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철 개인전
2006.10.11 - 2006.10.17 덕원갤러리
COLLECTING MUTATION
글 신승오 _ 덕원갤러리 큐레이터
신이철은 도예라는 명칭에 얽매이지 않고 순수하게, 흙이 가장 자신의 조형적인 표현을 하는데 적합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작업을 한다. 도예는 흙으로 형태를 완성하고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서 구워내는 자체의 제작 메커니즘의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이러한 메커니즘에 얽매이지 않고 순수한 미술의 한 형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신이철은 도예의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시하고자 고민하고 노력하는 작가이다.
<COLLECTING MUTATION>이라는 제목과 같이 전시는 다양한 변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전시실에 들어서면서부터 나타나는데, 3층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작위적이고 인터렉티브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여러 파편화된 오브제들은 디스플레이를 구성할 때 그 순간의 작가의 느낌과 즉흥성과 무작위성으로 재구성되기도 하고 해체되기도 하며 한 형태를 이룬다. 또한 모노톤의 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인공적인 가공보다는 자연미를 살리고, 전시공간에 펼쳐진 파편화된 오브제들을 하나로 모으게 하는 응집력을 갖게 한다. 이러한 방식의 작업은 다양한 조합들을 통해 수많은 형태를 창조해내 무한한 작품을 생산해 낼 수 있다. 다양한 조합들로 이루어진 작품들은 무게감과 통일감을 형성하며 파편화된 오브제들이 모여 개별적인 작품이 되고, 이 개별적인 작품들은 또 다른 파편화된 오브제들이 되며, 이들이 다시모여 하나의 작품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방식으로 작품들은 더욱더 크게 확산되어 나갈 수 있는 확장성을 보인다. 다시 말하면 작가는 기존의 작업에서 나타났었던 형식의 단순함을 넘어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다양한 조합을 통한 유희들의 무한한 가능성과 확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방식을 관람자들과 교감하기위해 따로 공간을 만들어놓아, 이전까지 눈으로만 보았던 조형적인 도예 작품들을 직접 손으로 만져서 관객들 마음대로 구성할 수 있게 하여 새로운 재미와 작가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이어지는 4층의 전시에서는 작품들이 한 줄이나 두 줄의 단순하고 답답한 배열을 통한 전체 구성으로서 오브제의 개성을 평균화하고, 작품들 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부정하며, 무미건조하게 단순화시켜 버린다. 하지만 이러한 구성을 통해서 작품 하나하나의 오브제가 갖고 있는 다양하고 매우 독창적인 형태들이 긴장과 이완을 유도하게 되며, 결코 하나로 통합될 수 없게 구성된 파편화된 오브제들은 그 개별적인 자체의 개성을 두드러지게 해 준다.
작가의 이러한 작업은 작가 자신만의 순수한 시각적인 영역에서 표현되어지는 순수 조형으로서의 도예의 한 방법론을 보여주고자 한다. 현대미술은 대상에 대한 미적 모방을 거부하고 오히려 대상의 형태를 제거해 버림으로써 드러나는 새로운 의미를 도출해 내고 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작가는 조형적인 요소만을 부각시켜 순수 조형적의미로 접근하고 있으며, 이러한 방식을 통해 작품의 외형에 내재해 있는 본질적 의미를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작가 스스로 자신은 도예가가 아니고 미술가라고 말하듯이 도예라는 한정된 테두리 안에서 바라본다면 그의 작품의 본질에 접근하기 힘들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작가는 순 수한 미술 표현방법의 하나로서 도예를 선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번 <COLLECTING MUTATION>전을 도예라는 한정적인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라 회화나 조각과 같은 순수 미술의 지평위에서 음미해보길 바라며, 작가의 앞으로 진행되는 작업을 편안하게 기대하며 지켜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운 일일 것이다.
이태흥 <Heart in Hearts>전
2006.10.12 - 2006.10.31 한향림갤러리
태도로서의
흙에 대하여
글 김미경 _ 강남대학교 교수, 미술사학
흙은 예술로서 무엇을 말하는가.컴컴한 동굴 벽에 흙을 바르거나 토기를 주물러 만들던 선사시대의 행위마저 미술의 렌즈로 바라보는 역사를 지나서 20세기 중반 이후 모든 미술영역의 경계가 무너지고, 이제는 토탈화된 예술의 밀레니엄 시대다. 한편 우리는 조선시대 무위無爲로서 물레질을 하던 익명의 도공으로부터 현대의 도예가에 이르기까지 흙이 생활과 예술에서 끝없이 수많은 발화發話를 해왔음을 안다.
