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이현배의 옹기막 이야기(2)
  • 편집부
  • 등록 2006-01-16 15:32:40
기사수정

이현배의 옹기막 이야기(2)
우리 다섯은
읍내 청요리집엘 갔다

글 이현배 _ 옹기장이

우리 다섯은 읍내 청요리집(?)엘 갔다. 짜장 둘에 짬봉 둘, 짬봉밥 하나다. 나는 면보다 밥이 좋다. 그래 내가 짬봉밥이다. 이거 내가 어거지써서 ‘붙임’으로 장대장께서 한턱내는 거다. 내가 작은 물건 빚을 때 앉는 물레자리 옆으로 장대장이 물레를 앉혔다. 본래 이런 상황이면 ‘붙임술’이라 하여 점주(옹기점주)가 한턱내는 법인데 내가 선수를 쳤다. 그래 요즘말로 ‘이거 신고식도 안하고 어영부영 지나가는 겁니까? 저 텃세 합니다’ 해가지고 얻어먹게 되었다. 장대장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일이지만 공중에 있다가 땅을 파고 앉히니 이제사 자세가 나온다며 기꺼이 한턱 낼만 하다는 거다. 물레를 앉히고 자세를 잡고 나서 큰 숨을 뱉으며 첫마디가 ‘아, 이제 살 것 같네’ 한다. 옹기점에서는 언제부터 물레를 땅을 파고 앉혔을까? 동네 어른들께 여쭤보면 땅속에 있는 게 당연하지 그런 걸 묻는 나를 어이없어한다. 그렇다, 이미 몸이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장대장의 경우도 그런 거였다.

옹기물레는 땅을 파고 앉혀 물레 웃박이 땅바닥과 거의 수평을 이룬다. 이렇게 해서 이로운 점은 왼발로 물레의 아랫박을 당길 때 오른 발로는 몸의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버티게 되는데 버티기, 지탱하기가 좋다. 또 큰 항아리를 빚을 때 딛고 서기가 편하고, 작업장의 천장을 낮게 할 수 있기에 건축과 난방에 수월하며, 빚어놓은 그릇을 들어내기가 좋다는 것이다. 엉덩이를 붙이는 앉은개는 물레를 앞에 두고 빛이 들어오는 쪽을 오른 쪽으로 두고 있다. 옹기는 그릇의 오른쪽, 그릇의 바깥쪽을 본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몸을 오른 쪽으로 기울여 물레를 왼발로 당기면서 시계반대 방향(좌향회전)으로 돌리면서 그릇의 오른 쪽을 보는 것이다. 심춘식교수의 관찰(「신라토기」 김원용,열화당)에 의하면 삼국시대에서 통일 신라토기 그리고 서울지방의 백제토기는 모두 기벽 안쪽에 남은 자국의 방향으로 보아 좌향회전을 한 것이라 한다. 우향회전을 하며 왼쪽에서 그릇 안을 먼저 보는 사기물레와 정반대인 것이다. 그래 옹기점의 독막에 들어선 방문객 입장에서 보면 오른 쪽에 앉아 있는 앞일꾼은 마주보게 되고, 왼쪽에 앉아있는 옹기공은 등을 보이고 앉아있는 거다. 요즘에야 전기불이 있으니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아무렴 자연조명만 할까 싶다.

장대장께서 처음 일을 와서는 두리번거리며 찾는 게 있었다. 뿌레였다. 그래 같이 가까운 큰 도시인 전주 공구거리엘 갔었다. 찾는 게 세 개였다. 뿌레, 벨트, 미싱모터. 뿌레와 벨트는 구했는데 미싱모터는 주문을 해야 구할 수 있다한다. 그래 돌아오는 길에 어찌 사용되는지를 물었더니 물레에다 걸어서 쓴다한다. 가만히 그 이치를 들어보니 그 정도라면 손내가서 하나 볼 게 있다 했다. 그래 사연 많은 쇠물레를 창고에서 꺼내보였다.
내가 처음 변형된 물레를 본 것은 팔 구 년 전, 논산 연무읍 신근리의 양씨가 운영하는 옹기점에서였다. 그때 본 것은 온통 쇠로 만들어진거였다. 그러고는 다음해에 천안 가까운 도고에서 전기모터를 사용하는 물레를 봤다. 그것은 물레 아랫박 바닥에다 자전거휠을 박아놓고 미싱모터를 나무기둥에 묶어 땅에 박아 벨트로 돌리는 거였다. 같은 해 손내살다 울산 외고산점으로 이사해서 일을 하고 있는 해운이양반이 모터에 우레탄을 박아 긴 판자 두쪽 사이에다 넣어 묶고서는 지렛대작용으로 물레윗박의 아래쪽을 돌려주는 것을 봤다. 나는 그런 걸 처음 본 거였지만 장대장께서는 그렇게 만들어 쓴 게 벌써 삼십년이 되어간다 한다. 그러니까 서울 염창점이 문을 닫고서 뒤에 처가동네가 된 경기도 용인 원삼점에서 일하다 허리가 아팠는데 일은해야 하고 해서 궁리를 한 것이 청계천 가서 뿌레, 벨트, 모터를 사 물레를 개조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다. 그 시점이 큰 아들이 태어나기 전인 가, 후인가로 해서 삼 십 년 가까이 된 것이고 주변 사람들도 더러 따라했다 한다.
 
