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대도예의 새로운 흐름Ⅰ
글+사진 다이쵸 토모히로大長智廣 일본 아이치현도자자료관 학예연구원
번역 김우정 홍익대학교 대학원 도예전공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또한 유구한 도예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시작은 조몬토기 부터이다. 일본의 도자는 중국이나 조선을 경유한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이루어졌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공존해 가면서 새로운 기술을 뿌리내렸다. 그리하여 오늘날 토기, 도기, 석기, 자기 등이 도예가들의 표현수단으로 이용되어 다양한 표현을 창출해 내는 토양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도예의 역사 중 현대도예라고 불리는 작품이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60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짧은 기간에도 도예의 표현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1940년대 말에서 50년대 초반에 걸쳐 오브제라 불리는 도자에 의한 입체조형 작품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일이다.
그러나 긴 도예의 역사와 함께 생활 속에서 도자기가 발전해 온 일본에서 오브제는 도예의 표현에서 하나의 방향성일 수밖에 없었다. 오브제 외에도 전통적인 기器의 형식에 기반을 둔 작품과 일본 각지의 민요民窯적 특성의 민예적 작품, 디자인적인 기器 등 다양한 표현이 있기 때문에 일본도예의 현대성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표면적으로는 양식적 다양함을 바탕으로 도예 제작이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본의 현대도예는 오늘날까지 도예의 제작에 있어서 미묘한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어떠한 하나의 중요한 공통점을 갖고 전개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요소야말로 도예가 다른 미술 분야와는 다른 독자성을 가지고 있는 점이다. 다시 말해 도예가 소위 현대미술의 영역에 빠져들지 않고 도예로서의 독자적 영역 안에서 표현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즉, 도예는 흙을 소재로 하여 물레성형이나 코일링, 캐스팅 등으로 형태를 만들고 문양과 유약에 의한 장식이 따른 후 소성을 거쳐 완성되는 것이다. 이처럼 흙이 거의 유일한 소재이고 성형, 소성을 걸쳐 완성되는 제작과정을 필요로 하는 예술은 도예 이외에는 없다.
그러면 왜 일본에서는 작가의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 오브제와 함께 기器의 형태도 동시에 제작하고 있는 것일까? 또 오브제작가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기器를 제작하는 사람들도 도예가로서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왜 흙이라는 소재와 소성이라는 행위 즉, 흙이 도자가 되는 제작과정을 중요시하는 것일까?
그것은 일본이 가지고 있는 도예 역사의 중요성과 도예가 다른 미술 분야와는 다른 독자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도예의 표현이 다양화되었고 다채로운 도예작품이 제작되고 있다. 하지만 도예에서 기器의 형식과 실용성은 사회나 생활과의 상관관계로 인해 성장해 온 긴 도자의 역사성과 함께 오늘날에도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에서 오브제 작품이 제작되기 시작한 시기는 앞서 말한 바와 같고 최초이자 대표적인 작가는 오늘날까지 중요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야기 가즈오八木一夫이다. 그가 1954년에 제작한 「자무자씨의 산책」은 오브제의 바이블과 같은 작품으로 약 50년 전의 것이지만 제작의 발상은 오늘날 일본 현대도예의 방향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물레로 만든 원통円筒의 양끝을 연결해서 원관円管을 만들고 그 표면에 손, 발과 같은 작은 원통을 붙인 「자무자씨의 산책」은 물레로 성형한 여러 부분들을 조합하여 오브제로 새롭게 탄생시킨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야기 가즈오도 마찬가지지만 도자기 생산이라는 오랜 전통 속에서 자라온 사람들에게 도자기란 물레성형을 대표하는 기器라는 고정 관념이 있다. 기器에서 순수 조형작품인 오브제로의 전개는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 놓아 도예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기 가즈오는 「자무자씨의 산책」에서 도자기 제작에 있어서 어떤 의미로는 절대적 존재이며 상징적 도구이기도 한 물레를 단지 성형상의 도구나 기계로 취급함으로서 물레의 권위를 해체한 것이다. 그때까지 당연하게 여겨온 물레성형의 원리를 객관적으로 주시함으로서 물레가 가진 상징성 해체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야기 가즈오는 현대의 도예표현이 확대되는 새로운 길을 열었던 것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도예의 제작과정 중의 하나인 성형단계를 재검증한 것으로써 앞으로 흙을 이용해 만들어야 할 것들의 길잡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야기 가즈오는 도자기 제작의 프로세스를 하나하나 거쳐 오브제를 제작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기器를 만들 때도 기器의 제작형식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기器라고 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고 그 제작 논리를 따르면서 다시 한 번 기器라고 하는 것을 선택해 제작해 나간 것이다.
결국 흙에서 소성을 거쳐 완성되는 도예라고 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 제작에 연결시키는가에 대한 객관적인 시점을 가지는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바꾸어 말해 도예에 있어서 기器나 실용이라고 하는 인습적으로 전해져 온 개념을 상대화하고 도예 내부에서 그 제작 논리에 맞추어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연 것이다.
