. 착하고 순한 짐승이다. 그들에게 「뿔」이 필요한 이유. 질서를 위한 위엄? 생존을 위한 무기? 그 속에 숨어있는 가늠할 수 없는 생명력. 맹수의 날카로운 이빨보다도 더 강한 힘. 나의 작업은 그 비밀을 캐는 것.
- 작가 노트 중에서 -
도예가 김영은(33세)은 흙으로 우제류 동물들을 빚어내는 작가다. 그의 도조 작품은 아프리카 원시미술에서 출발한 듯하다. 동물을 소재로 한 대범하고 추상적인 것, 기하학적 단순화 그러면서도 애니미즘의 섬세한 기운이 풍긴다.
작가가 양, 사슴과 같이 뿔이 있는 동물을 소재로 작품의 주제를 선택해온 이유는 “살아 숨쉬는 생동감 있는 동물 중에서도 뿔이라는 요소가 갖고 있는 재미있는 조형적 요소는 흙의 속성과 성질들을 가장 자연스럽고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작가가 여성으로서 접근한 듯, 섬세한 표현과 조형과 실용의 접목에 대한 특징도 드러난다. 전시장에 설치화 된 우제류 동물들은 해체되면 각각의 실용기로 남는다. 조형적이면서 공예적이다.
학창시절부터
뿔의 동물과 양털의 텍스추어에 유난히 집착
이대 대학원 석사논문 주제도
우제류 도자조형연구
김영은은 1991년 이화여대 도예과에 입학했다. 점수에 맞춰 멋모르고 입학한 도예과였지만 흙을 만져보고는 흙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털털하고 고정된 틀에 얽매이는 걸 유난히 싫어하는 본인의 성격과도 잘 맞았고, 번조 후에 나올 예측 못할 불의 성질도 매우 흥미로웠다. 무엇보다도 흙만의 독특한 질감은 학창시절 내내 본인의 작품에 표현될 정도로 그에게 특별했다. 그는 다양한 뿔이 있는 동물과 양털의 텍스추어에 유난히 집착했다. 그 집착은 양의 하얗고 순한 이미지를 뿔과 양털로 인한 내면의 강한 힘으로 느끼게 했다.
대학 졸업 후 동대학원에 입학했다. 1996년 발표한 석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우제류의 형태특성에 의한 도자조형 연구’였다. 아프리카 원시미술에서 출발한 형태의 단순화와 부분 강조를 통해 조형화 한 작품을 선보였다. 흙의 자연스러운 질감과 동물의 동세를 표현하기 위해 물레성형을 위주로 했다. 또한 판성형과 석고틀을 이용한 압축성형도 병행했다. 1m이상 크기의 조형물은 동물의 뿔과 다리 표현을 위한 구조적 특성 때문에 번조시 휘어지지 않고 육중한 무게를 견뎌 낼 수 있게끔 조합토로 제작했다. 조합토의 특성상 유약의 흡수량이 많은 단점은 먼저 백토슬립을 표면에 바른 후 안료와 금속산화물, 유약 등으로 시유해 보완했다.
그는 석사학위 청구전을 통해 “뿔이 있는 동물의 연구를 통해 조형적으로 훌륭한 질감과 공간이 창출될 수 있다는 것과 비례감, 리듬감, 공간감, 질감 등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연구는 이후 내 작업에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했다”고 한다.<사진1>
2회 전시 98. 10
우제류 동물 세팅개념 작품 관람객 큰 관심
도조 스케일 연출 공간으로 확장,
흙의 성질 극대화 시도 높이 평가
2번째 전시는 98년 10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갤러리S에서 기획초대전으로 열렸다. 전시주제는 ‘The Story of Cain & Abel’이었다. 성경 속 인물인 카인과 아벨 형제의 이야기를 주제로 양을 신께 바치는 제물의 도구로 삼은 설치형식의 전시였다. 아담과 이브의 자식인 카인과 아벨은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 정성을 다해 제물을 드렸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양의 첫 새끼와 그 피)은 열납했으나 카인이 바친 것(농산물)은 돌보지 않았다는 창세기 3장~5장의 기록을 연출한 작품이다.<사진2>
15평의 공간에 과거에 비해 크기가 커진 우제류동물(양)을 중심으로 연출한 세팅개념 작품은 많은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작품의 앞쪽에는 황토 흙판을 발라 갈라진 두개의 기둥 제단을 설치했다. 아크릴과 나무, 접착제 등 타 재료를 활용한 부분이다. 뒤쪽의 공간은 두 곳으로 나눠져 번제 구역을 표시하는 양의 머리가 얹혀진 기둥과 촛불이 켜져 있다. 그리고 각각 과일과 양이 올려진 2개의 제단이 있다. 제단을 바치고 있는 아크릴 박스안의 흙과 톱밥(나무)은 다소 상징적이다. 기독교인인 작가 자신이 양과 같은 우제류동물을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성경에 나오는 번제의식과 관련으로 풀어져나온 작품이었다.
