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the Basic 세계도자비엔날레
글 이장호_여주도자기협동조합 부장
처음 월간도예로부터 세계도자비엔날레와 지역축제에 대한 도예계의 시각과 제언을 주제로 한 원고를 청탁받았을 때 덜컥 겁부터 났다. 우선은 필자가 전문도예가도 아닐뿐더러 도자기와의 인연이라고 해야 지역도자기조합에서 근무한지도 겨우 3년차에 불과한 도예 관련 초보자이기 때문이며, 또 하나는 필자가 근무하는 소속조직에 대한 지원정책을 펴는 더 큰 조직이 추진하는 사업이나 행사에 대해 가타부타 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그리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청탁에 응한 것은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앞에 놓고 생각 비슷한 사람 몇이서 뒤에서 주절거리기보다는 한번쯤은 터놓고 속내를 내비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달 28일부터 30일간 경기도 여주·광주·이천에서 열리는 제4회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는 (재)세계도자기엑스포(이하 재단)에서 격년제로 실시하는 도자 분야 최고의 국제행사다. 세계도자비엔날레는 재단의 표현대로 우리 민족문화를 대표하는 도자문화 유산을 계승·발전시켜 세계화에 기여하고, 여주·광주·이천을 세계 도자의 중심지로 성장발전 시키기 위해 열리는 행사로 순수예술성과 대중성, 국제성, 산업마케팅이 조화된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국제적인 종합 도자문화 프로젝트다.
일반적으로 세계도자기비엔날레나 지역도자기축제 뿐만 아니라 비엔날레나 축제 또는 엑스포 등의 명칭을 가진 대부분의 행사는 근본적으로 상품판매촉진이나 지역문화나 예술행사를 통한 지역 및 국가 이미지향상과 더불어 경제적인 파급효과의 목적을 가지고 기획되고 추진된다. 필자의 눈높이에서는 세계도자비엔날레나 해마다 지역에서 열리는 도자기축제는 그 규모나 전시내용이 다를 뿐 ‘지역의 도예작품과 생활도자기를 많이 팔기 위한 행사’며, 동시에 ‘도자문화와 예술의 이미지 파는 행사’이다. 이제 지역 도예인이 생각하는 세계도자비엔날레나 지역도자기축제는 가을에 농민이 수확한 쌀을 내다파는 추곡수매처럼 생활현실의 경제주기가 되어버렸고, 연간매출의 상당부분이 이런 행사의 매출에서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보면 지역도자기축제보다는 세계도자비엔날레가 지역과 우리나라 도자문화산업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행사임이 분명하다.
재단은 올해 세계도자비엔날레는 지금까지의 전시위주로 개최돼 온 것에서 탈피하여 도자문화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노력과 병행하여 수요창출과 도자기 매출증대 등 도자기산업 발전을 도모한다는 본래 취지로 패러다임 전환을 꾀하겠다고 한다. 세계도자비엔날레의 이런 방향전환에 대해 지역 도예인은 ‘우선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래도 두고 봐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현장에서 만난 한 도예인은 세계도자비엔날레에 대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놈이 버는 꼴이나 아닌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했다.
우리나라 도예문화산업의 많은 부분에 세계도자비엔날레와 재단의 기여도가 지대함에도 불구하고 지역 도예인의 의심과 불만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도자비엔날레나 재단에 대한 지역 도예계의 기대치가 컸던 탓도 있지만 행사의 한 축이 되어야 할 지역 도예인이 겉돌거나 손님처럼 되어 버린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재단에서 말하는 ‘세계도자비엔날레=경기도+재단+도예인’이지만, 지역 도예인의 눈에는 ‘세계도자비엔날레=재단’이다. 지역 도예인의 의식 한 구석에는 세계도자비엔날레와 재단의 역량이 커지면 커질수록 지역 도예인은 재주만 부리는 곰이 되고 있다는 피해의식도 함께 커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봐야한다.