오브제 작가로서 활동한 야기 가즈오는 늘 자신을 ‘그릇을 만드는 사람’ 이라고 말해 왔다. 여기서 말하는 그릇은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기器를 가리킨다. 자신을 그릇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의미는 오브제와 기器를 구별하지 않고 도예 고유의 프로세스에 따라 제작하지만 최종적으로 기器가 되기도 하고 오브제가 되기도 하는 도예의 독자적 방법론을 자각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야기 가즈오의 도예에 대한 사고방식들은 한때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진 적도 있었지만 오늘날 현대도예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또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야기 가즈오 이후 미국 현대도예와 현대미술 등의 영향으로 다양한 표현이 생겨났고 특히 1980년대에는 흙을 이용한 자유로운 창작 활동이 행해졌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흙이라는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현대미술과의 경계를 확실히 하지 않는 즉, 도예의 독자성 또는 도예라고 하는 장르 자체가 없어져 버리는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현대도예의 독자성이나 고유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해 야기 가즈오와 같은 제작개념 즉 흙이라는 소재로 성형하여 소성하는 도예 고유의 제작과정 안에서 작가의 창의성을 발휘해 나가는 자세야 말로 도예라는 특수한 예술분야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일본 현대도예의 특징은 도예 제작이라고 하는 고유의 과정에서 오브제나 기器 등이 구별되지 않고 같은 지평선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프로세스에 대한 검증 방법의 차이 및 작가와 흙이라는 소재와의 거리감 등의 차이가 오늘날 다양하면서도 어떤 공통성을 가진 현대도예의 세계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오늘날 일본 현대도예의 경향을 여섯 부분으로 세분해 소개하고자 한다.
야기 가즈오(八木一夫)
「자무자씨의 산책(ザムザ氏の散步)」
27.5×27×14, 1954
야기 가즈오(八木一夫)
위 「벽체」 53×63×6, 1964년경
아래 「은둔(隱遁)의 존(Zone)」 19×19.3×20, 1977
1. 흙의 질감과 특성에 기반을 둔 경향
가토우 토모나리加藤智也이 작품은 높이 164cm의 등신대 사이즈로 아래에서 위로 겹쳐 쌓는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지만 단순함과 동시에 뒤틀린 구조가 특징이다. 이와 같은 구조는 원형의 테두리가 겹쳐지지 않도록 비켜가면서 쌓아 올리는 것으로 인해 필연적인 조형의 뒤틀림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처럼 흙을 쌓아올려 성형하는 방법은 도자기가 처음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토기시대부터 변한 것이 없다. 또한 이 작품의 구조는 어떤 한 부분을 잘라 펼치면 한 장의 판 상태가 되는데 이 구조 역시 기器를 만드는 구조와 같다. 즉 도예의 조형에 있어서 내부에 공간을 가진 기器의 구조는 복잡한 구조를 만들 때에도 필수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작품이기도하다.
와타나베 타이치로우渡邊太一郞
활동경력은 얼마 되지 않지만 도예에 대한 독자적인 시점을 가진 작가이다. 제작 방법을 보면, 우선 둥근 구형을 상하 절반씩 코일링으로 제작한 후 표면에 띠 모양의 흙을 붙인다. 그리고 도너츠와 같은 형태가 되도록 원의 중심부를 함몰시키는데 이때 표면의 흙에 자연스러운 균열과 함께 거친 표면이 생겨난다. 그 위에 흙을 덧붙이는 등의 표면처리를 한 후 노천소성으로 마무리한다. 이 작품은 도예작품이 필연적으로 가지는 내부공간을 어떤 방식으로 조형에 전화시킬까라는 점에 있어서 독자적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즉, 도너츠 형상의 조형작품이 내부공간으로 연결되는 듯한 동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도자기는 소성을 하기 위해 필연적인 내부공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실용적인 목적 이외에도 조형이라는 점을 받아들일 때 내부에 공간을 가진 형태가 도예의 조형상에 있어서 독자성의 하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내부의 공간을 조형의 요소로 받아들여 도예가가 적극적으로 제작에 응용해 가는 점도 일본 도예의 특색 중 하나이다.
최영희이화여대를 졸업하고 교토시립예대 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작년 아사히朝日도예전에서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대상을 수상하였다. 최영희는 얼핏 보면 완결된 것으로 보이는 하나의 단위가 상이형의 단위로 인해 무한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것을 나타내는 프렉탈이론에 기반을 두고 제작하는 작가이다. 제작에 앞서 작게 모델링을 하는데 프렉탈 이론은 이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파이프 형태를 틀로 뜬 조형의 한 단위가 일정한 규칙성을 가지고 전개되며 최종적으로는 그것을 참고로 형태를 만들어가고 그때그때 변화하는 흙의 모습에 따라 전체 조형을 결정한다. 즉, 작품의 완성은 어느 정도의 예측만 가능할 뿐 실제로는 소재의 변화로 인해 생기는 형태로 결정되어 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작 태도는 일본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예술 제작이란 작가의 창작성이나 예술적 감성이 우선적으로 작품 제작의 전부를 결정해 버리는 점이 있다. 회화나 조각 등에는 그러한 경향이 현저하게 나타나는데 이것은 감성에 맞는 소재를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여 소재를 하나로 한정하지 않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도예나 다른 공예에서의 소재는 정해진 것에 한정되어있고 소재 그 자체의 매력을 독립시켜 소재의 변화에 따르면서 제작해 나간다는 경향이 있다.