그 발화의 확장은 2000년 <Student NICHE Awards Winner> 최우수상 수상 이후, 수차례의 국내외 전시를 통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 오고 있는 작가 이태흥의 작업에서 또 하나의 단초를 마련한다. 제9회 개인전 <Heart in Hearts>를 통해 화장토와 유약을 바르는 그의 손을 통해 흙 본연의 속성을 또 하나의 ‘태도’의 모습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Heart to Hearts) 전하는 소통의 메시지는 세 번째 ‘사랑들 속의 사랑으로, 마음들 속의 마음’(Heart in Hearts) 전시로 다시금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태도’의 파장을 일으킨다. 그것은 몇해 전, 억눌린 분출을 내뿜는 듯한 인체 형상의 「영웅」 시리즈 등에서 강렬한 내러티브narrative의 복합성과 프린팅 등의 다양한 기법을 보여주었던 데서 한 걸음 소탈하게 빈 마음으로 물러난 듯하다.
이번 전시 <Heart in Hearts>에서는 자기 내면의 외부화外部化로서 강렬함을 발산했던 남성적 영웅 시리즈의 내러티브와는 상반된 또 다른 내면의 패미니즘적 자아가 발견된다. 그것은 이상주의적 우상숭배로부터 물 같은 포용력을 갖는 소통적 사랑에 대한 담론으로의 이행이다.
하늘빛의 몸체에 하트를 담은 인체 흉상은 여성성으로서의 남성이며 그러한 태도는 부드러운 깃털이 달린 채 벽에 붙어있는 세라믹 하트들의 여성성을 작가의 남성성으로부터 잉태시킨다. 작가에게서 흙으로 빚어지는 작품, 경계를 초월하는 젠더gender의 양성화가 무언가를 담기 위해 기다리는 그릇의 ‘비워져 있음’과 맞물려 ‘태도로서의 흙’의 파장을 더욱 깊이 서사discourse들로 풀어나가기를 기대한다.
김계순 도예전
2006.10.11 - 2006.10.17 통인화랑
산중다담山中茶談
글 민은주 _ 통인화랑 큐레이터
미술의 어떤 장르를 불문하고 ‘전시’란 그 결과를 보여주는 장이 되어왔다. 생각을 하고, 주제를 정하고, 재료를 선택하고, 기술을 익히고, 표현을 하고 느낌을 담는 일련의 모든 창작 과정의 결과로 작가들은 ‘완성’된 작품을 전시회를 통해 일반에게 공개한다. 그러나 전시회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의식과 기준 등에 제한이 있어 그 모든 창작의 과정을 보여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여 창작의 과정을 보여주고자 하여 완성되지 않은 작품을 전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가끔 찾아보는 작업장에서 소멸 되어지는 창작의 ‘과정’을 접할 때, 나는 그 ‘과정’과 ‘배경’을 어떻게 전시장에 옮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때론 작가에게나 관객에게나 과정processing이 결과result보다 중요한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계순의 첫 번째 도예전 <산중다담>은 이러한 생각에 좋은 예가 되어주었다. 우선 김계순은 전시와 자료를 통해 그 동안 자신의 걸어온 십 여년의 작업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으로 만든 잔과 처음 물레질을 했던 찻그릇, 처음 목물레로 완성한 다완, 아궁에서 구워진 그릇을 비롯해 모든 것을 잃고 얻어낸 병, 옹기그릇과 분청그릇, 백유와 재유 등 작가는 그 작은 공간 안에 마치 십년 된 일기를 읽어가듯 그가 지나온 작업의 과정을 보여주었다. 그 길에서 완성된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작가의 고민과 해답을, 기쁨과 좌절을, 기억과 깨달음을 담은 이야기로써 말이다. 그래서 그만그만한 찻그릇들이 제각기 모두 다른 사연들을 담고 있다. 사연은 작품을 유일하게 만들고, 유일한 작품은 작가에게나 관객에게나 소중하며, 소중한 작품들은 전시를 풍요롭게 만든다.
<산중다담>은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 산속에서의 작업을 뜻하는 산중山中은 자연을 가르키며, 작가가 작업을 통해 담아내고 싶은 아름다움의 본질이다. 김계순은 현재 충북 영동 해발 700m가 넘는 곳에 작업장을 짓고, 자연이 변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연과 더 가까운 작품을 소망하고 있다. 진정한 ‘자연스러움’은 순서가 있으며, 이치가 바르며, 균형이 잡히며, 거스르지 않는 변화를 갖는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그릇을 만든다는 것은 가장 완전하면서도 억지가 없는 그릇을 말한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뜻의 다담茶談은 인간을 가르키며 이야기를 나누듯 나누고 싶은 그의 작업 과정이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시간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일이며, 이것은 곧 마음을 비워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작가에게 첫 전시는, 이렇게 작품을 비워나가면서 그 빈자리에 새로운 인연들로 채우는 작업이다.
