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 최재란
단아하고 섬세한 연꽃 향로에 담은 잔잔한 열정
편안하고 포근한 전통 미감 닮아 성숙되길 소망
열정적인 사람들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묵묵히 운명적으로 작업에 임하는 도예가들이 있다. 아직 미숙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젊은 작가 최재란(35)에게는 목표치에 빨리 도달하고자하는 가뿐 열정보다는 말없이 도예가의 길을 받아들인 숙연한 모습이 느껴진다. 생생함과 열기로 가슴이 뻐근해지는 라이브공연의 감동과 아련히 들려오는 정겨운 음악의 감동 차이 정도일까? 최재란의 외모과 말씨에서 풍기는 잔잔함은 그가 작업에 임하는 태도와 방식에 그대로다.
지난해 4월 첫 개인전 연꽃향로 전시
지난해 봄 인사동에서 열린 낯선 이름의 젊은 작가의 작품전이 관심을 끌었다. 연꽃을 모티브로 한 도자향로 전시로 섬세하게 표현된 선이 고운 연꽃과 나비가 돋보였다. 최근 들어 서양식 방향芳香기구들-아로마오일포트나 아로마콘을 피우는 소품들-이 많이 유입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향과 우리향로에 대한 관심이 재조명 되기도 한다. 최재란의 향로들은 다실이나 생활공간에 은은한 우리 전통 가루향이나 막대향을 피울 수 있는 향로다. 그의 작품 형식이나 모티브는 전통적인 소재를 차용하고 있지만 세련된 색감과 꼼꼼하게 다듬어진 형태가 다분히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또한 분청유와 백유 청자유 등을 한기물에 시유해 은은한 색감을 갖고 있다. 청자유로 연꽃잎을, 백유로 백련의 이미지를 담아내고, 섬세한 음각으로 꽃과 나비를 표현한 작품은 다분히 여성스럽다.
첫 개인전의 반응이 좋아, 몇 달 후 연꽃차와 함께하는 기획전에 초대되기도 했다. 차와 함께 선보인 연꽃 향로는 차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앞으로 향합과 함께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꼼꼼한 작업성향 자칫 긴장감 강조되기도그는 상지대학교 공예과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학부재학시절 여러 가지 공예를 접해봤지만, 그중 유독 도예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됐다. 이후 단국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고, 졸업 논문연구에서부터 향로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다작보다는 손이 많이 가야 하는 꼼꼼한 작업이 그의 성향에 더 맞았다.
백자투각은 태토의 특성상 건조과정에서 갈라지기가 쉽다. 그의 투각 향로들은 투각한 부분과 남겨진 부분의 면적이 비슷하다. 전체적으로 천천히 마르도록 비닐로 감싸고 혹시 갈라지지 않았나 오며가며 살폈을 작업과정을 떠올릴 수 있다. 하나하나 빚어 붙인 연꽃잎이나 살포시 날개를 포개고 있는 나비나 하나같이 흐트러짐 없이 단정한 모습이다. 때로 날이 선 듯 차가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의 작품에 배어 있는 이러한 긴장감이 곧 그 자신이 말하는 미숙함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섣불리 기교를 부리려하지 않고 꼼꼼하게 여러번 손을 대는 그의 작업과정은 완성작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들여 만든 정성스러움이 느껴진다.
우리도자기의 푸근함 작업과제로 삼아
스스로 작품의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은 우리 옛도자기의 푸근함을 닮고자 하는 것이다. 정교하고 단정하지만 차갑지 않은 작품을 목표로 삼고 있다. “우리 전통도자기가 갖고 있는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보여줄 건 다 보여주는 그런 맛을 닮고 싶어요. 물레성형으로 나올 수 있는 형태에 한계가 있다보니, 옛도자기들의 기형을 모방하면서 감을 익히고 있어요.” 일품공예라는 것이 크게 보면 별다를 것 없지만, 비슷비슷한 것들 가운데 하나하나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게 매력이다. 작가가 전통도자기의 물레선을 흉내낸다고 해서 옛도자기를 만들 수 없고, 현대 도자기라고 해서 전통기器에서 그 형태가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심성고운 도예가의 편안한 도자기 작업 기대
처음 도자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만드는 과정의 즐거움, 배우는 재미가 가장 컸다고 한다. 이제
는 도예가 최재란으로 전통의 의미, 민족성을 나타내는 분위기의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 “우리 옛날 식기들은 다정다감하고 온화하잖아요. 그런 순박한 그릇들을 보면 당시의 여의치 않았을 여건 속에서도 얼마나 좋은 심성을 갖고 있었나 생각하게 되요.” 도자기에는 만드는 이의 심성이 담겨있다. 때문에 만드는 과정은 심성을 다듬는 수련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는 자신을 비우고 좋은 마음을 가져야 보는 이에게도 편안한 도자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아직 남들에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준비가 덜 됐나봐요. 전시를 잡아놓고 작업하다 보니, 손을 많이 대고 복잡해지는 것 같아요.”
그의 작업과정은 디자인스케치와 모델링 과정을 거친다. 디자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준비해서 작업에 임하지만, 정작 흙을 만지면 과정과정 필요한 부분을 더하고 빼게 된다. 늘 머리를 움직이면서 표현방법을 연구하고자 한다.
진지하고 정적인 젊은 작가 최재란에게서는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도예가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어디가 끝이 될지 모르지만 자신의 길이기 때문에 가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그는 단호히 말한다. “계속 해야죠”라고. ‘잔잔한 열정’이라고 말해도 좋을 듯한 그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동안 느리지만 끈기있게 도예가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됐다 서희영 기자 rikki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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