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0년대 말, 훌로라 다니카 서비스⑴
글/김정아 스웨덴리포터 사진/로얄 코펜하겐 제공
1. 1700년대 말 유럽의 계몽주의 전제 왕정과 고전주의의 새벽
1700년대 말의 유럽은 여러 모순된 요소와 성질들을 나타낸 시기였다. 여전히 전제 왕정(Absolute monarch)의 힘이 우세하게 유럽 전역에서 통치되고 있었으나, 같은 시기에 많은 이러한 전제왕국들 속에서 민주주의 신 세력의 힘이 충만해 있었다. 이때의 민주주의 세력은 고전적인 양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여러 왕들은 민주주의로 발돋움하는 첫 단계로 신고전주의를 도입했다. 정치적인 이러한 변화와 함께 예술과 문화 분야에서도 ‘루이 시즈(Louis Seize)’ 양식이 나타났다. 이 양식은 프랑스의 루이 16세 통치기간동안의 미술양식으로 17세기 후반 거의 동일한 시기에 영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와 그 성격이 매우 유사하며 가구와 건축, 각종 장식미술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의 계몽주의적인 왕들은 자국의 산업화와 무역, 그리고 국민들의 생활과 복지를 향상시킬 수 있는 새로운 원천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와 자료수집에 열중했다. 다수의 왕자들은 특별히 식물학에 관심을 보였다. 1735년에 스웨덴의 린네(Carl von Linne)가 식물의 종을 체계화하고 특히 유성 생식 체계를 명명한 식물분류학을 출판했을 때 식물학계 뿐만 아니라 전 유럽은 그야말로 혁명과 같은 열기에 사로잡혔다. 식물학과 관련된 모든 것이 유행을 타고, 왕자들과 부유층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집에 식물원을 만들었다. 이들은 희귀한 식물들을 서로 교환하고, 화가들을 고용하여 각자 자신들만의 식물 표본 집을 만들었다. 식물 표본 집의 그림들은 동판에 수채화로 그려졌다. 화가들은 단지 식물 표본 집의 그림을 그리는 일 이외에도 종종 왕이나 왕의 가족들에게 꽃이나 식물을 그리는 그림지도를 하기도 했다. 이런 그림들은 자유로운 예술적 표현을 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없이, 식물이나 꽃을 가능한 정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그림의 대상이 되는 식물이나 꽃들은 단지 식물학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결과, 불과 짧은 기간동안 유럽 전역에는 식물과 조류, 자연과 정원, 정원용 화초류들에 대한 방대한 양의 책들이 발행되었다. 이 책들은 대부분 동판에 송으로 일일이 채색하고 묘사한 것들이었으며, 루소 (Rousseau)가 쓴 여성을 위한 정원 가꾸기에 대한 책도 이 시기인 1784년에 덴마크어로 첫 발행되었다.
2. 훌로라 다니카 (Flora Danica)
1700년대 중반의 덴마크는 후레데릭 5세 (Frederik V)에 의해 계몽주의 전제 왕정통치를 받고 있었다. 후레데릭 5세는 자국의 과학자들에게 의뢰하여 덴마크내의 여러 식물들을 감정하고 자연적인 환경 속에서 자라는 유용한 식물들의 생태를 연구하도록 하였다. 이때의 덴마크 왕국은 현재의 덴마크와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영국의 북대서양 북부의 여러 군도들, 그린란드, 독일의 여러 공국들을 포함한다. 이 연구를 촉진한 결과는 주요한 식물학적 업적인 훌로라 다니카로 성과 지어졌다. 훌로라 다니카 시리즈의 첫 책은 60개의 동판에 인쇄된 식물 표본집으로 1761년에 출판되었으며, 이후 3,240개의 동판에 인쇄된 식물 표본 집들이 54권의 시리즈로 출판되었다. 이 책들은 탁월한 가치를 가진 질뿐만 아니라 이 책에 실린 과학적인 내용에 의해 유럽 전 국가들에 강렬한 흥미를 불어넣었다. 훌로라 다니카는 이 연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연구를 의뢰한 덴마크 국왕과 식물학자들의 유일 무이한 업적으로, 이를 통해 덴마크는 유럽 다른 나라들로부터 식물학 연구에 대한 존경과 명성을 얻게 되었다.