이즈미다 유키야泉田之也
이즈미다는 고도의 기술로 자신의 세계를 표현해가는 작가로서 흙이 가지는 질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거친 흙을 사용한다. 이즈미다 작품의 특징은 흙으로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종이로 만든 작품처럼 보인다는 점에 있다. 이처럼 흙의 소재감을 나타내면서 다른 소재로 제작한 것과 같이 표현하는 것, 즉 흙이라는 것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작품을 통해 바꾸어 놓는 것, 이것은 소재의 특성을 새로운 시점에서 제시하는 것이 된다. 이처럼 도예는 흙을 사용해서 성형하고 소성을 거쳐 완성되는 것이지만 일반적인 흙을 사용해 만들어지는 형태가 아닌 것을 만드는 것, 하지만 그 형태는 흙의 질감을 가지고, 흙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하는 것, 거기에 이즈미다의 표현의 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음호에 계속
「올라가는 형상(立ち上がる像)」 164×80×70, 2004
「올라가는 형상(立ち上がる像)」 70×50×50, 2005
왼쪽 「표층(表層)의 형태(形態)」 34×46×48, 2005
오른쪽 「표층(表層)의 형태(形態)」 38×65×65, 2005
「CONCERN」 2006
「고(孤)」 20×78×44, 2000 /
거대한 스케일과 축소지향-China
<2006 중국 쯔보Zibo 국제도자박람회>의 맥박을 느끼고
글+사진 남정임 _ 도예가
거대한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는 많다. 가령 만만디漫漫的나 차뿌뚜어差不多 등의 말에서 중국인의 속성을 잘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45배나 되는 거대한 중국은 아직도 느린 만만디로 머물러 있지는 않다. 지금 중국은 ‘블루오션(중국명 란하이藍海)’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어 “창신(전략)은 기존의 치열한 경쟁을 깨고 창조로 승부를 걸자는 저비용 고가치 창출을 요지로 하는 블루오션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
충청도 서산에서 맑은 날 서해바다를 바라보면 중국 청도靑島(칭따오)가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 정도로 우리나라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산둥성의 청도에서 자동차로 3시간 떨어진 쯔보시淄博市. 그곳은 징더전, 이싱, 탕산, 리링 등과 더불어 전통도자기의 산지로 1980년대 이후부터 도자기 산업화 속도가 놀랄 만큼 빠른 발전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지난 10월 20일부터 23일까지 개최된 <2006 중국 쯔보 국제 도자박람회> 워크샵 참여는 필자에게 중국문화의 깊은 역사와 도자세계를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도자기를 차이나china라고 부를 만큼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도자기는 지금까지도 중국경제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 산업도자기는 23개의 성 가운데, 산동성, 광동성, 허베이성, 푸지엔성, 허난성, 장수성 등에서 주로 생산된다. 쯔보는 산동성 중간에서 내륙과 항공운송이 편리할 뿐 아니라 광대한 도자기 원료를 보유한 8000년 역사를 자랑한다. 특히 쯔보지역의 흙은 인과 규석의 함유량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지난 10년 동안 건축자기의 세계적인 생산, 수출국으로 자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400여 개의 건축자기 생산업체와 800여개의 생산라인, 200여 개의 생활자기 생산공장과 300여 개의 생산라인과 더불어 중국 제1의 도자기 수출입 기지를 가지고 있다. 이름하여 CCTECChina Ceramic Technology Commodity Exchange City구역을 설립했는데,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외국상인이 쯔보에 와서 중국도자기를 구매하려 했다면 일부 도자회사를 방문하고 무역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개월 정도였으나 CCTEC를 방문하면 800여 개 이상의 도자기 공장들을 한눈으로 볼 수 있는 전시장을 구축해 보다 효율적인 무역을 꿰하게 된 것이다. 실로 필자가 참여한 워크샵 장소인 넓이 7500평방미터라고 하는 전시장은 그 규모와 크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국제 컨벤션 전시센터와 공급자 판매본부, 제품전시 판매센터, 국제 배송센터, R&D센터 등 중국의 가장 큰 도자기 전시 및 판매 시장이며 중국 정부로부터 최고의 중요한 도자기 수출입 기지로 인정받을 만한 곳이었다.
전시품들은 그 종류 또한 다양한데, 건축도자, 생활도자, 위생자기, 도자예술, 하이테크 산업자기 분야였으며 수출입협회, 각국 대사 등 30여개 국가에서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2005년의 경우 구매 계약이 45억 위안(580억 원가량)이었고 방문객은 10만 명이 넘었다.
그 활발한 움직임 속에서, 한국도예작가로서 우리 현대도자예술을 선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즐겁고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세계 각국에서 방문한 바이어들과 대사들, 동시에 중국의 도자상인들과 서민 모두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고 주목받을 수 있는 상상 밖의 체험이었다. 우리가 그러하듯 일반인들은 도자기의 성형과정이 신기한 일일 수밖에 없는 것은 위대한 중국도자의 역사를 가진 중국인이라도 다르지 않은 듯 했다. 시골사람 서울 구경하듯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에서 순박한 눈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물며 너무 신기한 나머지 물레 성형한 그릇을 직접 만져보다가 경호원들의 호통을 면하지 못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계셨는데, 작가들은 그 모습에 한 번 더 웃을 수 있었다. 웃음이 모든 언어의 가장 아름다운 질문과 답변
이었던 시간이었다.
