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윤회> 읽기-한길홍의 근작이 갖는 의미에 대한 단상
  • 편집부
  • 등록 2006-01-13 17:46:36
기사수정

<윤회> 읽기-한길홍의 근작이 갖는 의미에 대한 단상

글 김영민 _ 예술학, 미술비평

윤회輪回라는 말
일견一見, 한길홍의 <윤회> 연작은, 작품이 포함하고 있는 조형적인 특질과 작품의 명제 간에 일종의 부조화가 존재하는 듯싶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한길홍의 <윤회> 시리즈가 가지는 특질이라 할 수 있는 조형적인 엄격함과 밀도 그리고 정교한 공간구성과 구성요소의 유기적인 관계설정은, 아무래도 윤회라는 말이 가지는 종교적이고 비의적秘意的인 분위기와는 다르게, 퍽 ‘모던’하다고 할 수 있다. 부연하지면, 그의 이러한 ‘모던’한 스타일이 한국조형도자에 있어서 한 시대를 풍미한 시대적 아이콘이 되었으므로 그의 작품은 ‘가장’ ‘한국적으로’ 모던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도어 Samsara의 불교적인 번역어인 윤회는 끝없는 순환이라는 말보다는 인과관계의 끝없는 지속(업karma의 재탄생으로써 시간적인 연관 속에서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가 50대 이후로 자신의 작품에 붙인 이 말의 약간 다른 쓰임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인과관계의 순환’이라는 윤회의 자연언어적인 의미보다, 한길홍이 윤회라는 말에서 주목하는 것은 인과관계의 순환‘구조’라는 구조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윤회라는 말 속에서 흙이 갖는 순환적 구조, 인간과 자연의 상호연관 속에서의 영향관계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합목적적으로 구조화된 세상(세계, 우주)의 법칙logos이나 불교의 이치로써의 법dharma을 말하려는 듯싶다. 그가 말하는 <윤회>는 다분히 구조적 진리정도의 번역어를 가진다.
모더니즘에 있어서 예술행위는 형식과 내용의 양자대립적인 관계로 구성되지 않으며, 형식자체가 내용을 담지하는 일체적 구조를 갖게 된다. 이것은, 내용과 형식이 환유적metonymical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형식으로서의 내용으로 중첩된다. 따라서 그가 표방한 명제인 <윤회>는 기실, 그가 만들어낸 조형 안에서 존재하며, 그 조형을 설명하는 말로 귀결된다. 작가가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작품의 제목이나 명제는 작가의 사고방식과 조형의지KunstWollen에 봉헌되는 것이 아니라 작품자체를 설명하거나 보조해야한다. 작가는 작품을 제작하지만 텍스트로 던져지는 것이고 의미는 관람자에 의해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길홍이 <윤회>라고 이름 붙인 그의 작품이 지향하는 것은, 일체의 완성태로써의 순환하는 구조적 우주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열린 해석이 가능한 지점의 보는 이를 위한 여백을 포함한다.

