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전신연 _ 도예가
필자는 지난 6월 2일 뉴욕의 맨하탄 파크 애버뉴 67번가에 위치한 세븐스 레지먼트 아모리Seventh Regiment Armory에서 개최된 제8회 뉴욕 SOFAThe Eight Annual International Exposition of Sculpture Objects & Functional Art에 다녀왔다. 한국의 화랑예술제와 비슷한 성격을 지닌 이 행사는 올해는 __EXPRESSION__ of Culture>이라는 주제 아래 이 분야에 국제적으로 알려진 50여개가 넘는 갤러리들과 유명 아트 딜러를 중심으로 개최되었는데, 전시장에 마련된 부스에는 이들이 선정한 당대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행사는 몇 개의 강연과 함께 진행되었다. 필자를 포함한 기자, 큐레이터, 콜렉터, 작가, 뮤지엄과 미술관계자들 그리고 조각과 도예 등의 생활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모여든 일반 관객들로 연일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사진 1]
행사장인 세븐스 아모리 빌딩 1층에 위치한 티파니 룸에서는 첫 날인 2일 목요일부터 4일 토요일까지 매일 4~5개의 강연이 진행됐다. 필자가 방문한 목요일 정오에는 한 시간 동안 뉴욕의 가장 중심가에 위치한 아트 앤 디자인 박물관Museum of Art & Design의 수석 큐레이터인 데이빗 레베르 멕페든David Revere MaFadden의 《When is A Collection more than a Collection? (언제 콜렉션이 단순한 콜렉션을 넘어서는가?)》이라는 강연이 있었는데, 그는 세라믹, 유리, 금속, 나무 작품이 주를 이루는 제리와 시모나 사젠Jerry & Simona Chazen의 콜렉션을 중심으로 작품들을 보여주면서 강연을 진행했다. 발표자는 각각의 작품에 대한 전문가적인 의견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개개의 예술품이 갖는 고유의 의미가 콜렉터에 의해 수집되고 다른 작품들과 함께 소장 전시됨으로써 또 다른 환경에서 발산하는 전체로서의 새로운 생명력, 이를 통해서 콜렉터가 추구하는 예술작품 수집에의 의미 등을 역설했다. 또한 어떤 콜렉션이 갖는 전체적인 의미를, 콜렉터가 예술작품을 하나하나 수집하는 것을 통해 개인이 쓰는 또 다른 형태의 자서전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강의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발표자의 객관적인 해석이었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아티스트들의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주제인 인체의 형상들이 콜렉션의 한 부분을 차지한 것과 현대 작가들이 개성 있게 표현하고 있는 다양한 표현들과 그 너머에 관객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숨은 의미 등의 해석이었다. 안토니 카로Anthony Caro, 세르게이 이수포프Sergai Isupov, 바이올라 프라이Viola Frey, 아키오 타카모리Akio Takamori, 짐 다인Jim Dine등이 그 좋은 예이다. 여러 작가들이 다루는 인체라는 동일한 주제에 대해 각기 다르게 표현되는 작품들에서 객관적으로 보이는 흥미로운 오브제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 인간들이 겪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쉽게 깨질 수 있는 우리의 삶,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희로애락을 작가의 영혼을 담은 그들의 손을 통해 창조된 작품을 통해 관객들은 자신들의 삶에 비추어 각기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그는 강조했다. 그리하여 반복되는 명제가 아닌 인생과 인간에 대해 참신한 시각과 해석이 작품을 통해 새로이 생겨날 수 있다고 했다.
