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을 너무 좋아해 인형작가가 됐다고
한국서 7년째 살며 도자 인형전시로 이목 끌어
예쁜 인형은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은 때때로 어린아이의 친구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닥종이, 헝겁 등을 이용해 인형을 잘 만드는 사람들이 많다. 작년 이맘때 통인화랑에서 열린 일본인 코보리카오루씨의 인형전에 선보인 인형들은 우리의 인형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한국에서 7년째 살고 있는 일본인 코보리 카오루씨는 인형을 너무 좋아해 인형작가가 됐다. 그가 만드는 도자인형은 유럽의 비스크돌 기법을 이용한 것으로 서양아이의 얼굴이 아닌 동양아이의 귀엽고 친근한 얼굴이다. 코보리 카오루씨는 세라믹뿐 아니라 한지, 헝겁 등을 이용해 인형을 만든다. 석고틀에 흙물을 부어 만드는 비스크돌은 헝겁이나 한지로 된 인형보다 완성도도 좋고 사람의 피부와 가장 비슷하다. 안료와 유약으로 다양한 피부색의 표현도 가능하며 이물질이 묻더라도 쉽게 닦아낼 수 있어 그는 도자인형(비스크돌)을 가장 좋아한다. 그의 인형들은 대부분 옷을 갈아 입힐 수 있고 안아줄 수 있고 머리를 빗겨 줄 수 있는 것들이다.
멕시코 여행 중
재외 한국인 위해 일하는 한국인 남편 만나
일부 재료 유럽 일본서 들여와
관절 움직이는 인형 제작
카오루씨가 멕시코 여행 중 만난 남편은 한국인으로 재외한국인을 위해 일하고 있다. 남편과 결혼 후 멕시코에서 살면서 일본어 강사로 일했었고 7년 전 한국에 와서 본격적으로 인형을 만들고 있다. “남편에게는 좀 미안했지만 더 나이들기 전에 하고 싶었어요. 지금도 되도록 인형 만드는 비용은 인형을 판매한 비용으로 충당하고 싶은데 판매는 여의치 않아요.”
우리 나라에 비스크돌을 만들만한 재료들이 여의치 않아 유럽에 주문해 사용하기도 하고 일본에 들르면 기모노 재료와 유리로 된 눈동자 등을 구입해 오기도 한다. 코보리 카오루 씨는 비스크돌을 만들기 위해 서울 강남의 안재민 공방에서 석고캐스팅을 배우기도 했다. 인형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캐스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해 어려움도 많고 실패도 많았다. 지금은 집안에 작은 시편가마를 두고 모든 과정을 스스로 작업한다.
비스크돌은 19세기 유럽에서 유행했던 인형으로 세라믹으로 만들어져 표정과 질감이 매우 정교하다. 우리나라에도 일부 매니아 층을 확보하고 있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낯설어 하거나 창백한 흰얼굴에 무언가를 응시하는 눈동자를 오히려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다. 석고캐스팅기법으로 만들어지는 비스크돌은 관절에 구와 구를 감싸는 거푸집형태가 맞물리도록 해 움직일 수 있게도 만든다. 이렇게 관절을 움직이는 인형을 ‘구체관절인형’이라고 한다. 코보리 카오루씨의 인형은 목부분에는 구체관절을 이용하고 나머지 부분은 움직이긴 하지만 자세가 고정되진 않는다. 몸통과 팔다리의 상단부분은 천으로 만들어 안았을 때 딱딱하지 않고 포근하며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옷 밖으로 나오는 손과 발도 역시 세라믹이다.
한복 만들기 수강으로 인형에 입힐 한복 제작
인형 얼굴은 한국 일본 아이 얼굴 많아
코보리 카오루씨의 비스크돌은 서양인의 얼굴을 한 인형이 아니고 일본과 한국의 아이들이다. 한복을 입거나 기모노를 입은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머리모양에 다른 옷을 자랑하고 있다. 인형을 만드는 일은 옷을 제외한 누드상태의 인형을 만드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옷도 지어 입혀야 되고 머리카락도 어울리게 만들어 줘야된다. 덕분에 코보리 카오루씨는 일본의 기모노를 배운 것은 물론이고 한복을 배우기 위해 국립민속박물관의 한복 만들기과정을 수강하기도 했고 지금은 한국의 자수를 배우고 있다. 기모노의 복잡한 속옷들도 일일이 만들어 입히고 펑퍼짐한 한복을 입은 인형에도 속곳이나 버선도 갖춰서 입힌다. 두루마기와 속저고리들도 실제 한복과 똑같은 구조로 각각 만들어 입히고 족두리, 노리개 등의 소품도 직접 만든다.
“제 인형들을 보고 굳이 일본아이 얼굴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전 일본아이나 한국아이나 서양사람들이 보기엔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건 우리들 생각이겠죠. 그래서 얼굴을 따로 구분 지어 만들진 않아요. 제 인형들은 한국아이이기도 하고 일본아이이기도 하고 혼혈아인지도 모르죠.” 서툰 한국말이지만 자신의 인형을 말하는 데에는 능숙하다.
“세계 각국의 민속의상은 모두 아름다워요. 그런데 서양의 민속의상을 특별히 제가 직접 만들어서 내 인형에 입혀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한복은 달랐어요. 느낌이 통한다고 할까 내 인형에 입혀보고 싶었어요.” 처음에 한복을 만들고 싶은데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아서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한복을 뜯어서 어떻게 만들었는 지 공부했다. 그리고 중국전통의상도 인형에 입히고 싶다고 한다.
코보리 카오루씨는 도자기 애호가이기도 하다. 멕시코에서 구입한 화려한 도자기들과 다양한 다기주전자들을 꺼내 보이며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다. 인사동에서 구입했다는 발에서 금붕어가 헤엄치고 있고,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도자소품들이 집안을 장식하고 있다. 어린아이 같이 다양한 감탄사로 자신의 취향과 감정을 말하는 코보리 카오루씨의 얼굴은 그가 만든 인형들과 닮았다. 아니 그의 인형들이 그의 표정을 닮았다.
서희영기자 rikkii77@hotmail.com
기사를 사용하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www.cerazi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