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영 도예전 2003. 6. 20 ~7. 6 서화갤러리
백(白)의 예술
글/김진아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소 연구원
흰색에도 명도와 채도, 색상이 있다. 서양에서는 흰색을 ‘white’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지만 우리말에는 ‘청백색’, ‘회백색’, ‘유백색’ 등 백색을 표현하는 단어가 많다. 이렇게 많은 백색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색을 찾기 위해 정열을 쏟는 이가 있다. 바로 작가 강석영이다. 전시장의 하얀 벽면보다도 눈에 띄는 그의 작품들은 하얗다 못해 어떤 것은 투명한 느낌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작품들과는 또 다른 백색이었다.
작가가 백색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프랑스 유학시절이었다고 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그의 주변에는 백색의 태토(胎土)로 작업을 하는 작가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유럽에서 본 다양한 기법의 백자들은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또한 다루기가 힘든 재료라는 것이 그의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정신을 자극하여 백자에 매진하게 하였다.
백색의 태토는 무수한 점토들 가운데서도 수비와 공정이 힘든 것 중의 하나이다. 그을음이나 잡티 하나 없이 가마 안에서 구워낸다는 것은 조선시대 도공들이 기물에 갑발을 씌워 정성껏 소성하던 것 이상의 노력과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26년 여에 걸친 그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것은 순수한 자연의 빛깔들이며, 도예의 프로세스를 넘어서는 형태들이다.
강석영은 백자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다. 산지에 따라 달라지는 태토의 색은 물론 각각의 수축, 팽창계수까지 인지하여 원하는 방향의 크랙을 만들어내고 누구보다도 얇고 투명한 백자를 만들어 낸다. 이것은 한 전시를 위해 천 여 점에 가까운 작품을 제작하는 다작의 결과임과 동시에 기술적인 능력이 돋보이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늘 백색을 고집하는 그의 작품에서 색이 나타난 것은 90년 전시이후 13년만이다. 그러나 하얀 흙 판 위에 그려진 추상화들은 또 다른 백색들로 그려졌다. 백색 위의 백색 그림은 가장 절제된 미의식의 표출이라는 절대주의 회화에서 얻어지는 감동과는 다른 관조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물감이 아니라 흙이라는 자연의 재료로 표출되는 백색 위의 백색은 강석영이 가진 오랜 경험과 숙련의 깊이 그리고 연륜을 넘어선 감성을 느끼게 한다. 더욱이 이번 전시작품의 주를 이루는 판에 의한 작품들은 그가 그동안 다루어왔던 기술적 한계극복의 모색에서 벗어나 회화성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기 위한 실험적 자세의 한 방편으로 보아진다.
예술의 목적은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여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세계를 창조하기 위함이다. 그 중의 한 방법으로 많은 작가들은 자신의 감정이입을 매개체로 관객들과의 공감을 유도한다. 강석영 역시 백색의 자기를 통해 자신의 기질과 성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지나치게 완벽하다. 기술적 한계를 극복한 어김없는 형태와 색채가 오히려 그가 추구하는 조형적 기의에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물과 바람, 하늘과 바다 같은 자연과 물성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러움 사이의 공감이었다. 그러나 일종의 달관이라 표현할 수 있는 농익은 프로세스 때문에 강석영 고유의 서정적인 감성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었다. 작열하는 태양아래 매미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여름날의 적막처럼 작가가 소유한 가치 있는 감성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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