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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배의 옹기막 이야기(1) - 우리는 나무를 눕히러 갔다
  • 편집부
  • 등록 2006-01-17 15: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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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배의 옹기막 이야기(1)

우리는 나무를 눕히러 갔다

 

이현배 _ 옹기장이

 

 우리는 나무를 눕히러 갔다. 송가정이 시루재 가깝게 봐 둔 나무가 있었다. 기세가 좋았다. 나는 도끼를 들고, 재호양반(안재호, 뒷일꾼)은 톱을 들고, 장대장은 낫을 들었다. 또 홍삼드링크를 하나씩 지녔다.
며칠 사이 더욱 무성해진 잎사귀들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에 나무를 봐 둘 수 있었던 것은 가마터를 찾으러 왔었기 때문이다. 우리 마을에는 가마터가 몇 군데 있는데 내가 꼭 자리에 가서 다 본 적은 없다. 어른들이 ‘거기다’하니까 나도 ‘거기다’고 할 뿐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 전화를 받았다. 미술사학을 전공하는 이가 조선왕조 세종실록에 기록된 가마터를 확인하러 다니고 있는데 우리 마을에 왔다가 그냥 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가마터를 묻는다. 가마터가 몇 군데 있긴 한데 어디가 거기인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다음에 안내를 해 달라 한다. 그래 정확하게 어디가 거기인지 알아야겠다 싶어 재호양반하고 찾아 나섰던 것이다.

재호양반이 짐작을 하는 것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때, 신작로 부역으로 자갈을 얼마큼씩 모아 신작로에다 깔아야 했는데 마침 사금파리가 나왔던 모양이다.
그래 금열이 양반(모금열, 뒷일꾼)에게 ‘어찌 여기까지 갖다 버렸당가?’했더니 ‘그게 아니라 어른들 이야기가 이 자리에도 굴이 있었다고 합디다’하더란다.
지금은 아스팔트 포장이 되었고 길가로는 잔디가 꽉 박혀버렸다. 우리는 맨손이었기에 찾다말고 마침 소나무가 연장감으로 적당한 게 있어 봐 뒀던 것이다.

이번이 네 번째다. 장대장(장태웅, 앞일꾼)이 오시고 우리가 쓰던 연장이 손에 안 맞는다고 연장을 깎겠다고 하길래 지난 겨울 계곡바람에 쓰러져있던 소나무를 봐 둔 게 있어 베었더니 적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내 습관으로 짐작을 못하는 것은 웃녘식은 뭐든지 연장이 넓적하여 나무가 커야했던 것이다. 읍내를 가다가 도로건설현장에서 베어낸 나무를 얻어왔더니 옹이와 옹이 사이가  좁다고 싫다고 한다. 방망이를 만들자면 길이마저 웃녘식이 길었던 것이다.
그러구선 땔감으로 들어온 리기다소나무에 섞여있던 육송을 골라 연장을 깎더니 또 아니라 한다. 물론 쉬운 방법이 있다. 무조건 크고 굵은 나무를 베는 거다. 그런데 그게 또 그렇게 안된다. 우리 셋 중 누구도 그러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식은 우리식이 아니라는 무언의 약속같은 게 형성된 것이다. 그것은 비겁한 행위로 굳이 적당한 나무를 찾는 거였다. 아무튼 설명하기 어려운 뭔가가 작용을 하게 되었고 그게 또 싫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붉은 빛이 도는 홍송으로 연장을 깎아 왔는데 재호양반 말로 그것은 ‘뚝솔’이고, 검붉은 빛의 껍질이 좀 두꺼운 ‘떡솔’이어야 한다고 한다.