김계순은 작업을 통해 자신을 수양하는 법을 익히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작품들을 통해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있다. 그는 무엇을 만들기 위해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버리기 위해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는 전시를 통해 그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으나, 나는 아직도 그가 궁금하다.
윤주철 <첨장기법>전
2006.9.27 - 2006.10.3 통인화랑
도자기 생명을 보다
글 임창섭 _ 미술평론가
통칭해서 현대도자라고 부르는 도자작품은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관념과는 매우 다른 표현양식을 가지고 있다. 거의 모든 예술 장르에서 ‘현대’라는 접두어가 붙은 것들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현상은 사회가 변했고, 산업이 변했고, 우리생활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변화 속에서 살고 있는 작가의식도 변했기 때문에 현대도자가 보이는 표현적 현상 역시 변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통의 의식과 시각은 과거의 도자에 머물러 있다. 바로 이런 의식의 간격이 점점 넓혀지고 있는 것이 현대도자의 상황이다.
이런 간격을 좁혀줄만한 젊은 작가들이 요즘 눈에 하나 둘 띄기 시작하는데, 그 중에서 윤주철의 작업은 표현 혹은 형태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의 작업과정은 보기와 달리 지난하다. 일단 캐스팅으로 성형한 다음 소위 돌기를 만들기 위해 긴 과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가늘고 기다란 돌기들에게 생명을 부여하기 위해서 붓으로 계속 칠해야 한다. 이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반쯤 건조된 그릇에 흙물을 바른다. 이런 과정을 20번 한 다음에 적당히 건조시킨다. 그리고 다시 원하는 크기만큼의 돌기가 자랄 때까지 앞의 과정을 반복한다. 그리고 완전 건조한 다음에 다시 색을 내기 위해 위와 같은 과정을 100번 가까이 한다. 이후에 초벌구이와 재벌구이를 거쳐 완성하는데, 이 기법을 스스로 ‘첨장기법尖奬技法’이라고 명명했을 정도로 애착이 강하다. 그만큼 스스로 무언가를 창조했다는 자부심 혹은 긍지를 가져도 좋을 만한 그만의 독특한 장식법이다. 윤주철만의 독특한 장식법으로 완성된 작품들은 첫눈에 신선하다. 일단 장식법이 신선하니까 눈에 끌려 들어온다. 화려한 색채가 그의 작품에 호감을 가게 만든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면 ‘어떻게 했지’ 라는 궁금증으로 관심을 증폭시킨다. 여타의 현대도자들이 우리들에게 여러 의미를 생성시키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윤주철의 작품을 보는 순간 많은 의미를 관람자 스스로 만들어 낸다. 이런 점에서 윤주철의 작업은 성공적이다. 우리가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새로운 의미를 추구하는 아니, 추구하게 하는 의미생성에 대한 강제력이다. 이런 느낌을 받는 순간 미술감상이라는 즐거움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의 현대도자는 여전히 미美와 쓰임用이라는 사이에서 고민에 휩싸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사회가 문화가 변했다. 아니 변하고 있다. 하물며 사회와 문화의 반영물이라고 하는 도자가 변하지 않을 리 없다. 당연히 변해야 한다. 그래야만 새롭고 의미가 있는 현대도자가 생산되고 그것을 우리는 볼 수 있게 된다. 보는 즐거움도 우리에게 커다란 행복의 하나이기 때문에 더 많은 윤주철과 같은 작품이 기다려진다.
김현희 도예전
2006.9.26 - 2006.10.10 장은선갤러리
주전자에 담긴 일러스트레이션과 현대건축미
글 이영원 _ 일러스트레이터
김현희의 도예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조형적 요소들의 재미난 결합때문에 즐거웠다. 그녀의 작품은 우리 생활 주변의 곳곳에서 보이는 횡단보도나 신호등, 차선 또는 빌딩 등의 요소들이 따뜻한 찻물이 담겨있을 주전자의 뚜껑이나 주둥이 또는 손잡이 등에 재미나게 붙어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의외성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나른한 봄날 골목길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햇살같이 퍼지고, 소음으로 가득할 법한 도시의 횡단보도도 도예작품에서는 다소곳이 보인다. 고즈넉한 저녁 골목길, 된장 뚝배기가 졸아붙는 냄새도 느껴진다. 이렇게 김현희의 주전자에는 어느 그림책에서 본 듯한 정경들이 녹아있다.
