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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를 보는 새로운 시각
  • 편집부
  • 등록 2007-03-15 18: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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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를 보는 새로운 시각

사진작가 구본창
숨겨진 아름다움과 짧은 순간의 만남

사진작가로서 ‘달항아리’를 작업의 주제로 선택하게 된 이유.
“우리의 중요한 전통문화 유산인 백자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아직 사진으로 충분히 보여준 것이 없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우리 전통백자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작가로서 좀 더 찾아내 드러내 보이고 싶었습니다. ”

뷰파인더를 통해 보았을 때와 실상으로 마주하고 보는 달항아리에서 느끼는 차이점이나 유사점이 있다면.
“현실에서 일반인들이 볼 수 있는 백자는 대부분의 경우 박물관의 유리장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백자의 표면이 우리가 상상하는 만큼 희고 아름답지만은 않기도 합니다. 또한 화려한 중국이나 일본의 도자기에 비해 지나치게 소박한 점도 있지요. 본인은 오히려 「VESSELS FOR THE HEART」전(2006년 7월 7일~7월 30일, 국제갤러리)을 준비하는 작업에서 조선 백자의 수수함과 드러내 보이지 않는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지난 「VESSELS FOR THE HEART」의 전시의 목적은.
“전시는 그 시점까지 작가본인이 노력한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선 백자의 다양함과 또한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던 매력을 인화지로 프린트하여 드러내 보이고자 하였습니다. 그 방법으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백자의 사이즈를 뛰어 넘는 초대형의 이미지로 관람객에게 낯설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달항아리외에도 일본이나 프랑스, 미국 등 해외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우리가 볼 수 없는 달항아리들, 그리고 100년, 200년 전에는 한 분원에서 제작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종의 가족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의의도 있었습니다.”

달항아리 사진촬영 작업 중에 기억나는 에피소드나 사건이 있었다면.
“달항아리의 온기를 체험해 보고 싶어서 박물관의 큐레이터의 소홀한 감시를 피해 껴안아 보았던 순간이 감동적이었습니다. ”
  
달항아리 사진 촬영 시 기술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었다면.
“달항아리는 모든 백자 중에서 더욱 귀하게 여기는 항아리이고 또한 그 크기가 대형입니다. 그래서 쉽게 위치를 바꿀 수도 없고 회전을 시켜 보기도 수월치 않았습니다. 또한 대부분 오랜 시간 감상할 수 없이 짧게 주어진 시간 안에 촬영을 해야 하는 점이 항상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항아리의 반사 부분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빛의 시도를 해보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달항아리 사진 작품 중 가장 고민한 작업이거나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비공개작 혹은 실수작 등)
“일본 교토에 소재한 고려미술관의 소장품인 백자를 촬영했던 날은 전시 철수일이었고 마침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어수선 한 상황에서 아주 짧은 시간만 허락되어 급하게 촬영을 해야 했습니다. 아쉬웠지만 오히려 그 짧은 순간의 만남이 더욱 강한 이미지를 남겼습니다.
또한 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백자는 버나드 리치가 1933년 한국에서 구입해 간 달항아리이자 루씨 리Lucie Rie가 소장해 왔던 뜻깊은 항아리입니다. 루씨 리가 달항아리와 같이 촬영했던 사진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그 느낌을 재현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박물관에서 구입한 달항아리 유물의 경우 세척 보관으로 인해 세월의 흔적이 없어진 점이 무척 큰 아쉬움으로 기억됩니다.“

앞으로 사진작가로서의 작업방향이나 활동전개 계획.
“앞으로도 당분간 국내외의 박물관과 개인 소장가와 접촉해 달항아리 뿐 아니라 다양한 백자의 멋을 계속 찾으려고 합니다. 이전 작업방법이 도자기를 밝은 빛으로 끌어내려고 한 것이였다면 앞으로는 어둡게 어둠으로 사라져 가는 느낌을 연출해 또 다른 멋을 찾아 볼까합니다.”

