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 이경주
소금유 입혀진 포근한 기와집 통해 잃어버린 추억 향수
오브제와 기를 넘나드는 작업으로 인간존중의 메시지 전달
형태를 갖고 있는 것들은 엄밀히 말해 모두 조형성을 갖고 있다. 도예가 이경주(37)는 작업에 임하는 자신에게, 완성된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거나 사용하는 이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즐거움’이라고 강조한다. 황금비율의 안정된 조형의 명쾌함이나 색다른 조형성을 접했을 때의 신선함 모두 조형이 주는 시각적 즐거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목적이 행복추구에 있다고 했다. 물질적으로 육체를 위한 많은 것을 갖고도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결코 행복이라 할 수 없으며, 마음이 편안한 상태를 행복이라고 정의했다. 소박한 그릇한점을 빚으며 심신의 즐거움을 느끼고, 누군가가 그 완성된 그릇을 바라보고 사용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곧 선을 추구하고 덕을 쌓는 이상실현과 다르지 않다.
오브제성 가미된 그릇작업 생활 속 예술로
집을 소재로 정겨운 향수 아날로그적 미학의 매력 전달
그의 그릇은 오브제다. 특히 쓰임의 구애를 덜 받는 화병을 보면, 꽃을 꽂기 위한 화병이기도 하지만, 꽃이 오브제를 돋보이게 하기도 한다. 그릇은 가장 가까이서 사람의 시각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오브제다. 값비싼 그림을 거는 것 못지않게 흡족한 그릇한점이라면 음식을 담아내는 자체를 예술활동으로 격상시킬 수 있다. 예술은 거대한 개념이나 새로운 것을 찾아야만 하는 노력이 아니라 소소한 쓰임과 함께하는 즐거움이라는 생각이다.
이경주의 그릇은 생활공간에서 눈을 즐겁게 하며, 만져지고 쓰여진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소금번조는 흙으로 빚은 그릇을 더욱 자연스럽게 하는데 일조한다. 밝은 금빛에서 진한 갈색, 밝은 회색에서 푸른빛이 도는 어두운 색까지 다양한 색으로 입혀진다.
그의 그릇 위에 자주 등장하는 ‘집’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이는 집이 갖고 있는 휴식공간이라는 본래의 의미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와 더불어 도시 속 현대인들의 삶에 흔치 않은 아담한 기와집은 콘크리트 건물사이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정겨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첨단으로 대변되는 바쁜 현대생활 속에서 느림의 미학과 아날로그적 사고에 더 매력을 느끼듯, 대중문화와 세계적인 획일화는 고유한 문화를 기반으로 한 조형성에 이끌린다.”고 말한다.
그는 추계예술대학교 판화과에 다니다가 군대제대 후 27세의 나이로 다시 홍익대학교 도예과에 재입학했다. 졸업 후 은사인 이인진교수의 작업장에서 일년간 사사했다. 소금번조를 포함한 무유번조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자신의 작업에 대한 진로를 모색한 시기였다. 이후 대학원에 진학해 1999년 골호를 주제로한 첫개인전을 열고 학위를 받았다.
번조의 흔적 배인 직접 설계한 소금가마
그때그때 다른 태토조합으로 변화 유도
7년전에 들어온 현재의 일산 작업장에는 소금가마와 일반가스가마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소금가마는 오랜 번조의 흔적으로 내부와 외부가 모두 붉게 물들어 있다. 작업장 곳곳에서 아담한 공간을 쪼개어 사용하는 그의 세심함이 엿보인다.길가로 나있는 작은 쇼케이스에는 자신의 작품들을 계절별로 전시해 오가는 사람들에게 늘 선보이고 있다. 이곳에서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인근의 다른 집들이 없어서 괜찮았는데, 최근 이웃집들이 늘어나면서 가스가 많이 발생하는 소금번조가 어려워지고 있다.
직접 설계한 소금가마는 가마의 네면에 모두 상하 두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소금번조는 주로 분청토에 분장한 기물을 1250~1260℃까지 온도를 올려 이 구멍을 통해 소금을 투척하는데 투척후 가마내부 온도는 1000℃정도로 떨어진다. 다시 1250~1260℃로 온도를 올려야 한다. 성형공간에는 그동안 그가 만들어온 컵들이 하나씩 진열돼 있다. 일종의 샘플 역할을 하기도 하고, 종종 자신의 작업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여러 가지 흙을 그때그때 다른 조합비로 섞어 사용하는데, 변화를 주기 위해 조합비를 기록해 가며 매번 다른 비율로 사용한다. 소금번조 외에도 분청과 청자유 등의 유약을 사용하기도 한다.