1시부터 2시까지 이어진 강연에서는 미국 추상 표현주의를 주도했던 뉴욕 스쿨에서 활동했고 아트 비평, 에디터로 미국 현대 공예 운동에 왕성한 문필가로서 기록을 남긴 최근 작고한 로즈 실비카Rose Slivka의 예술관과 50여년이 넘는 기간의 미술작품에 대한 글쓰기에 대한 열정적인 삶을 조명했다. 20~30여년지기 친구들인 폴 스미스Paul Smith, Director of American Craft Museum와 주디스 슈와츠Judith Schwartz, Director of Ceramics at New York University, 아트 딜러 등 네 명의 지인들이 나와 각각 20여분간 그녀와의 인상 깊었던 대화, 미국 공예운동을 함께 일으키며 겪었던 수많은 에피소드 등을 재미나게 엮어나갔다. 그녀의 미국 공예계에 대한 공헌은 무엇보다도 저명한 그녀의 저술을 들 수 있겠지만, 강연에서는 그녀의 인간미 넘치는 성격과 라이프 스타일 등에 대해서 더욱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지난 봄 현대 미국 표현주의 도자예술가들에 대한 리서치를 하는 가운데 로즈에 의해 출간된 피터 볼커스의 책Peter Voulkos: A Dialogue with Clay을 감명 깊게 읽었던 필자는 감회가 남달랐다. 그 중 그녀의 예술관을 볼 수 있는 몇 가지 말을 예로 들자면, “공예의 오브제는 예술가의 신체리듬과 존재의 실체다, 또한 예술에서 정신적인 재료의 구조적 오브제와 그럼으로써 실체와 실제 하지 않는 그 어떤 실체가 그것으로서 전이되는 것이다.”, “컴퓨터가 미술시장에 중요한 도구로써 점점 인식되어가고 있는 요즈음 기계는 정확한 계획을 그것에 예상되는 결과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유지해 주는데 그러나 그것은 예술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경이로움이나 감동은 주지 못한다. 더욱이 컴퓨터를 아티스트의 언어로 쓸 때에는 우연을 통해 발생하는 경이로운 결과를 기대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등을 꼽을 수 있다. [사진 2]
주 전시장에는 갤러리들과 아트 딜러들이 그들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주목을 끌었던 몇 곳을 소개해 보겠다. 그 첫 번째로 주로 혁신적인 세라믹 작품들을 전시하는 뉴욕 첼시에 위치한 낸시 마르골리스 갤러리Nancy Margolis Gallery에서는 에바힐드Eva Hild[사진 3], 루드비카 오그로제렉Ludwika Ogorzelec[사진 4], 팀 톨란드Tim Toland[사진 5]등의 세라믹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보여 주고 있었고, 가스 클락 갤러리Garth Clark Gallery에서는 아트 딜러이자 저술가로써 활약이 대단한 가스클락이 직접 나와 관객들과 마주하고 있었다. 이 화랑의 대표작가로는 폴 데이Paul Day[사진 6], 루디 오티오Rudy Autio[사진 7], 아키오 타카모리Akio Takamori[사진 8], 진 피에르 라르로퀴Jean-Pierre Larocque[사진 9], 베쓰 스티쳐Beth Cavener Stichter[사진 10]등이 있다. 필자는 같은 인간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작가군에서도 갤러리에 의해 선택된 작가들의 작품 성향이 확연하게 구분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가스 클락이 카달로그 에세이에서 다룬 ‘Symphony of Shards Rick Dillingham’s Legacy’에서는 아메리칸 인디안 도예계를 주류로 부각시키는데에 큰 공헌을 한 도예가이자 아트 딜러인 42세의 짧은 생을 살다가 에이즈로 1994년에 작고한 릭 딜링햄Rick Dillingham을 소개했다. 그의 작품들은 매혹적인 색감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작품에서는 번조 후 완성품을 깨서 조각들을 심미적으로 다시 재조립하여 생기는 흉터처럼 남는 금을 살리는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는 도자기라면 흠이 없는 우아한 자태의 유약이 한결 같이 고루 잘 발라진 것을 연상하게 되지만, 이에 반하는 그의 작품들을 통해 그의 도발적이며 창의적인 접근을 볼 수 있다.[사진 11,12]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갤러리 500Gallery 500에서는 필립 수스롭Philip Soosloff의 세라믹과 아크릴릭으로 사실적인 유화 풍경화를 연상케 하는 반입체적으로 표현한 벽걸이 작품[사진 13], 실제 크기의 인간의 형상을 화산분출한 것 같은 독특한 표면 처리로 표현한 마크 차터리Mark Chatterley[사진 14] 등을 선보였다.
