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원 도예전
2006.3.15 - 2006.3.21 동덕아트갤러리
‘공예적 조형’으로서의 인물과 삶의 관조적 표정
글 정희균 _ 경성대학교 공예디자인과 교수
정진원의 도자 인물상들은 푸근하고 정겹다. 전시대에 놓인 아담한 크기의 작품들은 잔잔한 얼굴 표정과 몸짓으로 보는 이를 안도시킨다. 더구나 인물상의 모자가 뚜껑이 되기도 하는 등 해학적 재미가 있어 슬며시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좀 더 바라보면 기쁨도 슬픔도 아닌 표정 속의 진지함을 읽을 수 있다.
작품의 모티브는 가족이다. 그러나 추상적이지 않다. 노모와 다섯 자녀를 포함한 대가족의 가장이자 동시에 이 세상 그들을 누구보다도 잘 알며 함께 지내 온 대상이므로 작가에겐 매우 구체적인 실체를 다룬 것이다. 얼굴은 솔직한 거울이라 했던가. 작품에는 삶의 애환이 표정을 통해 소박하고 담담하게 드러난다. 자녀들을 대상화한 듯한 인물상의 포즈와 표정을 대할 때 감상자는 그 내면에 퍼진 심상을 마주하는 느낌이 들며, 삶의 이력이 배어있는 듯한 어머니 혹은 할머니의 얼굴에서는 자연스레 우리 근현대사나 가족사의 이면을 떠올리게 된다. 작가가 관찰한 인간(가족)과 삶에 대한 생각은 이처럼 마치 조용히 포착된 어느 순간의 인물 사진처럼 관조적 표정으로 나타나고 있다.
작품제작에 있어 작가는 소지나 유약, 소성 등의 디테일한 차이보다는 무른 점토와 물레성형을 통한 직관적인 인물의 조형에 주목한다. 따라서 제작과정은 신속하다. 전시장에는 다양한 형식(토르소, 전신상, 두상 등등)의 인물상이 있지만 그 모두는 물레성형이 기본이다. 둥글게 빚은 몇몇 성형물이 접합되고 또 손과 한두 가지 도구로 긋고 눌러가면 작품은 어느새 독특한 포즈와 표정을 갖기 시작한다. 그렇게 속이 빈 대칭형의 조합은 단순화된 인체를 이루고, 이것의 내외부에 최소의 점토가
가감되어 인물상이 완성된다.
이렇게 해서 나타난 작품은 조각과 소조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소재와 기술적 특성으로부터 비롯된 ‘공예적 조형’으로서의 인물상을 지닌다. 여기서 우리는 작가의 인물상을 두고 얼핏 그릇이기도 하고 인형 같기도 하다는 묘한 조형반응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본 작품들의 조형적 주목거리이기도 하다. 바로 기器와 오브제, 실용과 조형(?)과 같은 이분법적 경계가 간단히 허물어지면서 도자의 특정 기술과 재료의 고유성이 그 표현 내용과의 적절한 균형(형식)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자면 작품을 이루는 모든 요소(소재, 기술, 내용, 양식 등) 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작가 개인과 그가 속한 문화 내부에 중층적으로 연계된 어떤 합치점에 닿아있으며, 그것이 작품에의 아이덴티티와 감성적 공감을 자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근자에 들어 우리 문화에 대한 자생성의 관심과 함께 외부문화 수용에 관한 반성적 고찰이 일고 있음을 의식할 때, 그것은 이 작품들이 지닌 시의적절한 조형적 모색의 시사를 뜻한다. 그동안 우리 공예분야 전반은 왠지 파인아트의 거대담론의 한 축에 들지 못하면 어쩔까 내심 불안해하며 서구지향적으로 진행된 바를 부인키 어렵다. 그런 점에서 정진원의 인물상은 고유 문화에 녹아든 공예 자체의 재료·기술적 특성과 조형의 가능성이 결코 무리하지 않으면서 작가의 표현 의지와의 맥락 속에서 일체하는 형식의 성취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작은 도자 인물상의 표정을 보노라면, 어쩐지 작품들은 우리가 딛고 있는 삶의 ‘바로 여기’로 시선을 향하게 넌지시 권하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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