사진작가 구본창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함부르크 국립 조형미술대학교에서 사진디자인을 전공했다. 계원조형예술대학 사진 전공 교수를 역임하고 다수의 사진전을 가졌으며 현재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vessel 01 고려미술관 Koryo Museum of Art, Kyoto               
vessel 02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The Museum of Oriental Ceramics, Osaka                                            
vessel 03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The Museum of Oriental Ceramics, Osaka
vessel 04 고려미술관 Koryo Museum of Art, Kyoto
vessel 05 (왼쪽부터) 국립중앙박물관 National Museum of Korea, Seoul
 기메박물관 Musee Guimet, Paris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The Museum of Oriental Ceramics, Osaka
 삼성미술관 리움 Leeum Samsung Museum of Art, Seoul
 일본민예관 The Japan Folk Crafts Museum, Tokyo
 일본민예관 The Japan Folk Crafts Museum, Tokyo
vessel 06 대영박물관 The British Museum, London


서양화가 고영훈
캔버스에 담은 우주

서양화가 고영훈이 바라보는 「백자 달항아리」는 어떠한 인상인지 궁금합니다.
“달항아리를 보면서 거대한 우주를 담고 있는 신비한 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달항아리를 캔버스에 그리기 위해 작업실로 옮겨다 놓았을 때는 천상을 가져다 놓은 기분이었습니다. 이것저것 주변의 사물을 표면으로 비춰내는 모습에 색동여우라는 생각도 들었고, 나의 마음까지 비춰낼 수 있는 좋은 거울이라고 느꼈습니다. 군더더기 없고 군말없이 제자리에 조용히 놓여 있지만 수많은 것을 담아내는 모습에 감탄해 그 앞에 절을 하기도 했습니다. ”

캔버스를 통해 그려지는 그림과 실상에서 직접 마주하고 보는 달항아리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요.
“달항아리 자체는 현실의 오브제입니다. 흙이 변화된 1차적 창조물로 그 안에는 도공의 정서가 담겨있습니다. 그림으로 표현된 달항아리와 실제 달항아리에 담긴 정신세계는 서로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나에게 달항아리는 소행성, 지구, 은하계가 포함된 거대한 우주를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을 의미합니다. 달항아리를 캔버스에 옮기며 형태와 색채 뿐 아니라 300년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달항아리는 도공에게는 작품이지만 나에게는 매개체입니다.  입체적인 오브제를 평면에 옮긴다라는 것은 또 다른 2차적인 창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달항아리 실사 페인팅을 하면서 가장  유의했어야 했던 점과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는지요.
“처음 작업실에 달항아리를 가져왔을때 5일간은 만지지도 않았습니다. 엄청난 가격 때문에 항아리보다는 돈으로 보였거든요.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만지기도 하고 조명도 비춰보면서 선녀가 천상에서 내려오는 듯한 분위기를 맛 보는 듯 했습니다. 처음엔 그릴 것이 없어서 고민이었습니다. 하얀 캔버스에 하얀 달항아리를 그리자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법적인 문제보다 색이 보이지 않아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시간이 점차 지나 달항아리와 친해지면서부터(?) 비로소 스크래치나 점 또는 소나무재가 튄 자국 등이 하나하나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달항아리 표면이 주변의 사물들을 비춰내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때부터 기물과 빛과의 관계를 연구하며, 쓸데없는 것은 비춰지지 않도록 주변 여건을 정리해 가며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근작전에서 보여진 작품들의 오브제가 「돌」에서 「꽃과 도자기」로 바뀌었는데 그 계기가 있었나요.
“처음에 노장사상에 관심이 많았고 거대한 우주를 돌에 담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 때가 희망과 꿈을 품는 때였다면, 그 이후에는 현실을 직시하며 삶과 싸워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결혼 후 현실적인 삶에 맞닥뜨려졌을 때, 생존을 의미하는 냄비, 숟가락 등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자연을 향한 희망을 가져보고자, 삶의 흔적인 꽃과 도자기에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자연물의 본질 뿐만이 아닌 결국은 나란 누구인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알고 싶은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합니다.”
  
도자기 중에서 달항아리를 소재로 삼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몇 년전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의 한 전시에서 달항아리를 보았고, 당시 그 가치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느낌이 참 좋다고 느꼈습니다. 둥그런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우주를 담고 있는 듯 했습니다. 달항아리를 한번 그려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후에 가나아트센터 측에서 달항아리를 한번 그려보지 않겠냐는 제안에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작업방향이나 활동전개 계획에 대해.
“앞으로의 작업 방향은 「신」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은 한계가 있어 결국에는 신을 의지 할 수 밖에 없다고 느꼈고, 그렇다면 신은 과연 무엇인가 고민하던 중, 화가로서의 삶이 어쩌면 신과 사람을 연결해 줄 수 있는 중간 역할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림을 통해서 그러한 역할을 감당하고 싶습니다.”

