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약, 세라믹의 옷①
도예가 권재우
색으로 기억되는 도자
권재우 작가는 유약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무한한 색의 조합 중에서 현대 도자기에 맞는 색을 찾기 위해 무수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결과로 보여지는 ‘도자의 색’뿐만 아니라 그 색을 찾아가는 과정까지 아울러야 할 것이다. 글_박진영 객원에디터 사진_이은 스튜디오
서울신라호텔 휴크레프트에서 도예가 권재우 개인전 ´우연의 팔레트´
‘패셔너블한 옷’을 입고 있는 권재우 작가의 도자기. 그의 도자기를 보면 가장 먼저 다채로운 색이 눈에 들어온다. 부드러운 파스텔 톤부터 강렬한 원색, 그리고 한 가지 색으로 설명하기 힘든 오묘한 색조까지. 작가는 유약으로 구현할 수 있는 ‘도자의 색’을 계속 실험하면서 그 폭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원래 색을 좋아하기도 하고 기존의 도자에서는 볼 수 없는, 제가 생각하기에 좀더 세련되고 현대적인 색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색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색들이 나오는 거예요.”
작가의 작업실은 오래된 철공소와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실·가게들이 어우러진 문래동 예술촌에 자리한다. 1층의 작업 공간을 지나 2층의 전시 공간에 오르면 작가가 그간 수많은 유약 실험을 통해 축적한 ‘도자의 색’을 확인할 수 있다. “2015년부터 개인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유약을 실험한 시편은 훨씬 더 많아요. 10가지 색을 테스트하면 그 중에서 2~3가지 정도만 마음에 드는데 그 색을 적용한 기물들을 여기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가 마음과 눈에 맞는 ‘도자의 색’를 찾는 방법은 기존의 규칙을 따르거나 레퍼런스를 참고하기 보다는, 가능한 여러 가지 기법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기본 유약에 여러 산화물을 첨가해 보고 시판 색유를 이리저리 섞어 보고 같은 유약이라도 다른 농도로, 여러 방식으로(때로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는 방식으로) 시유해 보는 것이다. “보통 유약을 어렵고 복잡하게 생각하는데 저는 처음부터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유약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 유약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도 많지만 그냥 내 마음에 드는 유약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실험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몇 년 전 어느 전시장에서 본 작가의 도자기는 파스텔 톤이 주를 이루었는데 지금 작업실에서 볼 수 있는 색은 훨씬 더 강렬하고 과감하다. 그렇다고 그가 사용하는 색이 점점 더 강해지는 건 아니다. 그 보다는 ‘자연스레 끌리는 색감, 떠오르는 생각, 그날의 감정에 이끌려 작업’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얼마 전 휴크래프트 갤러리에서 가진 첫 개인전에서는 봄 분위기에 맞게 핑크를 위주로 노란색, 주황색 등 밝고 경쾌한 색을 선보였다.
권재우 도예가
“자신만의 미감으로 완성된 독특한 오브제와 다양한 색감의 식기들을 매치하여 개성 넘치는 현대인의 식탁을 제안한다” -첫개인전 <The Palette> 소개글에서-
유약개발의 도자파편
유약개발 작업실
도자의 색을 담아내는 알맞은 형태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의 도자에서 색을 가장 먼저 인지하지만 만드는 작가 입장에서는 색만큼이나 형태도 중요하게 여긴다. “각각의 색을 잘 담아내는 형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색에 알맞은 형태여야 색이 더 살아난다고 할까요. 색을 먼저 정하고 그에 맞는 형태를 만들기도 하지만 보통은 물레로 형태를 먼저 빚고 나서 그에 맞는 색을 찾아요.” 이번 개인전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납작하면서 볼록한 형태의 오브제를 예로 들 수 있다. 팔레트에 물감을 봉긋하게 짜 놓은 것 같기도 하고 잘 빚어 놓은 흙 반죽 같기도 한 이 형태는 색이 꽉 차 있는 듯한 하나의 덩어리를 표현하고 싶어서 만든 것이다.
그는 지금 주로 식기를 만들고 있다. 크기나 형태에서 제한적인 식기에 다양한 색을 적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색이나 패턴이 강한 그릇은 음식을 잘 담아내지 못한다는 편견이 만연하지 않은가. “대학 때부터 만들어왔고 판매도 해야하기 때문에 그릇을 주로 만들고 있어요. 대개 그릇은 음식을 담아 돋보이게 만드는 도구로 사용하지만 저는 제 그릇이 하나의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릇 자체가 돋보여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막상 색이 강한 그릇에 음식을 담아도 생각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린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사실 그릇에 이렇게 다양한 색을 적용하는 일은 비효율적이다. 판매를 위주로 작업한다면 그릇에 적용하기 알맞은 몇 가지 색을 정해 여러 개를 만들어내야 효율적인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가능한 다양한 색을 각기 다른 크기와 형태의 그릇에 적용한다. 그래서 이 색의 컵 혹은 접시는 단 한 개만 만들 때가 많다. “한 가지 일을 계속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지루한 걸 못 참는 편이죠. 한 가지 색으로 여러 개를 만드는 작업은 저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예요. 늘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도자기를 만드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재우 작품(다채로운 색상의 도자기)
그릇을 넘어 오브제로
작가는 유약 실험을 통해 수집한 ‘도자의 색’을 좀더 다양한 형태에 담아내고 싶다. 뭔가를 담아야하는 그릇의 한계를 벗어나면 지금보다 더 다채로운 색의 효과를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도자에 아직 구현하지 못한 색이 너무나 많다. “지금은 그릇을 주로 만들고 있지만 앞으로 정말 하고 싶은 작업은 오브제입니다. 평면 작업이나 크기가 크고 작은 조형 작업도 해보고 싶어요. 이제까지 찾은 색을 좀더 다르게 담아내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유약 실험은 이런 작업을 위한 준비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가 앞으로 선보일 색의 팔레트는 더 다양해질 것이다. 그 색을 담아내는 형태 역시 한계를 갖지 않을 것이다. 그의 작업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다음 전시에서는 어떤 작품으로 시선을 끌지 기대하게 된다.
권재우 작가는 청강문화산업대학 도자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문래동 작업실에서 색의 다양성에 집중하며 작업 중이다. 유약 재료를 조합하고, 서로 다른 농도와 순서로 시유하며, 자신만의 미감으로 완성된 오브제와 식기를 만든다. 공예트렌드페어,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참가하면서 대중들의 이목을 끌었으며, 올해 첫 개인전을 열어 작가로서의 역량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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