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론 담긴 작품세계를 펼치는 도자디자이너
내 작품의 테마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관념과 해체
도예가 손민영(36). 그는 도자디자이너다. 그에게 있어 흙 작업은 예술성을 표출하는 방법이기 전에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 많이 판다’는 개념이다. 그의 작품에는 디자인을 지향하고 있는 관점 즉, 디자인 론이 담겨있다. 독특한 디자인의 컵, 화기, 접시, 그릇 등의 연작에서는 작가 특유의 자신감 있는 과감함이 느껴진다.
97.9 1회개인전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담은 청자빛 도조작품 선보여
그의 작품의 주 테마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와 ‘관념의 해체’이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는 그의 초기 작품에 잘 나타난다. 홍익대 도예과와 동대학원을 마친 그는 97년 9월 서울 동숭동 세미화랑의 청년작가 초대전에서 조형작품 ‘기억의 흔적’ 시리즈를 선보였다. 백토의 사각 덩어리에 장지문과 전통 기와를 새겨 넣고 비취색 청자유를 시유한 현대조형작품 이었다. 이어 같은 해 서울 토도랑 갤러리에서 첫 회 개인전을 가졌다. ‘청자전’이란 주제의 이 전시에는 음양각청자 작품을 선보였다. 당시 대학의 도예전공 출신들에겐 현대조형도자 작품이 유행이었지만 그는 전통생활식기를 택했다. 순수하게 전통과 현대가 잘 조화된 우리 그릇을 만들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전시에 선보인 청자작품에는 전통의 청자빛과 문양을 담고 있었지만 형태는 현대적 감각을 담고 있었다.
2회 개인전 디자인 공부위해 핀란드 유학
유럽인을 위한 현대적 청자생활자기 선보여
작가는 98년 핀란드로 유학을 떠났다. 그가 유학 선호국이 아닌 핀란드를 택한 것은 기술이 아닌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내 작업이 크게 변한 시점이라면 아마 유학시절 일 것입니다. 디자인에 관한 눈을 뜨게 됐고 자신감을 얻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핀란드의 헬싱키디자인대학 도자유리과 대학원 유학시절, 그는 자신이 제작해야할 작품의 컨셉과 디자인을 공개, 설명하고 제작해야하는 수업 방식을 접하면서 도자 디자인에 자신감을 얻게 됐다.
2회 개인전은 2000년 스웨덴 스톡홀름 KAOLIN에서 초대전으로 열렸다.
‘한국의 청자’를 주제로 한 전시에 유학 후 2년여간 작업해온 현대적 디자인의 청자생활자기를 선보였다. 유럽 현지인들의 구미에 맞는 세련된 형태의 용기에 우리전통의 청자유를 발라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식기를 선보여 한점도 남기지 않고 판매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는 이 전시가 가장 보람 있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3회개인전
그릇의 관념적 기능을 형태의 일탈로 표현
‘공간을 담은 그릇’ 2003세계도자비엔날레 국제공모전 은상 수상
그의 또 다른 테마 ‘관념의 해체’는 지난해 11월, 서울 인사동 한국공예문화진흥원에서 3회 개인전과 올 7월에 열린 ‘이기·이기(利器·異器)전’에 선보인 작품에서 드러난다.
그릇의 관념적 기능을 형태의 일탈로 표현해 선보인 작품은 많은 관심을 모았다. 전시작품 중 특히 ‘공간을 담은 그릇’은 석고주입성형으로 만들어진 같은 규격의 점토슬립 조각들을 나무와 아크릴을 이용해 일정한 간격으로 접합한 작품이다. 이 그릇의 용도는 작가의 제작 마무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에 의한 쓰임으로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 작품으로 ‘2003세계도자비엔날레 국제공모전’의 생활도자부문 은상 수상작이다. 또 다른 작품 ‘다용도 도자기 블록’은 끊어지지 않는 금속선과 고무바킹으로 처리, 연결된 도자블럭유니트 작품으로 사용자가 원하는 형태에 따라 그릇을 변형 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새로운 기능성을 제시해 주목을 받았다.
컴퓨터로 디자인된 작품
‘대나무 잔’ ‘자석손잡이 컵’
쓰임의 기능성에 예술적 가능성 열어 주목
손민영의 독특한 디자인 아이디어는 일련의 훈련을 통해 얻어낸 것이다. 그는 “같은 물체를 두 가지 의미로 바라보는 법, 모든 사물을 디자인적 심미안으로 바라보고 작품에 응용할 수 있는 접근법 등은 반복되는 훈련으로만 가능하다”고 전한다.
그의 아이디어는 다양한 생활도자기에 적용된다. 대나무를 깎아 만든 손잡이를 청자와 백자잔에 덧댄 ‘대나무 잔’과 ‘자석손잡이 컵’, ‘주름볼’, 오뚜기 화병 등은 선물용으로 큰 인기를 얻어 몇몇 여성월간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물론 그에게서 새롭게 창조되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쉽게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구상, 스케치, 모델링, 성형, 혼합재료사용 등 거쳐야할 과정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의 성격상 치밀함과 작업 특성상 정확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아이디어 스케치 이후 도면 디자인 과정은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도 특징이다. 최근 발표한 대나무, 자석 등의 컵 손잡이도 대부분 짧게는 반년, 길게는 2, 3년의 시간을 소요해 우여곡절 끝에 완성됐다. 손민영씨의 작품에 대해 미술가 박무림씨는 “그의 디자인된 작품들은 소비자가 생각 할 수 있는 쓰임의 기능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예쁜 컵을 만들기보다 예쁘게 사용하기 바라는 태도에서 작품들은 변화하는 생활환경을 반영하며, 반복되는 생활에서 축척된 고정관념을 벗어나게 하는 자극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내 인생의 성공은 굿 디자인 3개 창조하는 것”
도예가로서 그에게 가장 큰 고민이자 불만은 “도자기를 과시하기 위한 작품으로만 인식하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이다. 공장에서 척척 찍어내는 브랜드 도자기는 세트로 선뜻 구입하면서 도예가들이 손수 빚는 그릇들은 비싸다고 구입 못하는 것, 구입해도 식탁이 아닌 그릇장으로 직행하는 것이 싫다. 이 문제는 일반인들이 많은 장소에서 이 같은 그릇을 접하지 못한 유통구조에 있다”고 한다.
그는 이 유통구조의 해결을 위해 올가을 안에 홈페이지(www.moimoipet.com)를 오픈 할 예정이다.
“도예가로서 내 인생의 성공은 좋은 디자인 세 가지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작가 손민영은 현재 경기도 고양시 지축동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새로운 디자인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김태완 기자 anthos@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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