라는 주제로 이번 SOFA에 참가한 아트 딜러 마크 딘Mark Dean의 부스에서 필자는 그와 짧은 대화를 가졌었다. 그는 주로 혁신적인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젊은 작가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발굴한다고 했다. 특히 기존의 전통적인 도자예술의 양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조형세계를 추구하는, 그리고 우리사회의 이슈를 작품에 투영하는 젊은 작가들을 보여주기 위해 이번 프로젝트를 마련했다고 했다. 그리고 필자에게 한국에서 3주간 머물다 온 시니사 쿠켁Sinisa Kukec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는 경기도 세계 도자 비엔날레에서의 경험과 그가 생각하는 예술관, 작품세계에 대해서 필자와 의견을 나누었다. 부스에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는 이로 하여금 궁금하게 하는 믹스 미디어적 성향이 짙은 그의 캐스팅 작업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진 15]
영국 최고의 세라믹 아티스트들을 미국 아트시장에 판매하고 알리는 역할을 하는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클레이Clay-Contemporary British Ceramic Art화랑에서는 인간 형상 도조Human Figure로 잘 알려진 크리스티 브라운Christie Brown의 테라코타 벽걸이 작품[사진 16], 클레어 커닌Claire Curneen의 포슬린을 핸드 슬랩으로 약간 변형된 인체를 표현하는 작품[사진 17], 마이클 풔린Michel Flynn의 「The Bed Spread」[사진 18]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전시장 입구에 부스를 설치한 훼린 갤러리Ferin Gallery에서는 군디 디아츠Gundi Dietz의[사진 19] 오후 5시에 예정된 Artist talk을 준비하느라 분주해 보였다. 주로 사람의 형상과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들, 심리적 상태를 묘사한 작품 등이 집중적으로 전시되고 있었다.[사진 20] 대표작가로는 세르게이 이수포프Sergei Isupov[사진 21], 레드 세들린Red Weldon-Sandlin[사진 22] 신시아 콘센티노Cynthia Consentino[사진 23] 등이었는데, 한국의 박은정씨의 「Metamorphosis-I」도 [사진 24] 전시되어 있었다. 그 중 금요일 첫 번째 강연, 《Once upon a Teapot》을 진행하기로 예정되어있는 레드 세들린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완성하는데 보통 반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가장 최근의 그녀의 작품 「A Little Lesson in Gravity」는 동화적인 내용의 그림이 그려진 핸드메이드 티팟, 닭, 공중에 매달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도토리, 그리고 닭을 받치고 있는 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9/11 이후의 미국사회의 언제 또 터질지 모르는 재난 상황을 암시한다고 했다. 일련의 그녀의 작품은 단순하고 교훈적인 어린이 동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와서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상황을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는 잘 알려진 어린이 동화인 ‘Chicken Little’을 이용하고 있다.
그 외에 유리, 가구, 세라믹 등 여러가지 공예품을 전시하던 모던 갤러리Modern Gallery에서는 미국 도자사에 한 획을 긋는 피터 볼커스와 제작시에 500달러씩에 팔렸었다는 그의 커다란 표현주의적 벽걸이 접시들이 인상적이었다.[사진 25] 볼커스의 첫번째 제자였던 파울 솔드너Paul Soldner의 작품도 [사진 26] 함께 전시되어 있었는데, 갤러리 소유주가 직접 고객들과 상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소유주의 딸도 열심히 아버지 일을 돕고 있던 가운데 필자가 관심이 있었던 지난 해 작고한 바이올라 프라이Viola Frey의 두 작품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 작품들은 그녀의 주소재였던 거대한 인물 도조 형상 작품들을 만들어 내기 이전의 초기 작품이었다. 다른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녀 특유의 색감과 크기는 아니었지만, 3D 도조작품으로서 구성과 형태가 독특하게 느껴졌다. 울퉁불퉁한 굴곡의 사이사이에 있는 재미있는 작은 인물상들을 보며 이 작가가 흙이라는 재료를 다루는 솜씨 특히 자연발생적으로 작가의 조작에 의해 생겨나는 흙의 움직임과 형태에 대한 센스, 색상에 대한 감각 등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사진 27, 28]
짧은 참관을 통해서 필자가 느낀 점은 갤러리에 따라 작품의 성격들이 다르고, 나름대로 특색있는 작가를 선정하여 각각의 방향을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 그를 통해서 유명 갤러리들이 단순히 작품의 전시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 작가들을 이어 주는 접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 등이었다. 뉴욕의 첼시나 소호에 가 보면 수많은 갤러리와 작가들이 있는데 이번 SOFA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공생해 나가고 있는지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한 갤러리와만 연결되어 있었는데, 아주 드물게는 한 작가의 다른 작품을 두세 군데의 화랑에서 만날 수도 있었다. 그런 경우는 주로 작고한 작가의 고가의 작품, 즉 작품의 상품성이 이미 입증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가지 주목할 만 한 점은 행사의 제목에 Functional Art가 들어가는 데도 불구하고, 실생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대칭적인 형태의 전통 도예 작품들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고객의 주목을 끌 수 있는 부분이 작품의 독창성, 생명력, 특이성 등이고 그것이 바로 현대 조소의 핵심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SOFA 뉴욕의 홈페이지는 http://www.sofaexpo.com/NY/2005/ny05.htm이고 이곳에서 행사 일정과 갤러리 등의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필자약력
이화여대 미술대학 BFA
미국 메릴랜드 프레데릭 후드 대학원 도예과 CE
미국 메릴랜드 그린벨트 시티 커뮤니티센터 레지던트 아티스트 (2001~2004)
현, 메릴랜드 타우슨 대학 도예 전공 MFA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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