몇몇 관심 있는 사람들은 조형도자를 구매하고자 했는데, 중국인들의 물가와 비교해 그 가격이 비싸 이틀을 방문하고 망설이다가 돌아서는 그들의 뒷모습에 미안함이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보통사람의 생활비가 한달에 우리나라 돈 10만원으로 충분하다니 작은 조형도자 작품의 10만원이라는 가격은 흥정의 기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중국에서 중국인들을 직접 만나보니 중국인 하면 생각나는 ‘만만디慢慢的’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인들의 느긋함과 큰 대륙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흐릿한 시간개념 등을 일컫는데, 이는 공산주의의 기본개념인 ‘공동생산, 공동분배’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열심히 일해도 똑같이 나눈다는 생각은 내 앞에 일만 한다는 생각으로 발전되어 만만디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중국인들이 약속을 잡을 때 ‘한 달 후에 만납시다’라고 한다면 한국의 개념으로는 30일 후가 되지만 중국인의 경우는 다음 달이 지나가기 전 즉 최대 60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연락, 교통수단이 발달해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한국인들의 ‘빨리 빨리’는 그들에게 통용되지 않을 듯 싶다. 거리에서나 전시장에서나 그들의 표정과 발걸음은 어찌나 느긋하고 편안하던지 필자조차 조급했던 인생길을 잠시 쉬어가게 만드는 곳이었다.
2007년 10회를 앞두고 있는 세계 막사발 장작가마 축제의 김용문 대표와 김한사, 신정순, 심재천, 신애순 작가, 그리고 필자의 참여로 예년의 45명 참여 작가에 비해 적은 인원이었으나 내년 세계도자심포지엄을 개최를 위한 적극적인 후원을 기약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중국 45명 도자 인간 무형문화재의 일원인 리쥬엔Li Ziyuan 교수와 왕이준Wang Yijun 선생과의 만남을 통해 끊임없는 문화의 교류는 분명 서로를 자극하고 협조함으로써 발전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는 교감을 나누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은 생활자기의 거대한 양적 생산과 수출은 이루고 있으나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전문 인력 절대 부족의 심각함이다. 동시에 현대도예교육이 더 이상 동양적인 모습을 읽어낼 수 없는 방향으로 변모해 가는 것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 상황은 자신의 빛나는 개성과 독창성을 스스로 저버리고 다른 이들과 함께 행동함으로써 안도하는 무의식적 집단의식에 동참하는 모습으로 밖에 평가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자랑하고 있는 낮은 임금과 풍부한 자원은 이러한 도자디자인과 예술성에 대한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내기만 한다면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최고의 강대국으로의 발을 이루는 기반으로 충분하다.
‘책상만 빼놓고 다리 달린 것은 뭐든지 먹는다’는 중국. 그들의 다양한 음식문화가 또한 도자의 세계를 넓게 확장하게 될 듯하다. ‘색色 형刑 향香 기器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중국요리의 기술은 중국의 역사와 문명의 깊이가 말해주듯 그 정채精彩로움이 동시에 예술의 즐거움을 음미하는 것과 같았다. 재료선택과 조리방법이 수천가지 요리를 창출해 내는 것은 과히 그들이 창의적인 민족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본인이 경험한 악어발바닥요리와 여왕벌, 매미의 누에, 전갈튀김, 돼지꼬리요리 이외의 확인되지 않은 요리만 보아도 탐험하고 싶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매력적인 나라로 기억에 새기게 된다. 그러한 특별한 식문화가 한 단계 변화된 도자식기들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식공간을 연출한다면 이것은 시각과 미각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완벽한 상차림이 되지 않을까하는 전망을 감지하기에 충분했다.
이제 거대한 중국도자세계의 현장을 보고 살아있는 맥박을 느끼며 그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이 진정 무엇인가를 깊이 성찰하게 되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100가지 상징용어 가운데 ‘막사발’이 있다. 막사발이 가지고 있는 꾸밈없는 자연의 미를 이미 오래전부터 향유할 줄 알았던 한국의 미의식을 세계에 알리고자 애쓰고 계신 김용문 선생이 일갈한 말로 이 기행문을 마칠까 한다.
“황허강과 한강이 흐를 때까지 문화는 교류되어야 한다”
1,중국 쯔보국제도자박람회장 전경
2,개막식
3,중국 작가의 접시표면장식 워크샵
4,김용문 도예가의 물레워크샵
5,왕이준의 작품 6,오른쪽 중국현대도예 작품
7,인간문화재 왕이준과 필자
필자 남정임은 성신여대 공예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헝가리 케츠케메츠와 일본 시가라키에서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했으며 현재 국립강원대학교에 출강중이다.