서양화가 고영훈은 1952년 제주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 프랑스 안네시스문화원 등에 소장되어 있다.


고미술 연구 평론가 안덕환
가장 아름답고 귀한 보물

고미술 연구 평론가 안덕환이 바라보는 「백자 달항아리」는 어떠한 인상인지.
“달항아리를 보고 있으면 마치 실상의 달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합니다. 실제로 방에 달항아리를 놓고 그 양 옆에 촛불을 켠 후 기다렸더니 이내 달이 둥실둥실 떠오르는 듯 보였습니다. 우리민족의 정서를 가장 아름답게 상징하는 것이 바로 달항아리입니다. 신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바로 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달은 우리 민족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 합니다.”

소장하고 있는 수집품 중 달항아리는 특별히 어떤 의미인지.
“달항아리는 나에게 단지 국보가 아니라 세계적인 보물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도 어떤 작품도, 달의 정서를 작품으로 만들어내었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그만큼 소중하고 유일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팔 수 없는 귀한 보물입니다.”

달항아리를 소장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30세부터 골동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을 다니며 수집했기 때문에 전국의 골동품 가게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달항아리는 35년 전에 전북 이리에서 구입했습니다. 당시 이리에서 골동품 가게‘임호당’을 운영하던 임정희씨에게 국보급 항아리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전북 이리로 갔습니다.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곡괭이 끝 쪽에 무언가 걸려서 파 보니 바로 이 달 항아리였다고 합니다. 곡괭이에 부딪혀 깨진 항아리의 조각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끝내는 찾을 수가 없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집필한 책 「옛 도공들의 푸념」을 접해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소개 부탁 드립니다.
“골동에는 전혀 무관심한 사람들 또는 그 외 분들에게도 조금의 도움이 되고자 정리한 글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쉽게 다가가도록 했고, 약간의 전문성도 아우르고 있습니다. 이젠 고인이 된 옛 도공들에게 내 생전 진심의 마음을 표하고 싶어 서둘러 집필한 책입니다. 그래서 이글을 쓰는 동안 작품들에 대한 나의 생각보다는 당시 도공들이 그를 빚어 내며 감춰 온 희열들을 찾고 깨쳐 글로 옮겨 놓는다는 심정으로 쓴 책이라고 보는 편이 좋을 듯 싶습니다.”
  
골동품 수집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고등학교 재학시절, 헌책방에 들러서 일본서적을 자주 빌려다 읽곤 했는데 우연히 일본인이 쓴 한 책에서 「한국 골동도자기야 말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라는 내용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늘 잊지 않고 기억하게 되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처음 받은 월급으로 골동 그릇을 몇 점 사게 된 것이 지금까지 이렇게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골동품을 사 모은 지 40여년이 되었지만 15년이 지나서야 그것이 어떤 예술성과 미술성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수집품을 모으는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이나 기억나는 사건이 있었나요?
“어려웠던 점은 마음에 들어 구입하고 싶은 골동품이 진품인지 가품인지 분별하지 못 할 때였습니다. 골동품에 대한 자존심이라고 할까. 넉넉지 않은 돈으로 구입하던 시절이기 때문에 가품을 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은 진품, 가품을 분별할 수 있도록 직접 일본책을 연구하면서 공부했습니다. 또 어려웠던 점은 마음에 들어 구입하고 싶은 골동품을 보았는데 구입할 수 있는 자금이 없을 때였습니다.”

소장품들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이 있다면.
“제가 소장하고 있는 골동품 모두 다 자식 같아서 어느 것이 더 좋다 덜 좋다 말 할 수 없습니다. 가격과 상관없이 모두 똑같이 여깁니다. 다섯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는 것처럼 똑같습니다. 골동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우리 순수골동 문화에서는 어느 것이 더 귀하며 좋다고 할 수 없는데, 이것은 우리 미술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고미술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옛 도공들의 푸념」 책에 이어 올 3월 약 400여 장의 민화가 실린 민화 책을 발간하고, 올해 말에는 「쉽게 골동 배우기」란 책을 도판 설명과 함께 집필 할 예정입니다. 약 3년 전부터 고미애회古美愛會 (회원 10명)를 결성해 40여 년간 익힌 골동에 대한 모든 지식을 전수 하고 있습니다. 학술적인 면보다는 한국 고미술품들의 예술성과 미, 그리고 감정법(시대구분, 진품여부, 시세)을 다루며 월 1회 강의와 연간 4~5회의 현장 답사를 하고 있습니다. 다년간 계획한 일로는 박물관을 설립해 그 곳에 100~150명 수용할 수 있는 작은 홀을 만들어 고미술에 관한 강연과 기타 문화 사업을 해보는 것이 소망이지만 자금문제로 현재 고민 중입니다. 가장 큰 바램은 단순한 전시효과나 유물창고 같은 박물관이 아닌, 모든 국민이 최고 경지의 예술과 문화를 지닌 국민의 긍지를 갖고 살 수 있는 생동하는 기틀을 마련하는데 이바지 하는 것입니다.”

