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Ceramic Art : Artist
토니 헵번Tony HepburnⅡ
글+사진 최석진 _ 도예가
토니 헵번이 1998년 네덜란드의 유러피안 아트센터European Ceramic Work Center 체류 이후 만든 작품은 이전의 그의 작품에 비해 단순화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 그는 학교의 평면 디자인 전공 학생 평가 시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하는데 헵번의 관심은 이차원적인 알파벳이며, 이것을 삼차원의 중력을 가진 실체로 변형시키는 것이었다.
「Revolution」은 알파벳 REVOLUTION을 금속 받침 위에 배열했다. 그가 분석한 글자의 측면도 또는 윤곽은 물레 위에서 만들어져 순환의 원심력을 지니고 있다. 그가 언급하듯 미국 서민의 테이블에서 볼 수 있는 접시나 그릇 같은 용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회전판 모양의 금속 접시 위의 입체적인 글씨들은 백색 러스터로 마감되어 빛을 반사하고 다시 빚은 형태를 확인시킨다.
흰 벽면 공간을 가르는 나무 선반 위에 놓여진 일곱 개의 기하학적 도형들은 그의 이름 HEPBURN을 나타낸다. 이 작품 「Signature」는 검은빛 흙덩어리 속에서 흘러나오는 시각적인 무게로 벽면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마치 타다 남은 에너지의 잔재인 양, 그의 존재를 설파한듯 하다.
「Red Tray」는 적색 포마이카Formaica 사각 쟁반 위에 붉은 빛의 입체 글자들이 넘치듯 담겨 있다. 각 단어가 가지는 의미가 해체된 채 쉼 없이 에너지를 발산한다. 식물이 화분에 심어져 있는 형태, 「Plant」는 세 개의 P자와 그 아랫부분의 L 그리고 A, N, T 알파벳을 차례로 구성한 것이다. 시유하지 않은 채 번조해 소지에 들어간 물질을 훤히 드러내는 반광의 갈색 점토와 마치 인조 진주 구슬을 연상시키는 구슬 띠로 둘러 싼 용기 모양은 서로의 존재를 이해하고 통신하고 있다. 신비로운 시각적 탄성을 발하며 시선을 끌어들인다.
헵번은 점토로 3차원적 알파벳을 연구하면서 자신 스스로 새로운 물레법을 만들어야 했다. 그가 창조한 중력을 가진 글자들은 조직과 체계, 구성 등 창조적인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빈센트 맥고티는 그의 작품을 “시각적 시작으로서 글자의 사용은 본질적으로 기하학상의 구조로서 알파벳 구성과 단어의 객관화를 찾고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2 + 2 = 4」 또는 「5 - 5 = 0」의 조형물들은 숫자를 입체화한 것이다. 공간을 힘있게 점유한 구조물은 그 중력으로부터 발하는 에너지로 인해 인간 근원의 존재와 실체를 탐구하게 한다.
그는 미국에 돌아와서 입체를 이차원적인 평면으로 옮기는 사진작업을 했다. 이때 물레 위에 회전하는 입체들을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Spin Gold」시리즈외 다수의 작품을 완성했다.
그의 관심은 다시 삼차원적 오브제로 변형된다. 「Ware Cart」는 회전력으로 인해 형태가 변조된 동작을 정지시켜 보여준다. 원소의 나열 같은 이 96개의 오브제들은 다이나믹한 에너지가 응축된 채 줄지어져 1.5 미터의 바퀴 달린 카트 위 유리 선반에 놓여있다.
입체 글씨들에 대한 헵번의 흥미는 그의 부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사라졌다. 더 이상 같은 것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에너지는 모두 소진되었으며 그의 관심을 이끌어낼 어떤 존재도 없었다. 그는 2년 동안 부인을 간호했다. 그의 시각적 환경은 무수히 많은 이름 모를 약병이나 주사기 같은 병원의 기기였다. 「Red Circle Sculpture」는 청진기를 변형시킨 형태들이며, 「Stool Sculpture」는 병원에서 환자들이 하루 몇 번씩 마주하는 환자의 이동 식사 테이블을 표현한 것이다. 「Hospital Sculpture」은 약병에서 영감 받은 것인데, 표면의 색은 실재 약병 색을 다시 반영하고 있다. 그는 병원에 있는 동안 많은 기기들을 반복해서 스케치북에 그렸다. 작업실에 돌아온 후 마음속에 자리한 기억을 되감으며 그가 투영된 약병들, 청진기들을 만들었다. 이 작품들은 그의 드로잉과 함께 미시간주의 레볼루션 갤러리에서 전시되었다.