중국 북경 도자예술의 현재 고령도자연구소 전시를 개최하며
글+사진 김영수 _ 도예가
중국 북경에서 열리는 대부분 전시는 각종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이루어진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의 인사동 같은 갤러리가 밀집한 예술거리는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수많은 예술인들이 이전의 대단위 공장과 창고였던 곳을 임대하여 북경 외곽 따산쯔大山子에 따산쯔예술중심이라는 하나의 예술 단지를 조성하였다. 798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6년 전부터 개인 또는 두세 명의 작가가 빈 공장을 임대하여 자신의 작업실과 함께 전시판매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다양한 국가의 외국 작가들도 이곳에서 작업하며 중국작가들과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내 지방도시의 작가들이 북경을 와서 개인전을 하거나, 그 외의 전시에 참여하는 것에서 느끼는 부담은 크다. 북경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대관료는 우리돈 500만원 이상이다. 중국의 화폐가치를 감안한다면 감히 엄두내기도 힘들다. 젊은 작가들이 전시를 할 수 있는 저렴한 소규모의 갤러리가 없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 한 부분이다.
필자는 지난 11월 1일부터 17일까지 중국 경덕진 고령도자연구소 20여명의 도예가들과 함께 북경공예미술박물관에서 전시를 가졌다. 이 연구소에는 중국 도예의 최고 명인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공예미술대사인 왕시량과 왕롱푸가 있고 그 외에 소장 왕천동, 부소장 장지에안, 판페판을 중심으로 비교적 젊은 작가들이 있으며 외국 도예가로는 필자와 경기도 여주 오부자옹기의 도예가 김창호씨가 있다. 이 연구소는 이제 1년 정도의 이력을 가진 젊은 연구소인 만큼 앞으로 외국의 많은 젊은 작가들과 교류를 통해 중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전시를 중국 북경에서 갖고 첫 해외 전시를 한국전으로 준비하고 있다.
북경에서 이루어지는 도자기 전시는 대부분 중국내에서 유명한 도예가들 위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인지 일반 관람객의 시각에서 이번 전시의 평가는 두 부류로 나눠졌다. 하나는 그동안 줄곧 봐왔던 유명 도예가들의 작품이 식상했던 차에 젊은 도예가들의 새로운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것과 또 하나는 유명 도예가의 작품을 구입하러 왔다가 다소 젊은 층의 작품이 주류를 이루는 전시에 실망했다는 것이었다. 반면 현지의 평론가들은 기존의 중국다움에서 한 차원 벗어났다는 평가와 함께 앞으로 지속적인 연구와 전시를 통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간다면 중국도자 발전에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거라 내다보았다.
중국 내에서도 북경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포용보다는 과거와 현재에 만족한다.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생들 사이에 이러한 말이 있다. “향후 현대적 감각의 새로운 작업을 하려면 상해로 가고 전통적 성향이 짙은 작업을 하려면 북경으로 가라” 전시기간 중 많은 사람들의 관람 포인트는 도자기가 갖는 형태나 전체적인 느낌보다는 자기 표면에 그려진 그림이다. 필자는 그동안 언론이나 책으로만 보아왔던 유명한 도예가 왕시량과 왕롱푸의 작품을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고 감탄했다. 사실 중국 도자기의 그림들은 세계 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쩌면 도예가라기 보다는 화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수도 있다. 한국 도예가들의 기준에서 생각해보면 중국 도자기는 반쪽짜리 작품일지 모른다. 성형만 전문적으로 하는 공장에서 기물을 사다가 채색과 시유만하고 소성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에서 의탁 소성을 한다. 물론 중국 도예가들의 기준에서 보면 성형부터 소성까지 과정 또한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채색에 많은 할애를 하지 않는 한국 도예를 반쪽짜리로 생각할 수도 있다. 과거 1996년 경덕진 도자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재직했던 이림홍 교수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왜 한국대학에서는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수업이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곤 줄곧 그의 수업시간에 그림만 그렸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그 말이 이해가 안됐지만 지금의 와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경덕진 도자대학의 주요 수업은 청화靑花, 신채新彩, 분채粉彩, 고채古彩 등 대부분 그림 그리는 수업에 치중되어있고 물레 성형이나 소성, 유약 등은 매우 적은 시간을 수업에 할애하고 현대도자 수업은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현대 조형개념의 작품을 필자와 중국작가 한명이 선보였는데 일반인들은 생소한 작품에 호기심 정도의 반응만 있었을 뿐이다. 예술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일반인들에게 현대 조형개념의 작품은 아직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인 것 같다. 이는 중국이 80년대 초 중국 주석 덩샤오의 경제개방 이후 중국인들의 생각과 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그 이전의 극사회주의적 사상 등 60~70년대 문화혁명의 홍역을 알았던 중국인들에게 아직도 폐쇄되어 있던 자유로운 사고가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무의식 속에 그 의식이 남아있다. 그의 한 예로 중국 예술에 있어 보여지는 자체의 사실적 묘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발전을 해왔지만 자유로운 이데올로기적 발상의 추상적 개념 묘사는 현저히 더디게 발전해 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경제성장은 무섭게 발전해 가고 있다. 또한 국가 정책에 따라 많은 젊은 중국인들이 유학을 통해 자국의 발전에 가속을 더하고 있다. 예술분야 또한 이전과는 또 다르게 빠른 속도록 발전해갈 것이다.