고미술 연구 평론가 안덕환은 경희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현재 (주)샘 에너지 고문으로 고미애회古美愛會를 운영하고 있다.


시인 김종제
둥근 열매의 마음

저기 터져버릴 듯
위태롭게 부풀려 놓은
둥근 열매의 마음이 있다
나의 어머니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리로 시집오기 전
꿈 많은 처녀였을 때
누구의 손길 한 번도 닿지 않았던
당신의 젖가슴 같고
혼례 끝난 지아비에게 사랑 듬뿍 받아
달항아리 만삭의 배에서
내가 편안하게 잠들고 있었지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 때 그 시절
넉넉하게 먹여 살릴 것 같은
아버지 논밭 같기도 하고
산 아래 달동네 어귀까지 내려와
구석구석 다 밝혀주는
만월 같기도 하고
매일 쳐다만 보아도
한 없이 배가 부른 달항아리
당신은 왼쪽에서
또 다른 당신은 오른쪽에서
제대로 들어맞지도 않은 그릇 같은
마음의 이음새를 슬쩍 때워놓고
그럭저럭 대충 맞추고 살아 온
조선의 한 평생 같은 달항아리
열병 난 자식에게
가까이 다가가 어루만져 주며
밤 꼬박 새운 당신의 얼굴을 닮은
달항아리
김종제 「달항아리」

시인 김종제가 바라보는 " 달항아리 ”는 어떠한 인상인가.
“넉넉하고 포근한 어머니의 모습이죠. 가득 들어차있는 형상에서 보름달 또는 대보름달 같은 시를 주로 쓰기도 했습니다. 감성적인 시상으로 얘기하자면 어머니 만삭의 배처럼 보여지기도 하고, 왜세에서 꿋꿋하게 지켜온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모든 걸 비춰주고 따뜻한 밝은 모습의 달은 다양하게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

시를 쓰는데 격는 어려움이 있다면.
“3년 동안 하루에 한 편씩 써 온 시가 현재 약 1,000여 편 정도 됩니다. 그러니 매일 한번씩  난관에 부딪히죠. 제목만 써 놓고 시상이 떠오르지 않을 때도 많지요. 그럴 때면 그와 관련된 책을 찾아 읽어보거나 볼펜 서너 개를 가지고 다니며 잠시 여행을 다니며 그 당시에 떠오른 시상을 항상 메모해 두었다가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나갑니다.”

본인 시의 특징은.
“시는 은유, 비유, 상징이라고 하는데 이런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이야기하듯 시를 써요. 그래서 연을 나누지 않아 시가 긴 편이죠. 잘 알려지지 않은 고대문화나 역사적 유물 등 민족적, 역사적으로 관련해서 쓴 시도 많은 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성과 시대적 상황과 잘 들어맞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가야의 말방울 소리’같은 뛰어났던 우리 민족의 역사를 현대적인 시어로 표현하면 좋지 않을까요.”
  
새롭게 계획중인 시의 소재와 앞으로 활동계획이 있다면.
“우선 글을 열심히 써야죠. 교직에도 충실히 하구요. 에세이나 소설은 당분간 지양하고 인터넷 시대에 짧은 글로나마 마음에 와닿는 시로 함께 공감할 수 있도록 쓰고 싶습니다. 「 분청사기를 보다 」, 「박지연어문편병 」, 「막사발」, 「수월관음도」 등 전통도자문화와 관련한 글은 계속 써왔습니다. 이런 일련의 시리즈로 해서 시를 계속 써 나갈 생각입니다.”

