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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응극 박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편집부
  • 등록 2006-01-10 09:34:24
  • 수정 2010-10-14 10:3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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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응극 박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당당한 세라미스트, 임응극 박사
다부진 입매에 광채를 내뿜는 눈을 지닌 임응극 박사의 첫인상에서 당당한 기운이 느껴진다. 임 박사가 지닌 당당함은 아마도 50여년간 세라미스트로 살아온 그 만의 힘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리라. 임응극 박사의 약력을 보고 있노라면 도자기, 내화물, 시멘트 연구에서 방사선 폐기물 연구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전통 세라믹 분야가 없을 정도다.
“우리나라 고유의 상감청자를 어떻게 하면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 낼 수 있을까에 대해 늘상 고민하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나갔죠.” 임 박사가 연구에 몰두한 분야가 하물며 도자기 분야뿐이겠는가. 임응극 박사는 시멘트, 내화물, 원자력 폐기물 등의 분야에 있어서도 연구실에 갇힌 연구가 아닌 늘 살아있는 연구를 위해 전진해 왔다. 해방 후 임응극 박사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임강사 시절 Canada Montreal 캐나다시멘트 회사에서 6개월간의 공장실습을 바탕으로 시멘트 제조 연구에 몰두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충분한 현장학습을 토대로 살아있는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임 박사만의 철두철미한 철학이 적용된 것이리라. 

 

“새로움을 즐겨라! 그리고 낙천적인 모험가가 되어라!”
“고여있는 것은 무엇이든 썩기 마련”이라고 말하는 임응극 박사에게서 새로움을 즐기는 모험가적인 자질이 느껴진다. 임 박사는 미국, 캐나다, 일본, 독일 등 연구할 수 있는 곳이면 그 어떤 상황이라도 도전해 나갔다. 특히 전 세계의 유명한 석학들이 참가한 ‘MIT FSSP(Foreign Student Summer Project)´에서의 강의 및 토론, 공장견학, 요업실습 등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라고 회상했다. 또한 1955년 당시 요업과로 유명했던 미국 오하이오 국립대학교 요업공학과에서의 다양한 요업관련 연구 및 실험은 이후 임 박사의 연구의 기본 토대가 되었다고 임박사는 설명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준비도 필요합니다. 지금도 새롭고 진보된 연구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세계화 흐름에 맞는 자질을 갖추고 그 외의 다양한 지식을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현장실습 체험이 곧 살아있는 연구를 만든다!
“충분한 현장실습을 거쳐야 살아있는 좋은 연구결과가 나오는 것이죠!” 임 박사의 이러한 철학은 대학 강단을 통해 제자들에게 그대로 전수됐다. 특히 임 박사는 연구와 실험에 선행한 현장 및 공장실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제자들이 한달 간 공장실습에 전력할 시간을 마련했다고 한다.
“당시 학생들을 공장실습을 보내는 교수는 거의 없었어요. 아마 나밖에 없었을 거예요. 제자들 중에서는 한번에 실습훈련을 통과하지 못해 세 번까지 훈련을 받은 학생도 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힘들었을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엔지니어라면 이 정도 훈련은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임 박사는 정연와, 도자기, 시멘트 공장에서의 현장경험이 풍부하였기 때문에 이들 분야와 관련해 탄탄한 이론을 갖춘 논문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귀뜸했다. “공장 및 현장실습을 통한 연구는 결국 세라믹 산·학연계의 기회도 제공하기 때문에 더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임 박사의 눈빛이 더욱 빛을 발한다.

내 인생의 보물, 도자기
원자력 폐기물 분야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임응극 박사는 1962년에 일본 원자력연구소에서 폐기물 처리에 관한 연구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임 박사는 방사선 폐기물을 요업물질인 세라믹 스폰지에 흡착시켜 지하에 안전하게 매장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으며, 이 방법은 일본의 산업현장에 실질적으로 적용되는 등 큰 방향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이외에도 임 박사는 서울대학교에 세라믹을 주로 공부하는 재료공학과를 창설했다. 이때부터 임응극 박사는 세라믹 연구와 제자양성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다. 특히 임 박사는 우리나라 고유의 상감청자를 과학적으로 구워낼 수 있는 방법 연구에 진력했다.
“한국 고유의 상감청자가 지닌 최고의 청자색을 구현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죠. 그러나 당시 사용하던 오름가마는 측정기기의 시설도 없이 눈짐작으로 소성작업을 하고 있어 최고급품을 만드는 것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제품 수율이 좋지 못했지요. 따라서 저는 제가 직접 만든 가마를 사용하여 도자기 관련 실험을 끊임없이 해 나갔어요. 이와함께 안료, 유약의 연구를 통해 상감청자만의 고유한 색을 내는데 성공했지요.” 도자기, 특히 상감청자의 연구에 관한한 자신있다는 임 박사에게서 한국 고유의 전통 문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한글이 있듯이 도자기에도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또한 도자기를 지칭하는 한국 고유의 언어도 있지요. 예를 들어 태도나 소지 같은 말은 한국 고유의 말이예요. 도자기 개발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한국 고유의 언어를 지키고 규정해 나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입니다.” 
임 박사는 거실 한 켠에 놓인 소박한 장식장 속에 간직한 도자기들을 조심스레 꺼내 보였다. “이 도자기들은 내가 직접 연구소에서 만든 것이고요, 저 도자기는 일본에 갔을 때 가지고 온 것들이죠. 이 녀석들 모두가 저에게는 그 어떤 보물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예요.” 도자기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소개하는 임 박사의 손길에서 도자기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조심스러움이 묻어 나온다.

