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배의 옹기막 이야기(4)
옹기의 근간은 장독,
기본은 뚝배기
글 이현배 _ 옹기장
옹기는 수 천년 전의 흙그릇에서 별로 더 진화하지 않은 그릇이다. 그렇다고 후진한 그릇인 것은 아니다. 또 중간에 소멸했다가 다시 소급된 그릇도 아니다. 이 땅에서 이루어진 삶의 형태가 그만큼 격동적이지 않았기에 생성과 소멸의 반복이 있었을 것 같지 않다.
옹기가 흙그릇, 토기에서부터 분명 문화적 선택에 의해 유지되어왔건만 아주 이른 정립은 오히려 여러 가지 추측을 가능케 한다. 이러한 상상 또한 옹기일을 하는 재미의 한가지다. 이 이야기도 그 가운데 하나다.
옹기의 근간은 장독이다. 그리고 기본은 뚝배기다.(그림 1) 이 뚝배기의 단면을 보면 꼭 정자모양이다. 정자가 머리와 꼬리만의 단순한 모양이듯이 옹기의 기본인 뚝배기 또한 아주 단순하다.(그림 2) 정자가 운동을 위한 꼬리와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머리로 구성되어있듯이 뚝배기에서 머리를 이루는 ‘전’또한 옹기에 대한 정보를 거의 담고 있다. 이게 아무것도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는 낚시바늘의 삐침을 두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 삐침 때문에 낚시가 가능하듯이 이 작은 삐침은 전체의 안정된 패턴의 완결이기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는 곧 긍극의 결과를 가능케하는 결정적인 실마리이기에 옹기에 대한 정보를 거의 담고 있는 것이다.
옹기의 근간인 장독을 관찰 가능한 남한지역에서 보면 뚜껑이 닫히는 모양이 두 가지로 나뉜다.(그림 3) 하나는 뚜껑의 안 바닥이 독아지의 전에 닿는다. 다른 하나는 뚜껑의 전이 독아지의 어깨에 닿는다. 이게 대전을 중심으로 하여 나뉘는데 대전 이북은 전자의 형식으로 ‘중부식’이라 하겠고, 대전 이남은 후자의 형식으로 ‘남부식’이라 하겠다.
그래 중부식 독아지의 전은 넓고 남부식 독아지의 전은 눕힌 계란모양으로 둥글려져 있다. 남부지방에서도 합수독아지라고 불리우는 똥독이나 물항의 전은 넓다. 똥독 전의 경우 널빤지를 놓고 사람이 자주 올라 타야하니 넓고 실직하고, 물항은 물동이를 지대고서 물을 쏟아붓기 쉽게 넓게 공글려져 있다.
전이 이렇게 실직하면서 확연해야 하는 것은 먼저 물레에서 빚을 때 중심을 잡아주며 또 물레에서 성형이 끝나고 들어낼 때 구성력이 흐트러지지 않게 해주기 때문이다. 가마에서도 구울 때 위로 짐이 실려도 지탱하는 힘을 갖게 한다. 이렇게 저 스스로의 구성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상승감을 느끼게 하며 전이 그 상승감의 느낌을 머금고 있기에 요즘 흔한 말로 매우 섹시하다.(그림 4)
고속도로 휴게소의 풍경을 보자. 일회용 종이컵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생수대에 있고 다른 하나는 자판기에 있다. 생수대 종이컵은 전이 없고, 자판기 종이컵은 전이 있다. 생수대 종이컵을 쥔 사람은 물을 마시기가 무섭게 버리고 만다. 그런데 자판기 종이컵을 쥔 사람은 훨씬 더 여유가 있다.
전이 있고 없고가 그만큼 다른 것이다. 종이컵도 풀어보면 제 몸에서 공글려진 것이다. 그렇게 공글리니까 구성력이 생겨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물건 자체가 그 구성력으로 유지되면서 또 그 물건의 구실이 사용자 행위의 양태를 엄연히 다르게 한다는 것에서 전에 담긴 함축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필자 이현배 옹기장은 전라북도 진안에서 ‘손내옹기’를 운영한다
jilb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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