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예숙 도예전 2003. 6. 25 ~7. 1 통인화랑
과장과 재치
글/박수아 홍대도예연구소 연구원
황예숙의 작품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과연 이것이 실용기일까 조형물일까 하는 구분의 문제였다. 테이블, 의자, 주전자, 컵, 접시 등은 본질적으로 실용적 기물임에 틀림없지만, 쓰임새를 배제하고 구조적 조건을 무시하며 데포르메를 강조한 작가의 의지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즉, 실용적 사물의 속성에 근거를 둔 황예숙만의 조형적 유희가 고스란히 읽혀지고 있는 것이다.
통속적 사물, 도처에서 볼 수 있기에 누가 보더라도 금방 그 속성을 알아 낼 수 있는 것들이지만 어딘지 친근하고 익숙하다는 느낌은 손 가는대로 만든 투박한 형태로부터 기인한다. 완벽한 비례,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떨어지는 선 등의 세련된 조형미보다는 어수룩한 인상의 작품들은 지천명을 바라보는 작가의 인생역정과도 같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도예의 세계에서 작가는 작업의 여정이나 경력보다 자신이 살아온 경험과 느낌들을 작품으로 표출하고자 애를 쓰고 있었다. 따라서 아이디어 스케치 등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매 순간의 기분이나 감정을 진솔하게 드러냄으로써 보기에 쉽고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느껴지는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황예숙은 구성요소의 과장이라는 일관된 방법으로 형태적 특징을 만들어낸다.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주전자의 손잡이라던가, 필요 이상으로 크기를 과장한 물대, 단순한 지지대 이상의 의미를 가진 테이블 다리는 관객의 고정관념을 깨뜨림과 동시에 그 사물들의 통속성을 유쾌하게 뒤집고 있다.
이와 같이 표피적으로 읽혀지는 황예숙의 작품을 좀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도예를 통해 특별하고 기이한 그래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미술적 사치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주변에 흔하디 흔한 사물들을 통해서 작가 자신의 유머와 재치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으며 때로는 은근히 강요하기도 한다. 작가의 말을 빌면 그 의도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내 작업이 특별한 의미나 개념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편리하게 쓰기보다는 즐기면서 쓰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접시 위에 음식이 놓여 있지 않더라도 접시 그 자체만으로 사람들에게 재미와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런 부분을 제대로 찾아내고 느낄 줄 아는 사람들과 내 작품을 공유하고 싶다.”
황예숙은 테이블, 의자, 주전자, 컵 등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속성의 규범을 무시하고 오직 표현의 수단으로 인지하여, 상상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에서 만들어진 기묘한 입체들은 그 자체의 생김새로부터 평범한 것을 거부하고 기존의 권위를 조소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가는 흙의 질료적 특성을 충실히 표현한다는 것, 인위적으로 가공되지 않은 원초적인 형태를 보여준다는 것, 그렇게 제작된 작품을 통해 일반인들과 문화적 교감을 나누고 싶다는 것 등의 담백한 생각에서 작품을 제작한다고 했다. 그러나 작가의 의지가 담겨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작품이 가지고 있는 사(史)적 의의, 그리고 예술사회적 측면에서 가늠되는 역할 등은 매우 흥미로운 과제로 남아 있다.
기사를 사용하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www.cerazi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