필자는 현재 중국의 한 대학에서 현대도자를 가르치고 있다. 전시교류 뿐만 아니라 대학 간의 교환교수, 교환학생 등 지금보다 더 활발한 교류를 통해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충족시켜 간다면 배우는 학생들에게나 도자 발전에 더 나은 미래를 제시할 것이다.
01 고령도자연구소
제작 작품
02 까오한찌아오 작
03 김영수 작
04 전시장 전경
필자 김영수는 원광대학교 도예과와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은 한국과 중국에서 3회 가졌으며 그룹전은 30여회, 중국 경덕진에서 라쿠워크숍을 갖기도 했다. 원광대학교와 경덕진도자대학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중국남경사범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제12회 미국현대공예공모전
글+사진 전신연 _ 도예가
제12회 미국 현대 공예 공모전
전시는 도예, 금속, 섬유, 나무, 유리 등 공예의 전 분야를 대상으로 했다. 그 중 도예 작품은 24점이 선정됐다. 작년에도 느낀 것이지만, 동일한 재료를 이용해 펼쳐지는 작가들의 각기 다른 해석과 다양한 기법들, 기발한 발상들이 놀라웠고, 갤러리 관계자들과 관객들의 현대 공예에 대한 뜨거운 관심, 그리고 뉴욕, 캘리포니아, 노스 캐롤라이나 등에서 프리뷰 파티와 심사의 변Juror’s Talk을 듣기위해 비행기를 타고 웨인이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했던 작가들의 열정이 필자에게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필자는 운전으로 두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기 때문에 금요일 프리뷰 파티와 토요일(12월 2일) 오프닝 행사에 모두 당일로 참석할 수 있었다.
이번 공모전 심사를 담당했던 그레첸 케이워스Gretchen Keyworth는, “장인 정신이라는 것은 공예의 전 역사에서 그래왔듯이 오늘날에도 중요한 덕목이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제작하는가와 관계없이 우리 - 예술 공동체 - 를 규정짓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그녀는 공모 작품들을 심사하면서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들을 던져보았다고 한다. 그 질문들은 “작품이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는지, 작가의 의도가 분명히 보이는지, 시간을 초월하는 생명력이 있는지, 재료의 특성이 잘 나타났는지, 관찰자로서의 자신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를 넘어선 분별있는 이해와 감상으로 감동이 오는지” 등이다. 이러한 의문들은 작가와 관람자 사이에 자연스런 전개되는 대화의 일부분으로 그에 대한 답들은 주관적일 것이라고 했다.
이번 공모전에 선정, 전시된 필자의 작품 「Self Portrait - I」는 사실적으로 묘사한 여인의 얼굴에 흙의 고유한 물성을 이용해서 구부리기, 찢기, 자르고 붙이기 등의 기법을 적용한 머리 부분을 추가한 것이다. 백토를 이용해 적극적, 소극적 공간을 살려서 형태를 만든 후 테라시질레타로 표면처리를 하고, 초벌 소성 후, 다양한 세라믹 물감과 저온 유약 그리고 러스터를 이용해 색감을 입혔다. 무엇보다 특정한 모델을 쓰지 않고 필자가 공감할 수 있는 어떤 표정이 나타날 때까지 끊임없이 흙을 덧붙이고 떼어내며 얼굴을 완성했다. 또한 미리 세운 계획에 따르는 방식이 아닌 작가의 손 조작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흙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어 자연 발생적인 형태를 표현함으로써, 창조의 순간에 몰두해 생겨나는 여러 변화를 머리 장식에서 노렸다. 작업에 임하는데 있어 필자의 작품들은 재료나 기술에 치중하기보다는 본인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번 전시에서 역시 현대 도예 작가들은 각자의 목소리를 흙이라는 재료로 여러 가지 기법과 다양한 소성방법을 거쳐 그들만의 시각적인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특히 Found Objects를 이용해서 거대한 벽걸이용 나비를 제작한 작가가 있었는데, 그것을 오하이오로부터 이틀이 넘게 운전해 와서 설치하고 돌아갔다는 전시관계자의 말을 듣고 큰 도전을 받기도 했다. 작품제작에서부터 완성할 때까지 소요되는 재료와 소성비 그리고 운반비용 등을 감안할 때 이번 전시회를 위해 왕복 운전으로 4~5일이 걸리는 운반까지 작가가 했다는 것에서 그 열정과 수고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참가해서인지 몇몇 낯익은 작가들을 볼 수 있었고 그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작업은 잘 되어 가고 있는지 등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작년에는 미국 뉴욕 맨하튼 아트 앤 디자인 박물관의 수석 큐레이터인 데이빗 맥페든, 올해는 미국 풀러 공예 박물관 디렉터이자 수석 큐레이터인 그레첸 케이워스가 심사를 맡는 등, 주최측은 매년 영향력있는 새로운 인물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했다. 몇몇 작가들이 연거푸 선정되는 것을 보면 좋은 작품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고유의 가치가 존재한다는 증거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년에는 어떤 심사위원이 심사를 맡게 될지는 모르지만, 필자 역시 기존 작가들의 더욱 발전된 모습과, 새로운 인물들의 등장을 기대해 본다.
