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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권 452호 2026. 01 | 기고 ]

김대환 교수의 문화재 기행 58]_신라금관! 정말로 사슴뿔과 나뭇가지의 조형에 불과한 것일까?
  • 관리자
  • 등록 2025-12-31 16:01:51
  • 수정 2025-12-31 16: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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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 교수의 문화재 기행 58]


신라금관! 

정말로 사슴뿔과 나뭇가지의 조형에 불과한 것일까?


글_김대환 동곡뮤지엄 관장·문화유산 평론가


신라의 천년고도인 경주는 성공적인 APEC 정상회의 개최로 인해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특히, 신라시대의 금관 6점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동시에 볼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하여 국내외를 막론하고 신라시대 금관이 집중 조명되는 긍정적인 현상이 일어났다.

사진 2. 교동금관


현존하는 신라금관은 모두 7점으로 일제강점기인 1921년 금관총금관(이사지왕금관)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사진 왼쪽부터 제작된 순서로 (호림금관, 교동금관, 황남대총금관, 이사지왕금관, 서봉총금관, 금령총금관, 천마총금관)이다. 

그러나 신라금관이 발견된 지 104년이나 지났지만 신라금관이 무엇을 상징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미비하여 일제강점기 제국주의 일본학자가 주장하던 사슴뿔과 나뭇가지 장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잘못된 식민사관을 그대로 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이 문제를 제기하고 학술논문과 신문칼럼, 저서 등을 통해서 신라금관은 사슴뿔이나 나뭇가지가 아닌 ‘용의 뿔’을 형상화시킨 것이라 주장해 왔다. (김대환, 2014년, 「삼국시대 금관의 재조명」, 『동아세아 역사문화 논총』, 서경문화사. 김대환, 2020년, 『한국의 금관』, 경인문화사. 김대환, 임보라, 2021년 「삼국시대 금관의 상징」, 『(재)보문복지재단 학술대회 논문집 제1호』 김대환, 2025년, 「고구려 불꽃모양 장식 금관」, 『(재)보문복지재단 학술대회 논문집 제5호』)


사진 8. 신라 교동금관과 신라 금동용머리장


사진8)에서 보면 강원도 진전사지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동 용머리 장식’인데 뿔이 이마에서 나와서 삼지창처럼 뻗어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신라 교동금관의 금관 세움 장식과 일치한다. 더 이상 긴 설명이 필요 없이 신라시대 유물로 증명이 된다. 신라금관의 세움 장식이 ‘Y’ 모양에서 ‘出’ 모양으로 변하기 때문에 出 형태의 장식도 용의 뿔에 해당한다. 나뭇가지가 아니다.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해 오는 신라금관이 ‘사슴뿔, 나뭇가지’라는 이론은 104년이 지난 현재도 그대로 사용되는 서글픈 현실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북방민족의 사슴뿔’과 ‘신단수의 나뭇가지’는 전혀 실증유물이나 문헌의 기록이 없는 추론에 불과하다. 단지 우리 민족의 창조성과 독창성, 대륙의 기질을 감추고 비하시키기 위한 식민사관에 불과하다.

신라를 포함한 삼국시대의 용은 여러 유물에서 찾을 수 있는데 뿔을 확인해 보면 모두 이마나 미간에서 솟아 나와 두 갈래 혹은 세 갈래로 갈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용과는 다른 모습으로 당시의 용은 뿔이 한 곳에서 솟은 단각수였다. 신라금관은 용의 뿔을 형상화한 왕의 영체(靈體)로 왕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용의 혈통을 계승한 천손이며 금관은 왕이 현세에서 천상의 존재로 변신하는 제의적 신물로 신성함 그 자체였다. 『삼국유사』 혁거세조에 “알에서 태어나 용이 되어 하늘로 올랐다”는 왕계 설화와 『삼국사기』 지증왕조의 “왕이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니 신하들이 그 뼈를 모셨다.”는 기록은 용은 왕의 신성성과 불사의 존재로 인식된 것이다. 따라서 신라금관은 당시의 유물과 문헌에 모두 등장하는 용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으며 용의 신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인 머리 위의 뿔을 형상화시킨 것이다.   


(사진 9~11)

금관에 매달린 곡옥은 무엇인가? 곡옥의 정체를 밝히는 것 또한 금관의 비밀을 밝히는 중요한 항목이다. 신라금관에는 곡옥이 달린 것과 달리지 않은 것으로 나눠지는데, 그동안 학계에서는 곡옥을 태아, 열매 등 여러 설이 있었으나 위의 사진처럼 ‘곡옥’은 ‘옥룡’이다. 홍산문화에 처음 등장하는 옥룡은 한반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며(사진10 위왼쪽) 삼국시대까지 곡옥의 형태로 진화한다. 이사지왕금관의 곡옥의 머리 부분에 용의 머리를 금으로 조각하여 덮었다. 사진11) 즉, 금관에 달린 곡옥은 용을 형상화시킨 것으로 왕의 권위를 내세우는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식민사관에 의해 제기된 신라금관의 상징이 “사슴뿔과 나무로 천상과 지상을 연결한다”는 개념을 직접적으로 적시한 고대 문헌은 없다. 아울러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유물도 없다. 또한 북방민족의 사슴뿔과의 연계성도 문헌이나 증거 유물이 없다. 그리고 ‘용의 뿔’과 북방민족의 ‘사슴뿔’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고 당연히 북방민족의 기원설은 성립되지 않는다. 

중국 고전 『산해경』이나 『소학기』 등에서 용은 삼라만상의 왕이며 신성한 영력의 중심으로 천상세계와 교감한다고 묘사되며 용의 뿔은 하늘과 교감하는 능력과 신성한 통찰의 중심점으로 여겨졌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조선시대까지 용은 왕으로 간주되었고 용포, 용안, 용상, 용루 등 일상적인 용어도 용으로 인식할 정도였으며 궁궐의 장식이나 장신구, 일상 도구까지 용무늬가 사용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이고 현존하는 유물도 다수 존재한다. 

북위시대(5세기) 용얼굴 모양의 문고리 장식에서 머리 위의 뿔을 보면 신라금관을 그대로 얹은 모양과 거의 같다. 사진12)

같은 시대에 중국이나 신라의 용의 개념은 동일하다. 이 문고리 장식은 궁궐터에서 출토된 것으로 그들 역시 용은 절대 권력자의 왕을 상징하고 있었고 신라인들은 왕의 머리에 금으로 만든 용의 뿔을 머리에 올림으로 천자의 상징, 즉 절대적 왕권과 통치의 표상으로 과시한 것이다. 수천 년을 지켜온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 문화유산의 의미를 왜곡되지 않고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최고의 권위를 내포한 고대 신라금관은 한민족의 독창적인 유물로 자체적으로 발생한 것이며 제례나 의례에 실제 사용된 것으로 부장용으로 만든 것은 아니며 수십 년에 걸쳐서 사용한 선조들의 흔적이 금관에는 아직도 남아있다.


-----이하 생략

<본 기사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세라믹코리아 2026년 1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 전체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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