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6주년 기념특집
Feature Article
21세기를 향한 한국도예의 발전과제
각 분야별 전문가 11인의 견해를 들어본다
- 한국 현대도예
글/한길홍 서울산업대학교 조형학부 도예학과 교수
머리말
오늘의 현대도예는 이를 바라보는 시각의 높이나 인식의 잣대에 많은 편차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21세기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의 도예가 현대적 개념으로 태동하여 4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표면적, 외형적 상황과는 달리 오늘의 현대도예는 아직도 어둡고도 긴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현대도예는 우리 현대사의 격동과 혼란, 아픔과 시련이 점철된 시대적 배경과 맞물리면서 전개되어 왔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전통과 현대의 대립적 관계나 문화의 개방에 따르는 선진문화의 수용과 확산의 문제는 우리 현대도예의 발전과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다.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한국의 도예, 그 가운데서도 우리의 현대도예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구체적 시각에서 진단하고 이에 대한 발전적 향방과 과제가 무엇인가를 제안해 보고자 한다.
도예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인식의 전환
현대도예는 통념적인 미술의 영역과는 달리 흙과 불의 관계에서 비롯된 조형적 발상과 표현에 특성을 두며, 인간의 유희적 본능이나 정서에 근접하는 흙이라는 매재적 특성이 강조된다. 이러한 특성과 함께 불에 의한 소성방법, 형상화 과정의 제반 기법과 기술적 특성에 의해 현대도예는 예술영역에서의 독자성을 주장할 수 있는 입장과 명분을 다지게 됨으로써 조형예술영역에서 발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현대도예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나 시각과는 달리 우리의 도자문화에 내재된 역사나 전통에 대한 사회일반의 통념적 인식의 무게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창작이나 생산의 주체가 되는 작가와 이를 수용하고 소화하는 객체가 되는 대중사이에 가로놓인 가장 현실적인 장애로 작용되고 있다.
현대라는 상황은 다원주의적 흐름에 의해 혼합적이며 복합적인 관계에서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지게 됨으로서 도자에 대한 인식상황도 다양하고 다변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의 저변을 형성하고 있는 문화는 보편성이나 획일성보다는 상반된 성격이 교류를 통하여 서로 마찰하고 갈등하는 과정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자들이 정의하는바와 같이 문화란 동일한 시대의 일정 공간 내에서 살고 있는 인간 집단의 삶의 양식의 전체라고 할 때 여기에는 분명히 독자성이나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 문화가 더욱 성숙하기 위해서는 정통성이나 정체성, 아울러 향토성이 그 안에 응축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할 것이다.
대학, 대학교육과 관련하여
현대도예의 시발이 대학과 대학교육에서 비롯되었다면 오늘의 문제는 그 진원지에서부터 진단하고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오늘의 대학은 교육본연의 임무는 차치하고라도 밖으로는 국제교류를 통한 교육의 개방과 정진을 모색하고 있고, 안으로는 국가나 지역발전을 위한 사회적 기능과 역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도예관련 대학과 학과도 보다 적극적인 입장에 서서 해외 유수 대학과의 학술적, 예술적인 교류와 정보를 나누어야 한다. 하계, 동계 방학을 이용한 전시, 세미나, 워크숍 등의 행사개최는 상호 이해의 증진과 국제적인 시각의 확대는 물론 교육의 질을 상향 발전시키는 자극제요 촉진제가 될 수 있다.
교육을 통해 인력을 배출함에 있어 공급과 수요의 균형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파악된 수치는 아니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 대학에서의 도예관련 학과의 연간 배출인력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엄청난 규모다. 이들의 대다수가 국가의 문화예술영역이나 산업분야 나아가 인접분야에 종사하거나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는 기대치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에는 전체적인 규모에 대한 대학의 구조조정으로부터 도자예술 각 분야에 대한 특성화 또는 차별화를 면밀히 검토하여 획기적인 변화의 기틀이 마련될 수 있는 포괄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각 대학 졸업생들로 구성된 수많은 도예관련 동문단체들은 그들이 집단으로 존립하는 이유를 좀 더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창작단체로서 이념을 표방하지 못하고 그 구성 목적이 불분명하다면 집단으로서의 의미나 가치를 상실한 셈이 된다. 한국사회의 고질적 현상에 속하는 이른바 학연, 지연, 혈연과 연관된 집단화 양상과는 다른 창작주체들의 단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각 대학 특유의 학풍(school)이나 작가 집단의 작풍(style)이 뚜렷하지 못한 친목과 화합을 위한 막연한 집단적 활동이라면 이 또한 발전을 저해하는 소모적 행위로 보아질 수밖에 없다.
사회적 여건 - 대중과의 교감으로 저변의 확산을
문화예술에 있어서는 위에서 언급한 주체(제작자)와 객체(수용자)를 연결하고 상호관계를 유기적으로 접목해 줄 무대가 되는 사회적 여건이 중요하다.
