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희 건국대학교 공예과 교수
글 최무장 _ 연천 선사박물관장
사진 심홍구 _ 사진작가
인류발전사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기원전 1만년을 전후하여 인간이 최초로 강가나 호수가에 정착하면서 흙clay 구덩이를 파서 집을 짓고, 흙 속에 곡물을 재배하고, 흙을 구워 최초로 용기를 제작하고, 그 흙 그릇土器은 또한 음식을 익혀 먹고, 저장하고, 물을 옮길 수 있는 용기로 사용되었습니다. 정착, 곡물재배, 질그릇 제작이 시작되는 시기를 일반적으로 신석기시대(기원전 9.000~2.500년)라고 부릅니다.
한반도 신석기시대(기원전 5.000~1.000년)에서도 정착과 더불어 아름다운 빗살무늬 토기가 제작 되었으며, 그 중에 강원도 양양 오산리 유적에서는 흙으로 구워 만든 ‘얼굴제품’이 출토되어 당시 한반도 정착인의 사고 세계를 읽어 볼 수 있습니다.
흙으로 구워 만든 제품은 그 다음단계, 청동기 시대(기원전 2.000~800년, 한국 기원전 1.000~300년)에 이르러서 용기(그릇) 외에 베틀에 사용된 방추차, 물고기잡이의 그물에 사용되는 어망추 등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인간 생활의 모든 단면Way of life을 소위 도용陶俑으로 제작되었으며, 심지어, 개구리, 뱀 등도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도용들은 당시 사람들의 사고세계의 여러 면을 엿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 작품들입니다.
고려, 조선시대에는 흙 제품에 유약을 발라 소위 자기를 생산하고 그 위에 또한 당시의 자연환경과 사고세계의 단면들이 모두 그려졌습니다.
상기한 내용들 조금 자세히 살펴본 것은 서동희 선생 작품은 한반도 토기, 자기 발전 과정과 새로운 종교의 사고 세계가 모두 결합된 훌륭한 작품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입니다.
승용차가 보편화되기 전에 서동희 선생과 같은 출근버스를 이용하였으며, 서 선생의 국내 전시회에 자주 방문하여 서선생의 작품을 이해하는 기회를 자주 가졌습니다. 또한 필자의 전공(고고학)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져서 자주 서선생의 작품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서선생의 작품이 외국에 소개될 때마다, 작품 평가를 하는 외국 학자들이 대단히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학자, 작가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 미칠 정도로 열심히 공부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 선생은 1년 365일 연구실, 작업실과 국내외 전시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훌륭한 학자입니다. 더욱 서양, 즉 종교적 사고세계를 이해하며 그분의 작품에 반영시킨 예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커다란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필자는 서선생의 작품 중에 뉴욕에서 전시되었던 「생명수The tree of Life」 는 작가 사고 세계의 대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과거past에서 배우고 그 위에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는 것으로 필자는 인지하고 있습니다.
서동희 선생님의 작품을 과거, 현재와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보고 있습니다.
작가 서동희는 서울대 응용미술학과와 동대학원 졸업후 미국으로 건너가 캔사스대에서 석사, 미주리대 도자미술교육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6년부터 2년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웨슬린대 플브라이트 교수를 역임하고 제24회 한국미술문화대전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지난 2004년과 2005년에는 미국 뉴욕 소파SOFA에 작품이 출품됐으며 초대개인전을 2004년 미국 뉴욕 211화랑, 2005년 미국 캔사스시티 리드볼커스 화랑, 미국 뉴욕 통인화랑 등에서 열어왔다. 현재 건국대학교 공예과 교수로 활동 중이다.
필자약력
프랑스 파리1대학 고고학과 대학원 수료, 고고학박사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역임
건국대학교 박물관장 역임
한국선사고고학회 회장 역임
저서, 한국선사고고학개론(2003년, 백산자료원) 외 10권
발굴보고서, 경기 연천 원당리 유적 발굴보고서(1996~2003 6차보고서)
현, 연천 선사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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