김현희의 작품은 모두 주전자라는 기능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사용이 가능한 주전자는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실상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혀 새로운 기능을 가진 신개념의 주전자가 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사용이 불가능해 보이는 세 개짜리 주둥이를 가진 난해한 주전자는 몹시 뛰어난 디자인 감각을 보여주었으며, 주둥이가 기형적으로 큰 주전자는 스페인 해안도시 빌바오의 현대 미술관인 세계최고의 구겐하임 미술관 건물을 닮아 있다. 어느 작품은 새로운 개념의 재미있는 어린이 집이나 놀이기구를 연상시킨다. 그만큼 김현희의 작품은 조형적 실험성과 일러스트레이션이 주는 이야기 거리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 것 같다.
일러스트레이션의 원래 목적이 대중의 이해를 위해 텍스트와 함께 출판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그림, 또는 어떤 특정한 용도를 위해 주문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그림을 말하는 것이지만, 표현매체가 다양해진 현대 사회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은 대중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의 모든 조형적인 요소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현희의 작품에는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조형적 요소가 중요하게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도예전에 선보인 김현희의 작품은 건축적이며 일러스트적이고 조소적인 조형성을 두루 갖춤으로써,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그녀의 가능성과 실험정신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건축적 디자인의 주전자들이 그 규모면에 있어 실제 건축물의 크기로 확대되어 거인국의 정원에 설치되는 것을 즐겁게 상상해 본다.
임정열 개인전
2006.10.11 - 2006.10.17 갤러리블루 / 2006.10.18 - 2006.11.8 안양중앙성당갤러리
한폭의 그림같은 따뜻한 사람들
글 김성한 _ 문화재감정관, 통영옻칠미술관학예실장
복잡한 도심의 많은 사람들을 지나치며 더러 작가의 작업실에 들리면 그녀는 눅눅한 지하작업실에 불을 밝히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면 잠시 다른 세상의 여인을 보는 듯 아득한 심정이 된다. 긴 가뭄 때문인지 가을 단풍이 절정일때 전시를 하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은 충족되지 않았지만 전시장은 붉게 물든 낙엽들처럼 생동감이 느껴졌다.
속을 비워 불힘을 가해야 하는 도예는 작가로써의 열정 못지않게 많은 인내를 쌓아가야 한다. 손 가는대로 쉽게 주물러지지만 말없이 예민하고 강한 것이 흙이란 재료다. 특히 그녀가 주로 하는 인체 도자조형은 흙을 이해하는 숙련된 능력을 요한다. 그 능력은 철저하게도 흙을 만지고 있는 시간만큼 길러질 수 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될 때까지 한다는 그녀의 근성으로 많은 열매를 맺었다.
오래전부터 그녀는 「따뜻한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해왔다. 마음을 열어 손 내밀기도 어려운 세상에 그녀의 인물들은 서로 따뜻하게 보듬고 있다. 첨단 과학이 발달하고 명석한 두뇌에 냉철한 이성을 가졌어도 결국엔 인간의 따뜻함이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안 것 같다.
빚은 형상들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 감성을 자극한다. 한폭의 그림같은 인물들은 가까이 있어 소홀하기 쉬운 가족들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한때를 추억하게도, 때론 회한에 잠기게도 한다. 결국 작가는 자신의 부족함을 표현한다. 보여지는 포옹은 보다 깊이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하고 싶은 그녀의 바람을 담고 있다.
평면에 대한 답답함을 느끼면 흙을 만지고 색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면 그녀는 물감을 푼다. 각색의 도판을 구워내 깨뜨려서 상처난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이루고 있고 그 조형은 작가의 내면을 조금씩 끄집어 낸 것이다. 구상한 대로 모자이크하고 부분적으로 색을 칠한 평면을 보이는 여유는 매력적이다. 예술의 중요한 요소인 독창성이 엿보여 잘 전개해 큰 작품도 시도해보
면 좋을 듯하다. 작가는 끊임없이 변모해야 하고 독창적인 작업을 통해 분명한 자기언어로 이데아를 제시해낼 깊은 철학이 있어야 한다.
이제 그녀도 지천명에 들어선 나이. 깨달을 만하면 어느덧 젊음은 지나간다. 무얼 자꾸 채우려 하기보다 잔가지를 쳐가며 진정한 자기의 것을 키워나갈 때이다. 삶의 뿌리로부터 스며들어오는 진한 수액을 기다리며 견뎌내는 그녀의 고독이 가치 있고 아름답기를 기원한다.
< 본 사이트에는 사진이 일부 생략되었습니다. 월간도예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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