 

“과학적 방법으로 한국 고유의 멋 살리자!”
“우리나라 고유의 미를 담은 상감청자뿐 아니라 항아리, 멧병, 분청사기 등 한국 고유의 얼을 담은 도자기가 많긴 하지요. 하지만 한국 고유의 도자기의 색깔을 내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개발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도태해 버리고 말거예요.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다채로운 색을 이용하여 좀더 다양하면서도 한국 고유의 멋을 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나가야 해요. 이것은 세라믹을 연구하고 발전시켜나갈 후학들이 풀어야할 과제이기도 하지요.” 이 말을 끝낸 임 박사의 얼굴에서 그늘이 느껴진다. “요즘 전통 세라믹을 연구하려는 제자들이 점점 줄고 있어요. 게다가 전통 세라믹에 대한 관심이 점차 줄어들면서 전통 세라믹 산업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예요. 전통 세라믹 산업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전통 세라믹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줄어든 영향도 있지만 미래지향적인 발전없이 과거의 틀만을 고수하려는 전통 세라믹 내부의 문제도 많다고 생각해요. 과거의 틀을 벗어나 더욱 새롭고 다채로운 면을 과학화시켜 체계적인 방법으로 발전, 개발시켜 나가야 할 것이예요.”

 

세라믹 기술과 공예적인 감각 고루 갖춘 엔지니어가 진정한 엔지니어
상감청자의 아름다운 색과 자태를 구현하기 위해 연구에 매진했던 임 박사는 향후 도자기 산업의 발전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저는 세라믹 분야의 엔지니어이지만 엔지니어가 기술과 연구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예술성을 지닌 도자기의 경우 엔지니어는 공예분야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지녀야 하며 반대로 공예인들도 도자기의 기술적인 면과 이론적인 면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두 분야가 서로 돕고 발전적인 관계가 형성되었을 때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발전이 가능할 것입니다.” 
     
‘先見之明’과 뜨거운 심장을 지닌 당당한 세라미스트가 되자!
테니스 경력만 20년이 넘는 테니스 매니아 임응극 박사는 각종 테니스 대회에서 상을 휩쓸 정도로 실력이 높다. 임 박사는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길 줄 아는 낙천적 모험가였으며 그 어떤 일에도 당당한 뜨거운 심장을 지닌 세라미스트였다.
“어떤 일에도 꾸준하게 공부하고 연구하세요. 그리고 그 일을 시작할 때 넓은 시각과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바라보세요. 그런 다음 정확한 판단을 내린 후 선택하면 결국 좋은 결과를 낼 것입니다. 즉 ‘先見之明’이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先見之明’적인 판단에 꾸준한 노력이 따른다면 모든 일에 당당해 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윤나리 기자 


임 박사는 1998년 한국요업학회 추계총회에서 성옥상을 수상했다

한·소 세라믹학회를 마치고
모스크바 보르쇼 오페라 극장앞에서 찍은 사진(1991)

서울대 재직시 세라믹 분야 연구와 
후배양성에 여념없었던 임응극 박사

 

임응극 박사 주요 약력
1944~1946 일본국 와세다 대학 이공학부 응용화학과
1946~1947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공과 (공학사)
1947~1950 서울대학교 대학원 섬유공학과 (공학 석사)
1952~1953 Canada Montreal 캐나다시멘트 회사에서 시멘트 제조 연구
1953~1955 삼척시멘트 공사 기술감독관
1955~1956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요업공학과 객원교수
1955         미국 MIT 주최 ‘MITFSSP´참가
1960~1969 대한화학회 평의원
1961~1986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
1962~1988 공진청 공업표준심의회 요업부회 상임위원
1962~1963 일본 원자력 연구소 : 폐기물 처리에 관한 연구 진행
1963~1964 일본 동경공업대학 객원교수
1963~1965 일본 동경공업대학(공학박사)
1966~1970 공예기술연구소 이사
1967~1968 독일 Karlsruhe대학교 객원교수(연소공학:Jet염 길이에 관한 연구)
1969~1984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무기재료공학과 학과장
1969~1974 충북시멘트 기술고문
1971~1973 대한요업학회 회장
1971~1974 KAIST 자문위원회 위원
1975~1978 한국열관리협회 자문위원회 위원
1977         일본무기재질연구소 초빙연구원
1978~1988 에너지관리위원회 자문위원
1980         동경공업대학 공업재료연구소 초빙연구원
1981~1997 한국적연와협회 기술고문
1982~1984 한국요업학회 도자기부회 부회장
1984~1988 조선 내화 화학(주) 기술 고문
1986~1987 국립공업시험원 자문위원
1987~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1987~현재 한일국제 세라믹세미나 조직위원회 고문
1988~1992 고려도토 기술연구소 소장
1988~1990 광주요 기술고문
1990~현재 한국도자기문화진흥협회 이사
1994~현재 한국과학기술 한림원 원로회원
1996~현재 한양대학교 세라믹공정 연구센터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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