세계도자비엔날레는 제1회 세계도자기엑스포를 겸한 제1회 세계도자비엔날레의 준비기간까지 감안하면 이제 10여년의 경륜을 가졌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을 인용치 않더라도 그 동안 투자한 시간만을 놓고 보더라도 과연 세계도자비엔날레가 본래의 목표대로 원숙한 국제행사로 자리매김 한만큼, 한국도자문화수준을 업그레이드하여 도자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창출하는데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제1회 세계도자비엔날레 때부터 지금까지 행사개최를 전후하여 지역 행사의 한 축인 지역 도예인은 거의 엇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행사에 대한 이런 저런 불만과 아쉬움을 반복하여 쏟아내고 있다. 이런 불만과는 격이 상당히 다르겠지만 지난해에는 김문수 경기도지사까지도 취임 일성으로 재단을 비롯한 경기도 산하단체에 대해 직설적으로 차라리 해체하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았던 것은 지역의 여론청취와 산하단체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한 표현이었다. 이때도 지역의 일부 도예인은 김문수 도지사가 재단을 질타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편으로 수긍하면서도, 경기도의 도자문화정책에 대한 후퇴로 이어질까 염려하는 복잡한 심경을 가졌던 것은 세계도자비엔날레에 대한 도예인의 불만과 아쉬움이 단순하고 무조건적인 반대나 비판이 아니라는 점을 잘 드러낸 것으로 본다.
재단의 입장에서 보면 지역 도예인의 간혹은 터무니없는 요구와 비판으로 마음이 상한 것도 억울한데 재단과 세계도자비엔날레를 지원해 줘야할 주체로부터도 힐난을 받았을 땐 더 큰 상처를 받고 억울하기도 하고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디 재단만 그런 심정이랴. 세계도자비엔날레에 대해 개막식 순환 개최 등을 끊임없이 요구해 온 여주나 광주의 지역도예인도 이런 저런 핑계로 또 다시 특정지역에서 개막식을 고집하는 재단에 대해 답답하고 불쾌하기는 마찬가지다. 여주·광주·이천의 도예문화산업과 도자기축제는 세계도자비엔날레나 재단 때문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세월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특성이 있다. 여주와 광주 도예인은 세계도자비엔날레 개막식을 왜 특정지역에서만 해야 하는가 하는데 가장 큰 불만을 가지고 있다. 세계도자비엔날레 개막식 장소는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난 2003년과 2005년의 세계도자비엔날레 때에도 제기된 문제다. 3개 지역에서 순환하여 개막식을 진행하자는 것은 여주와 광주 도예계의 1순위 숙원사업이고 요구사항이다. 3개 지역을 돌아가면서 개막식을 개최할 수 없는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납득할만한 답변이 없이 VIP경호와 의전 등의 문제가 있다거나, 이미 초청을 마쳐서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식으로 넘어가려는 것은 지난 수년간 지역 도예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증거다. 여주나 광주에는 국내외 귀빈들을 맞는 의전시설에 없어서 개막식 개최에 문제가 있다면, 이는 결국 재단이 여주나 광주의 시설보강을 지난 10여 년간 외면했다는 말이다. 우리가 독재정권이라고 부르는 유신시절에도 최고 통수권자가 여주의 세종대왕릉에 참배를 왔었으나, 경호로 인한 문제를 겪었다는 말은 들은 바가 없다.
지난 2005년 제3회 세계도자비엔날레의 개막 3일째인 4월25일 여주와 광주 지역 도예인이 재단해체와 사무총장 사퇴를 주장하며 농성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었다. 표면상으로는 행사기간 중에 전시관과 박물관의 월요일 휴무 강행에 대한 반발이었지만, 사실은 제1회 행사 때부터 여주와 광주 도예계가 홀대받았다는 피해의식과 일부 고압적인 재단의 자세가 사실상 이유였다는 것이 지역 도예계의 여론이다.