시인 김종제는 1993년 계간 ‘자유문학’에 등단해 시집 ‘흐린 날에는 비명을 지른다’, ‘내안에 피는 아름다운 꽃’ 외 동인지 3권을 출간했다. 2004년 단국대 교단문예상, 2005년 세계한민족작가 우수상,  2007년 문예진흥기금을 수상, 현재 신진과학기술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재현과 창조 ‘달항아리 작가와의 만남’

오늘에 새롭게 태어난 백자달항아리 | 도예가 박영숙
글 정양모 문화재위원,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18세기 조선조 예술의 위대한 걸작인 백자 달항아리의 조형정신을 이어받은 우리 달항아리가 오늘날 새모습으로 선보이고 있다.
필자는 1960년 초부터 우리 예술문화의 큰 흐름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18세기 백자 달항아리에 대하여 여러모로 끊임없이 생각하여 왔다. 큰 달항아리(높이 40cm이상)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루만져보고 들여다보고 실측하고 사진찍고 구부口部(입, 주둥이, 아가리, 구연부)와 몸체, 굽다리 등을 면밀하게 비교 분석해보고 그려보고 또 다른 여러 항아리들과 비교해 보기를 수 없이 거듭하였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가슴에 담아서 내 가슴에 있는 조형을 종이에 그려보기를 수만 번도 넘게 했다.
대부분의 미술품이 그렇지만 항아리도 보면 볼수록 전에 미처 보지 못하던 새로운 조형적 특성과 세부의 생김새, 형태가 눈에 들어오고 이들이 서로 매우 흥미있게 어우러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이해는 한두 번 가지고는 되지 아니하고 수십 번 수백 번을 보아도 그래도 미진한 구석이 있다. 아무 문양도 장식도 없는 상황에서 발산하는 숨겨진 아름다움과 그 시대정신을 가슴에 담아야 비로소 달항아리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 장식도 꾸밈도 없이 그저 원만하고 너그러우면서도 참으로 준수하게 잘생긴 항아리이다.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과 고난과 역경을 너그럽게 포용하고도 유유자적하는 선경仙境에 이른 신선의 그 마음에 비길 수 있을 것인가?
최순우 선생은 우리 달항아리를 ‘어느 나라 항아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부정형의 원’, ‘우리의 폭넓은 흰 빛의 세계에서 우리민족이 성정과 그들이 즐기는 색채’, ‘신기하고 천연스러움’ 등으로 표현하였다.
김환기 선생은 ‘ 나의 예술은 모든 것이 조선백자와 백자 항아리에서 나왔다.’, ‘둥근 항아리는 하늘과 한 쌍이다.’, ‘공중에 둥실 떠 있는 것 같다.’, ‘미묘한 변화를 창조한다.’, ‘따사로운 체온을 느낀다.’, ‘산산이 부서진 파편도 빛을 발한다.’, ‘우리 자기의 대표다.’, ‘백색은 모든 복잡을 함축해 미묘하다. 우리의 고유한 특징이고 전통이다.’, ‘나는 아직 우리 항아리의 결점을 보지 못했다. 둥글다고해서 다 같지 않다. 그 흰 빛깔이 모두가 다르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그렇게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 고요하기만 한 우리 항아리엔 움직임이 있고 속력이 있다. 그 살결에는 따사로운 온도가 있다. 실로 조형미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과장이 아니라 나의 미美에 대한 개안開眼은 우리 항아리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한다. 둥근 항아리...... 아직도 아직도 조형의 전위에서 있지 않을까.’
두 분은 우리 달항아리가 지니는 뜻과 아름다움을 예리하고 명쾌하게 밝히셨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 달항아리는 내면적으로는 18세기의 시대정신을 함축하고 있으며 외형적으로는 18세기가 지향한 모든 아름다움을 집약하여 기막히고 훌륭한 조형으로 탄생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18세기 우리의 총 조형역량을 달항아리로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달항아리는 풍만한 것 같지만 준수함이 생명이다. 구부口部가 크고 굽이 좁아서 수평선위에 둥싯 떠 있는 것 같고 하동下胴이 약간은 홀쭉하여 준수한 형태로 둥실 떠 있는 것이다. 항아리의 위아래를 붙여 만들고 나무 물레 위에서 구부口部와 몸체와 굽을 깍아 내면서 두께가 문제가 되어 장작 불 속에서 어느 곳인지 모르게 주저앉기도 하고 튀어나오기도 하고 터지기도 하면서 부정형不定形의 원만하고 너그러운 형태가 된다. 그뿐 아니다. 환원번조가 위주이지만 가마 속에서 자연히 일어나는 불의 마술적 매력을 아무도 짐작할 수 없어 그 색상 또한 천태만상이다. 