박영택 미술평론가는 이 설치작품에 관해 “다소 설명적인 아쉬움이 깃든 작품이지만 도조의 스케일이 이런 식의 연출 공간으로 확장되는 최근의 추이를 접하고 있다. 젊은 도예가의 솔직한 표현과 자유로움, 이야기를 전개하고 자하는 의욕, 장르 개념에 앞선 표현의지, 기법의 다채로움을 동원해 흙의 성질을 극대화하려는 시도 등이 눈에 띈다.”고 평가했다.
3회 전시 2002. 11 ‘양 소품전’
우제류 동물에 대한 애정
대중에게 친근히 접근시켜
3회전시는 지난해 11월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에서 ‘양 소품전’이란 주제로 열렸다. 작가는 조형적이면서 실용적인 작품 표현으로 소품을 선택했다. 작가가 가진 우제류 조형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일반 대중에게 쉽고 친밀하게 접근시키고자 의도된 전시였다. 지난 전시의 큰 규모에 비해 작품의 크기는 작아졌지만 좀더 섬세한 장식성이 시도된 작품이 선보였다. 각기 다른 움직임과 털모양을 지닌 작은 도제양들은 형형색색의 안료로 옷을 입었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예술작품의 개념으로 보다는 장식용 소품으로 작품들을 만지며 흥미로워 했다.<사진3, 4> 3회 전시이후 작가는 “우제류 동물을 주제로한 앞으로의 작업은 스케일이 큰 도조 보다는 섬세하고 디테일한 공예적 느낌이 강한 소품위주의 작업이 될 것이다. 실용적 성격이 가미된 조형으로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는 작업을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차세대 유망작가전에 선정
한·일 유명 공모전 다수 입상
남편 손창귀씨도
‘새’를 주제로 활발히 활동하는 도예가
도예가 김영은은 대학원 졸업 직후인 지난 98년에 통인화랑 주최 ‘차세대 유망작가전’에 선정됐으며 같은 해 독일에서 열린 ‘한국의 예술 세계전’, 2000년 유럽 3개국에서 열린 한국현대도예전에 참여하는 등 일찍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97년에는 서울현대도예공모전, 동아공예대전, 98년 일본 이타미국제공예공모전, 99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대한민국공예대전, 2001년 회룡미술대전 등 한국과 일본의 유명 공모전에 다수 참가해 입상한 경력도 갖고 있다. 또한 최근까지 ‘도림전’, ‘젊은어깨들전’ 등 단체전을 통해 활발한 작품 활동도 보이고 있다.
김영은씨는 현재 도예가 남편 손창귀(38)씨와 함께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 마련한 작업공간 ‘예빈크라프트’에서 작업하고 있다. 손창귀씨는 홍익대 도예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새’를 주제로한 작품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기자가 작업실을 찾았을 때 부부도예가 사이에서 갓 태어나 이제 50일도 채 안된 아이(손 린)가 그들의 품에 번갈아 안겨지고 있었다. “갓 태어난 아이 때문에 작업에 어려움이 많겠다.”는 기자의 말에 김영은씨는 “작가로서의 고민에 앞서 한 인간으로 살아가며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하고 살아갈 수 없다는 현실이 가끔씩 괴롭죠. 하지만 흙을 만진다는 매우 매력적인 일(작업)을 부부가 함께 할 수 있어 서로 이해하고 많은 도움을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고 답한다.
김태완 기자 anthos@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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