도예인은 행사계획 등의 의사결정과 추진과정에서 현장의 의견이 제대로 전달되고 수렴되지 못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런 생각은 재단에 대해 권위주의와 관료화되었다는 굴레를 씌우게 되었고, 지역 전승도자에 대한 홀대 등의 불만들이 누적되어온 것이 행사기간 중 월요일 휴무를 알리는 대형안내판을 행사장 입구에 설치하면서 표출된 것이다. ‘규정상 휴일이므로 쉬어야 한다.’는 것이 잘못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말 그대로 초대형의 국제적인 도자문화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월요일의 휴무를 꼭 챙겨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재단의 일부 구성원들이 ‘공무원보다도 더 공무원스럽다.’는 지역 도예계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지역 도예계와 우리나라 도자문화산업의 발전에 있어 세계도자비엔날레가 반드시 필요한 행사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도예인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처럼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마음의 경계선을 긋게 되었을까?
어쩌면 지역 도예인이 세계도자비엔날레의 위상과 재단의 역할을 잘 몰라서 하는 오해로 인해 이런 일들이 생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역 도예인이 세계도자비엔날레 추진과정에 대해 잘못알고 있어 오해가 생겼다면 그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세계도자비엔날레를 주관하는 재단의 몫이다. 세계도자비엔날레가 아무리 국제적으로 유명하고 관람객들이 많아도 도예문화산업에 종사하는 현장 종사자들인 도예인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지 못하거나 실물경제에서 소기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고, 처음에 기획하고 목표했던 목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면 근본적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물론 투자에 비하여 0이나 마이너스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문화산업에 경제나 경영적 관점에서 효율성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무리한 일인지는 필자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세계도자비엔날레의 개최목적과 재단의 설립목적은 문화적 목적과 함께 수요창출이라는 현실적 목표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같은 장비를 가진 비슷한 규모와 인력을 투입한 공장에서 반드시 비슷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같은 장비와 인력을 가지고도 높은 성과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노하우다. 좀더 나가면 같은 장비라도 사용하는 방법과 장비의 배치순서나 작업장의 동선, 작업자의 동작개선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생산성이 달라지고 생산성이 달라짐으로서 경쟁력이 달라진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 세계도자비엔날레는 세계 유수의 도자박물관과 행사, 전시를 벤치마킹하여 우리의 실정에 맞도록 접목시키는 시도를 해왔고 부분적으로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이제 세계도자비엔날레가 Business To Business의 B2B가 아니라 Back To the Basic의 B2B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세계도자기엑스포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규모 국제적인 도자문화 프로젝트를 기획하던 그 초심으로 그 순수했던 열정과 세계에 우리 도자기를 심겠다는 공격적인 야성의 본능을 다시 가져보라는 것이다. 또는, 문화예술과 매출을 어설프게 묶으려는 욕심으로 지금까지 해 왔던 영악한 생각을 모두 털어버리고 계산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심으로 흙의 느낌대로 그릇을 빚고, 유약에 묻은 티끌조차 소탈한 아름다움으로 넉넉히 받아들이는 도공의 마음으로 유럽이나 중국 또는 일본과는 전혀 다른 우리방식의 비엔날레와 세계 도예인의 축제를 만들어 보는 방향전환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을 해보자는 것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말처럼 ‘천년의 예술과 혼을 담은 우리 도자는 우리가 노력하는 만큼 오늘도 살아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역사요, 예술이요, 산업’이다. 이런 훌륭한 콘텐츠를 살리는 것은 바로 우리 지역도예인과 재단이 함께해야 할 일이다. 올해 세계도자비엔날레가 끝나는 5월말에는 지역 도예인과 세계도자비엔날레 사이에 있었던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마음의 경계선이 말끔히 거둬지길 기대한다.
필자 이장호는 월간지와 지역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중국 상하이와 광저우에서 타이완 원예기업과 벤처기업 (주)이렉컴 프로젝트 팀장으로 근무했으며 현재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회원과 여주도자기사업협동조합 부장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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