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작가
얼굴변형놀이 작가 윤주일
얼굴은 자기정체성의 상징이다. 얼굴에는 수없이 복잡한 정보들이 끊임없이 흐른다. 혹자는 얼굴은 주변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 속을 드나들기 위한 사회적 서명이자 패스포트라고도 한다. 우리는 혈연적 이유를 내세우며 얼굴에서 부모나 조상의 모습은 물론 한 인간이 겪어온 지리적 환경과 교육, 직업 등 사회 환경의 영향에 의한 흔적을 투영하기도 한다.
윤주일(36)의 작업 모티브는 ‘얼굴’이다. 그는 인간 얼굴이 지닌 다양하고 복합적인 표정을 여러 개의 덩어리 흙 조각으로 형상화하고 분할과 결합방식을 통해 공간속에서 새롭게 구성한다.
작업환경에 맞춰 시도된 흙덩이의 분할과 결합
서울대학교 공예과에 91학번으로 입학한 그는 흙의 물성표현에 매료돼 전공으로 도예를 선택했다. 그는 “학창시절 흙으로 얼굴을 만들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가 만들고 있는 얼굴의 표정을 따라 흉내 내는 나를 발견하고 곧잘 웃음을 짓곤 했다”고 한다. 무의식중에서도 다른 어느 때보다 자신이 행하고 있는 형태에 동화되는 것을 자주 느꼈고 그것이 이끄는 대로 작업을 하며 창작을 통한 희열을 경험했다. 1997년 대학 4학년 재학 중 동아공예대전에 출품한 작품 「이異사람」이 현대공예부문 최고상을 수상하면서 인체성형과 연구에 심취하게 됐다. 이 작품은 당시 “점토가 가진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인체의 완만한 형태를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성형방법으로 잘 표현해낸 수작”이라는 평을 받으며 관심을 모았다.
윤주일은 1999년 대학원 진학과 동시에 IMF의 영향으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경제생활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 무렵 순수조형작품에도 회의를 느껴 자신이 선호해온 인체형태의 조형물을 응용한 생활식기를 만들게 됐다. 그 생활식기는 조각난 흙덩어리가 결합되면 얼굴 형상의 조형물을 이루고, 그 조형물이 해체되면 각기 기능을 지닌 생활식기로 변형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 상품이었다. 그러나 그 무렵 뜻하지 않는 병을 앓게 됐다. 급작스럽게 찾아온 뇌수막염으로 몸이 마비돼 걷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다행이 급 호전됐지만 한 달간의 짧은 투병 기간 동안 많은 것을 깨달았다. 건강이 좋아져 흙을 다시 만질 수 있게 된다면 꼭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원을 마치고 서울 봉천동에 작업실을 얻어 본격적인 작업 활동을 시작했다. 비좁은 작업공간이었기 때문에 번조는 모교의 시설을 이용했다. 번조를 위해 성형된 기물을 옮기는 과정의 번거로움 때문에 작업환경에 맞춘 작업을 시도한 것이 큐빅형태의 덩어리가 분할과 결합을 통해 구성되는 조형물이었다.
기하학적 도식과 입방체로의 환원
윤주일의 작품 「얼굴표정」은 분할
과 결합의 이중구조로 완성된다. 평면의 스케치를 통해 전체적인 얼굴의 형태와 표정을 결정하고 표정의 구조에 따라 임시적으로 분할선이 그려진다. 얼굴의 분할을 진행하는데 우선 고려돼는 것은 눈, 코, 입 등의 주요기관과 근육구조의 활용이다. 그 활용은 하나의 얼굴을 그 기본 형태에 맞춰 변형하거나, 연상된 형태들이 결합되고, 기하학적인 선과 면으로 분할하는 등의 다양한 과정으로 표현된다. 기하학적 도식으로 분할, 해체된 평면의 얼굴은 점토 판상성형 작업을 통해 작은 큐브(입방체)로 다시 제작된다.
완성된 입방체의 도자덩어리는 각 단위체들의 밀착된 결합을 위해 단위체 위에 유연한 상태의 흙 판을 덧씌워 틈을 최소화한 후 붙이는 과정을 한다는 점에서 돌담 쌓기와 비슷한 과정이다. 쌓는 과정 중에 형성되는 형태는 유동적일 수도 있다. 단위체의 결합으로 완성된 형태는 한 덩어리 형성된 형태와는 다른 차별성을 갖는다. 단위체 사이의 틈으로 인해 생기는 선이 그것이다. 틈사이의 공간으로 인해 입체의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 또한 각 단위체 사
이의 관계는 훨씬 더 다양하고 미묘한 표정을 연출해 낸다. 각 단위체들의 크기를 다양하게 구성하면 활기찬 표정이 되고 반대로 단위체의 크기를 비슷하게 하면 편안한 표정연출이 가능하다. 작가는 “작업 초기 얼굴의 의미나 내용전달보다는 결합방법에만 중점을 두고 고민해 왔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나 결합방식이 해결된 후에는 건조와 번조과정에서 생기는 수축과 뒤틀어짐에 대한 해결책도 자연스레 찾을 수 있었고 폭넓은 응용력도 생겨 다양한 형태와 장식 등을 도입해 표현하는 것이 수월해졌다”고 한다. 이같은 작업과정을 살펴보면 마치 ‘모든 것을 기하학적 도식, 입방체로 환원시키고 있다’라는 큐비즘(입체주의)의 탄생배경과 맥을 같이 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작품성형에 사용되는 소지는 대부분 조합토다. 간헐적으로 소성 과정에서 굵은 크랙을 얻기위해 고려도토와 산백토를 혼합한 혼합소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번조는 라쿠와 노천가마를 선호한다. 성격 탓인지 고화도 유약의 결과물에 대한 기다림이 싫어서다. 경기도 일산의 작업실에는 1대의 라쿠가마와 2대의 가스가마가 있다. 번조과정에 매료되는 날이면 하루에 4~5번의 번조도 마다하지 않는다.
