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쿠의 재조명
라쿠의 발생과 전개
글/사진 유미자 도예가
자신이 하는 일에 프로의식을 가지고 모든 사랑과 열정을 투자하는 일처럼 행복하고 보람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선조 도예가들을 보면 그들도 오직 도자기만을 위하여 열심히 생활해왔음을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 도자기는 조상이 후손에게 물려준 귀중한 유산이며 보물이다. 이 유산을 잘 보전하고 닦아서 더욱 발전시키는 일이 우리에게 맡겨진 임무라고 생각한다. 라쿠소성은 도예의 작은 한 부문이지만 도자예술에 큰영향을 끼칠 수 있다. 더구나 라쿠소성이 한국인 조지로(Chojiro)에 의하여 처음으로 시도되었음이 자랑스럽다.
‘라쿠’는 라쿠야키(Rakujaki=Rakuware, 樂燒)의 줄인 말로서 즐길 락(樂), 불사를 소(燒), 즉 유쾌, 쾌적 그리고 기쁨 등을 뜻하는 일본어로서 지금은 세계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라쿠기법은 도자기를 약 900℃ 정도로 소성한 후 뜨거운 상태에서 가마 문을 열고 집게로 기물을 꺼낸 후 톱밥이나 낙엽, 짚, 왕겨, 신문지 등을 넣어 환원시키거나 물에 넣어 온도를 급강하시킴으로써 여러 가지 재미있는 효과를 내는 방법이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형식에 그리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도자기 소성법으로 그 독특한 기법과 즉흥적인 결과가 도예가들을 매료시킨다. 많은 이들은 라쿠를 우연의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사용되는 재료를 확실히 알고 충분한 경험이 있다면 많은 것을 조절할 수 있으며 원하는 효과를 얻도록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배경을 보면 1525년 일본에 정착한 한국인 조지로(Chojiro)에 의하여 처음으로 시도되었다고 한다. 한국인 조지로(Chojiro)가 그 당시 왜 일본으로 건너갔는지에 대한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이주 사실은 동양에서 생활한 영국의 도예가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의 저서 ‘The potter’s Book’에 기록되어 있고 지금까지도 조지로(Chojiro)의 후세들(15대)은 교토에서 라쿠작업을 하고 있다.
그 당시 왜 한국인 조지로(Chojiro)가 일본에 정착하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나 언급은 없지만, 임진왜란 전후로 많은 한국 도공들이 일본으로 이주하여 우리의 도자 기술을 전해 일본 도자기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94년에 영국의 팀 앤드류(Tim Andrew)가 저술한 ‘Raku’책에 의하면 한국인 조지로(Chojiro)는 그 당시 일본의 교토(Kyoto)로 이민간 도예가로 되어 있으며, 조선 도자기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조지로(Chojiro)의 일생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조지로(Chojiro)가 한국인이었으며, 최초로 일본에서 라쿠를 시도했고, 그의 라쿠 찻잔은 매우 우수하며 훌륭했고 특히, 손에 잡았을 때 특별한 매력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12세기에 중국에서 일본으로 불교가 들어오면서 라쿠 기법으로 만들어진 도자기는 불교의 차 마시는 의식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16세기 말에는 일본에서 그야말로 라쿠의 절정시대를 이루었다. 그 당시 선불교를 통한 다도가 퍼지면서 차에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차도구도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의 라쿠 찻잔이 높이 평가되었다. 똑같은 차이지만 찻잔에 따라 분위기와 맛이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의미적으로는 정신적 인지와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형태로 만들어진 물질사이의 대화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이주해온 관계로 그리 오래된 도예가족은 아니었지만 훌륭하게 만들어진 조지로(Chojiro) 도예 가족의 찻잔은 일본인들이 만드는 것과는 많은 차이를 보였고 그 당시에 이미 조지로(Chojiro)는 한국인의 이름난 도자기 가문의 후손임이 널리 알려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300년 후 일본에서 도예를 배운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에 의해 라쿠 기법은 유럽으로 전해졌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라쿠의 르네상스라고 할 만큼 성행되었다.
