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로의 회기
글/사진 윤민희 경희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강의조교수, 조형예술학박사
서미갤러리에서 2003년 11월 3일부터 8일까지 전시된 장진의 개인전은 과거의 조형적인 작업 경향에서 본질적인 공예의 쓰임새에 충실한 작업을 시도한 전시였다.
그의 흙 작업은 초기 작품들과 일본유학시절의 도조적 경향의 작업, 귀국 후 회화풍의 조소적 경향과 도상(陶像)작업, 그리고 1999년부터의 현재까지의 작업은 ‘용기로의 회기’이다. 올해 그의 작업은 식기, 컵, 병, 볼 등의 용기(用器)에 바탕을 둔 작업으로 판 작업, 물레성형, 캐스팅을 중심으로 재질과 작업 경향의 다양성을 시도하였다. 특히 생활공간에서의 실용성을 시도한 장진의 작업은 현대 디자인 경향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전 과정이 여성 특유의 섬세한 수(手)작업에 바탕을 두고 판 작업이나 물레성형 후 변형시키는 방법과 여러 번의 소성과정에 의해 제작된 그의 작업은 생활공간에서 정겨운 오브제로써 실용성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의 시적 감수성과 작업의 섬세함을 통하여 그의 작업은 우리에게 갖고 싶은 일상의 생활 공예의 역할을 톡톡히 담당하고 있다. 도예에 있어서 색은 태토의 색, 불, 유약의 조화로 인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색은 여간 어렵고 조심스러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장진은 과도한 장식이 없는 유백색 등의 단색조를 주조로 하여 장식으로 가득 찬 용기디자인이 아니라 담을 수 있는 <사용자의 공간을 배려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것은 조선의 장인이 만듦에도 불구하고 기술적인 완벽성을 뽐내는 교만함이 없는 무위(無爲)의 세계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과 같이 백색은 색이 없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완벽한 색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장진의 용기는 시각과 촉각을 통하여 사용자에게 기쁨과 애정을 주는 <생활 속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장진 작업에서 용기는 사각형, 원형의 단위 형태(unit)의 반복과 그것의 공간 구성에 따른 리듬감으로 일련 된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업의 기하학적인 단위 형태는 성형과 소성 과정을 통하여 서양의 기하학적인 하드 에지(Hard edge)의 차갑고 이지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가장자리가 다소 완만한 자연스러운 형상을 띠고 있다. 특히 장진의 병과 접시, 주전자는 천편일률적으로 생산된 산업도자가 아니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공방도자로 미적 감흥과 기능적 효율성을 동시에 충족시켜 주고 있다. 또한 물레성형, 판 작업과 같은 일품적인 작업과 동시에 캐스팅 작업과 같은 제작 방법의 다양화를 시도하여 공예품의 대중화와 함께 동시에 희소성의 가치를 추구하는 양면성을 추구하고 있다. 그의 다양한 작업은 회화나 조각의 영역에서 부분적인 양산이나 대중화를 위한 판화, 주물조각과 같은 에디션(edition)의 측면으로 이러한 양면성은 매우 고무적이라 생각된다.
이와 같이 장진의 작업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장르의 해체에 바탕을 둔 현대공예의 특징적인 현상으로, 특히 공예+디자인=공예디자인의 영역은 21세기의 고부가가치의 문화상품을 창출할 수 있는 분야로 여겨지고 있다. 즉 장진의 기물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용기로써 그리고 오브제로써의 역할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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