변화와 긴장감
원숭이띠가 재주가 많고 늘 변화를 모색한다는 말을 작가에게 처음 들었다. 마찬가지로, ABO식 혈액형 중에서 유일하게 두자로 이루어진 혈액형도, 같은 행위를 반복하기 보다는 새로움을 찾아가길 좋아한다는 요지의 말도 작가에게 처음 들었다. 내가 아는 혈액형에 관한 정보라고는 알파벳 첫 글자를 혈액형으로 가진 여자와 연애하는 것의 난해함과 그것의 경험적 증명 정도이다.
하여튼, 작가는 원숭이띠에 알파벳 두자짜리의 혈액형을 가졌고, 작가가 말한 그런 성향에 매우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선은 굵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정열적이며 작품에서의 변화도, 일관되지만 획기적으로 변화하거나 다층적이지만 작은 변화들을 모색한다는 생각을 그의 작품을 보면서 하게 되었다. 게다가 무엇인가 모색하기를 좋아하는데다가 부지런하기까지 하여, 가끔은 주변을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고 나는 작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원숭이띠에 알파벳 두자로 이루어진 혈액형을 가진 사람들의 성격이라고 ‘우선’ 가정해본다.
사설이 길었는데, 내가 하려는 것은, 한길홍의 작품들에서 보이는 작품의 변화양태와 그 방향성에 관한 의미를 구성해보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그는 대략 30년 정도가 좀 넘거나 모자라는 기간 동안, 물체가 가지고 있는 성질과 본원적인 형태를 지향한다. 그의 작품은, 부단히 변화하지만 늘 그것이 그의 작품임을 알 수 있을 만큼 닮아있고 혹은, 반복적인 패턴이 지속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10년쯤 터울로 혹은 그 이상의 터울로 작품을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의미관계를 가진 작품의 쌍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한길홍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인 기질이 변화에 근간根幹을 두고 있으나, 추구하는 기저는 물체 그 자체 혹은 그것의 구조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흙에서 본원적인 의미를 찾으려 하는 그의 조형방법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 이후 일군의 작가들에 의해서 유행이거나 지루한 반복일 수 있을 만큼 스테레오 타입으로 동어반복적 시도가 계속되었고, 하나의 양식이 되어 그의 작품제작방법들이 조금은 고전적인 전범典範이 되었으므로 여기서는 거론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내가 한길홍의 작가적 여정에서 주목하는 것은 변화와 지속간의 긴장감 그리고 그가 만들어내는 형태 요소간의 긴장감이 가지는 상동성homology이다. 작가적 기질로써의 변화에 대한 의지가, 사물의 본성에 이르려는 불변의 또 다른 의지와 투쟁하고, 그래서 ‘의지간’에 긴장감이 조성되고 그것이 여러 가지 변주가 되어 작품이 된 듯싶다. 이러한 그의 투쟁과 지향들은 그의 작품에서도 상동적인 관계로 나타나는데, 그의 <윤회>시리즈를 보면, 직선과 곡선, 흙의 물질적 속성과 (조성된) 금속성 그리고 (변형된) 석조적 가소성, 흙이 담지한 액체적 성질과 고체적 성질, 형태적 요소로써의 메스mass간의 균형과 긴장들이 어떤 작품에서건 조형적 특질로 나타난다. 이는 긴장감을 통한 균형이라는 형태들간의 요소적 결합과 이완의 반복이며, 또한 긴장을 통한 균제symmmetry의 획득과 구조화structualizing이며 역으로 균제를 흩트리거나 해체적deconstructual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조형적인 특질과 그가 지속해온 변화와 지속에 대한 의지의 충돌은 작품과 작가 간에 환유적 관계, 즉 작품제작의지와 작품간의 상동성을 조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
이번 전시제8회 한길홍 도예전 2005. 9.24-10.4 인사아트센터에서 한길홍의 작품이 보여주는 변주는, 엄격한 조형의지에 대한 관용인 듯싶다.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조형적인 엄격한과 치밀한 밀도는 감탄할 만큼 완성됨을 지향하고 일정부분 그것에 근접하지만, 그러한 특질이 너무 무겁고 숨막힐 수 있다는 생각을 종종했다. 일종의 예술적 엄숙주의라고까지 생각될 만큼의 엄격한 그의 조형이 이번전시에서는 조금 더 액체적이고 조금 덜 금속적이어서, 그래서 조금 덜 긴장할 수 있게 하는 듯싶다. 다시 말하면, 이번 전시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것은 엄격하게 순환구조 속에서 추구하는 완전성이라기보다는, 그것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표징들과 간간이 들어가는 간주들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아직까지의 작품들이 구조의 도출이라는 면이 강했다면, 이번 작품들은 회화적이고 선율처럼 비고착적이라 할 수 있다.
마띠에르는 좀 더 자연스러워졌고, 형태적 요소들은 완성적이라기보다는 생성적으로 조성되어, 균열과 성장이라는 형태가 주를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예의 날카롭고 금욕적인(그의 서명을 보라!)선들 대신에 선율에 가까운 곡선과 변화를 감지하게 하는 직선의 변형된 조합이 조형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는다.
아마도, 작가가 이렇게 회화적인 텍스추어를 구성하게 된 계기는 작가로서의 늘 변화하려는 기질에 ‘선생’이라는 책무가 더해진 것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오로지 작가이지 못한 현실은 어떤 의미로든 행복한 일이 아니겠고, 작가됨 보다 선생됨이 주요하게 되어 창작의 부재 그것을 이루는 ‘계’ 자체가 붕괴되고 있다고도 여길 수 있을 만큼 심각한 현실에서, 일종의 책무들이 그의 작업의 변화를 추동하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작가와 차를 마시면서 하게 되었다.
작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가 그에게는 일종의 변화에 대한 모티브를 제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가 추구하는 <윤회>라는 개념과 맞물려 생각해보면, 조형적인 엄격함과 본원적인 형태로의 지향이라는 그의 특질이 구조화로의 윤회의 축을 이루었다면, 회화적이고 선적인 자연스러움으로 가는 다른 윤회의 축이 시작되지 않은가 하는 과민한 혹은 바램을 담은 생각을 해 본다.
현대미술이 지향하는 ‘본래의 것으로의 회귀’는 어떤 식이든 역사주의와 진화론 그리고 직선적인 세계관의 산물이다. 그러나 순환구조의 역사관은 반복과 그것을 통한 지향, 그리고 인과관계의 그물 속에서 위치지어지고 변화하는 다양성의 결과이며, 순위결정적이지 않는, 과정으로써의 실천행위에 의미를 두게 되는 ‘일종의 너머의’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어차피, 과정 속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윤회이며 순환이고, 결과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길홍의 작품이 가지는 가징 큰 특장特長은 조형적인 엄격함과 그 치밀한 밀도에 있다. 색채를 엄격하게 제한하여 근본적인 색에 이르려는 의지와 단순하지만 가장 치밀하고 포괄적인 형태들을 찾으려는 노력은, 우리 현대미술이 가지고 있는 한국적인 모더니즘의 추구와 맥을 같이함은 물론, 우리 조형도자(혹은 도자조각, 혹은 예술로써의 도예)의 전개에 있어서 하나의 전범이 되었다. 공과를 막론하고, 한길홍이 추구하는 엄격한 조형성이 한국 현대도예 전개에 있어서 하나의 아이콘Icon이 되었다는 것은 도예 뿐 만 아니라, 공예와 미술간의 역학관계에 있어서 함의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한길홍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작품의 특질은 한국모더니즘 미술의 특질이자 예술로써의 도예행위의 가장 커다란 특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모더니즘 도예의 전범으로써의 한길홍의 의미는, 그의 후학들과 다음세대의 작가들로 인해서 충분히(오히려 지나치게) 증명이 되었다는 것에 있다. 따라서 작가가 이번 전시를 통해서 제공한 변화에 대한 단초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순환하는 구조에서, 하나의 회전이 완료됨과 동시에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다른 회전이 시작하는, 그야말로 인과론적인 지속과 단절이 공존하는 <윤회적> 전환점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램이다.