3. 훌로라 다니카와 루이 시즈 양식
루이 시즈는 로코코의 뒤를 이은 첫 고전주의 양식이었다. 이는 가구와 장식, 의상이 집중적으로 유행한 나폴레옹 치하의 제 1차 프랑스 제국 (1804-1815)풍의 엠파이어 (Empire)양식이 나타날 때까지의 과도기적인 예술 양식이었다. 루이 시즈는 특히 장식 미술에 일시적인 유행을 보여준 양식으로, 그 이후에 등장한 엠파이어 양식과 매우 대조적이었다. 엠파이어 양식은 정치적인 요소들, 이데올로기적인 사상과 관념적인 형태의 감정들이 주입된 양식으로 중류층의 지식 계급사이에서 유행한 반면, 루이 시즈는 왕족들과 귀족중심으로 유행되었다. 루이 시즈의 대표적인 열광자들은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였다. 1738년에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이 발굴되고 1748년에는 폼페이(Pompeii)가 발굴되었다. 헤르쿨라네움은 이탈리아 서남부의 나폴리(Naples)만 근처에 있던 고대 도시로 로마 제국의 대표적인 휴양지였으며, AD 79년 베수비우스 (Vesuvius)산의 화산폭발로 부유한 항구 도시였던 폼페이와 함께 매몰되었다. 폼페이는 BC 80년경과 1400년경에 발견되었으나 1748년에 광범위한 발굴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역사적인 두 유적의 발굴은 유럽인들 모두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이태리는 예술가들과 상류층 젊은이들의 그랜드 투어 (Grand tour)의 최우선적인 여행지가 되었다. 그랜드 투어란, 영국의 귀족사회에서 유래된 것으로 상류사회의 젊은이들을 특수 교육하는 교과과정의 마지막으로 유럽대륙전체를 여행하며 각 국의 역사와 문화 등을 답사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태리의 유적발굴은 유럽인들 사이에 고전적인 고대의 골동품들과 풍습, 문화를 유행시키며 복합적인 양식을 불러왔다. 로코코의 곡선 적인 형태들과 비대칭적인 선들은, 수직의 직선적인 형태들과 대칭적인 선들로 대치되었다. 로코코의 장식이 제거되어지고, 이 대신 고대 로마 풍의 장식들, 꽃과 잎줄기 모양의 장식들, 부서질 듯 가냘픈 장식적인 주제들, 꽃 한 송이가 아슬아슬하게 꽂힐 듯한 좁은 꽃병들, 잎들의 고리로 둘러 씌어진 리본들, 야생의 꽃과 잎줄기들, 옛 로마 집정관의 도끼를 묶은 다발로 엮인 막대의 모양을 묘사한 가장자리 테두리 장식들이 자리를 차지하였다. 이 장식들에 사용된 색채들은 밝은 회색과 흰색이었으며 선은 금색으로 그려졌다. 자연에 대한 강박관념은 지속적으로 고집되었다. 이와 함께 귀족사회에서는 농촌의 삶을 낭만적인 시야로 받아들인 유행도 생겨났다. 대표적인 예들로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명령에 의해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에 세워졌던 농촌의 생활과 농부의 집을 모조로 본뜬 축소형 마을과, 덴마크의 후레데릭 5세가 프랑스의 루이 시즈 예술가를 초빙하여 그의 여름궁전에 세운 농촌식 별관과 누각들을 들 수 있다.
4. 훌로라 다니카 디너용 자기 서비스
신고전주의 시대의 자기제품 디자인은 직선적이며, 화관이나 월계수 장식들이 인기를 모았다. 로얄 코펜하겐에서 루이 시즈 풍의 진주 빛이 나는 펄 모델 (Pearl model)이 생산된 것은 1783년이었다. 펄 모델은 처음으로 로얄 코펜하겐이 다른 유럽의 자기회사들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제품으로, 동시대의 양식과 훌륭하게 조화된 제품이었다. 이 디자인은 진주조개의 안쪽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색채와 자연스러운 줄무늬, 한 줄로 꿰어진 진주목걸이 같은 느낌으로부터 인상 받은 것이었다. 컵이나 사발들은 전형적인 루이 시즈 풍의 원통형이며, 여기에 손잡이와 뚜껑의 꼭지들은 로코코 풍의 가지가 쭉 펴진 꽃이 핀 포도나무나 덩굴식물들의 형태를 장식화 하였다. 1790년에 로얄 코펜하겐은 펄 모델의 또 다른 독특한 디자인을 개발하였는데, 이를 훌로라 다니카라고 이름지었다. 훌로라 다니카는 자연 숭배의 감상적인 일시적 유행에 영향 받았다기보다는, 계몽주의의 자연에 대한 과학적 관점을 포용한 것으로 신선하고 섬세한 야생화들을 주된 장식으로 썼다. 그러나, 장식의 대상이 되는 식물들은 부러질 듯 가냘픈 장미나, 물망초, 제비꽃들뿐만이 아니라, 덴마크 왕국 내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육지와 바다의 식물들, 예를 들어 버섯이나 바닷말, 해초류와 같은 다양한 모티브들까지도 사용하였다. 또한, 장식의 대상이 되는 식물들은 자연에서 막 꺾어온 신선한 꽃들을 표현하는 대신 동판화로 식물 표본집에 묘사된 식물들을 선택하였다. 자기 장식가들은 식물 표본집과 가능한 유사하게 표현하기 위해 동판화 같은 느낌이 나는 어두운 회색조의 검은 진주색과 녹색조의 검은색들을 즐겨 사용하였다. 이러한 방법은 동시대의 다른 유럽 자기회사들이 대부분 신선한 식물들을 묘사한 것과는 매우 다르며, 로얄 코펜하겐은 1700년대 말 이후로 대형 만찬용 서비스와 디너 서비스 전 제품을 식물 표본집에 묘사된 식물들을 장식하여 생산하는 유일한 자기회사이다.
(다음 호에 계속)
필자약력
이화여대 및 동 대학원 도예과 졸업
스웨덴 국립 욧데보리대학교 대학원 석사(MFA)
핀란드 헬싱키산업미술대학교 대학원 박사(Doctor of Art)
개인전 2회(스웨덴)
국제학술대회 논문발표 3회
핀란드 UIAH 도자연구소 전임연구원 및
도예과 전임강사 역임
현재, 스웨덴 욧데보리대학교 전임강사(공예학부) 및
전임연구원(디자인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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