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SKY BLUE’ 한영실 도조전 2005.5.25 - 2005.5.31 학고재 아트센터
  • 편집부
  • 등록 2005-07-24 02:16:18
기사수정
저 푸른 날개 글 이주헌 _ 미술평론가 삶에 지칠 때 우리는 이카루스의 탈주를 꿈꾼다. 내 발목을 꽉 잡고 있는 현실을 벗어나 저 지평선 너머의 세계로 날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때 우리는 하늘을 바라본다. 그렇다. 하늘은 영원한 탈주와 해방의 통로이다. 우리가 하늘의 푸른색을 그리워한다면 그것은 ‘불온하게도’ 우리가 탈주와 해방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한영실의 도조가 푸른색을 그리워할 뿐 아니라 날개까지 달고 있는 것은, 그 불온함이 막연한 동경이 아니라 강렬한 열망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흙에서 나온 것은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그 흙의 중력을 가장 인상적으로 거스르는 것이 날개다. 날개 역시 흙에서 나온 것이다. 날개에서 떨어진 깃털은 끝내 땅으로 떨어지고 날개도 언젠가는 땅에 영원한 입맞춤을 한다. 하지만 그때까지 날개는 끝없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스스로가 땅의 자식임을 부인하려는 듯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땅에서 났음에도 땅의 세계를 거부하는 날개의 투쟁은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 이상을 부채질한다. 저 흙의 자식도 저렇듯 끝없이 날아오르는데, 나의 이상이여, 내 영혼의 날개여, 너는 도대체 무엇을 꿈꾸는가? 한영실의 도조는 그 이상의 날개가 육체의 거푸집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이다. 혹은 이상의 날개가 육체를 온전히 품어 안으려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이다. 이상은 알껍질로부터 벗어나듯 육체의 한계로부터 벗어나거나, 육체를 불사조의 날개로 뒤덮거나, 육체 속에서 신화가 자라게 하거나, 하늘의 나무가 자라게 하거나, 스스로 깨달음의 꽃이 되어 우리 품에 안긴다. 한영실의 작품을 보노라면 정녕 육체의 주인은 단순한 육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육체는 흙을 그리워하고 끝내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 육체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이상이요, 이상과 열정, 의지는 흙의 날개이다. 이상을 지닌 예술가의 손끝에서 흙이 아름다운 조형물로 살아 오르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의 육체는 열정과 의지를 끝없이 공급하는 우리의 이상에 의해 새로운 삶의 의욕과 에너지를 얻는다. 저 먼 동경의 세계를 향해 비상한다. 한영실의 예술이 지닌 이런 시각과 사유를 감안한다면 한영실의 작품은 상당히 중의적인 예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흙을 빚어 흙에 관해, 육체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흙으로 이상에 관해, 영혼에 관해 이야기한다. 흙으로 빚은 그의 이야기는 예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전적인 독백이기도 하면서 우리 모두에 관한 설화이기도 하다. 누가 흙의 숙명에서 벗어날 수 있으랴. 흙을 아는 이는 모든 것을 아는 이다. 이때 흙을 안다는 것은 흙이 저 하늘의 날개가 될 수 있다는 사실까지 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흙을 아는 이는 그 날개의 이야기까지 세세히 귀담아 듣는 이다. 한영실의 작품 앞에서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의 가슴 속에서 아름다운 한 쌍의 날개가 펼쳐질 것이다.

 

기사를 사용하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www.cerazine.net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monthly_cera
세로형 미코
03미코하이테크 large
02이삭이앤씨 large
오리엔트
미노
삼원종합기계
진산아이티
케이텍
해륭
대호CC_240905
01지난호보기
월간도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