1 「Sulphur Blue Smeck」 Michelle Stitzlein (OH) 작
2 「Duality」 Dale Shuffler(PA) 작
3 「Untitled #1」 Angela Cunningham(MA) 작
4 「High Tea」 Elsa Simon(CA) 작
5 「Volatile Symbiosis」 Helen Otterson(CA) 작
6 「Minotaur」 Rita Varian(NY) 작
필자 전신연은 미국 매릴랜드 타우슨 대학에서 Human Figure를 강의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개인전, 단체·초대전을 포함해 70여 회의 전시를 가졌으며 도예가로 활발한 활동 중이다.
미국 미시시피주 공예축제와 클레이 레이디Clay Lady
‘레이첼 발렌타인RACHEL BALLENTINE’의 작품세계
글+사진 김현정 _ 미국 리포터
미국 미시시피주에는 일 년에 한번씩 변함없이 공예협회에서 주최하는 행사가 열린다. 이번 축제는 역대 행사 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았고 참여 작가들의 180개 부스가 전시되었다. 참가부스의 종류는 도자기를 포함한 유리, 나무, 종이, 액세서리, 철, 달걀, 헝겊 등의 공예품들이었다. 그 중 도예가들은 51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이 축제는 공예협회에서 매년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는 손님들을 위해 마련했다. 그래서 선물하기 위한 좋은 예술품을 구입하는 기회로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인들은 11월말이면 크리스마스 선물 준비를 위해 백화점을 찾아 새벽잠을 설치며 할인판매 물건을 사기 위해 간다. 그 이유는 백화점들이 손님 유치를 위해 새벽 5시부터 문을 열기 때문이다. 축제 기간 내내 좋은 날씨도 한 몫 한 것 같다. 필자가 4년 동안 이 협회 회원으로 활동할 때의 경험으로 보아도 해마다 새롭게 선보이는 색다른 작품을 사
기위해 매번 찾아오는 단골손님도 있다. 축제장의 입장료는 어른 $8.00 학생과 어린이는 $4.00이다.
미국 전지역에서 이와 같은 공예품 축제가 열린다. 최근 한국에서도 공예전시 행사가 자주 열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작가들을 위한 이러한 행사들이 매번 열리는 것은 일반인들에게도 예술의 좋은 점을 알게하고 가정과 선물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겨져 여러모로 긍정적이다. 이 글에서는 축제전반의 소개와 함께 행사에 참가한 한 여류도예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축제가 한창인 기간에 전시장 한 곳에서 도예가 레이첼 발렌타인을 만났다. 그녀는 자신의 전시공간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귓가에 대어 보라고 말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무언가 소리를 듣기위해 귓가에 대어 보는 것이었다.
그녀가 도자기 작업을 시작한 동기는 이렇다. 그는 스스로 도자기와 더불어 새로운 삶을 창출해 가는 ‘흙의 여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지구촌 곳곳에서 많은 도예가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도예 창작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신의 계시를 받아 도자기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필자는 지난 여름 미시시피주에서 10년째 연례행사로 개최되고 있는 Art Colony를 다녀왔다. 여러 행사 중 예술인의 교류 증진을 위해 마련된 세미나에 도예전공 교수로 초청받아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 곳에서 도자기 연수생으로 참가한 고교 미술교사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자기 자신을 스스럼없이 ‘흙의 여인’이라 소개한 그 여인은 내게 각인된 인상을 남겼다. 그녀에겐 뭔지모를 신비감이 감춰져 있는 것 같아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그녀는 1980년부터 1982년까지 미군 장교로 한국(광주)에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한국인 도예전공 교수라는데 대해 깊은 관심을 나타냄과 동시에 한국에 대한 많은 동경을 시사했다. 그리고 한국을 꼭 한번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소망을 들려주었다.
그녀의 작품에는 아름다운 흙의 색채와 토기의 질감이 담겨있었다. 자신이 직접 점토를 채취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신비로운 점은 그녀가 어느 곳을 가든 독특한 점토의 향내를 뿜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그녀가 도자기 관련 비디오를 시청하는 도중에 귓전에서 “흙을 파라”는 메시지가 들렸다고 한다. 그녀는 그 메시지를 신의 계시로 믿고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이후부터 그녀는 도자기용 진흙이 있는 곳을 직감으로 찾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직접 채취한 흙은 빛깔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기물을 초벌구이 한 다음 자연으로부터 채집한 동물의 배설물(소똥, 말똥)을 기물과 함께 드럼통에 넣어 연을 씌우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한다.
그녀의 인간미를 들여다보면 그의 예술작품이 온화함과 평화로움으로 가득하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미시시피주립대에서 장애교육학 석사학위를 획득하였으며, 장애인의 복지증진을 위해 헌신하는 장애인의 어머니로 불리고 있다. 그녀에게는 소피아라는 딸이 있다. 서른 살이지만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거동도 할 수 없는 중증장애우이다. 그녀가 작업실에서 작업할 때는 언제나 그 딸이 곁에서 그녀의 작업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그 딸을 바라보면서 작업하는 그녀의 마음은 분명 자비와 평화로 충만할 것이다.