헵번은 번조의 온도를 마치 4B, 2B, 2H 등의 스케치 연필을 선택하듯 결정한다. 작품에 따라 높은 온도에서 초벌하고 시유한 후, 낮은 온도에서 재벌하기도 하고, 한 작품에 장작 가마로 번조한 것과 저온 또는 고온에서 번조한 것을 한 작품에 어울려 쓰기도 하는 등, 점토와 불 그리고 유약에 대한 그의 상상력은 무궁했다. 흙이 불에 구어져 세라믹으로 변화된 단단하거나 무른 점토 덩어리들은 공간에 점유한 중력으로 다시 방출된다. 또한 완성된 작품이 장소와 만나는 부분, 바닥의 접점은 그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작품에 따라 바닥의 유약을 벗겨낸 부분이 0.3cm가 넘으면 실패한 것이라고 말하며 그의 예리한 미감을 말하기도 했다.
헵번은 우리가 ‘작업대’라고 부르기도 하는 작품이 놓여지는 곳을 세심히 고려한다. 그는 “장소는 작품만큼이나 중요하다”며 1988년에 완성한 로댕의 「칼라의 시민」을 예로 들었다. 둔중한 청동 조각이 작품 대좌 놓여져 장소와 어떤 연결성을 갖는가, 그곳에서 어떤 소리를 발하는가 하는 것을 귀기울여 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작품대로 가구를 변형하기도 하고 유리나 나무, 금속을 쓰기도 한다. 작품과 장소의 접합점은 에너지가 형성되며 소멸되는 것을 시사하는 곳이며 공간을 점유한 물체성에 대한 감응이 설치되는 곳이다. 그의 작품 중 「Red Tray」의 붉은 포마이카 나무 쟁반은 점토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누출을 막는 의도라고 한다.
필자는 그에게 훌륭한 작품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예술품을 볼 때 당신 마음의 어
떤 부분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그 작품이 형편없이 좋지 않다던가 또는 당신이 특별히 지적인 사람이 아니다는 뜻이다”라는 로버트 라우센 버그Robert Rauschenberg의 말을 인용하였다. 이어 로댕과 자코메티 그리고 현대 미술에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제프 쿤스Jeff Koons를 예로 들었다.
“철로 만든 길다란 형상의 인체형태, 자코메티의 조각들은 인간본연의 외로움, 고독의 본질을 품고 있다. 「마이클 잭슨과 거품Michael Jackson with Bubble」이나 「핑크 팬더Pink Panther」같은 제프 쿤스Jeff Koons의 도자 조각은 냉정함과 격렬함, 말할 수 없는 아이러니를 표현하며 이미 만들어진 선입관적 예술의 한계를 부순다. 즐거움, 혐오감, 거칠고, 아름다움, 통렬함 등 마음의 메아리를 주는 것, 무심코 보았을 때 나를 멈추게 하고, 작품의 반향이 마음에 드리워지는 순간, 자신의 영혼에 다가와 울림을 주는 것, 그것이 좋은 작품이다.”
크랜브룩 아카데미의 이른 아침, 도자 빌딩의 동그란 테이블에서 시작한 헵번과의 대화는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긴 햇빛이 시간의 지남을 알려줄 때까지 계속되었다. 필자는 그가 전해준 사진과 잡지, 그리고 40여년을 통과한 그의 분신들, 설치작업, 드로잉과 조각들이 발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창작의 세계로 주유했다. 그의 언어들은 조용히 낮은 소리로 샘같이 솟구쳐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신념과 정열을 전해 주었다.
1 「Revolution」
2 「Signature」
3 「Red Tray」
4 「Plant」
5 「Ware Cart」
6 「Hospital Sculpture」
7 레볼루션갤러리
8 토니 헵번(오른쪽첫번째), NCECA
9 헵번의 작업실 창가
필자 최석진은 이화여자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3년 버지니아주의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에 초빙교수로 미국에 건너가 ‘한국전통 도자 표현기법’을 가르쳤다. 그간 열 번의 개인전과 100여회가 넘는 그룹전을 가졌으며 버지니아, 텍사스, 워싱턴 그리고 미시간 등 여러 곳에서 “한국 전통도예” 작업시범과 강의를 해왔다. 현재는 미국 현대도예 연구를 위해 미시간주의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에 재학 중이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사진이 생략되었습니다. 월간도예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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