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꿈을 가지고 발전 가능한 새로운 환경을 찾아라!
“우리민족은 저력을 가진 우수한 민족입니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힘을 모아 노력하면 세계 최고 국가로 우뚝설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근 60여년 가까이 세라믹 분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김기형 박사는 우수한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 넘치는 한마디의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고려청자 등의 우수한 문화유산을 만들어 낸 우리 조상들처럼 남들 보다 앞서서 발전해 나간다면 언젠간 좋은 결과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김기형 박사는 1949년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의 Virginia 주립공과대학원 요업공학과에 입학했다. 김 박사가 세라믹 분야에서 일하고자 하는 의지를 굳히게 된 것은 현재 한국세라믹총협회 명예회장인 남기동 선생과의 좋은 인연 덕분이라고 한다. “당시 대학을 다닐 때 한국요업협회에서 잠시동안 일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협회의 이사를 맡고 계시던 남기동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남 선생님은 저에게 공부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 주셨죠. 그 후에 저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됐죠.” 이어 김 박사는 힘들고 어려웠지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발전할 수 있었던 유학시절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당시 미국에서 보낸 유학생활 하나하나가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의지로 가득 차게 만들었죠. 그러면서 어느새 그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얻고 있더라구요. 세라믹스와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 끊임없는 고민과 토론을 나눴던 훌륭한 스승, 동료들과 함께했던 그 시간이 내가 새롭게 변신하는 계기가 된 것이죠.” 김 박사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좋은 환경이 훌륭한 사람을 만드는 것 같다”며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거듭 언급했다.
기회를 잡는 능력은 끊임없는 노력과 진지한 태도에서 나오는 것
김 박사는 이후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1966년에 경제과학심의회의 상임위원직을 거쳐 1967년에는 초대 과학기술처장관직을 맡게 된다. 그 당시 국내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진행 중이었고,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김 박사는 우리나라가 선진 과학기술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경제정책이나 국정운영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정책을 피력, 적극 실행했다고 한다.
김 박사는 당시 정권을 담당했던 박정희 대통령과의 만남을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미국의 전자부품 회사의 과학연구소에서 근무할 당시 박 대통령과 처음 만났는데, 그때 전자부품에 대한 나의 철학을 박 대통령께 잠깐 언급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박 대통령이 8년이 지난 후에 그 말을 꺼내 깜짝 놀란 적이 있었어요. 그만큼 나의 말이 인상적이었다는 뜻 아닐까요. 인생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런 환경이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는 것은 바로 자신의 끊임없는 노력이나 진지한 태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김 박사는 68년부터 71년까지 4년에 걸쳐 세계 각국의 과학기술 현황 자료, ‘세계각국보고서’를 작성하던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미국 과학기술원의 개발도상국가 과학발전을 위한 조언, 영국 캠브리지대학, 옥스퍼드대학 등 각 유명대학의 최신 과학기술 연구에 관한 자료,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각국의 과학 기술현황을 직접 보고 느꼈던 경험들이 한국의 선진 과학기술 정책을 구축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죠. 그때 경험한 모든 일들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1000억불 사업을 10개만 갖자!”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또 다른 발전의 기회로 만들었던 김 박사의 노력은 이후 계속된다. 김 박사는 한국요업회장, 연세대학교 교수 겸 인류사회재건연구원장, Fine Ceramic 진흥협회 진흥위원장,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 이사장 등 각종 중책을 맡았다. 게다가 김 박사는 1990년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사장을 맡아 본격적으로 KAIST를 운영, 한국의 과학 인력양성을 위해 기여했다. 이처럼 세라믹 분야의 발전 뿐 아니라 한국의 과학발전을 위해 힘써온 김 박사는 과학적 분석과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정책을 시행하며 선진 과학기술의 틀을 형성해 나갔다. 김 박사는 “선진 과학기술을 보유하는 것만이 살길이다”라며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과학기술을 산업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의 말을 이었다. “‘1000억불 사업을 10개만 갖자!’라는 마음으로 임한다면 거뜬하게 국민소득 4만불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 이는 세라믹을 이용한 조명산업, 바이오 테크산업, 반도체산업, 전자산업, 나노테크산업 분야의 개발, 발전을 통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선진 과학기술의 도입자’의 꺼지지 않는 발전 의지
현재에도 김 박사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고문, 민주평화통일자문의회 상임위원, 한일친선협회 과학분과위원장, 요업기술원 운영위원장, 한국도자문화협회 이사장 등의 활동으로 사회 전 분야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특히 김 박사는 임진왜란 시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도공 이참평(李參平)을 기리기 위해 매년 일본 구주 아리타에서 열리는 제(祭)를 기획하고, 한국측 제주를 20년 동안이나 계속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이참평의 일생을 담은 영화 제작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김 박사는 “일본과의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우수한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우리나라 도자문화가 나아가야 할 발전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 이 행사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아리타 도자기 축제는 올해 101회째 열리는 일본 최대규모 도자기 축제로 매년 1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방문하고 축제기간에는 아리타 중심가를 따라 약 650개의 점포가 들어선다고 한다.
이외에도 김 박사는 최근 일본의 저명한 재료융합지(Material Intergration Von.17 No.9 2004)에 세계 2차 대전 이후 일본 세라믹스 과학 발달에 우호와 친선에 진력한 세계 10대 석학에도 선정됐다.
세라믹 분야에서 시작된 작지만 소중한 김 박사의 노력은 전체 과학 분야로, 또 사회 전 분야로 발전의 발전을 거듭해 왔다. 우리나라 초대 과학기술처장관을 지내면서 사회 전 분야의 과학화를 이루고자 노력한 김 박사를 우리는 감히 ‘선진과학기술 도입의 선구자’라는 칭호를 붙여본다.
“이상과 꿈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늙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김 박사의 웃음 가득한 얼굴이 왠지 더 밝고 건강해 보인다. 이상과 꿈이 있는 한 새로운 환경 속에서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다고 믿은 김 박사였기에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 박사는 맥아더 장군이 남긴 유명한 구절을 인용하며 인터뷰을 마쳤다. “과학기술은 영원한 것이다. 과학을 연구하는 자는 죽지 않는다. 다만 老과학자는 사라질 뿐이다.”
윤나리 기자
김기형 박사 주요 약력
1961. 9 미국 N.Y Airco-Speer회사 전자요업연구원
1966.10 경제과학심의회의 상임위원
1967. 4 초대 과학기술처 장관 겸 원자력위원장
1968.12~1971.2 Colombo 국제 자문회의 대한민국대표
(제18, 19, 20, 21차)
1969.10 외자도입 심의위원
1971. 6 경제과학심의회의 상임위원
1973. 3 제9대 국회의원
1974.10 국제의원연맹 동경의회 한국대표
1977~1979 한국요업학회장
1978. 4 한국-호주 의원연맹위원장
1979. 4 연희대학교 교수 겸 인류사회재건연구원장
1982. 3 국제대학(서경대학교)학장
1985. 4 사단법인 과우회 회장
1985 Fine Ceramics(정밀요업)진흥협회 진흥위원장
1985~1987 재단법인 동력자원연구소 이사
1987~1990 재단법인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 이사장
1990 일본 神奈川과학기술 Academy(KAST) 국제고문
1990~1996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사장
1990~현재 사단법인 한국도자문화협회 이사장
1993~현재 한일친선협회 과학분과위원장
1994~1995 국제Rotary 제3650지구 총재
1995~현재 민주평화통일자문의회 위원(상임위원)
1995~1996 한국과학기술 한림원부원장
(현재 종신원로회원)
1997~현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이사장·고문
2001~현재 요업(세라믹)기술원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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