어느 달항아리를 보아도 비슷한 것은 있어도 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이것은 부정형不定形과 마찬가지로 다양성이다. 질(백토로)형태를 만들기 까지만 사람의 능력이고 초벌하고 유약입히고 본벌 번조하여 어떠한 형태가 나오던지 어떠한 발색을 하던지 그것은 전적으로 자연의 영역이다. 우리는 그것을 마음놓고 자연에 맡긴다. 여기에 흙과 유약의 맛이 더해져서 기막힌 달항아리가 탄생하는 것이다. 우리 미술에는 리듬이 있다. 달항아리가 연출하는 리듬은 형태에서는 그 선이 굵고 유연하지만 부정형不定形에 다양한 색상과 흙맛과 유약의 맛이 어우러져 나타내는 선율은 아주 잔잔하지만 그곳에 강약이 있어 굵은 선과 흔연히 어우러져 기막힌 화음을 이룬다. 이것은 가야금과 거문고, 북과 장구, 깽깽이와 퉁소, 꽹과리와 징 등의 멋진 합주에서 만들어지는 화음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작가 박영숙의 달항아리는 본인의 지도가 있었지만 이 엄청난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본인이 권유해서 하자한 것은 아니다. 어떤 기회에 박영숙 도예가와 그 부군과 본인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선백자의 이상인 백자 달항아리를 만들어 보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 거의 동시에 나왔던 것이다. 박영숙 도예가는 그 부군의 후원으로 조선백자가 지니는 정신과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되살려내기 위하여 이십여 년 간 한결같이 온갖 정성과 각고의 노력을 쌓아왔다. 나는 박영숙 공방이라면 백자 달항아리를 현대적 시각에서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박영숙 도예가도 나의 조언을 털끝만한 이의 없이 받아들여 서로의 믿음과 박영숙 도예가의 끈기와 인내가 오늘의 놀랄만한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조선조 18세기 달항아리의 조형 정신을 이어 받아 현대에 되살려 보려고 하는 시도는 감히 누구도 엄두조차도 내기 어려운 생각이고 굳은 신념과 실천의지로 끝없는 믿음과 18세기의 달항아리를 깊이 이해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지 아니하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항아리는 무엇을 많이 담을 수 있는 기능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풍만하여 뚱뚱하기만 하면 둔하여 준수함이 사라지고 또한 그 기능을 다하기도 어렵고 그것이 놓이는 장소의 분위기와 어울리기도 어려울 것이다. 또한 현대 우리 생활공간이 옛날보다 훨씬 넓어져 여유가 있는 공간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조선조 달항아리 보다 훨씬 크면서 풍만함보다는 준수함에 무게를 두어 몸체의 폭보다 키가 좀 더 큰 것을 지향하였다.
최근에 선보인 박영숙의 항아리는 그 높이가 모두 54cm를 넘어 66cm에 이르는 것도 있었다. 이것은 18세기의 너그럽고 원만하고 잘생긴 백자 달항아리가 새롭게 탄생한 것으로 도예가 박영숙은 참으로 엄청나고 훌륭한 일을 해낸 것이다. 이들 새 항아리는 우리 18세기 백자 항아리와 서로 훌륭한 선후배가 되어 우애를 나누고 우리 모두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우리의 자랑스러운 조형 역량을 온 세계에 각인시키면서 길이 보존되리라 믿어 의심치 아니한다.


1 높이 62cm 입지름 28.4cm 몸통지름 57cm 밑지름 19.9cm
2 높이 56.8cm 입지름 28.9cm 몸통지름 58.5cm 밑지름 19.6cm
3 높이 61.1cm 입지름 28cm 몸통지름 55.5cm 밑지름 19.5cm
4 일본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 이토오 이꾸따로 관장이 선정하여 동양도자미술관에서 2005년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동안 특별 전시되었다. 높이 58.6cm, 입지름 25.8cm, 몸통지름 54.2cm, 밑지름 19.4cm
5 조선시대에 백자나 분청사기가 초벌구이때 터졌을 경우 짙은 철채를 그 자리에 칠해서 터진 것을 메꾸는 예가 많았다. 이 백자도 초벌구이때 터졌기 때문에 옛날식으로 터진 자리에 철사를 진하게 칠했다.
6 보물 제 1439호. 높이 47.8cm, 입지름 19.5cm, 몸통지름 45.5cm, 밑지름 18cm, 17-18C 초

 

 

<본 사이트에는 일부 사진자료가 생략되었습니다. 더 많은 자료는 월간도예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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