나는 도고에서 변형된 물레를 보고서 천안 공작소를 물어 이치를 설명하고 제작을 의뢰했드랬다. 그 때 삼 백 리터 정도가 들어가는 큰 독아지의 주문이 있었기에 윗부분을 만들 때 다른 사람이 물레를 돌려주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유익하다 싶었고 또 아내가 여자의 몸으로 발물레로 일을 하고나면 힘들어했기에 좋은 일이 되겠다 싶었던 것이다. 그게 시작이 되어 열 번 가까이 손을 보며 칠 팔 년의 세월이 흘렀다가 임자(장대장)를 만난 것이다. 이 물레의 진화(?)과정은 크게 세 단계를 거친다. 처음 만들어 진 것에 나는 무척 당황했다. 그리고 수정을 했지만 여전히 원하는 구조가 아니었다. 그러다 농업관련 특수기계를 잘 만드는 영감님의 손을 거치면서 전달체계가 크게 바뀌면서 진보하였다. 그러고 몇 년 지나 기계의 원리에 능통한 스님을 통해 모터가 전압에 의해 조정 가능한 체계로 바뀌었고, 이번에 장대장께서 쓰게 되면서 남원의 목기 깎는 기계에 아주 능숙한 기능공의 손을 거치게 되었다.
내가 보다 완성된 형태를 이야기하면 장대장은 이만하면 훌륭하다면서 만족해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수레, 조막, 방망이 같은 연장이 사람의 손이라면, 물레는 몸이다. 연장이 손과 함께 하면서도 도구로써 대신 한다면, 물레는 몸과 함께 하면서 또 몸을 대신하며 우리의 조형의지를 묵묵히 구체화한다. 이제껏 사용해온 물레가 오랜 몸의 축적에 의해 형성되었듯이 바뀌는 세상 따라 기계의 힘을 빌어 바뀌는 물레 또한 몸의 질서에 최대한 합당해야 할 것이다. 기계에다 사람의 몸을 맞출게 아니라 기계가 그 오랜 몸의 축적에 맞춰줬으면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보다 더 완성된 형태를 고대하는 것이다.
내가 몸이 허락(허리통증)하는 한 발물레를 사용하는 것은 전통의 고수가 아니다. 기계물레의 속도감이 내 호흡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나한테 좋은 그릇은 나의 호흡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며 앞으로도 계속 나의 호흡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기에 몸의 변화(허리통증)에 따라 기계물레를 사용하더라도 어른들의 온전한 몸의 기억과 그 기억을 담아보고자 했던 나의 몸에 맞게 형성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내가 물레를 유심히 살피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어떤 물건이 주는 느낌에 물레의 속도감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운전에 비유하자면 발물레는 시골길을 시속 오 육십에 달리는 여유가 있다. 산업도자에 이용되는 물레는,  시속 백 오십에 가까운 이미 우리의 호흡을 초월한 느낌을 갖게 하고, 손물레는 자전거타기정도로 우리같은 사람이 직업 삼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인류문화사에서 도자기를 빚고 굽는 행위가 갖는 의미가 매우 크다한다.  그 도자기를 빚고 굽는데 ‘물레의 발명’은 또 그만큼의 의미를 갖는다. 물레에서 구심력은 모이는 힘으로 한 점에서 몸이 되고, 회전하면서부터는 원심력을 가져 공간을 형성하며 또 관성에 의해 얼을 이룬다. 이 고도의 작업에서 그동안 우리가 너무 관념화 되어있었다. 그래 정신적인 것에만 천착하면서 구체적 실체인 몸(물레)에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 싶다.
한 자리에서 구심력과 원심력의 모순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온전성을 어서 회복하자면 몸의 기억에 대한 얼밀한 판독이 우선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필자 이현배 옹기장은
전라북도 진안에서
‘손내옹기’를 운영한다
jilbak@hanmail.net

 

기사를 사용하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www.cerazine.net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monthly_cera
세로형 미코
03미코하이테크 large
02이삭이앤씨 large
오리엔트
미노
삼원종합기계
진산아이티
케이텍
해륭
대호CC_240905
01지난호보기
월간도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