각기 다르지만 같은 넓이의 정육면체 배열로 인간가치 존중 표현
현대도예공모전 우수상 수상으로 현대건축도자로 활용가치 확인
도예가 이경주는 자신을 조형작가나 식기작가로 구별하지 않고 흙을 통해 마음 속의 감정을 표현한다. 식기작업에서는 작가가 살아온 즐거움을 담아내며, 곡물문화에서 건조한 음식으로 변해가는 식문화를 체험하며 점차 편편해지는 접시류를 많이 만들게 된다. 그릇을 계속 만들다 보면,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에 좀더 서술적인 방법으로 많은 생각을 담아내고 싶은 열망이 생긴다. 그럴 때 조형작품에 손을 대게 된다. 기작업에 많은 시간투자를 하고 있으나, 자신의 생각을 조형작품으로 제작하다보면 다시 그릇을 만들 때 조형감이나 공간감이 충전된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릇은 마음을 비우고 작업하고, 조형작업은 사색이 많은 복잡한 심경을 표현한다.
정육면체가 줄지어 있는 그의 조형작품은 지난 2002년 현대도예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조형작품을 통해 주로 생명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고 전한다. 하나하나의 큐브는 인간이 갖고 있는 갖가지 가치를 의미한다. 개개인이 갖고 있는 생명이나 가치관 문화 환경 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가치관의 모토다. 각각의 가치를 인정할 때 조화를 이룰 수 있고, 각각의 생명과 가치관 문화 환경이 존중된다. 이렇게 할 때 전체가 살아갈 수 있는 힘 곧 동질성이 생긴다고 말하고 있다. 파괴되고 인간이 무시되는 현실, 본질을 놓치고 껍데기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 인간상은 역설적으로 생명의 존중을 표현하고자 한다.
또한 조형작품에 있어서도 활용과 작품이 놓일 공간에 대한 고려를 배제하지 않는 그의 큐브를 이용한 형식의 작품은 사방으로 무한히 확장될 수 있으며 현대건축도자의 활용가능성도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탈리아 살사나시市 초대전
많은 관객들의 객관적이 평가와 호응
지난 4월 그는 서울 인사동 통인화랑에서 2회 개인전을 열었다. 이어 여름에는 이탈리아에서도 개인전을 가졌다. 이탈리아 살사나시市에서 매년 개최하는 문화축제 기간에 선보일 전시를 공모했는데 그곳에 응모해 선정돼 전시기회를 얻게 됐다. 갤러리 Lavatoi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옛 빨래터에 지붕을 얹고 조명을 설치해 전시장으로 바꾼 곳이었다. 고풍스런 오랜 대리석과 불기운이 그대로 묻어나는 소금번조 작품들이 잘 어울렸으며, 관람객들은 소금번조에 대한 호기심을 많이 보였으며, 많은 이들이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전시관계자들은 밀라노에서도 좋은 반응이 있을 것이라며 전시를 권유했다. 집이라는 주제의 따뜻한 기운이 이탈리아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호감을 얻었다.
“이탈리아에서의 전시로 객관적인 평가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외국의 문화를 배우고 싶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 유학에 욕심이 있기도 하지만, 아직 구체적 계획을 세우기엔 여의치 않습니다. 지난번처럼 외국전시의 계기를 많이 마련하고 싶고, 박사과정에 지원할 계획입니다.”
작업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작품을 즐거이 바라봐주고 선택해줄 때가 가장 보람되지만, 그 작업과정은 늘 불만족스럽다. 스스로 만족해 버린다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을 테니 젊은 이 작가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상황이다. “불만족스러운 결과물에서 다음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보완점을 찾아 다음 작품을 구상하게 될 때가 가장 즐겁다.”며 조금 더 멀리 되돌아 봤을 때 과거보다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서희영 기자 rikkii@naver.com
그의 그릇은 오브제다
1 꽃을 꽂을 수 있는 소금유기
2 작업장에 마련한 작은 전시공간
3 나란히 놓인 일반가마와 소금유가마
2005세계도예비엔날레 전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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