또한 그녀는 도자기를 빚는 동안 누군가가 자신의 손을 감싸주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아마도 그녀의 말대로 신의 가호가 아닐까?
그녀는 미시시피 주립대학(‘올 미스’라고도 불린다)이 있는 작은 동쪽 농촌지역 파빌러에서 3대가 같이 살고 있다. 그녀의 집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집을 찾았던 지난 8월엔 스튜디오 앞뜰에 있는 무화과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내가 스튜디오에 들어섰을 때 마침 그녀는 완성된 작품을 꺼내고 있었다.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그녀는 “내 손으로 직접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신비롭다”라는 말로 자신의 행복함을 표현하였다.
그녀의 작업은 가래로 쌓아 올린다음 볼과 수저로 문지르는 방법으로 작품이 완성된다. 이 작가가 창조하는 작품의 모든 재료에는 그야말로 자연그대로 반응하는 자신의 깊은 의지가 담겨 있는듯하다.
자연친화적이면서 인간적인 그녀의 작품은 바로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으로부터 창출된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한다. 그는 미시시피 지역의 흙을 직접 채취하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지역의 흙은 지난여름 한 워크샵에서 소금가마에 넣어 소성한 결과 우리나라 옹기토와 비슷한 분위기의 색상으로 다른 소지와는 분명히 다른 철분과 소금이 있는 느낌의 색깔이다. 이 점토는 주로 노란색 갈색, 붉은색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초벌구이를 한 색상은 정말 아름답다. 최근 그녀는 많은 워크샵을 선보였으며 지난 11월에 필자의 학교에서도 워크샵을 열어 학생들의 관심을 모았다. 현재 그녀는 학교 교사직을 접고 전업 작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작가들마다 “왜 도자기를 하게 됐냐?”는 질문에는 여러 가지의 답변이유가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는 흙만이 가진 특수한 신비스러움과 인간이 창출해 만든 색상에 감동하여 도예를 하게 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필자 김현정은 미국 인디애나주립대학교 MFA 도예과정을 마치고 MA Architecture, Colorado University of Denver - Colorado USA, Bachelor of Fine Art Degree - Applied Art, Metropolitan State College - Denver, Colorado에서 도예를 전공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개인전 9회, 단체 초대전 39회에 참여했으며 작품은 미시시피주 예술박물관, 투굴로사립대학미술박물관, 잭슨주립대학, 밀샵사립대학, 인디애나대학, 미주리남주립대학 등에 소장돼 있다. 2000년에는 미국 미시시피주 우수교수상을 수상했다. 현재 미국 잭슨주립대학교(Jackson State University of ceramic art)의 도예과 부교수로 활동 중이다.
도예가 레이첼 발렌타인과 그녀의 작품
폴란드 <루브라도 통가마> 워크샵
글+사진 김대웅 _ 도예가
지난 2003년부터 계획된 폴란드 루브라도 지역의 통가마 축조 워크샵은 폴란드 도예가 미하우 부치니스키와 필자의 폴란드내에 통가마를 지어보자는 약속과 희망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필자 본인과 미하우 부치니스키가 오랫동안 도예가 양승호의 작업실에서 공부를 함께 해오면서 한국적 정서와 도자수련의 결과물을 찾고자 한 의도이기도 하다. 2006년 들어 폴란드 브로치와프wroclaw 예술대학의 지원과 한국문예진흥원의 후원, 18명의 예술대학 교수, 학생들의 참여로 자금과 인력이 모두 준비되었다.지난 6월 초에 폴란드로 출국한 본인은 한 달여 동안 학교에 머물며 본인의 작업과 워크샵을 선보였으며 7월 중순부터 통가마 축조를 시작해 8일간의 축조기간을 거쳤다. 그리고 4일간의 재임, 5일간 소성기간을 가졌다. 총 길이 9m에 달하는 이 통가마의 내부는 계단식으로 5칸이며 최고 너비 2m 높이 1m 80cm에 내부길이는 7m에 이른다. 이 가마의 이름은 지역명을 따와 <루브라도 통가마>라 칭하였다. 축조기간 내내 40도를 웃도는 더위 속에서 참가자들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이 맡은 작업에 열정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또한 한국인 도예가와 대화가 수월하지 않았기에 무엇을 하려하는지 주위를 기우리며 혹 작업에 방해가 될까 진땀빼는 그들의 모습에서 진심으로 배우는 자의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사실 폴란드 내에서 어느 누구도 진행자(미하우 부치니스키)의 프로젝트 성사여부를 믿지 않았다. 차츰 바닥이 완성되고 지붕공사가 마무리되어가고 한국에서 건너온 작은 도예가 1명과 17명의 젊은 도예가들의 열정이 쌓여 갈수록 지방 정부 측과 학교의 보수적 인사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많은 격려와 박수는 더 큰 힘을 실어주었다.
이번 워크샵을 통해 열악한 도자 문화 시대를 살고 있다고 믿는 젊은 도예인들에게 자신의 열정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자료가 생략되었습니다. 더 많은 자료는 월간도예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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