이러한 여건이 원활하고 성숙된 사회일 때 비로소 우리는 문화선진국의 대열에 서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근자에 도예와 관련된 정보나 자료가 간헐적으로 소개는 되고 있으나 통합적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시민들과 외국관광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이드 라인(Guide Line)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정보자료의 제작과 공급은 전문기관인 ‘월간도예’나 전문단체인 ‘한국현대도예가회’ 그리고 대학의 도예연구소 등에서 분담해야할 몫이다. 이를 위해서는 도예박물관이나 전문화랑이 많아야 하며 우이동 소재 ‘옹기 박물관’이나 ‘토·아트 갤러리’ 등이 그 좋은 예가 된다.
인사동의 ‘가나아트센터’를 포함한 많은 공예품가게나 장안평 일대의 골동가게, 심지어 청계천 7가의 벼룩시장은 대중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할 문화적 통로가 되어야 한다. 아울러 그 여건이 중구난방으로 방치되지 않도록 총합적인 육성책을 강구해야 한다.
대중을 포용하는 절대적인 대안은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공유의식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종 도예문화센터의 개방과 활용에 대해 적극 권장하고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광범위하게 검토해야 한다.
백화점, 박물관, 미술관, 언론기관이나 대학의 사회교육원, 각 구청산하의 문화교실 등에서 대중(고객·주민·시민)을 위해 보다 활성적인 움직임이 이루어 질 때 ‘도예한국’으로 가는 지름길은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인 문화행사와 각종 매체를 통한 꾸준한 인식의 확산도 중요하다. 스포츠, 연예, 오락물이 범람하는 TV프로그램 중에서 도예와 연관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를테면 ‘즐거운 도예교실’, ‘생활속의 도예문화’와 같은 내용의 프로그램 정도는 편성되어야 한다. 이것이 도예의 나라 한국이며 엊그제 EXPO를 개최했던 대한민국인가 싶다.
별난 제안이지만 일본에서는 수년 전부터 도자기로 만든 ‘라면그릇 컴페’라는 특별한 공모전을 개최해 왔다. 우리의 세계적인 음식상품으로 각광받는 김치그릇으로 ‘김치보시기 컴페’를 마련해 주부들의 흥미와 관심을 모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 하나의 제안으로 도자공방들은 상품을 만들어 파는 것 못지 않게 한 달에 한 번쯤이라도 동네 주부들을 모아 그들이 직접 만든 그릇으로 계절에 맞는 테이블 코디네이션을 연출하도록 해보면 어떨까 싶다. 주부들에 있어서 그것은 소중한 체험이며 생활에 대한 도전이다.
작가의식, 그리고 비판의식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될 도예작가 스스로의 입장도 짚고 넘어가자. ‘90년대에 와서 우리는 정체성회복을 외쳤고, 문화예술의 위상을 정립하기 위한 자구책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보다 더 자숙하며 성찰하는 가운데 작가정신이나 작가의식을 스스로가 다져가야 할 것이다. 창작만을 고집하는 도예작가와 생업만을 위해 불을 지피는 도자업자와는 구분이 있어야 한다. 작가가 지녀야 할 덕목으로서 그것은 곧 숭고한 정신이며 의식이며 자세이기 때문이다.
이와 연관해서 비판의식도 부재한 상황으로 전시는 많으나 비평이 없는 것이 또한 오늘의 현실이다. 현대도예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도자에 대한 전통의 맥과 조형예술로서의 가치를 이해함과 동시에 제도기술과 기법의 정도, 나아가 현대 미술의 흐름을 통찰할 수 있는 시각과 해석 능력을 갖춘 전문적인 비판능력이 요구된다. 진정한 비평과 날카로운 비판은 우리의 현대도예 발전을 위해 값진 채찍질이 될 것이다.
맺는말
21세기로 접어든 현대인들은 고도산업사회와 물질문명 속에 잠식되어 인간성이 상실된 비인간화된 모습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현대인의 정서를 순화시키고 맑은 정신 세계로 안내할 수 있는 것은 예술이다.
유구한 역사의 족적에서 일구어낸 도예유산의 찬란한 유산을 지닌 우리에게 보편적 가치를 지니며 공유할 수 있는 진정한 예술로서의 도예는 그 위치를 더욱 확고히 다져두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문화의식이 보다 성숙되고 우리의 삶에 좀더 여유로움이 생겨난다면 흙을 만지는 본능적이며 유희적인 이 놀이야말로 우리 인간들이 향유해야할 분명 가치있는 예술행위가 아닌가 싶다.
필자약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공예학과, 동 대학원 졸업
개인전 6회
한국공예가회상, 목양공예상 수상(한국공예가협회)
`93 NCECA-Workshop Demonstration(San Diego, CA)
`99 East & West in New York(SOHO20 Gallery, NY)
서울국제도예비엔날레 운영위원장
현, 서울산업대학교 조형학부 도예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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