배경과 환경으로 형성되는 인간 얼굴표정의 천태만상
윤주일은 근 몇 년간 다양한 작가 그룹에서 활동하며 지속적으로 자신의 「얼굴표정」 연작을 선보여 왔다. 97년과 98년의 ‘붉은 흙전’을 비롯해 2000년과 2001년에는 ‘젊은어깨-한일교류전’, 2003년의 ‘TOC’전과 ‘UNFOLD’전, 2004~2006년의 한일청년작가교류전 ‘CONTACT’, 2006년의 ‘임진강 흙·붉’전 등을 통해 일련의 작업들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작업세계를 구축했다. 지난 2005년 1월 서울 인사동 한국공예문화진흥원 전시장에서 가진 첫 번째 개인전 <COMBINATION>은 그간의 작품들을 집약해 선보인 전시였다. 전시에 공개된 「변신합체」와 「합合」, 「그리스 용병」 등의 얼굴표정 연작은 다양한 배경과 환경에 의해 형성된 여러 인간들의 모습을 담은 결합체였다. 분할과 형식의 표현으로 완성된 다양한 얼굴들은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다. 광대의 웃음 같은 다중적 의미를 담은 표정과 전투를 앞둔 용사의 용맹함을 담은 표정, 전철역 앞자리에 앉은 피곤에 지친 샐러리맨의 표정 등은 ‘눈물흘리다’, ‘내안의 모든 것’, ‘약간은 불만어린 고민에 빠져있는’, ‘너무 고민하지 마라 눈 티 나올라’, ‘약간의 사악한 얼굴의 미소’ 등의 부연설명으로 인간얼굴의 표정에 대한 천태만상을 소개한다.(사진1~7)
대중을 위한 시각적 유희공간으로 승화 기대윤주일의 「얼굴표정」 연작은 도벽형식으로 응용이 용이하기 때문에 최근들어 야외벽화조형물과 실내벽면인테리어용 작품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작가는 공동작업실 ‘TU CLAY STUDIO’를 함께 운영하는 동료 2명(주후식, 문 평)과 함께 지난해부터 야외조형물제작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몇 해 전 단골로 다니던 재즈바에 설치해준 도벽작업 「mo’ better blues」(사진8)를 시작으로 서울 삼성동의 한 BAR에 설치한 「얼굴표정 - 약간은 사악한 얼굴의 미소」(사진9)를 비롯해 지난해 경기도세계도자비엔날레 광주와 여주행사장 조형물과 서울 송파구 올림픽상징조형물 제작설치, 올해는 서울 보라매 새 병원의 조형물 공모에 당선되기도 했다. 또한 윤주일의 「얼굴표정」작품은 2005년 문화관광부 미술은행 공모에 당선,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기도 하다.
윤주일은 앞으로의 작업방향에 대해 “당분간은 환경조형물에 심혈을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한다. 자신의 「얼굴표정」 연작의 성향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 건축자재로 각광받아온 ‘아트타일’의 한계를 넘은 ‘아트벽돌’의 개발로 도자분야의 영역을 넓히고 싶은 욕심이다. 앞으로 그의 ‘얼굴변형놀이’가 펼쳐지게 될 다양한 거리와 실내공간 곳곳이 대중을 위한 시각적인 유희의 공간으로 확장되길 기대해 본다.
김태완 기자 anthos@paran.com
1 제25회 1997년 동아공예대전 현대공예부문 동아공예상 수상작 「이(異) 사람」
2 작가 윤주일
3「얼굴표정(한사람의 얼굴에 담겨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여러 조각들로 결합한 표현)」 문화 관광부 미술은행 공모당선작
4 「얼굴표정 - 내안의 모든 것(내안에 담겨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팔로 감싸고 있는 얼굴의 모습 표현)」 2001년 서울현대도예공모전 입선작
5 「얼굴표정 - 약간은 불만어린 고민에 빠져있는…(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고민하고 있는 모습)」
6 「얼굴표정 - 변신합체(옛날 만화에서 본 변신합체전의 포즈)
7 「mo’ better blues - 작가의 단골 재즈 바에 설치한 도벽 작업 술과 사람과 음악의 결합」
8 「얼굴표정 - 약간은 사악한 얼굴의 미소」
<사진자료가 일부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도예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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