작가가, 평생 동안 원숭이띠에 알파벳 두 자리로 표시되는 혈액형이었으면 한다.

작가 한길홍 약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 동대학원 졸업
미국 롱 아일랜드대학교 객원교수
서울산업대학교 조형대학 도자문화디자인과 교수, IT디자인 대학원장
한길홍 도예작품전 8회(서울, 아마가사키, 뉴욕 등)
제27회 NCECA - 한국현대도예전, 워크숍 참가
East&West Clay Works전 3회
뉴질랜드 2kklay Convention 참가
2001세계도자기엑스포 한국현대도자전(조선관요박물관)
2004중국경덕진1000년경전 (강서성 경덕진도자학원)
한국현대도예 미국순회전 <From the Fire>
대한민국공예대전, 서울현대도예공모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심사위원 역임
한국현대도예가회 회장 역임
한국미술협회, 한국공예가협회 부이사장

필자약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성균관대 사회학전공 박사과정 수학/홍익대 미술비평 박사과정 재학
디자인 및 아트컨설팅 d. nomad 운영(pope143@hanmail.net)
서울산업대 겸임교수, 홍익대, 경희대 강사

 

기사를 사용하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www.cerazine.net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monthly_cera
세로형 미코
03미코하이테크 large
02이삭이앤씨 large
오리엔트
미노
삼원종합기계
진산아이티
케이텍
해륭
대호CC_240905
01지난호보기
월간도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