일본이 서양으로 문을 열었을 때 이 고도의 자연스럽고 단순한 라쿠의 아름다움은 서양인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고 또 그들은 라쿠를 더욱 발전시켜 도자예술의 한 부문을 차지하게 했다.
현대 도예의 창시자이며 동서양의 중개자였던 영국의 도예가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는 일본에서 쌓아온 라쿠기법은 물론 도자에 대한 오랜 경험을 그의 책(‘The potter’s Book)을 통해 발표했고 이로 인해 미국과 유럽에 알려졌다. 사실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 자신 스스로는 물론 서양의 도예가들은 라쿠에 대하여 처음에는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곧, 전통적으로 얽매이지 않는 미국 도예가들에게는 이 책이 큰 자극이 되어 60년대에는 미국에서 라쿠의 르네상스를 이룰 만큼 성행되었다.
특징적인 것은 종교 의식(불교의 다도의식)에서 탈피하여 자유롭고 예술적인 면만을 추구했고 발전시킨 점이다. 즉 비대칭의 조형원리와 우연의 철학이 불과 혼합하여 다시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이다.
대표되는 도예가는 미국의 파울 솔드너(Paul Soldner)이며 그는 소성 후 다시 통에 넣어 낙엽이나 톱밥으로 2차 환원을 시도함으로써 새로운 효과를 얻을 수 있었으며 라쿠를 더욱 발전시켰다. 이러한 결과로 오늘날 라쿠는 오브제와 도자 예술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고 라쿠 공동 연구회(Workshop), 세미나, 여름학교(Summer School), 라쿠 전시회 그리고 라쿠 공모전이 세계적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처음에 유럽의 도예가들은 라쿠에 대하여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점차 많은 도예가들의 호기심을 유발시켰기 때문에, 그들은 서서히 라쿠에 대한 것을 자세히 알려고 했다. 유럽에서도 역시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처음에는 라쿠를 집단작업으로 생각했고 이것을 그 목적보다 더 중요시 하기도 했다. 1981년에는 보스톤에서 온 데이비드 데비슨(David davison)이 항가리(Kecskeme’t)에서 라쿠 소성을 보여주었으며 이로 인하여 유럽 도예가들의 더욱 큰 관심을 끌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라쿠’라는 단어가 국제 용어가 되어 라쿠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16년에 걸친 라쿠에 대한 노력과 열정은 라쿠 부문에 더욱 많은 발전을 가져왔으며 더욱 광범위하게 여러 기법을 병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저화도유약라쿠(기존의 라쿠와 유사), 화장토 라쿠(Engobe Raku), 소다라쿠(Soda Raku)1), 테라시질라타 라쿠(Terasigillata Raku)2) 그리고 리티움 라쿠(Lithium Raku)3) 등이 개발되었다.
라쿠는 한국인에 의하여 최초로 시도된 기법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많이 사용하지 않았던 기법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지금까지 눈부신 발전을 가져왔으며 많은 변화를 거치면서 활성화되고 있다.
최근에 와서는 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여러 도예가들에 의해서 점차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2001년 대구시 비슬 문화촌에서 열렸던 ‘국제 라쿠 심포지엄 코리아’는 중요한 라쿠 학술 대회의 역사적인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으며 초대작가 중 특히 리차드 허쉬(Richard A. Hirsch)는 라쿠에 대한 유명한 저서(Modern Raku)를 집필한 도예가이다.
라쿠는 세라믹(Ceramic)이라는 넓은 범위에서 작은 한 부문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기법의 독특함과 특성으로 인하여 많은 도예가들에게 기쁨과 환희의 충격을 주고 있다. 어떤 이들은 라쿠에 대하여 많은 편견과 선입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진정한 도예가라면 오직 경험과 실험 그리고 모험을 통해서 많은 것을 얻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오늘날 많은 도예가들이 조형성을 추구하는 한편 실험적이며 전위적인 태도로 점토에 내재된 가능성을 탐구하여 그 잠재력과 원초적인 특성을 표출시키려 하는데 라쿠기법은 여기에 적합한 소성 기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소성 온도를 높이고 점토의 성분을 개선하여 잘 깨지기 쉽고 방수가 되지않는 결점을 보완하였고 우연이라는 과거의 라쿠에 대한 인식은 오랜 경험과 연구를 통하여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변화되었다. 특히 라쿠는 그 과정이 흥미롭고 효과도 빨리 볼 수 있기 때문에 도예가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비용과 설비도 적게 들어 손쉽게 작업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금도 유럽에서는 라쿠 공동연구회(Workshop)가 여러 곳에서 열리고 있으며 훌륭한 라쿠 전시회를 볼 기회가 많다.
