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기·애(花·器·愛) : 꽃을 담고, 공간을 담고, 그 그릇을 사랑함
글/박정식 이로디자인 기획팀장
순백의 화이트 슬립, 캐스팅, 꽃그릇, 수작업, 큐빅, 꽃무늬, 타공, 조명, 해와 달, 별 그리고 소라들은 이번 김순배 교수의 도예전을 설명하는데 가장 직접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들이다. 작품집의 머릿글에서도 밝혔듯이 이번 전시의 주된 주제는 생산성과 예술성이라는 상반된 코드의 연결고리를 찾고자 하는 시도이며 일상 속에서 편안하게 존재할 수 있는 오브제들에 대한 갈망의 산물일 것이다.
캐스팅 기법이 흔히 대량생산의 필연적 요건이라 한다면 이번 전시에서 보여진 김 교수의 작품들은 대량생산품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위해 오로지 순백의 동일한 소재만으로 무장되었을 뿐 전시장 어디에서도 도자공장의 기계소음은 들리지 않고, 오히려 실을 짜듯 촘촘하고 정성스러운 손길의 흔적들은 작품 하나 하나에 저마다의 표정과 숨결을 불어 넣어 아름다운 한 편의 서정시에 흠뻑 취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자칫 흐르기 쉬운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과 유미주의로의 탐닉에 대해 김 교수는 ㈜행남자기의 테이블웨어 제품과 자신의 소품들이 어우러지는 자리를 전시 공간 내에 함께 마련함으로써, 그것도 일회성의 단순한 시도가 아닌 각각의 테마 안에서 현재 시판되고 있는 식기류를 중심으로 하여 테이블 셋팅을 시도함으로써 예술지상주의와 실용주의의 힘겨운 줄타기에서도 완벽에 가까운 자리 메김을 하고 있다.
흔들거리는 인물들의 군상처럼 놓여진 수 십 개의 크고 작은 화기 군집은 데칼코마니적인 시각 자극을 통해 관람객의 시선을 유혹하고, 은박과 금박의 화려한 전사지로 마감된 도우넛 형태의 화기, 커다란 원뿔형의 화기와 소성 과정에서 각기 다른 형태를 취할 수 밖에 없는 원기둥형의 화기는 그 자체로서 이미 공간을 꽃처럼 장식하고 있다.
해와 달, 별, 꽃과 같은 지극히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모티브들을 다분히 작위적이고 사실적인 패턴으로 조작하여 기하학적 형태 위에 슬쩍 얹어 놓은 화기들과 오랜 세월 여성들의 전유물이던 큐빅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오브제들은 단정한 형태의 도자기에 키치(Kitsch)적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곤 한다.
또한 전시장 한쪽 테이블을 가득 메우고 있는 하트형태의 조명 기구들은 유리 혹은 플라스틱 일색이던 양산품 조명기구에 대한 새로운 시도로 해석되며, 하트도자 표면에 타공된 당초 문양의 패턴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과 도자물 전체에서 은은하게 투과되는 빛은 실제로 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했던 빛과 세라믹의 교감의 시간이었다.
이번 전시를 위해 김 교수는 많은 시간을 작품의 제작뿐 아니라 시장조사에도 할애했음을 넌지시 전하는데 전시장 중앙 원형의 전시공간에 빼곡히 자리한 액자와 타일, 액세서리합과 촛대 등 수 십 가지의 일상 소품들은 우리의 생활공간에 예쁘고 아기자기한 이야깃거리들을 만들어 주고 있다.
상업성과 작가정신, 대량생산과 예술성, 실용주의와 탐미주의등 극과 극으로만 치닫는 개념들의 사이에서 중용(中庸)을 지켜가는 일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더구나 두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로 또 교육현장의 교수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들만으로도 벅찬 작가에게는 그러한 개인적인 상황조차 작업에의 몰입을 통해 보편성과 객관성으로 가름하고 정리할 수 있는 특별함이 있는 것 같고 그것이 필자만의 느낌이 아니다. 전시가 끝난 뒤 예술의 전당 내 아트숍에서 작품들이 상설 전시 판매될 예정이며 전시를 마련해 준 ㈜행남자기에서도 김 교수 작품의 양산화 가능성에 대해 협의 중이기 때문이다.
몇 년간 준비해온 도예전을 통해 작가 스스로에게는 자기 성찰의 시간이, 관련업체와 업계에는 도자공예의 새로운 방향성에 대한 시금석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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