연장 쓰는 것을 보니 남부식에 비해 중부식은 넓다는 것이다. 연장 중에 할 일이 가장 많은 게 ‘방망이’ ‘수레’ ‘조막’인데 모두가 다 중부식이 넓다. 수레의 경우 부채라고 불리 울 정도로 확연히 넓다. 조막은 수레와 짝을 이뤄야 하니 따라서 넓고, 방망이는 넓으면서 길기 까지 하다. 수레의 경우 길이는 짧다.
연장은 도구다. 독아지를 짓기 위한 도구다. 그러기에 독아지에 따라 도구로서 자격을 갖춘 것이다. 독아지가 다르니까 연장도 다른 것이다. 같은 용량의 독아지를 두고 보면 중부식이 남부식에 비해 키가 더 크고 입은 더 넓다. 남부식이든 중부식이든 바닥은 입에 비해 조금 더 좁다. 독아지를 지을 때 크기 재는 것을 전짐대라 하는데 대개 키와 입을 재는 것만 두지 바닥을 재는 것은 따도 두지 않는다. 바닥은 입의 전짐대로 가늠하여 약간 좁게 해두고 독아지가 거의 지어졌을 때 밑가새로 가시면서 약간 더 좁아지는 것이다. 그래 입(전)의 크기에서 속전만큼 이던지 약간 더 넓던지 하는 정도다.
그래 중부식 독아지는 남부식 독아지에 비해 입이 더 넓고 입이 넓으니까 바닥도 더 넓어 방망이가 더 바쁘다. 그 바쁨을 덜어내고자 넓고 길게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또 입과 바닥이 더 넓으니 몸이 그만큼 밋밋하다. 그래 수레가 넓어도 된다. 남부식은 입과 바닥이 좁아 몸에서 곡선으로 발달을 하였고 그만큼 수레 조막이 바쁘다. 그래 좁으면서 자근자근 자주 때려줘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붙박이로 다섯이서 일하고 있다. 안재호(69), 장태웅(61), 최봉희(44), 전용완(41), 이현배(44)다. 이게 크게 두 패로 나뉘어 장태웅, 이현배하고 안재호, 전용완이고 최봉희는 중간이다. 이것은 일로 나뉜 것인데 장태웅, 이현배는 앞일(물레)이고 안재호, 전용완은 뒷일(건해)다. 최봉희는 앞일도 하고 뒷일도 하기에 중간 역할을 하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옹기점에서 다섯 명이 기본구조다. 판소리에서 일 고수, 이 명창 하듯이 앞일꾼 두 명에  뒷일꾼 한명, 막일꾼 둘이 기본구성이다. 각자의 영역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 가끔 우리는 ‘앞일꾼 협회’ ‘뒷일꾼 협회’하며 패를 나눠 윽박을 지르기도 하는데 묘한 갈등이 있다. 그 갈등 가운데 생성되는 게 또 공부꺼리이기에 나는 호칭으로 앞일꾼 장태웅씨를 웃녘식으로 ‘독대장’에서 따와 ‘장대장’이라 하고, 뒷일꾼 안재호씨를 ‘공장장’이라 하여 대등하게 두었다. 앞일과 뒷일의 묘한 갈등과 중부식, 남부식의 ‘식’이 다르다 보니 한 마디씩 내 뱉는 말에 튀어나오는 게 분명한 ‘차이’다. 나는 그 ‘차이’를 챙기고자한다.

장대장하고의 인연은 팔 구 년 전 일을 좀 하자고 찾아오셔서였다. 서울 염창동에서 태어나 그곳 염창동에서 일을 익혔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 왔다. 본래 옹기점이 소비처를 찾아 가마를 박곤 했으니 요즘 가장 큰 소비처가 수도권이 되었기에 중부식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다. 그렇지만 그때는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같이 일을 못했더랬다.

재호양반하고의 인연은 내가 구십 삼년도 지금의 손내로 들어왔을 때 이미 손내에서 한 삼 십년 살고 계셨다. 손내옹기점이 왕성할 때는 딸린 식구만 이 백여명이고 걸쳐서 먹고사는 사람이 사 백여명이었다 하니 알아주는 일꾼으로 ‘꼬리 없는 소’라 불리며 당신의 청춘을 함께 했던 것이다. 그러다 아드님 따라 수도권으로 이사를 한 것이 몇 년 전이다.

요즘 나는 그이들의 눈을 마주보기가 겁난다. 그 분들의 눈을 보노라면 그 어떤 슬픔이 커 애써 외면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세월이고 인생일텐데 한 인간의 쇠락을 일 가운데 직시한다는 것이 큰 고통임을 절감하게 된다. 또 온 몸으로 살아 온 그이들의 ‘몸의 기억’이 다시 몸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너무나도 아깝다. 그래 내 매우 서툰 일이지만 그 오랜 그이들의 몸의 축적을 기록하고 기억하여 공감하며 학습하고자 감히 이 일을 시작한다.


필자 이현배 옹기장은
전라북도 진안에서
‘손내옹기’를 운영한다
jilb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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