유럽의 도예가들은 한국인 조지로(Chojiro)가 라쿠를 처음으로 시도한 이유 때문에 한국에서도 많은 라쿠 기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얼마 전에도 프랑스 대사관에서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프랑스의 한 도예가가 라쿠를 배우러 한국에 온다고 문화원 원장이 도움을 청해서 몹시 당황했다. 실제로 훌륭한 라쿠 작품을 많이 하는 나라는 프랑스라고 필자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특이하고 어려운 환경으로부터 탄생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우리 도예가들이 할일은 일방적인 편견을 버리고 꾸준히 실험하며 모든힘과 정열을 다하여 창작에 몰두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만이 우리가 물려받은 빛나는 도자 문화유산에 대한 조그마한 존경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2001년 대구시 비슬문화촌에서 열렸던 ‘2001년 국제 라쿠 심포지엄 코리아’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라쿠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참고 : 유럽에서 라쿠를 배울 수 있는곳
- 스페인
Finca in Andalusien, Spain, 2003.3.9-21,
Info:Tel.:06103-84189, Fax:06103-807629
- 프랑스
57230 Bannstein/Eguelshardt, Ceramique de la Gare, Andrea&Georg Krueger 97, Rue de Mouterhouse,
e-mail:ceramiquedelagare@wanadoo.fr
http//perso.wanadoo.fr/ceramiquedelagare/
참고문헌
유미자, 도예가를 위한 라쿠, 태학원, 2000
C.Tyler/R.Hirsch, Modernes Raku, Hoernermann, 1980
Bernard Leach, Das Toerpferbuch, Hoernermann,1980
Tim Andrews, Raku, Black/Chilton, 1994
유미자, 라쿠의 변천과 발전에 대한 연구, 한국디자인학회, 1999/11
Neue Keramik Magazine
필자약력
1986 독일 Krefeld 니더라인 대학교, 도예디자인학과 졸업, 디플롬
1989 독일 카셀종합대학교, 미술대학,도예학과 졸업, 디플롬
1984-’86, ’93-’95 독일 VHS 도예과 강사역임
1995-2002 홍익대학교 조형대학 교수역임
개인전 9회(독일, 네델란드, 한국)
단체전, 국제전200여회(독일,프랑스,이태리,벨기에,뉴질랜드,네델란드,한국, 일본,몽골)
저서, 도예가를 위한 라쿠/태학원
아름다운 소금유 도자기/태학원
역서, 도자예술을 위한 종이점토/Rosette Gault/대우출판사
1) 소금유 기법을 응용한것으로 라쿠 소성시 소다(Na2Co3)를 첨가하여 더욱더 자연스럽고 생동감있는 효과를 낼수있는 방법으로써 보통 라쿠보다는 높은 온도에서 산화금속물등을 사용하여 2차환원을 시킨다.
2) 고대 로마와 그리이스에서 사용하였던 테라 시질라타 기법으로 기물에 여러겹으로 미세한 입자를 입힌뒤에 소성하는 방법으로 컬러와 표면 그리고 냉각선이 매우 특이하다.
3) 낮은 온도에서 녹으며 수성인 리튬 카보네이트(Lithium Carbonate)를 직접 유약이나 산화 금속물에 섞어 기물에 직접 시유한후 소성하는 방법이다. 리티움이 빨리 기화되지않도록 잘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며 재미있는 효과를 볼수있다.
「Vessle 6」 Martin Minder mann 作 36×50㎝
「찻잔」 유미자 作 12×10㎝
「Kachinas」 DaphnŽ Corregan 作 62×35㎝
「Vessle」 Joachim Lambrecht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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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erazi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