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형구
2006.3.8 - 2006.3.17 창갤러리
동일성과 비동일성
글 윤두현 _ 박여숙화랑 큐레이터
손턴 와일더의 희곡 우리읍내Our Town는 미국 동부 한 마을에 사는 두 가족의 삶에서 죽음까지의 일상을 다룬 아주 평범한 이야기이다. 극 속에서는 그야말로 어떤 극적인 사건도 일어나지 않고 평온하며, 따분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희곡이 현대희곡의 대표적 명작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유는 미국 동부의 한 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미국 동부 전체로, 미국 동부에서 북아메리카로, 북아메리카에서 우주 속 지구의 모든 사람들, 즉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내부로 향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읍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스쳐 지나가는 찰나적 시간의 소중함에 대한 작가적 성찰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노형구는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여건 속에서 비보편적인 색깔의 차이와 소중함을 발견해내고 있는 작가다.
노형구의 전시
이는 다분히 시간성에 근거한다. 획일화된 포즈와 무표정한 군상들의 모습은 흡사 현대사회의 획일화되고 익명화된 삶의 단면을 은유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지만, 우리는 다소 섣부른 판단을 잠시 유보해야만 할 것이다. 왜냐면 진정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자연적 시간성에 대한 성찰이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듯 동일한 보편성의 존재 조건 안에서 각각의 고유한 색깔을 찾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작가는 ‘시간적 개념이란 결국 인위적인 것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자연에는 위계 지워진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원처럼 그 자체로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에 의해 위계 지워진 시간 속에서 인간은 삶과 죽음의 교차 속에 진보하며, 현재의 역사가 다시 새로운 역사에 의해 과거의 역사로 밀려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노형구가 자연적 시간성을 통해 견지하고자 하는 것은 관조와 통찰의 미학이다.
‘Our Town’의 가치는 평이한 삶의 거듭 속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같음 속에 존재하는 다름을 찾고, 그 의미를 소중하게 다루고자 하는 데 있다. 노형구 역시 그와 같은 맥락에서 같음 속의 다름을 찾고자 하며 이는 일차적으로 인간의 존재 조건에 대한 깊은 철학적 성찰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노형구의 이러한 작업에 있어서 흙은 단순한 표현도구 이상의 차원을 담고 있다. 또한 군상들 하나하나에 색채를 부여하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의 수고스러움은 과정적 사유로써 작가적 언어를 형상화하고 있는 그의 심미성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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